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중고보다 못한 신차”…바닷 바람 맞은 아우디

입력 2017.05.19 (11:24) 수정 2017.05.2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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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중고보다 못한 신차”…바닷 바람 맞은 아우디

[취재후] “중고보다 못한 신차”…바닷 바람 맞은 아우디

산 지 한 달만에...반복된 고장


나 모 씨는 지난해 12월 말, 꿈에 그리던 아우디 A6 차량을 구매했다. 차량 가격만 9천만 원에 달하는 비싼 차였지만 10년 넘게 타던 차를 팔고 샀기에 나 씨는 충분히 제 값을 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차를 넘겨받은 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주행 도중 이유 없이 시동이 꺼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 씨는 새 차의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해 일어난 일인 줄로만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히려 비싼 차인 만큼 자신도 모르는 안전 장치가 있다고 생각해 다행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원인 모를 시동 꺼짐 현상은 계속됐고, 마침내 세 번째로 차가 멈췄을 때는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져 접촉사고까지 났다. 차량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한 쪽 전조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가 하면 트렁크 개폐도 제멋대로 일어나는 등 잔고장이 이어졌다. 결국 참다못한 나 씨는 차를 산지 40일 만에 아우디 서비스센터를 찾아갔다.

그러나 나 씨의 차량을 넘겨받은 아우디 서비스센터 측은 한 달 넘게 고장 원인을 확인할 수 없었고, 이후에도 나 씨와 아우디 측과의 지루한 공방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나 씨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유산의 아픔까지 겪어야만 했다.

당연히 새 차인 줄 알았는데...1년 3개월이나 지난 차?


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나 씨가 아우디 측으로부터 받은 서류를 보니 나 씨의 차량은 2015년 9월에 평택항 PDI(Pre-Delivery Inspection·출고 전 검사장) 센터로 들어온 뒤 1년 3개월 간 그곳에 방치된 차량이었다. 당연히 신차인 줄 알고 차를 구매한 나 씨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실이었다.

어떻게 이처럼 중요한 사실이 차량 구매 전 통보되지 않았을까? KBS 취재진이 나 씨에게 차량을 판매한 아우디 측 딜러에게 문의했더니 해당 딜러는 "자신도 차를 넘겨받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먼저 들어온 차량을 계약 순서대로 먼저 출고시키는 '선입고-선출고' 방식을 쓰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뿐, 판매사 측에서도 해당 차량이 언제 생산된 것인지, 언제 한국에 들어온 것인지 차를 넘겨받을 때까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해당 딜러는 "모든 고객에게 공평하게 차를 출고하기 위한 방법"이라며 "대부분의 수입차 회사들이 같은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년 3개월 간 바닷바람에... 중고차보다 못한 신차



해당 차량을 넘겨받아 확인해봤다. 확인 결과 차량 하부 곳곳에서 심각하게 녹이 슬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소금기가 담긴 바닷바람이 금속물질과 접촉했을 때 발생하는 '눈꽃'도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국내 1호 자동차 명장인 박병일 명장은 "일반적으로 8~9년 정도 주행한 차량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라며 "주행 40일 만에 이렇게 됐다는 건 결국 바닷바람의 영향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병일 명장은 "고급차일수록 전자 부품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배선 접촉 불량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며 "특정 부품을 교체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전체 배선을 갈아야만 해결될 문제"라고 분석했다.

대림대 자동차학과의 김필수 교수도 해당 차량에 대해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1년 넘게 차를 세워놓게 되면 반드시 고장이 날 수밖에 없다"며 "이건 신차가 아니다. 차라리 1년 3개월 간 주행한 중고차가 훨씬 상태가 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필수 교수는 "값비싼 차를 팔아놓고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면 차를 바꿔줘야 하는 게 당연하다"며 "옷 한 벌을 사더라도 교환해주는 게 당연한 데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차 값에는 당연히 리콜과 무상 서비스 비용이 포함된 것"이라고 강변했다. 김 교수는 그런 면에서 국내법은 "소비자 보호에 대단히 인색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아우디 측은 금속 표면에 녹이 발생 했다고 하더라도, 안전성 및 내구성에는 문제 없다며, 해당 차량의 결함을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자동차 회사는 이번에도 나몰라라...한국형 '레몬법'이 답?"

그렇다면 자동차 회사는 책임을 회피하고 소비자만 피해를 보는 현재의 상황은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다행히 '한국형 레몬법'으로 불리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현재 발의된 상태다. 간단히 말해 결함이 있는 차량에 대해 제조사의 교환·환불 책임을 의무화 한 법안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측 간사인 민홍철 의원(경남 김해 갑·2선)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9건이 올해 2월에 국회 교통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인 상황"이라며 "다음 회의 때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럴 경우 내년부터는 소비자들이 해당 법안을 통해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 의원은 "이 때까지 자동차 결함에 대한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건 큰 문제"라며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 부담이 되겠지만 반드시 정착 될 필요가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물론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당장 '중대 결함'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 여전히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 하지만 소비자에 대한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는 현재에 비해 분명 긍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피해자인 나 씨는 물론 취재 과정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다. "과연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아우디가 가만히 있었을까요?" 같은 제조사에 같은 차량. 한국 소비자가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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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중고보다 못한 신차”…바닷 바람 맞은 아우디
    • 입력 2017-05-19 11:24:13
    • 수정2017-05-25 21:27:12
    취재후·사건후
산 지 한 달만에...반복된 고장


