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이라 손가락질 받았는데”…그 마을이 각광받는 이유

입력 2017.05.20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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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보고'로 유명한 왕피천 하류에서 아홉 굽이를 넘어야 만날 수 있는 곳, 경북 울진의 굴구지 마을은 지금도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 두메산골이다.

지독한 가난이 싫다며 많은 이들이 떠난 고향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빈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마을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10년 전, 이들은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산촌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직접 나섰다.

주민들이 직접 기획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을 홍보 행사를 열어 성공했고, 굴구지 마을은 전국적인 산촌 생태마을로 떠올랐다. 이들이 주목한 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정신. 자연을 있는 그대로 지켜내고, 그것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되살리고 정 깊은 마을로 거듭났다.

봄이 찾아온 산촌마을. 첩첩산중 굴구지 마을에서 이들은 두루 잘 사는 법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을까.

미자 씨가 고향으로 돌아온 까닭은?

올해 쉰아홉 살인 김미자 씨는 한 해 대부분을 태백에 있는 자기 집이 아닌 친정집에서 보낸다. 어릴 적 가난이 지겨울 땐, 빨리 떠나고만 싶던 고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향이 애틋하기만 하다.


"고향은 어머니 품 속 같아요. 어렸을 땐 그것이 행복인지 몰랐어요.
이제는 나이가 먹으니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김미자(59)-

지난해 남편 수도(62) 씨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몸 한쪽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앞이 막막했던 그때, 고향이 떠올랐다.


그 길로 미자 씨는 남편과 함께 굴구지로 향했다. 이곳에 온 지 9개월이 지나니 남편도 정상에 가까울 만큼 회복됐다. 미자 씨의 무너져버린 마음과 남편의 아픈 몸을 바로 세운 건 굴구지 마을의 건강한 생태 환경과 넉넉한 인심이었다.

"오늘도 고향에 갑니다"

김진섭(91) 할아버지는 오늘도 고향에 간다. 하루 걸러 찾아가는 고향집, 그것도 제법 먼 길을 등짐까지 지고 걸어서 간다. 하지만 그곳에 부모님이 계시기에 힘들다 생각한 적은 없다.

이곳에서 70년을 살다 자식들을 위해 아랫마을로 내려갔다는 김진섭 할아버지. 자식 일곱을 뒷바라지 하느라 손에는 굵은 옹이가 박혔지만, 묵밭 일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나이 많다고 들어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몸이 가라앉아 있으면 진짜 병이 생깁니다.
사람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활동을 해야 합니다."
-김진섭(91)-


9살 때부터 지게를 짊어졌다는 김동석(82) 할아버지는 나이 든 부모를 돕기 위해 형제들이 떠난 고향을 홀로 지켰다. 3년 전부터는 아픈 아내를 대신해 봄나물을 캐느라 제대로 허리 펼 날이 없다.

새벽 5시에서 저녁 9시까지 노구를 이끌고 작업을 하느라 허리는 굽고 몸은 고단하지만, 할아버지는 첫 수확한 나물을 자식들에게 보내려 택배 작업에 열중한다.

"'거기에 어떻게 사람이 사냐?'고들 했는데.."

첩첩산중이던 두메산골 굴구지 마을은 어느덧 한 해에 2만 명이 찾는 유명 마을이 됐다.


이곳이 산촌 생태마을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건 지난 2008년. 김억년(62), 남중학(53), 윤석중(55), 이태양(63) 씨 등 마을 청년회를 중심으로 주민 스스로 기획하고 비용을 마련해 축제를 열어 성공했고, 산촌 생태체험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야생 자연이 살아있는 왕피천 생태 탐방과 청정지역 굴구지 마을을 알리는 봄나물 체험, 마을에서 내려오던 전통놀이를 접목한 여름 피라미 축제 등 사계절을 소재로 한 다양한 이벤트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남중학 씨는 "(어릴 적) 학교에 가면 촌놈이라 손가락질 받기 일쑤였다"라며 "그 정도로 굴구지하면 '거기 사람이 어떻게 살아?'라고 했던 곳인데 이렇게 각광받을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버이날, 마을 청년회는 멀리서 찾아오지 못한 자식들을 대신해 어른들을 위한 따뜻한 밥상을 마련했다.


