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밤샘 노동자의 선잠 시간…근무일까? 아닐까?

입력 2017.05.22 (11:13) 수정 2017.06.0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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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밤샘 노동자의 선잠 시간…근무일까? 아닐까?

[특파원리포트] 밤샘 노동자의 선잠 시간…근무일까? 아닐까?

밤새 사무실이나 건물을 지키면서 선잠을 잔다면 근무일까? 아닐까? 상식적으로 근무시간에 포함될 것 같은데, 반드시 그렇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휴식시간으로 둔갑시켜 임금지급을 기피하는 이상한 관행이 일본에도 남아 있다.

밤샘 노동자의 선잠도 근무시간. 수당 지급해야!

일본의 유통 대기업 '이온'의 상업시설 등에서 경비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가 잔업 수당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야간에 선잠을 자는 시간에 대한 잔업 수당을 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시간 외 소송 원고 ‘나카무라’ (nhk화면)시간 외 소송 원고 ‘나카무라’ (nhk화면)

이번 재판은 대기업 '이온'의 경비 업무를 담당하는 계열사의 사원 나카무라(52세)씨가 제기했다. 나카무라 씨는 야간에 선잠을 자는 시간도 사실상 업무시간의 연장인 셈인데, 시간외 수당이 지급되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미지급 수당 100만 엔과 위자료 등을 합쳐 600만 엔(약 6,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17일, 치바 지방 법원은 '선잠 시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이 보장됐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시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지급되지 않은 수당의 거의 전액과 위자료 중 일부를 합쳐 180만 엔(약 1,800만 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하는 판결을 내렸다.

나카무라 씨는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경비업계에서는 같은 처지에서 일하는 동료가 많다'면서 '회사는 판결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판결 내용을 확인하고 적절한 대응을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파트 경비원 등 감시·단속노동자의 심야 대기근무 시간을 사실상 무급 처리하는 행태는 한국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감시·단속노동자를 최저임금에서 제외해온 관행은 잘못된 것이라며 법원이 제동을 걸자, 명목상 휴게시간을 끼워 넣는 편법이 등장했다.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 때문에 항의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가급적 수당 지급을 기피하려는 고용주들의 습성은 어디든 비슷하다. 고용주의 횡포를 막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사법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론, 법 이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승려도 노동자?..."잔업수당 줘야"

앞서 지난 4월에는 유명 사찰 '히가시혼간사'측이 이례적으로 계약직 승려에게 밀린 잔업수당 600여 만엔(약 6천여 만원)을 지급한 사실이 알려졌다.


논란이 된 곳은 교토 남부 '히가시혼간사'라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일본 불교 진종 오타니 파의 본산으로 유명하다. 사찰 경내에 수련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숙박자들을 돌보는 업무를 담당해 온 '계약직' 승려 2명이 미지급 잔업수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수련시설 특성상 새벽이나 심야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초과근무 시간이 많게는 한 달에 130시간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토지역의 노동조합이 이들을 대신해 2015년 11월부터 단체 교섭에 나섰다. 해당 사찰은 1973년 직원들로부터 '잔업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직원들의 노동시간 파악이나 관리가 엄격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법정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승려 2명에게 600만 엔의 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2013년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의 잔업수당에 해당한다. 승려 2명은 3월 계약 해지로 절을 떠났다.

사찰 측은 '과거 계약에 근거해 근무시간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었다'면 문제를 인정했다. 앞으로는 일하는 방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높은 취업률. 노동의 대가는 제대로 주고 있을까?

최근 일본의 높은 취업률이 화제가 되고 있다.경기회복의 청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장시간 노동과 법정 수당 미지급이라는 그릇된 관행이 만연해 있다. 특히 시간 외 수당 미지급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간사이 전력이 2년 동안 직원 만여 명의 시간외 수당 17억 엔(약 170억 원)을 지불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일본 최대 택배회사 야마토 운수의 경우 일부 지점에서 시간외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대대적인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대기업의 행태가 이렇다면,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업종의 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NHK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노조총연합이 수도권과 간사이 지역 직장인 2천명을 조사한 결과, 초과 근무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응답인 약 40%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일한 만큼 근무시간을 기록하기 어려운 분위기, 상사의 요구, 초과수당 총액 제한 등의 이유를 들었다. 신입사원의 '과로자살'로 물의를 빚은 광고 대기업 덴쓰의 경우에도, 직원들이 초과근무 시간을 축소 신고하라는 압력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삐 풀린 자본의 속성은 어디서든 똑같다. 인건비는 어떻게든 줄이고 노동시간(노동량)은 어떻게든 늘리고 싶어한다. 임금 수준도 만족스럽지 않은데, 법정 수당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잘못되고 억울한 일인가? 물론 일본의 고용관행만 탓할 일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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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밤샘 노동자의 선잠 시간…근무일까? 아닐까?
    • 입력 2017-05-22 11:13:18
    • 수정2017-06-01 16: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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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사무실이나 건물을 지키면서 선잠을 잔다면 근무일까? 아닐까? 상식적으로 근무시간에 포함될 것 같은데, 반드시 그렇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휴식시간으로 둔갑시켜 임금지급을 기피하는 이상한 관행이 일본에도 남아 있다.