나 모 씨는 지난해 12월 말, 꿈에 그리던 아우디 A6 차량을 구매했다. 차량 가격만 9천만 원에 달하는 비싼 차였지만 10년 넘게 타던 차를 팔고 샀기에 나 씨는 충분히 제 값을 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차를 넘겨받은 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주행 도중 이유 없이 시동이 꺼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 씨는 새 차의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해 일어난 일인 줄로만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히려 비싼 차인 만큼 자신도 모르는 안전 장치가 있다고 생각해 다행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원인 모를 시동 꺼짐 현상은 계속됐고, 마침내 세 번째로 차가 멈췄을 때는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져 접촉사고까지 났다. 차량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한 쪽 전조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가 하면 트렁크 개폐도 제멋대로 일어나는 등 잔고장이 이어졌다. 결국 참다못한 나 씨는 차를 산지 40일 만에 아우디 서비스센터를 찾아갔다.

그러나 나 씨의 차량을 넘겨받은 아우디 서비스센터 측은 한 달 넘게 고장 원인을 확인할 수 없었고, 이후에도 나 씨와 아우디 측과의 지루한 공방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나 씨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유산의 아픔까지 겪어야만 했다.

당연히 새 차인 줄 알았는데...1년 3개월이나 지난 차?


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나 씨가 아우디 측으로부터 받은 서류를 보니 나 씨의 차량은 2015년 9월에 평택항 PDI(Pre-Delivery Inspection·출고 전 검사장) 센터로 들어온 뒤 1년 3개월 간 그곳에 방치된 차량이었다. 당연히 신차인 줄 알고 차를 구매한 나 씨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실이었다.

어떻게 이처럼 중요한 사실이 차량 구매 전 통보되지 않았을까? KBS 취재진이 나 씨에게 차량을 판매한 아우디 측 딜러에게 문의했더니 해당 딜러는 "자신도 차를 넘겨받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먼저 들어온 차량을 계약 순서대로 먼저 출고시키는 '선입고-선출고' 방식을 쓰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뿐, 판매사 측에서도 해당 차량이 언제 생산된 것인지, 언제 한국에 들어온 것인지 차를 넘겨받을 때까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해당 딜러는 "모든 고객에게 공평하게 차를 출고하기 위한 방법"이라며 "대부분의 수입차 회사들이 같은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년 3개월 간 바닷바람에... 중고차보다 못한 신차



해당 차량을 넘겨받아 확인해봤다. 확인 결과 차량 하부 곳곳에서 심각하게 녹이 슬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소금기가 담긴 바닷바람이 금속물질과 접촉했을 때 발생하는 '눈꽃'도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국내 1호 자동차 명장인 박병일 명장은 "일반적으로 8~9년 정도 주행한 차량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라며 "주행 40일 만에 이렇게 됐다는 건 결국 바닷바람의 영향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병일 명장은 "고급차일수록 전자 부품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배선 접촉 불량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며 "특정 부품을 교체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전체 배선을 갈아야만 해결될 문제"라고 분석했다.

대림대 자동차학과의 김필수 교수도 해당 차량에 대해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1년 넘게 차를 세워놓게 되면 반드시 고장이 날 수밖에 없다"며 "이건 신차가 아니다. 차라리 1년 3개월 간 주행한 중고차가 훨씬 상태가 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필수 교수는 "값비싼 차를 팔아놓고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면 차를 바꿔줘야 하는 게 당연하다"며 "옷 한 벌을 사더라도 교환해주는 게 당연한 데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차 값에는 당연히 리콜과 무상 서비스 비용이 포함된 것"이라고 강변했다. 김 교수는 그런 면에서 국내법은 "소비자 보호에 대단히 인색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아우디 측은 금속 표면에 녹이 발생 했다고 하더라도, 안전성 및 내구성에는 문제 없다며, 해당 차량의 결함을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자동차 회사는 이번에도 나몰라라...한국형 '레몬법'이 답?"

그렇다면 자동차 회사는 책임을 회피하고 소비자만 피해를 보는 현재의 상황은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다행히 '한국형 레몬법'으로 불리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현재 발의된 상태다. 간단히 말해 결함이 있는 차량에 대해 제조사의 교환·환불 책임을 의무화 한 법안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측 간사인 민홍철 의원(경남 김해 갑·2선)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9건이 올해 2월에 국회 교통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인 상황"이라며 "다음 회의 때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럴 경우 내년부터는 소비자들이 해당 법안을 통해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 의원은 "이 때까지 자동차 결함에 대한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건 큰 문제"라며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 부담이 되겠지만 반드시 정착 될 필요가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물론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당장 '중대 결함'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 여전히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 하지만 소비자에 대한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는 현재에 비해 분명 긍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피해자인 나 씨는 물론 취재 과정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다. "과연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아우디가 가만히 있었을까요?" 같은 제조사에 같은 차량. 한국 소비자가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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