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불붙는 자동차 워셔액…어떤 것 써야 하나?

입력 2017.05.2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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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불붙는 자동차 워셔액…어떤 것 써야 하나?

[취재후] 불붙는 자동차 워셔액…어떤 것 써야 하나?

'에탄올 100%!', '無 메탄올'…. 대형마트의 자동차용 워셔액 진열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 문구다. 지난해 워셔액의 주성분인 메탄올이 치명적인 독성을 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워셔액 제조업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에탄올 워셔액을 내놓았다.

업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 이유는 안전상의 위험 때문이다. 워셔액을 분사할 때 외부의 공기가 차량 내부로 유입되면서 메탄올 농도가 높아진다는 실험 결과에 소비자들은 경악했다. 메탄올이 체내에 흡수되면 심한 경우 실명이나 중추신경계 마비 증상까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환경부는 지난 4월 워셔액을 '위해 우려 제품'으로 새롭게 지정했고,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워셔액의 메탄올 함량 기준을 0.6% 이하로 제한하겠다고 예고했다.

에탄올 워셔액이 메탄올 워셔액보다 독성이 덜하다는 입소문에 소비자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에탄올 워셔액은 순식간에 메탄올 워셔액이 차지하던 자리를 대신했다.

지난해 메탄올 워셔액이 인체에 해롭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 업체들은 에탄올 워셔액을 내놓았다.지난해 메탄올 워셔액이 인체에 해롭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 업체들은 에탄올 워셔액을 내놓았다.

"워셔액엔 불이 붙으면 안 되는데..." 자동차 명장의 실험

너무 급하게 만들어서일까? 기자는 최근 박병일 자동차 명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워셔액에 불이 붙으면 안 되는데...너무 잘 붙어요." 메탄올 워셔액 대신 나온 에탄올 워셔액 일부 제품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게 요지였다. 메탄올 워셔액에는 붙지 않았던 불이 에탄올 워셔액에는 쉽게 붙는다는 말이 뒤따랐다.

그는 직접 실험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실험 방법은 간단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워셔액 중 대표 상품 5가지를 선정했다. 5가지 제품에서 덜어낸 일정량의 워셔액을 각기 다른 실험 용기에 덜어냈다. 각각의 실험 용기에는 똑같은 크기의 휴지를 뒀다.

박 명장은 휴지에 불을 붙였을 때 워셔액 전체에 불이 옮겨붙으면 상대적으로 화재에 취약한 것이고, 불이 옮겨붙지 않고 사그라지면 그만큼 화재에 안전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메탄올 워셔액의 경우 같은 방식으로 실험했을 때 불이 옮겨붙지 않았다.

실험 결과 5가지 워셔액 중 3가지 워셔액에 불이 번졌다. 나머지 2가지 제품은 휴지에 붙은 불이 곧바로 꺼졌다. 3가지 워셔액은 불이 붙은 이후에도 에탄올 성분이 완전히 증발될 때까지 불이 지속됐다. 독성이 덜하다는 에탄올 워셔액이 정작 화재에는 취약하다는 걸 증명해낸 순간이었다.

실험 결과 5가지 에탄올 워셔액 중 3가지 워셔액에 불이 옮겨붙었다.실험 결과 5가지 에탄올 워셔액 중 3가지 워셔액에 불이 옮겨붙었다.

워셔액에 불이 붙으면 안 되는 이유

그렇다면 워셔액에 불이 붙으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박 명장은 2차 화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차 사고가 났을 때 불에 잘 붙는 에탄올 워셔액은 불을 키우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차량 안에 설치된 워셔액 통은 엔진룸 옆에 위치한다. 대형 사고가 났을 때 자칫 큰 화재로 번질 수 있는 이유이다. 게다가 워셔액을 담는 통은 일반적으로 깨지기 쉬운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 워셔액이 엔진룸 주변으로 튈 가능성도 있다.

