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고깃집 화재 알고보니…기름 때가 불길로

입력 2017.05.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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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고깃집 화재 알고보니…기름 때가 불길로

[취재후] 고깃집 화재 알고보니…기름 때가 불길로

"불났다는 기사 보면 가슴이 철렁하죠. 우리 가게도 그렇게 될까 봐... 그런데 방법이 없어요. 불이 안나길 바라는 수밖에..."

지난 19일 저녁 7시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숯불갈비 음식점을 찾았다. 가게 안은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테이블마다 설치된 화로에는 돼지갈비가 달달하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구워지고 있었다. 바로 위엔 설치된 '연통'은 쉴 새 없이 냄새를 빨아들였다.

연통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음식점 사장은 "매일 청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흡입구 말고 위쪽에 있는 연통(자바라)은 언제 교체했는지 묻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손이 닿는 부분까지는 매일 청소를 할 수 있지만, 그 위쪽은 교체 비용도 많이 들고 영업에 지장도 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돼지갈비·양꼬치 등 고기를 굽는 가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연통'은 실내로 연기가 퍼져나가는 것을 막고, 손님들의 옷에 고기 냄새가 배는 것을 최소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가게가 문을 열고 닫을 때까지 계속 가동되기 때문에 연통 내부에는 기름때가 쉽게 낀다. 그래서 자주 청소를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굽고 있는 고기 위로 불판 열기에 녹은 기름때가 떨어질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종종 화재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잇따르는 연통화재...원인은?

지난 2월 25일 새벽 2시 반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닭꼬치 음식점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음식점 안에 있던 손님 등 4명이 대피했고, 가게가 전소돼 소방서 추산 680만 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화면제공 : 서울 동대문소방서, 서울 강남소방서화면제공 : 서울 동대문소방서, 서울 강남소방서

지난달 6일 저녁 7시 28분쯤에도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숯불갈비 음식점에서 불이 나 25분 만에 꺼졌다. 이 불로 건물 안에 있던 50여 명이 대피했고 소방서 추산 2,700만 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두 화재 모두 연통에 낀 기름때에 불티가 옮겨붙으면서 발생했다. 연통을 타고 올라간 불은 손을 쓸 틈도 없이 배기구를 통해 건물 전체로 번져 나갔다.

[연관기사] 잇따르는 연통 화재…“기름때가 원인”

보통 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동물성 유지방이 고체 상태로 연통에 남아 있다가 숯불 열기가 가해지면 기체 상태(유증기)로 바뀌는데, 불티가 옮겨붙으면서 불이 시작된다. 이런 경우 배기장치 전체를 다 점검하면서 잔불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완진까지는 인력과 장비가 더 많이 투입되기도 한다.

고기를 굽는 음식점 말고도 기름을 사용하는 주방의 제연장치도 비슷한 이유로 불이 나는 일도 많은데, 환기구가 옥상으로 연결해 놓은 경우 건물 전체로 번지는 원인이 된다.

소방당국은 비슷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음식점 업주들을 상대로 계도 활동을 하지만, 음식점 업주들의 협조를 구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름때 가득한 연통, 화재 실험해보니...

실제 식당에서 석 달 정도 사용하던 연통을 가져와서 소방당국의 협조를 받아 화재 실험을 진행했다. 연기를 빨아들일 수 있는 제연장치에 연통을 연결해 음식점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었다. 한쪽엔 새 연통을 다른 한쪽엔 기름때가 낀 연통을 두고 같은 조건에서 실험을 했다.


연통 아래에 숯불을 올려놓고 제연장치를 가동하자, 1분도 지나지 않아 열화상 카메라에 내부 온도가 200도를 넘어서는 것으로 표시됐다. 1분이 조금 넘어가자 기름때가 낀 연통에선 기름때가 타면서 흰 연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연통에서도 연기가 흘러나왔다. 2분이 조금 지났을 때 연통 내부에 있던 줄이 끊어졌다. 잠시 뒤 연통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기름때를 타고 불은 꺼질 줄 모르고 계속 타들어 갔다.


이번엔 새 연통과 기름때가 낀 연통 일부를 잘라 각각 6초씩 열을 가해봤다. 새 연통은 열을 가한 부분만 26초가량 타다가 스스로 꺼졌지만, 기름때가 낀 연통은 전체로 번져나가면서 타들어 갔고 1분 16초가 지나서야 꺼졌다. 기름때가 낀 연통이 불에 취약하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된 것이다.