자세한 내용은 5월 20일(토) 저녁 7시 10분 KBS 1TV '다큐 공감-웰컴 투 굴구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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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촌놈’이라 손가락질 받았는데”…그 마을이 각광받는 이유
    • 입력 2017-05-20 08:03:01
    방송·연예
'야생의 보고'로 유명한 왕피천 하류에서 아홉 굽이를 넘어야 만날 수 있는 곳, 경북 울진의 굴구지 마을은 지금도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 두메산골이다.

지독한 가난이 싫다며 많은 이들이 떠난 고향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빈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마을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10년 전, 이들은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산촌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직접 나섰다.

주민들이 직접 기획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을 홍보 행사를 열어 성공했고, 굴구지 마을은 전국적인 산촌 생태마을로 떠올랐다. 이들이 주목한 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정신. 자연을 있는 그대로 지켜내고, 그것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되살리고 정 깊은 마을로 거듭났다.

봄이 찾아온 산촌마을. 첩첩산중 굴구지 마을에서 이들은 두루 잘 사는 법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을까.

미자 씨가 고향으로 돌아온 까닭은?

올해 쉰아홉 살인 김미자 씨는 한 해 대부분을 태백에 있는 자기 집이 아닌 친정집에서 보낸다. 어릴 적 가난이 지겨울 땐, 빨리 떠나고만 싶던 고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향이 애틋하기만 하다.


"고향은 어머니 품 속 같아요. 어렸을 땐 그것이 행복인지 몰랐어요.
이제는 나이가 먹으니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김미자(59)-

지난해 남편 수도(62) 씨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몸 한쪽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앞이 막막했던 그때, 고향이 떠올랐다.


그 길로 미자 씨는 남편과 함께 굴구지로 향했다. 이곳에 온 지 9개월이 지나니 남편도 정상에 가까울 만큼 회복됐다. 미자 씨의 무너져버린 마음과 남편의 아픈 몸을 바로 세운 건 굴구지 마을의 건강한 생태 환경과 넉넉한 인심이었다.

"오늘도 고향에 갑니다"

김진섭(91) 할아버지는 오늘도 고향에 간다. 하루 걸러 찾아가는 고향집, 그것도 제법 먼 길을 등짐까지 지고 걸어서 간다. 하지만 그곳에 부모님이 계시기에 힘들다 생각한 적은 없다.

이곳에서 70년을 살다 자식들을 위해 아랫마을로 내려갔다는 김진섭 할아버지. 자식 일곱을 뒷바라지 하느라 손에는 굵은 옹이가 박혔지만, 묵밭 일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나이 많다고 들어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몸이 가라앉아 있으면 진짜 병이 생깁니다.
사람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활동을 해야 합니다."
-김진섭(91)-


9살 때부터 지게를 짊어졌다는 김동석(82) 할아버지는 나이 든 부모를 돕기 위해 형제들이 떠난 고향을 홀로 지켰다. 3년 전부터는 아픈 아내를 대신해 봄나물을 캐느라 제대로 허리 펼 날이 없다.

새벽 5시에서 저녁 9시까지 노구를 이끌고 작업을 하느라 허리는 굽고 몸은 고단하지만, 할아버지는 첫 수확한 나물을 자식들에게 보내려 택배 작업에 열중한다.

"'거기에 어떻게 사람이 사냐?'고들 했는데.."

첩첩산중이던 두메산골 굴구지 마을은 어느덧 한 해에 2만 명이 찾는 유명 마을이 됐다.


이곳이 산촌 생태마을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건 지난 2008년. 김억년(62), 남중학(53), 윤석중(55), 이태양(63) 씨 등 마을 청년회를 중심으로 주민 스스로 기획하고 비용을 마련해 축제를 열어 성공했고, 산촌 생태체험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야생 자연이 살아있는 왕피천 생태 탐방과 청정지역 굴구지 마을을 알리는 봄나물 체험, 마을에서 내려오던 전통놀이를 접목한 여름 피라미 축제 등 사계절을 소재로 한 다양한 이벤트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남중학 씨는 "(어릴 적) 학교에 가면 촌놈이라 손가락질 받기 일쑤였다"라며 "그 정도로 굴구지하면 '거기 사람이 어떻게 살아?'라고 했던 곳인데 이렇게 각광받을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버이날, 마을 청년회는 멀리서 찾아오지 못한 자식들을 대신해 어른들을 위한 따뜻한 밥상을 마련했다.


자세한 내용은 5월 20일(토) 저녁 7시 10분 KBS 1TV '다큐 공감-웰컴 투 굴구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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