물론 워셔액 자체만으로 자연발화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워셔액의 자연발화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에 발화점을 크게 고려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화재에 취약한 워셔액을 정상적인 제품이라고 여기기는 어렵다. 자연발화 가능성이 낮다고 화재 시 위험부담이 있는 제품을 소비자가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것도 억울한 일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실험 결과 불이 붙지 않은 에탄올 워셔액이 있는 만큼 세부적인 기준을 설정해 화재 위험성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국가기술표준원은 자동차용 워셔액에 들어가는 에탄올 함량을 0.6%로 제한한다고 예고했다.지난 4월 국가기술표준원은 자동차용 워셔액에 들어가는 에탄올 함량을 0.6%로 제한한다고 예고했다.

메탄올? 에탄올? 어떤 워셔액을 써야 하나?

그렇다면 소비자는 어떤 워셔액을 써야 할까?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메탄올 워셔액을 쓰기엔 건강에 해롭고, 상대적으로 불에 취약한 에탄올 워셔액을 쓰기엔 영 찜찜하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제조사와 정부에 있다. 지난 4월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워셔액의 메탄올 함량을 0.6%로 제한하는 조치를 예고하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예고'일 뿐이다. 환경부 역시 메탄올 워셔액을 '위해 우려 제품'으로 지정했지만, 현행법상 메탄올 워셔액을 파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부가 메탄올 워셔액의 독성은 인정하면서도 기존 유통, 판매된 제품의 관리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메탄올 워셔액의 독성을 모르는 소비자들만 당하는 꼴이다. 실제로 일부 주유소와 생활용품 판매점에서는 여전히 메탄올 워셔액을 구할 수 있다. 워셔액 안전 기준이 전면 개정되더라도 6개월의 유예 기간에는 메탄올 워셔액의 유통과 판매를 할 수 있다.

대형마트에서는 에탄올 워셔액을 팔고, 주유소와 생활용품 판매점에서는 여전히 메탄올 워셔액을 파는 제조사들의 '꼼수'도 비판받을 만하다. 소비자의 건강에 해로운 제품이라면 즉시 거둬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제조업체는 재고 처리에 매진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지면서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커졌다. 워셔액 안전 기준의 개정 작업은 이르면 오는 6월 안에 완료된다. 독성과 화재 가능성 등을 꼼꼼하게 검토해야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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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불붙는 자동차 워셔액…어떤 것 써야 하나?
    • 입력 2017-05-23 17:32:54
    취재후·사건후
'에탄올 100%!', '無 메탄올'…. 대형마트의 자동차용 워셔액 진열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 문구다. 지난해 워셔액의 주성분인 메탄올이 치명적인 독성을 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워셔액 제조업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에탄올 워셔액을 내놓았다.

업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 이유는 안전상의 위험 때문이다. 워셔액을 분사할 때 외부의 공기가 차량 내부로 유입되면서 메탄올 농도가 높아진다는 실험 결과에 소비자들은 경악했다. 메탄올이 체내에 흡수되면 심한 경우 실명이나 중추신경계 마비 증상까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환경부는 지난 4월 워셔액을 '위해 우려 제품'으로 새롭게 지정했고,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워셔액의 메탄올 함량 기준을 0.6% 이하로 제한하겠다고 예고했다.

에탄올 워셔액이 메탄올 워셔액보다 독성이 덜하다는 입소문에 소비자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에탄올 워셔액은 순식간에 메탄올 워셔액이 차지하던 자리를 대신했다.

지난해 메탄올 워셔액이 인체에 해롭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 업체들은 에탄올 워셔액을 내놓았다.
"워셔액엔 불이 붙으면 안 되는데..." 자동차 명장의 실험

너무 급하게 만들어서일까? 기자는 최근 박병일 자동차 명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워셔액에 불이 붙으면 안 되는데...너무 잘 붙어요." 메탄올 워셔액 대신 나온 에탄올 워셔액 일부 제품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게 요지였다. 메탄올 워셔액에는 붙지 않았던 불이 에탄올 워셔액에는 쉽게 붙는다는 말이 뒤따랐다.

