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사고 차량도 ‘無사고’?…중고차 검사의 맹점은?

입력 2017.05.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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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사고 차량도 ‘無사고’?…중고차 검사의 맹점은?

[취재후] 사고 차량도 ‘無사고’?…중고차 검사의 맹점은?

"이거는 완벽한 무사고입니다.
자 보십쇼. 성능기록부에 '무사고'라고 딱 찍혀있잖아요.
이렇게까지 얘기를 하니까.."


지난 2월,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수입차를 구매한 이 모 씨. 성능점검기록부에는 '무사고'라고 적혀있었고, 중고차 판매업자는 차량 앞 부품 하나만 단순교환된 차량이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이 말을 믿고 1억여 원을 주고 해당 차를 구입했다.

하지만 차를 구입한 지 2주 만에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았다. 단순 고장이려니 생각하고 서비스센터를 찾았던 이 씨는 그러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해당 차량이 지난해 큰 사고가 나 서비스센터에 입고됐던 차량이라는 거였다.

3천만 원이 넘는 엄청난 수리비 견적이 나오자 원래 차주는 수리를 받지 않고 차량을 도로 가지고 갔다. 아마도 공식 서비스센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차를 고쳤을 것이다. 이 때문에 공식 서비스센터에는 보증수리 제한이 걸려 있었다.

해당 차량 사고 사진해당 차량 사고 사진

이 씨는 처음에는 딜러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무사고가 아닌데도 무사고라고 속여 팔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씨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자동차 검사소를 찾아 차량 성능을 다시 점검해봤다.

하지만 점검 후 들은 얘기는 더 충격적이었다. 이번에도 '무사고 차량'이란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검사소 검사원은 "볼트로 연결된 부품은 백 번을 교환하더라도 법적으로 보증이 되지 않는다. 용접을 한 경우가 아니면 법적으로 무사고"라고 설명했다.

이런 경험을 한 건 이 씨 뿐만이 아니었다. 취재진이 만난 다른 차주도 이런 경험을 했다. 이 차주가 구입한 차량은 나중에 확인해보니 차량 앞뒤가 들이받힌 대형사고로 정비를 받은 기록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성능점검기록부상에는 역시 무사고였다.

차주들은 모두 어떻게 이런 차량들이 무사고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속은 기분이라고 호소했다. 특히 그 정도 사고가 있었던 차량인 줄 알았으면 그 가격을 주고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내용이 실제와 다른 경우가 중고차 피해구제 신청의 약 70%를 차지한다.


흔히 '레몬시장'이라고 불리는 중고차 시장. 그만큼 좋은 중고차를 고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고차를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판매업자에게 '속아서' 차를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취재 결과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사고 유무를 가르는 법적 기준에 맹점이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 관리법에 따르면, '사고 차량'은 주요 골격을 용접해서 수리한 경우 등으로 한정된다. 중고차 매장을 직접 찾아서 살펴봤다. 전문가들은 한눈에 어떤 사고가 났던 차량인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성능기록부에는 이런 차량들 역시 상당수가 무사고라고 표기돼 있었다. 주요 골격 부위를 용접한 게 아니라 볼트로 연결된 부품만 교환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중고차를 매매할 때 매우 자세한 성능점검기록부를 만든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위를 교환했는지,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상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물론, 원래 차주가 반려동물을 키웠거나 담배를 피웠는지 여부도 기재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누가 가격을 책정하더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사고 차량이라고 싸게 매입하면서 되팔 때는 법적으론 무사고 차량이라며 비싸게 파는 식으로 가격이 왜곡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것이다.


