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만경봉호’ 러시아 취항…취재는 금지?

입력 2017.05.19 (09:55) 수정 2017.05.19 (11:2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특파원리포트] ‘만경봉호’ 러시아 취항…취재는 금지?

[특파원리포트] ‘만경봉호’ 러시아 취항…취재는 금지?

5월 18일 오전 8시. 전날 북한 나진항을 출발한 북한 선박 '만경봉(만경봉 92)호"가 러시아 극동 항구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이날 운항은 오는 25일 본 운항에 앞서 선박 상태와 항로 등을 점검하기 위한 시범 운항 성격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도착한 만경봉호에 타고 있던 중국 관광객들블라디보스토크 항에 도착한 만경봉호에 타고 있던 중국 관광객들

승객은 40여 명 정도였는데, 주로 나진~블라디보스토크 선박 여행 상품에 관심을 가진 중국 여행사 대표들이었다. 중국인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관광에 나서면 북한만 보고 돌아갔었는데, 이번 선박 여행을 통해서는 북한과 러시아 두 나라를 동시에 볼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 국경으로 바다가 막혀 있는 지린성 거주 중국인들은 바다 여행을 하면서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북한과 러시아를 오가는 해상 정기 여객·화물선이 취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북러 간에는 블라디보스토크~평양을 주 2차례 운항하는 항공 노선과 두만강을 건너 양국 국경을 통과하는 철도 운송 노선만 있다. 북러 관계가 긴밀했던 옛 소련 시절에도 양국을 오가는 해상 여객선 운항은 없었다.

앞서 17일 나진항에서 열린 출항 기념식에는 청진 주재 러시아 총영사 등 러시아 인사와 나선시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만경봉호 취항이 북러 간 경제협력과 관광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국제사회 이목이 부담스러운 듯"

만경봉호 도착을 기다리는 블라디보스토크 항의 취재진들만경봉호 도착을 기다리는 블라디보스토크 항의 취재진들

18일 오전 만경봉호가 도착할 무렵,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선착장에는 러시아, 일본 기자 등 30여 명의 기자들이 선박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런데 곳곳에 배치된 러시아 경찰들이 기자들의 현장 접근을 가로막으면서 해프닝이 벌어졌다.

경찰은 기자들에게 "더이상 접근하지 마라. 사진 촬영도 안 된다. 상부의 지시다"라고 말했고,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대테러 훈련(anti-terroristic excercises) 같다는 애매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부 기자들이 사진을 촬영하자, 즉각 보는 앞에서 사진을 지우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관광객들이 본인들의 인증샷을 찍는 것도 금지했다. 취재기자들은 1~2시간 동안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다 속절없이 현장을 떠나고 말았다.

러시아 언론 '로시야 24'는 이와 관련해, 하선 과정에서 주인 없이 방치된 짐들이 발견되는 바람에 선착장 건물이 한때 출입 통제됐었다고 전했다. 최근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지하철 테러를 겪은 러시아로서는 이같은 조치를 취하는 데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현지 경찰은 언론 취재에 왜 그렇게 과민한 반응을 보인 걸까? 이와 관련해 일부 현지 언론들은 북한 핵·미사일 발사 개발에 대해, 국제사회가 추가적인 대북 제재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북한 선박이 러시아 극동 항구에 취항하는 사실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주목되는 점 등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남한을 찾은 만경봉호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남한을 찾은 만경봉호

주지하다시피, 북한과 일본을 오가며 승객과 물자를 실어나르던 만경봉(만경봉 92)호는 재일교포 북송선의 대명사로 꼽혔고, 지난 2006년 일본 정부가 대북 제재의 하나로 일본 입항을 금지한 이후로는 나진항에 방치돼 있던 선박이다.

