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이런 숲이?…‘팥배나무 꽃동산’

입력 2017.05.10 (15:29) 수정 2017.05.1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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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눈이라도 내린 듯, 나무가 하얗게 덮였습니다. 새하얀 꽃잎이 푸른 신록 위에서 더욱 눈부십니다. 갑자기 터져 나와 흐드러지게 핀 꽃, 바로 팥배나무 꽃입니다. 나무 이름이 언뜻 꽃에 어울리지 않는 투박함이 풍기지만, 그 연원은 꽃과 관계가 있습니다. 열매는 팥을, 꽃은 배나무 꽃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팥배나무 꽃팥배나무 꽃

팥배나무 열매팥배나무 열매

팥배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자랍니다. 하지만 한곳에 밀집해서 자라는 순림(純林)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뜻밖에도 서울에 팥배나무 순림이 있습니다. 은평구 봉산 자락입니다. 키가 10m를 넘는 팥배나무가 빽빽하게 자랍니다.

팥배나무 숲           ⓒ이호영팥배나무 숲           ⓒ이호영


5월이면 숲 전체를 하얀 꽃으로 덮는 꽃동산의 독특한 경관을 보여줍니다. 가을이면 빨갛게 익은 팥배나무 열매가 보석처럼 주렁주렁 매달립니다. 이 열매는 겨울을 나는 새들의 주된 먹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런 경관과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2007년 서울시는 봉산 팥배나무 군락지 73,478㎡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이처럼 독특한 팥배나무 순림이 어떻게 서울에서 형성될 수 있었을까요?


 팥배나무 숲 팥배나무 숲

팥배나무 껍질은 짙은 회갈색에 매끈합니다. 빽빽한 팥배나무 사이로 껍질이 두껍고 갈라진 아까시나무도 보입니다. 아까시나무 지름은 팥배나무보다 더 굵습니다. 아까시나무와 팥배나무의 서식 상황을 보면 팥배나무 숲의 형성 과정이 드러납니다.


까치 집이 매달린 키 큰 나무들이 아까시나무입니다. 아직 잎이 많이 나진 않았지요. 하지만 그 아래 팥배나무와 참나무 등 다른 활엽수들은 벌써 무성하게 잎을 펼치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런 나무들 아래서 어린 아까시나무는 자랄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아까시나무가 나이가 들거나 병들어 죽고 나면 숲은 그 아래에서 올라오는 다른 활엽수들로 대체되고 맙니다. 지금의 팥배나무 숲도 아까시나무를 대체하면서 형성된 겁니다.

 팥배나무 팥배나무

구한말과 일본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서울 근교의 숲은 대부분 황폐해졌습니다. 봉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6, 7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조림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심어진 대표적인 수종이 아까시나무입니다. 아까시나무는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랍니다. 뿌리 끝 부분에 있는 뿌리혹박테리아를 이용해서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땅을 비옥하게 만듭니다. 아까시나무가 흙을 비옥하게 해주면 그때야 다른 나무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 때문에 아까시나무를 비료목, 선구(先驅)목이라고도 부릅니다. 팥배나무도 아까시 뒤를 이어 봉산에 들어온 겁니다.



팥배나무는 꿀을 제공하는 밀원(蜜源)식물이기도 합니다. 꽃에 꿀샘이 많아서 벌들이 모여듭니다. 잎은 겹톱니 모양의 특징이 있습니다. 잎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 톱니 모양 안에도 다시 톱니 모양이 있습니다. 돌출된 잎맥은 간격이 거의 일정합니다. 일본에서는 이 때문에 '저울눈 나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팥배나무 잎팥배나무 잎

서울시는 봉산 팥배나무 군락지에 생태탐방로를 조성했습니다. 계절에 따라 팥배나무 순림이 보여주는 경관을 시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한 거지요. 한때 황량했던 봉산이 조림과 그 뒤 자연스러운 숲의 천이 과정을 거쳐 지금은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나는 봉산의 경관이 그대로 지켜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히말라야시다 묘목히말라야시다 묘목

봉산 능선을 따라 낯선 침엽수가 곳곳에 식재돼 있습니다. 멀리 히말라야가 고향인 '히말라야시다'입니다. 일본 강점기에 일본이 들여온 대표적 수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형이 아름답다고 해서 일본은 3대 미수(美樹)로 꼽기도 합니다. 하지만 봉산에 심은 히말라야시다는 어쩐지 어색합니다. 주변의 활엽수림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외래종인 침엽수는 또 있습니다.

봉산 편백 조림지봉산 편백 조림지

봉산 한쪽 자락이 벌목돼 있습니다. 은평구가 편백 숲을 조성하겠다면서 7ha 면적의 나무를 베어내고 대신 편백 묘목 만 그루를 심은 겁니다. 편백도 일본이 원산지인 외래종입니다. 편백이 내뿜는 피톤치드가 건강에 좋다고는 하지만 굳이 기존의 숲을 베어내고 조림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겨울이면 히말라야시다나 편백은 잎이 지지 않기 때문에 주변의 활엽수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경관을 보여주게 됩니다.