이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1월, 한국에도 '자동차 가격조사·산정제도'가 도입됐다. 구체적인 사고 내역을 기록하고, 이에 맞게 중고차 가격을 다시 산정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는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이 원할 때에만 적용되고, 중고차 판매업자에겐 선택사항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런 제도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소비자들이 더 많다. 중고차 성능점검기록부의 제도적 허점이 개선되기 전까지 소비자들의 피해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연관 기사] [뉴스9] 중고차 ‘無사고’는 진짜 ‘無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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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사고 차량도 ‘無사고’?…중고차 검사의 맹점은?
    • 입력 2017-05-23 16:47:30
    취재후·사건후
"이거는 완벽한 무사고입니다.
자 보십쇼. 성능기록부에 '무사고'라고 딱 찍혀있잖아요.
이렇게까지 얘기를 하니까.."


지난 2월,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수입차를 구매한 이 모 씨. 성능점검기록부에는 '무사고'라고 적혀있었고, 중고차 판매업자는 차량 앞 부품 하나만 단순교환된 차량이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이 말을 믿고 1억여 원을 주고 해당 차를 구입했다.

하지만 차를 구입한 지 2주 만에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았다. 단순 고장이려니 생각하고 서비스센터를 찾았던 이 씨는 그러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해당 차량이 지난해 큰 사고가 나 서비스센터에 입고됐던 차량이라는 거였다.

3천만 원이 넘는 엄청난 수리비 견적이 나오자 원래 차주는 수리를 받지 않고 차량을 도로 가지고 갔다. 아마도 공식 서비스센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차를 고쳤을 것이다. 이 때문에 공식 서비스센터에는 보증수리 제한이 걸려 있었다.

해당 차량 사고 사진
이 씨는 처음에는 딜러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무사고가 아닌데도 무사고라고 속여 팔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씨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자동차 검사소를 찾아 차량 성능을 다시 점검해봤다.

하지만 점검 후 들은 얘기는 더 충격적이었다. 이번에도 '무사고 차량'이란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검사소 검사원은 "볼트로 연결된 부품은 백 번을 교환하더라도 법적으로 보증이 되지 않는다. 용접을 한 경우가 아니면 법적으로 무사고"라고 설명했다.

이런 경험을 한 건 이 씨 뿐만이 아니었다. 취재진이 만난 다른 차주도 이런 경험을 했다. 이 차주가 구입한 차량은 나중에 확인해보니 차량 앞뒤가 들이받힌 대형사고로 정비를 받은 기록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성능점검기록부상에는 역시 무사고였다.

차주들은 모두 어떻게 이런 차량들이 무사고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속은 기분이라고 호소했다. 특히 그 정도 사고가 있었던 차량인 줄 알았으면 그 가격을 주고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내용이 실제와 다른 경우가 중고차 피해구제 신청의 약 70%를 차지한다.


흔히 '레몬시장'이라고 불리는 중고차 시장. 그만큼 좋은 중고차를 고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고차를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판매업자에게 '속아서' 차를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취재 결과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사고 유무를 가르는 법적 기준에 맹점이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 관리법에 따르면, '사고 차량'은 주요 골격을 용접해서 수리한 경우 등으로 한정된다. 중고차 매장을 직접 찾아서 살펴봤다. 전문가들은 한눈에 어떤 사고가 났던 차량인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성능기록부에는 이런 차량들 역시 상당수가 무사고라고 표기돼 있었다. 주요 골격 부위를 용접한 게 아니라 볼트로 연결된 부품만 교환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중고차를 매매할 때 매우 자세한 성능점검기록부를 만든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위를 교환했는지,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상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물론, 원래 차주가 반려동물을 키웠거나 담배를 피웠는지 여부도 기재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누가 가격을 책정하더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사고 차량이라고 싸게 매입하면서 되팔 때는 법적으론 무사고 차량이라며 비싸게 파는 식으로 가격이 왜곡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것이다.


이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1월, 한국에도 '자동차 가격조사·산정제도'가 도입됐다. 구체적인 사고 내역을 기록하고, 이에 맞게 중고차 가격을 다시 산정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는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이 원할 때에만 적용되고, 중고차 판매업자에겐 선택사항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런 제도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소비자들이 더 많다. 중고차 성능점검기록부의 제도적 허점이 개선되기 전까지 소비자들의 피해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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