그는 직접 실험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실험 방법은 간단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워셔액 중 대표 상품 5가지를 선정했다. 5가지 제품에서 덜어낸 일정량의 워셔액을 각기 다른 실험 용기에 덜어냈다. 각각의 실험 용기에는 똑같은 크기의 휴지를 뒀다.

박 명장은 휴지에 불을 붙였을 때 워셔액 전체에 불이 옮겨붙으면 상대적으로 화재에 취약한 것이고, 불이 옮겨붙지 않고 사그라지면 그만큼 화재에 안전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메탄올 워셔액의 경우 같은 방식으로 실험했을 때 불이 옮겨붙지 않았다.

실험 결과 5가지 워셔액 중 3가지 워셔액에 불이 번졌다. 나머지 2가지 제품은 휴지에 붙은 불이 곧바로 꺼졌다. 3가지 워셔액은 불이 붙은 이후에도 에탄올 성분이 완전히 증발될 때까지 불이 지속됐다. 독성이 덜하다는 에탄올 워셔액이 정작 화재에는 취약하다는 걸 증명해낸 순간이었다.

실험 결과 5가지 에탄올 워셔액 중 3가지 워셔액에 불이 옮겨붙었다.
워셔액에 불이 붙으면 안 되는 이유

그렇다면 워셔액에 불이 붙으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박 명장은 2차 화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차 사고가 났을 때 불에 잘 붙는 에탄올 워셔액은 불을 키우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차량 안에 설치된 워셔액 통은 엔진룸 옆에 위치한다. 대형 사고가 났을 때 자칫 큰 화재로 번질 수 있는 이유이다. 게다가 워셔액을 담는 통은 일반적으로 깨지기 쉬운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 워셔액이 엔진룸 주변으로 튈 가능성도 있다.

물론 워셔액 자체만으로 자연발화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워셔액의 자연발화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에 발화점을 크게 고려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화재에 취약한 워셔액을 정상적인 제품이라고 여기기는 어렵다. 자연발화 가능성이 낮다고 화재 시 위험부담이 있는 제품을 소비자가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것도 억울한 일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실험 결과 불이 붙지 않은 에탄올 워셔액이 있는 만큼 세부적인 기준을 설정해 화재 위험성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국가기술표준원은 자동차용 워셔액에 들어가는 에탄올 함량을 0.6%로 제한한다고 예고했다.
메탄올? 에탄올? 어떤 워셔액을 써야 하나?

그렇다면 소비자는 어떤 워셔액을 써야 할까?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메탄올 워셔액을 쓰기엔 건강에 해롭고, 상대적으로 불에 취약한 에탄올 워셔액을 쓰기엔 영 찜찜하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제조사와 정부에 있다. 지난 4월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워셔액의 메탄올 함량을 0.6%로 제한하는 조치를 예고하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예고'일 뿐이다. 환경부 역시 메탄올 워셔액을 '위해 우려 제품'으로 지정했지만, 현행법상 메탄올 워셔액을 파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부가 메탄올 워셔액의 독성은 인정하면서도 기존 유통, 판매된 제품의 관리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메탄올 워셔액의 독성을 모르는 소비자들만 당하는 꼴이다. 실제로 일부 주유소와 생활용품 판매점에서는 여전히 메탄올 워셔액을 구할 수 있다. 워셔액 안전 기준이 전면 개정되더라도 6개월의 유예 기간에는 메탄올 워셔액의 유통과 판매를 할 수 있다.

대형마트에서는 에탄올 워셔액을 팔고, 주유소와 생활용품 판매점에서는 여전히 메탄올 워셔액을 파는 제조사들의 '꼼수'도 비판받을 만하다. 소비자의 건강에 해로운 제품이라면 즉시 거둬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제조업체는 재고 처리에 매진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지면서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커졌다. 워셔액 안전 기준의 개정 작업은 이르면 오는 6월 안에 완료된다. 독성과 화재 가능성 등을 꼼꼼하게 검토해야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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