어린 팥배나무어린 팥배나무

팥배나무 숲 아래쪽에는 어린 팥배나무들이 많습니다. 큰 나무들이 죽더라도 어린나무들이 대를 이어 팥배나무 숲을 유지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봄에는 하얀 꽃동산과 가을이면 보석처럼 빛나는 붉은 열매의 장관도 계속될 겁니다. 굳이 사람이 손을 대지 않더라도, 자연은 있는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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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에 이런 숲이?…‘팥배나무 꽃동산’
    • 입력 2017-05-10 15:29:36
    • 수정2017-05-10 16:08:56
    취재K
마치 눈이라도 내린 듯, 나무가 하얗게 덮였습니다. 새하얀 꽃잎이 푸른 신록 위에서 더욱 눈부십니다. 갑자기 터져 나와 흐드러지게 핀 꽃, 바로 팥배나무 꽃입니다. 나무 이름이 언뜻 꽃에 어울리지 않는 투박함이 풍기지만, 그 연원은 꽃과 관계가 있습니다. 열매는 팥을, 꽃은 배나무 꽃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팥배나무 꽃
팥배나무 열매
팥배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자랍니다. 하지만 한곳에 밀집해서 자라는 순림(純林)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뜻밖에도 서울에 팥배나무 순림이 있습니다. 은평구 봉산 자락입니다. 키가 10m를 넘는 팥배나무가 빽빽하게 자랍니다.

팥배나무 숲           ⓒ이호영

5월이면 숲 전체를 하얀 꽃으로 덮는 꽃동산의 독특한 경관을 보여줍니다. 가을이면 빨갛게 익은 팥배나무 열매가 보석처럼 주렁주렁 매달립니다. 이 열매는 겨울을 나는 새들의 주된 먹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런 경관과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2007년 서울시는 봉산 팥배나무 군락지 73,478㎡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이처럼 독특한 팥배나무 순림이 어떻게 서울에서 형성될 수 있었을까요?


 팥배나무 숲
팥배나무 껍질은 짙은 회갈색에 매끈합니다. 빽빽한 팥배나무 사이로 껍질이 두껍고 갈라진 아까시나무도 보입니다. 아까시나무 지름은 팥배나무보다 더 굵습니다. 아까시나무와 팥배나무의 서식 상황을 보면 팥배나무 숲의 형성 과정이 드러납니다.


까치 집이 매달린 키 큰 나무들이 아까시나무입니다. 아직 잎이 많이 나진 않았지요. 하지만 그 아래 팥배나무와 참나무 등 다른 활엽수들은 벌써 무성하게 잎을 펼치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런 나무들 아래서 어린 아까시나무는 자랄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아까시나무가 나이가 들거나 병들어 죽고 나면 숲은 그 아래에서 올라오는 다른 활엽수들로 대체되고 맙니다. 지금의 팥배나무 숲도 아까시나무를 대체하면서 형성된 겁니다.

 팥배나무
구한말과 일본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서울 근교의 숲은 대부분 황폐해졌습니다. 봉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6, 7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조림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심어진 대표적인 수종이 아까시나무입니다. 아까시나무는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랍니다. 뿌리 끝 부분에 있는 뿌리혹박테리아를 이용해서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땅을 비옥하게 만듭니다. 아까시나무가 흙을 비옥하게 해주면 그때야 다른 나무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 때문에 아까시나무를 비료목, 선구(先驅)목이라고도 부릅니다. 팥배나무도 아까시 뒤를 이어 봉산에 들어온 겁니다.



팥배나무는 꿀을 제공하는 밀원(蜜源)식물이기도 합니다. 꽃에 꿀샘이 많아서 벌들이 모여듭니다. 잎은 겹톱니 모양의 특징이 있습니다. 잎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 톱니 모양 안에도 다시 톱니 모양이 있습니다. 돌출된 잎맥은 간격이 거의 일정합니다. 일본에서는 이 때문에 '저울눈 나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팥배나무 잎
서울시는 봉산 팥배나무 군락지에 생태탐방로를 조성했습니다. 계절에 따라 팥배나무 순림이 보여주는 경관을 시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한 거지요. 한때 황량했던 봉산이 조림과 그 뒤 자연스러운 숲의 천이 과정을 거쳐 지금은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나는 봉산의 경관이 그대로 지켜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히말라야시다 묘목
봉산 능선을 따라 낯선 침엽수가 곳곳에 식재돼 있습니다. 멀리 히말라야가 고향인 '히말라야시다'입니다. 일본 강점기에 일본이 들여온 대표적 수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형이 아름답다고 해서 일본은 3대 미수(美樹)로 꼽기도 합니다. 하지만 봉산에 심은 히말라야시다는 어쩐지 어색합니다. 주변의 활엽수림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외래종인 침엽수는 또 있습니다.

봉산 편백 조림지
봉산 한쪽 자락이 벌목돼 있습니다. 은평구가 편백 숲을 조성하겠다면서 7ha 면적의 나무를 베어내고 대신 편백 묘목 만 그루를 심은 겁니다. 편백도 일본이 원산지인 외래종입니다. 편백이 내뿜는 피톤치드가 건강에 좋다고는 하지만 굳이 기존의 숲을 베어내고 조림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겨울이면 히말라야시다나 편백은 잎이 지지 않기 때문에 주변의 활엽수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경관을 보여주게 됩니다.

어린 팥배나무
팥배나무 숲 아래쪽에는 어린 팥배나무들이 많습니다. 큰 나무들이 죽더라도 어린나무들이 대를 이어 팥배나무 숲을 유지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봄에는 하얀 꽃동산과 가을이면 보석처럼 빛나는 붉은 열매의 장관도 계속될 겁니다. 굳이 사람이 손을 대지 않더라도, 자연은 있는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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