러시아 해운사인 '인베스트 스트로이 트러스트'사가 만경봉호를 수리해 북한과 러시아를 오가는 해운 사업에 투입하기로 북측과 합의하고 지난해부터 선박 수리와 행정 절차 등을 추진해 왔다. 중국 여행사들은 북중러 3국 국경 접경도시인 나진~훈춘~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패키지 관광상품을 운용하자고 제안해 왔다고, 연해주 주 정부는 전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가동 중인 상황에서 만경봉호가 러시아 극동에 취항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여기에 이달 초 미국 하원은 초강력 대북 제재법을 통과시키면서, 유엔 안보리의 제재안이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러시아 극동 항구들을 특별감시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하지만, 만경봉호 운항을 맡은 러시아 해운회사는 통상적인 경제활동이라며 대북 제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 항의 만경봉호블라디보스토크 항의 만경봉호

'인베스트 스트로이 트러스트'사의 미하일 흐멜 부사장은 "만경봉호 취항은 순전히 경제적인 것이다. 북러 간에는 이미 항공노선과 철로가 있다. 양국 간에 접촉면이 많아지면 관계가 더 좋아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승객의 대부분은 중국 관광객들이다. 연해주 항만청에 문의해봤는데, 대북 제재와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의 자하로바 대변인도 18일 정례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관련된 질문을 받고 선박 운항과 대북 제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대답했다.

"모범적인 북중러 협력사업"

블라디보스토크 항 전경블라디보스토크 항 전경

당초 이번 만경봉호 취항 건은 러시아 연방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연해주 정부와 러시아 상공회의소가 점증하는 극동지역 관광객 수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추진했으며, 다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논의 등 국제 정세를 염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보고받은 푸틴 대통령은 매우 모범적인 북중러 협력사업이라고 평가하면서, 관계자들을 치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가 이번 만경봉호 운항을 허용한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북한을 압박하기만 하는 미국 등 서방에 대한 반발과 새로 출범한 한국 정부에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설 것을 촉구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또, 지난해 성사 직전까지 갔던 나진~하산 경제협력 사업을 접은 한국 정부를 자극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내포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만경봉호가 러시아 극동에 취항함으로써 대북 제재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여전한 가운데, 시범 운항을 마친 만경봉호는 오는 25일부터 주 1회 본격 운항을 시작한다. 만경봉호는 최대 200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최대 1,500톤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만경봉호’ 러시아 취항…취재는 금지?
    • 입력 2017-05-19 09:55:40
    • 수정2017-05-19 11:23:04
    특파원 리포트
5월 18일 오전 8시. 전날 북한 나진항을 출발한 북한 선박 '만경봉(만경봉 92)호"가 러시아 극동 항구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이날 운항은 오는 25일 본 운항에 앞서 선박 상태와 항로 등을 점검하기 위한 시범 운항 성격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도착한 만경봉호에 타고 있던 중국 관광객들
승객은 40여 명 정도였는데, 주로 나진~블라디보스토크 선박 여행 상품에 관심을 가진 중국 여행사 대표들이었다. 중국인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관광에 나서면 북한만 보고 돌아갔었는데, 이번 선박 여행을 통해서는 북한과 러시아 두 나라를 동시에 볼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 국경으로 바다가 막혀 있는 지린성 거주 중국인들은 바다 여행을 하면서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북한과 러시아를 오가는 해상 정기 여객·화물선이 취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북러 간에는 블라디보스토크~평양을 주 2차례 운항하는 항공 노선과 두만강을 건너 양국 국경을 통과하는 철도 운송 노선만 있다. 북러 관계가 긴밀했던 옛 소련 시절에도 양국을 오가는 해상 여객선 운항은 없었다.

앞서 17일 나진항에서 열린 출항 기념식에는 청진 주재 러시아 총영사 등 러시아 인사와 나선시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만경봉호 취항이 북러 간 경제협력과 관광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국제사회 이목이 부담스러운 듯"

만경봉호 도착을 기다리는 블라디보스토크 항의 취재진들
18일 오전 만경봉호가 도착할 무렵,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선착장에는 러시아, 일본 기자 등 30여 명의 기자들이 선박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런데 곳곳에 배치된 러시아 경찰들이 기자들의 현장 접근을 가로막으면서 해프닝이 벌어졌다.