밤샘 노동자의 선잠도 근무시간. 수당 지급해야!

일본의 유통 대기업 '이온'의 상업시설 등에서 경비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가 잔업 수당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야간에 선잠을 자는 시간에 대한 잔업 수당을 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시간 외 소송 원고 ‘나카무라’ (nhk화면)
이번 재판은 대기업 '이온'의 경비 업무를 담당하는 계열사의 사원 나카무라(52세)씨가 제기했다. 나카무라 씨는 야간에 선잠을 자는 시간도 사실상 업무시간의 연장인 셈인데, 시간외 수당이 지급되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미지급 수당 100만 엔과 위자료 등을 합쳐 600만 엔(약 6,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17일, 치바 지방 법원은 '선잠 시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이 보장됐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시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지급되지 않은 수당의 거의 전액과 위자료 중 일부를 합쳐 180만 엔(약 1,800만 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하는 판결을 내렸다.

나카무라 씨는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경비업계에서는 같은 처지에서 일하는 동료가 많다'면서 '회사는 판결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판결 내용을 확인하고 적절한 대응을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파트 경비원 등 감시·단속노동자의 심야 대기근무 시간을 사실상 무급 처리하는 행태는 한국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감시·단속노동자를 최저임금에서 제외해온 관행은 잘못된 것이라며 법원이 제동을 걸자, 명목상 휴게시간을 끼워 넣는 편법이 등장했다.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 때문에 항의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가급적 수당 지급을 기피하려는 고용주들의 습성은 어디든 비슷하다. 고용주의 횡포를 막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사법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론, 법 이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승려도 노동자?..."잔업수당 줘야"

앞서 지난 4월에는 유명 사찰 '히가시혼간사'측이 이례적으로 계약직 승려에게 밀린 잔업수당 600여 만엔(약 6천여 만원)을 지급한 사실이 알려졌다.


논란이 된 곳은 교토 남부 '히가시혼간사'라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일본 불교 진종 오타니 파의 본산으로 유명하다. 사찰 경내에 수련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숙박자들을 돌보는 업무를 담당해 온 '계약직' 승려 2명이 미지급 잔업수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수련시설 특성상 새벽이나 심야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초과근무 시간이 많게는 한 달에 130시간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토지역의 노동조합이 이들을 대신해 2015년 11월부터 단체 교섭에 나섰다. 해당 사찰은 1973년 직원들로부터 '잔업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직원들의 노동시간 파악이나 관리가 엄격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법정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승려 2명에게 600만 엔의 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2013년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의 잔업수당에 해당한다. 승려 2명은 3월 계약 해지로 절을 떠났다.

사찰 측은 '과거 계약에 근거해 근무시간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었다'면 문제를 인정했다. 앞으로는 일하는 방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높은 취업률. 노동의 대가는 제대로 주고 있을까?

최근 일본의 높은 취업률이 화제가 되고 있다.경기회복의 청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장시간 노동과 법정 수당 미지급이라는 그릇된 관행이 만연해 있다. 특히 시간 외 수당 미지급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간사이 전력이 2년 동안 직원 만여 명의 시간외 수당 17억 엔(약 170억 원)을 지불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일본 최대 택배회사 야마토 운수의 경우 일부 지점에서 시간외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대대적인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대기업의 행태가 이렇다면,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업종의 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NHK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노조총연합이 수도권과 간사이 지역 직장인 2천명을 조사한 결과, 초과 근무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응답인 약 40%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일한 만큼 근무시간을 기록하기 어려운 분위기, 상사의 요구, 초과수당 총액 제한 등의 이유를 들었다. 신입사원의 '과로자살'로 물의를 빚은 광고 대기업 덴쓰의 경우에도, 직원들이 초과근무 시간을 축소 신고하라는 압력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삐 풀린 자본의 속성은 어디서든 똑같다. 인건비는 어떻게든 줄이고 노동시간(노동량)은 어떻게든 늘리고 싶어한다. 임금 수준도 만족스럽지 않은데, 법정 수당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잘못되고 억울한 일인가? 물론 일본의 고용관행만 탓할 일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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