[특파원리포트] 러시아 승전기념일이 항상 맑은 이유는?

입력 2017.05.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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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전 72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

5월 9일. 한국에서는 역사적인 19대 대통령 선거 투표.개표로 바쁜 와중에 러시아에서는
2차 세계대전 승전 72주년 기념행사로 전국이 북새통을 이뤘다. 승전 기념일 행사의 하일라이트는, 모스크바 크렘린 궁 앞 붉은 광장에서 오전 10시에 펼쳐진 군사 퍼레이드였다.

군사 퍼레이드는, 2차 대전때 나치 독일을 물리친 러시아 국민의 자존감을 확인하고 첨단 무기 등 러시아의 군사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푸틴 대통령은 축하 연설에서 "러시아 국민을 굴복시킬 수 있는 세력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에 이어 군사학교 생도, 국가근위대 등 만 명의 군인들이 질서정연하게 광장을 행진했다. 뒤이어 2차대전에서 T-34 탱크를 시작으로 100여 대의 각종 무기들이 광장을 지나갔다.


지난 2015년 첫선을 보인 최신형 탱크 '아르마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RS-24 야르스, 신형 전술 미사일 '이스칸데르', 첨단 방공미사일 S-400, 각종 장갑차량이 선보였다.


특히, 올해 군사 퍼레이드에서는 처음으로 러시아 북극해를 방위하는 방공 부대가 참석했다. 방공부대는 방공 미사일 시스템 'Tor-M2DT'와 대공방어시스템 '판치리'를 선보였는데,
흰색과 회색으로 칠한 차량에 포효하는 북극곰이 그려져 있는게 인상적이었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방공 미사일 시스템인 'Tor-M2DT'와 '판치리'는 각각 15km, 20km 반경
이내에서 비행하는 공중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미사일 시스템으로,
수직에 가까운 경사를 올라가고 수중 장애물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건널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퍼레이드의 대미를 장식하던 공군기들의 '에어쇼'는 올해는 열리지 못했다. 모스크바 상공에 짙은 먹구름이 끼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는 하루 전날인 8일부터 큰 눈과 비가 번갈아 내리는 기상 악천후가 이어졌다.


군사 퍼레이드가 끝난 뒤 정오쯤에는, 모스크바 시민들이 2차대전에 참가했던 친인척들의 사진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불멸의 연대' 행사를 벌였다. 푸틴 대통령도 2차대전에 참전한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붉은광장에 입구에서 대열에 합류해 광장 끝까지 시민들과 함께 행진했다.

■ 해마다 군사 퍼레이드를 하는 이유는?

러시아의 군사 퍼레이드는 그 규모면에서 독보적이다. 2016년 승전 기념일 기념행사에는 전국적으로 2천 4백만 명(러시아 인구의 1/6)이 넘는 인파가 참여했다. 전승 70주년이었던 2015년 퍼레이드를 치르는데 8억 1천만 루블(약 160억 5,420만 원)이 들었고, 2016년에 들어간 비용은 2억 9천 5백만 루블(58억 4,690만 원)이었다.


서유럽이나 미국은 2차대전 종전을 대규모 군사행사로 기념하지 않고, 중국도 2015년에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열병식을 가졌지만, 그것 역시 일회성 행사였다. 그런데, 유독 러시아에서 수천 명이 참여하는 군사 퍼레이드를 해마다 개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와관련해, 러시아 언론인 'Russia 포커스'가 흥미로운 기사를 올렸다.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 언제냐는 사회학자들의 질문에 러시아인들은 20년 넘게 ‘1941~1945년 대조국전쟁(2차 세계대전을 러시아에서 이렇게 부른다)에서의 승리’를 가장 많이 꼽고 있다는 것이다. 나치 독일에 대한 승전 기념일인 5월 9일이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전국민적 축제의 하나라는 것이다.

역사학자인 드미트리 안드레예프는 'Russia 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에서 승전 기념일은 러시아를 하나로 묶어주는, 실제 효과가 증명된 몇 안 되는 ‘접착제’ 중 하나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안드레예프는 "승전기념일과 이를 둘러싼 기억 공간은 국민적 화합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군사 퍼레이드와 '불멸의 연대’ 행진 등은 공동의 기억을 통해 사람들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당국은 이러한 의식들을 국민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군사 퍼레이드 개최 등 승전 기념일을 최대한 성대하게 치르려는 러시아 당국의 노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대조국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소련 시절 승전기념 군사퍼레이드는 현대 러시아보다 훨씬 약소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스탈린이나 흐루쇼프는 대조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사령관들이 정치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1965년까지 승전기념일은 공휴일로 지정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브레즈네프 서기장에 이르러서야 승전기념일을 국가적 차원에서 전국적 규모로 성대하게 기념했고 소련의 마지막 군사퍼레이드는 1990년에 치러졌다. 새로운 러시아 수립 초기 몇 년 동안은 퍼레이드는 열리지 않다가 1995년에 다시 개최됐고 현재와 같은 규모로 퍼레이드를 개최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와서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96%에 달하는 압도적 다수의 러시아인들이 군사 퍼레이드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전승 기념일엔 왜 비가 안 올까?