경찰은 기자들에게 "더이상 접근하지 마라. 사진 촬영도 안 된다. 상부의 지시다"라고 말했고,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대테러 훈련(anti-terroristic excercises) 같다는 애매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부 기자들이 사진을 촬영하자, 즉각 보는 앞에서 사진을 지우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관광객들이 본인들의 인증샷을 찍는 것도 금지했다. 취재기자들은 1~2시간 동안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다 속절없이 현장을 떠나고 말았다.

러시아 언론 '로시야 24'는 이와 관련해, 하선 과정에서 주인 없이 방치된 짐들이 발견되는 바람에 선착장 건물이 한때 출입 통제됐었다고 전했다. 최근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지하철 테러를 겪은 러시아로서는 이같은 조치를 취하는 데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현지 경찰은 언론 취재에 왜 그렇게 과민한 반응을 보인 걸까? 이와 관련해 일부 현지 언론들은 북한 핵·미사일 발사 개발에 대해, 국제사회가 추가적인 대북 제재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북한 선박이 러시아 극동 항구에 취항하는 사실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주목되는 점 등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남한을 찾은 만경봉호
주지하다시피, 북한과 일본을 오가며 승객과 물자를 실어나르던 만경봉(만경봉 92)호는 재일교포 북송선의 대명사로 꼽혔고, 지난 2006년 일본 정부가 대북 제재의 하나로 일본 입항을 금지한 이후로는 나진항에 방치돼 있던 선박이다.

러시아 해운사인 '인베스트 스트로이 트러스트'사가 만경봉호를 수리해 북한과 러시아를 오가는 해운 사업에 투입하기로 북측과 합의하고 지난해부터 선박 수리와 행정 절차 등을 추진해 왔다. 중국 여행사들은 북중러 3국 국경 접경도시인 나진~훈춘~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패키지 관광상품을 운용하자고 제안해 왔다고, 연해주 주 정부는 전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가동 중인 상황에서 만경봉호가 러시아 극동에 취항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여기에 이달 초 미국 하원은 초강력 대북 제재법을 통과시키면서, 유엔 안보리의 제재안이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러시아 극동 항구들을 특별감시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하지만, 만경봉호 운항을 맡은 러시아 해운회사는 통상적인 경제활동이라며 대북 제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 항의 만경봉호
'인베스트 스트로이 트러스트'사의 미하일 흐멜 부사장은 "만경봉호 취항은 순전히 경제적인 것이다. 북러 간에는 이미 항공노선과 철로가 있다. 양국 간에 접촉면이 많아지면 관계가 더 좋아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승객의 대부분은 중국 관광객들이다. 연해주 항만청에 문의해봤는데, 대북 제재와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의 자하로바 대변인도 18일 정례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관련된 질문을 받고 선박 운항과 대북 제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대답했다.

"모범적인 북중러 협력사업"

블라디보스토크 항 전경
당초 이번 만경봉호 취항 건은 러시아 연방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연해주 정부와 러시아 상공회의소가 점증하는 극동지역 관광객 수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추진했으며, 다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논의 등 국제 정세를 염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보고받은 푸틴 대통령은 매우 모범적인 북중러 협력사업이라고 평가하면서, 관계자들을 치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가 이번 만경봉호 운항을 허용한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북한을 압박하기만 하는 미국 등 서방에 대한 반발과 새로 출범한 한국 정부에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설 것을 촉구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또, 지난해 성사 직전까지 갔던 나진~하산 경제협력 사업을 접은 한국 정부를 자극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내포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만경봉호가 러시아 극동에 취항함으로써 대북 제재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여전한 가운데, 시범 운항을 마친 만경봉호는 오는 25일부터 주 1회 본격 운항을 시작한다. 만경봉호는 최대 200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최대 1,500톤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