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잇단 무죄…‘대체 복무제’ 도입은?

입력 2017.05.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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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잇단 무죄…‘대체 복무제’ 도입은?

양심적 ‘병역거부’ 잇단 무죄…‘대체 복무제’ 도입은?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하지만 이날은 스승의 날인 동시에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이기도 하다.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이날 광화문 광장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이날 광장에는 가로 8미터, 세로 4미터 크기의 '모형 감옥'이 설치됐고, 그 안에는 수형자 복장을 한 수십 명이 들어섰다. 이들은 저마다 죄명이 적힌 종이를 한 장씩 들고 있었다. 각자 이름은 달랐지만 죄명은 모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로 동일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병역거부자들이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것이다.


기자회견에 나선 나동혁 씨는 2004년 병역거부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한 바 있다. 나 씨는 이 자리에서 1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2017년 현재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호소했다. 나 씨는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의 기회를 달라는 외침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당시만 해도 이 문제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2017년 4월을 기준으로 최소 397명의 병역거부자들이 징역형을 선고 받고 수감 중에 있다. 지난 60년 간 수감된 병역거부자는 모두 만 9천 명이 넘는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처럼 매년 수백 명이 감옥에 가야하는 상황을 놓고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마침내 국방부가 2007년 '전과자를 양산하는 현 제도는 어떤 방법으로든 개선되어야한다'며 대체복무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듬해인 2008년 '국민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대체복무제 도입을 다시 전면 보류했고, 이후 관련 논의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 사이 국제 사회에서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놓고 의견 표명이 이어졌고, 마침내 2015년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하면서 수감된 병역거부자 전원을 즉각 석방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물론 그 사이에도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계속돼 왔다. 병역거부자 처벌의 근거가 되는 병역법 규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하는 재판부가 꾸준히 늘어왔고, 일선 법원에서도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이른바 '소신 판결'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3년 동안만 19건의 무죄 판결이 있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항소심 재판부에서 최초로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 역시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의 근거가 되는 병역법 제 88조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진행하고 있다.

대체복무제 도입에 긍정적인 기류는 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선 기간 동안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는 현실을 개선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도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올해 초 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부제 :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를 통해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또 "문제는 대체복무가 군 복무보다 특혜처럼 느껴지는 것인데 형평성 있게 하면 그렇지 않다"며 군 복무보다 길게 무상으로 사회 복무를 하는 것을 제안했다.

나동혁 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세 기간 동안 '상식이 상식이 되는 나라, 정의가 눈으로 보이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며 "이번에는 꼭 대체복무제 도입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서울 은평 갑)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만큼 현 정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날 만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하나 같이 "결코 병역을 기피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간이 더 길어도 좋으니 대체복무의 기회를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누구는 양심이 없어서 군대 가느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대체복무제 도입에 있어 찬반 의견이 엇갈릴 수는 있지만 지난 수십 년간 공론화 되어 온 이 문제에 대해 이제는 어느 정도 해결책을 내놓을 때가 됐다는 점이다.

앞서 12일 서울동부지법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이후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 2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이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내놓은 의견은 이 문제의 핵심을분명히 짚어주고 있다. 아래에 이를 첨부한다.

"피고인은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비추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한다. 국가는 이를 실현할 의무와 권능이 있음에도 외면해왔다. 국가의 의무 해태로 인한 불이익은 스스로 부담해야지 이를 피고인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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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심적 ‘병역거부’ 잇단 무죄…‘대체 복무제’ 도입은?
    • 입력 2017-05-15 15:49:23
    취재K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하지만 이날은 스승의 날인 동시에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이기도 하다.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이날 광화문 광장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이날 광장에는 가로 8미터, 세로 4미터 크기의 '모형 감옥'이 설치됐고, 그 안에는 수형자 복장을 한 수십 명이 들어섰다. 이들은 저마다 죄명이 적힌 종이를 한 장씩 들고 있었다. 각자 이름은 달랐지만 죄명은 모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로 동일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병역거부자들이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것이다.


기자회견에 나선 나동혁 씨는 2004년 병역거부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한 바 있다. 나 씨는 이 자리에서 1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2017년 현재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호소했다. 나 씨는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의 기회를 달라는 외침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당시만 해도 이 문제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2017년 4월을 기준으로 최소 397명의 병역거부자들이 징역형을 선고 받고 수감 중에 있다. 지난 60년 간 수감된 병역거부자는 모두 만 9천 명이 넘는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처럼 매년 수백 명이 감옥에 가야하는 상황을 놓고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마침내 국방부가 2007년 '전과자를 양산하는 현 제도는 어떤 방법으로든 개선되어야한다'며 대체복무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듬해인 2008년 '국민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대체복무제 도입을 다시 전면 보류했고, 이후 관련 논의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 사이 국제 사회에서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놓고 의견 표명이 이어졌고, 마침내 2015년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하면서 수감된 병역거부자 전원을 즉각 석방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물론 그 사이에도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계속돼 왔다. 병역거부자 처벌의 근거가 되는 병역법 규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하는 재판부가 꾸준히 늘어왔고, 일선 법원에서도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이른바 '소신 판결'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3년 동안만 19건의 무죄 판결이 있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항소심 재판부에서 최초로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 역시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의 근거가 되는 병역법 제 88조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진행하고 있다.

대체복무제 도입에 긍정적인 기류는 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선 기간 동안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는 현실을 개선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도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올해 초 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부제 :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를 통해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또 "문제는 대체복무가 군 복무보다 특혜처럼 느껴지는 것인데 형평성 있게 하면 그렇지 않다"며 군 복무보다 길게 무상으로 사회 복무를 하는 것을 제안했다.

나동혁 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세 기간 동안 '상식이 상식이 되는 나라, 정의가 눈으로 보이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며 "이번에는 꼭 대체복무제 도입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서울 은평 갑)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만큼 현 정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날 만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하나 같이 "결코 병역을 기피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간이 더 길어도 좋으니 대체복무의 기회를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누구는 양심이 없어서 군대 가느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대체복무제 도입에 있어 찬반 의견이 엇갈릴 수는 있지만 지난 수십 년간 공론화 되어 온 이 문제에 대해 이제는 어느 정도 해결책을 내놓을 때가 됐다는 점이다.

앞서 12일 서울동부지법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이후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 2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이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내놓은 의견은 이 문제의 핵심을분명히 짚어주고 있다. 아래에 이를 첨부한다.

"피고인은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비추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한다. 국가는 이를 실현할 의무와 권능이 있음에도 외면해왔다. 국가의 의무 해태로 인한 불이익은 스스로 부담해야지 이를 피고인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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