승전 기념일에는 경험상 날씨가 좋았다. 다만, 올해는 하루 전날인 8일까지 눈비가 몰아치는 겨울 상황이 연출돼서 과연 9일 승전 기념일에 날씨가 좋아질까 관심이 집중됐었다. 그런데, 어김없이 9일 아침이 되자 비가 그쳤고 군사 퍼레이드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Russia 포커스'는 이미 몇년째 모스크바에서 기상 조작 기술을 사용해 전승 기념일 퍼레이드를 앞두고 구름을 흩어버린다고 전했다. 2015년에도 전승 기념일에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잇었지만, 모스크바 시는 구름을 제거하기 위해 840만 달러의 예산을 편성했다고 한다.


비공식적으로 '구름 소탕'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소련 시절에 이미 개발됐다고 한다. 구름 제거 과정은 화창한 날씨가 필요한 지역으로부터 50~150km 떨어진 곳에서 진행된다. 구름의 종류에 따라 드라이 아이스, 액화질소, 시멘트에 기반한 혼합물이 사용된다. 그 결과 수분은 살포된 시약의 핵에 농축되고 먹구름은 이미 탈수된 상태로 모스크바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가장 강한 비구름은 요오드화은으로 폭파시킨다고 한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5월 9일 전승 기념일은 궂은 날씨 때문에 망쳐 버리기엔 너무나 중요한 날이다. 참고로, 2차대전(대조국전쟁) 기간에 숨진 러시아 군인, 민간인들의 숫자는 2700만 명 정도로, 관련국 중 가장 많은 희생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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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러시아 승전기념일이 항상 맑은 이유는?
    • 입력 2017-05-10 15:11:46
    특파원 리포트
■ '승전 72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

5월 9일. 한국에서는 역사적인 19대 대통령 선거 투표.개표로 바쁜 와중에 러시아에서는
2차 세계대전 승전 72주년 기념행사로 전국이 북새통을 이뤘다. 승전 기념일 행사의 하일라이트는, 모스크바 크렘린 궁 앞 붉은 광장에서 오전 10시에 펼쳐진 군사 퍼레이드였다.

군사 퍼레이드는, 2차 대전때 나치 독일을 물리친 러시아 국민의 자존감을 확인하고 첨단 무기 등 러시아의 군사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푸틴 대통령은 축하 연설에서 "러시아 국민을 굴복시킬 수 있는 세력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에 이어 군사학교 생도, 국가근위대 등 만 명의 군인들이 질서정연하게 광장을 행진했다. 뒤이어 2차대전에서 T-34 탱크를 시작으로 100여 대의 각종 무기들이 광장을 지나갔다.


지난 2015년 첫선을 보인 최신형 탱크 '아르마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RS-24 야르스, 신형 전술 미사일 '이스칸데르', 첨단 방공미사일 S-400, 각종 장갑차량이 선보였다.


특히, 올해 군사 퍼레이드에서는 처음으로 러시아 북극해를 방위하는 방공 부대가 참석했다. 방공부대는 방공 미사일 시스템 'Tor-M2DT'와 대공방어시스템 '판치리'를 선보였는데,
흰색과 회색으로 칠한 차량에 포효하는 북극곰이 그려져 있는게 인상적이었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방공 미사일 시스템인 'Tor-M2DT'와 '판치리'는 각각 15km, 20km 반경
이내에서 비행하는 공중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미사일 시스템으로,
수직에 가까운 경사를 올라가고 수중 장애물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건널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퍼레이드의 대미를 장식하던 공군기들의 '에어쇼'는 올해는 열리지 못했다. 모스크바 상공에 짙은 먹구름이 끼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는 하루 전날인 8일부터 큰 눈과 비가 번갈아 내리는 기상 악천후가 이어졌다.


군사 퍼레이드가 끝난 뒤 정오쯤에는, 모스크바 시민들이 2차대전에 참가했던 친인척들의 사진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불멸의 연대' 행사를 벌였다. 푸틴 대통령도 2차대전에 참전한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붉은광장에 입구에서 대열에 합류해 광장 끝까지 시민들과 함께 행진했다.

■ 해마다 군사 퍼레이드를 하는 이유는?

러시아의 군사 퍼레이드는 그 규모면에서 독보적이다. 2016년 승전 기념일 기념행사에는 전국적으로 2천 4백만 명(러시아 인구의 1/6)이 넘는 인파가 참여했다. 전승 70주년이었던 2015년 퍼레이드를 치르는데 8억 1천만 루블(약 160억 5,420만 원)이 들었고, 2016년에 들어간 비용은 2억 9천 5백만 루블(58억 4,690만 원)이었다.


서유럽이나 미국은 2차대전 종전을 대규모 군사행사로 기념하지 않고, 중국도 2015년에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열병식을 가졌지만, 그것 역시 일회성 행사였다. 그런데, 유독 러시아에서 수천 명이 참여하는 군사 퍼레이드를 해마다 개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와관련해, 러시아 언론인 'Russia 포커스'가 흥미로운 기사를 올렸다.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 언제냐는 사회학자들의 질문에 러시아인들은 20년 넘게 ‘1941~1945년 대조국전쟁(2차 세계대전을 러시아에서 이렇게 부른다)에서의 승리’를 가장 많이 꼽고 있다는 것이다. 나치 독일에 대한 승전 기념일인 5월 9일이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전국민적 축제의 하나라는 것이다.

역사학자인 드미트리 안드레예프는 'Russia 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에서 승전 기념일은 러시아를 하나로 묶어주는, 실제 효과가 증명된 몇 안 되는 ‘접착제’ 중 하나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안드레예프는 "승전기념일과 이를 둘러싼 기억 공간은 국민적 화합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군사 퍼레이드와 '불멸의 연대’ 행진 등은 공동의 기억을 통해 사람들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당국은 이러한 의식들을 국민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군사 퍼레이드 개최 등 승전 기념일을 최대한 성대하게 치르려는 러시아 당국의 노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대조국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소련 시절 승전기념 군사퍼레이드는 현대 러시아보다 훨씬 약소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스탈린이나 흐루쇼프는 대조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사령관들이 정치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1965년까지 승전기념일은 공휴일로 지정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브레즈네프 서기장에 이르러서야 승전기념일을 국가적 차원에서 전국적 규모로 성대하게 기념했고 소련의 마지막 군사퍼레이드는 1990년에 치러졌다. 새로운 러시아 수립 초기 몇 년 동안은 퍼레이드는 열리지 않다가 1995년에 다시 개최됐고 현재와 같은 규모로 퍼레이드를 개최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와서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96%에 달하는 압도적 다수의 러시아인들이 군사 퍼레이드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전승 기념일엔 왜 비가 안 올까?


승전 기념일에는 경험상 날씨가 좋았다. 다만, 올해는 하루 전날인 8일까지 눈비가 몰아치는 겨울 상황이 연출돼서 과연 9일 승전 기념일에 날씨가 좋아질까 관심이 집중됐었다. 그런데, 어김없이 9일 아침이 되자 비가 그쳤고 군사 퍼레이드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Russia 포커스'는 이미 몇년째 모스크바에서 기상 조작 기술을 사용해 전승 기념일 퍼레이드를 앞두고 구름을 흩어버린다고 전했다. 2015년에도 전승 기념일에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잇었지만, 모스크바 시는 구름을 제거하기 위해 840만 달러의 예산을 편성했다고 한다.


비공식적으로 '구름 소탕'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소련 시절에 이미 개발됐다고 한다. 구름 제거 과정은 화창한 날씨가 필요한 지역으로부터 50~150km 떨어진 곳에서 진행된다. 구름의 종류에 따라 드라이 아이스, 액화질소, 시멘트에 기반한 혼합물이 사용된다. 그 결과 수분은 살포된 시약의 핵에 농축되고 먹구름은 이미 탈수된 상태로 모스크바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가장 강한 비구름은 요오드화은으로 폭파시킨다고 한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5월 9일 전승 기념일은 궂은 날씨 때문에 망쳐 버리기엔 너무나 중요한 날이다. 참고로, 2차대전(대조국전쟁) 기간에 숨진 러시아 군인, 민간인들의 숫자는 2700만 명 정도로, 관련국 중 가장 많은 희생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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