"청결하게 관리하고 자주 교체해야"

연통 관리 소홀로 일어난 화재 건수는 지난해에만 81건으로 1년 전보다 20건 늘었다. 재산 피해액도 7,200여만 원에서 1억 5천여만 원까지 증가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측은 "지난해 발생한 전체 음식점 화재의 약 10%는 이런 사고였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기름때가 낀 연통은 여러 가지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알루미늄으로 된 연통의 경우 세제를 넣은 물에 10분 정도 담가뒀다가 솔로 문질러주면 세척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또 청소하기 전에 연통을 조금 가열해서 내부의 기름때를 녹이고 세제와 소다를 뿌려 닦으면 쉽게 제거된다고 말했다. 다만 분리가 어렵거나 연통 내부까지 청소가 힘든 경우에는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음식점 업주들 입장에선 장사하기도 빠듯한데 전문 업체를 부르는 건 사치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겠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불이나 인명·재산 피해로 이어진다면 그땐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다소 번거롭더라도 꾸준한 관리가 사고를 예방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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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고깃집 화재 알고보니…기름 때가 불길로
    • 입력 2017-05-24 11:35:12
    취재후·사건후
"불났다는 기사 보면 가슴이 철렁하죠. 우리 가게도 그렇게 될까 봐... 그런데 방법이 없어요. 불이 안나길 바라는 수밖에..."

지난 19일 저녁 7시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숯불갈비 음식점을 찾았다. 가게 안은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테이블마다 설치된 화로에는 돼지갈비가 달달하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구워지고 있었다. 바로 위엔 설치된 '연통'은 쉴 새 없이 냄새를 빨아들였다.

연통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음식점 사장은 "매일 청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흡입구 말고 위쪽에 있는 연통(자바라)은 언제 교체했는지 묻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손이 닿는 부분까지는 매일 청소를 할 수 있지만, 그 위쪽은 교체 비용도 많이 들고 영업에 지장도 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돼지갈비·양꼬치 등 고기를 굽는 가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연통'은 실내로 연기가 퍼져나가는 것을 막고, 손님들의 옷에 고기 냄새가 배는 것을 최소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가게가 문을 열고 닫을 때까지 계속 가동되기 때문에 연통 내부에는 기름때가 쉽게 낀다. 그래서 자주 청소를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굽고 있는 고기 위로 불판 열기에 녹은 기름때가 떨어질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종종 화재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잇따르는 연통화재...원인은?

지난 2월 25일 새벽 2시 반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닭꼬치 음식점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음식점 안에 있던 손님 등 4명이 대피했고, 가게가 전소돼 소방서 추산 680만 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화면제공 : 서울 동대문소방서, 서울 강남소방서
지난달 6일 저녁 7시 28분쯤에도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숯불갈비 음식점에서 불이 나 25분 만에 꺼졌다. 이 불로 건물 안에 있던 50여 명이 대피했고 소방서 추산 2,700만 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두 화재 모두 연통에 낀 기름때에 불티가 옮겨붙으면서 발생했다. 연통을 타고 올라간 불은 손을 쓸 틈도 없이 배기구를 통해 건물 전체로 번져 나갔다.

[연관기사] 잇따르는 연통 화재…“기름때가 원인”

보통 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동물성 유지방이 고체 상태로 연통에 남아 있다가 숯불 열기가 가해지면 기체 상태(유증기)로 바뀌는데, 불티가 옮겨붙으면서 불이 시작된다. 이런 경우 배기장치 전체를 다 점검하면서 잔불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완진까지는 인력과 장비가 더 많이 투입되기도 한다.

고기를 굽는 음식점 말고도 기름을 사용하는 주방의 제연장치도 비슷한 이유로 불이 나는 일도 많은데, 환기구가 옥상으로 연결해 놓은 경우 건물 전체로 번지는 원인이 된다.

소방당국은 비슷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음식점 업주들을 상대로 계도 활동을 하지만, 음식점 업주들의 협조를 구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름때 가득한 연통, 화재 실험해보니...

실제 식당에서 석 달 정도 사용하던 연통을 가져와서 소방당국의 협조를 받아 화재 실험을 진행했다. 연기를 빨아들일 수 있는 제연장치에 연통을 연결해 음식점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었다. 한쪽엔 새 연통을 다른 한쪽엔 기름때가 낀 연통을 두고 같은 조건에서 실험을 했다.


연통 아래에 숯불을 올려놓고 제연장치를 가동하자, 1분도 지나지 않아 열화상 카메라에 내부 온도가 200도를 넘어서는 것으로 표시됐다. 1분이 조금 넘어가자 기름때가 낀 연통에선 기름때가 타면서 흰 연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연통에서도 연기가 흘러나왔다. 2분이 조금 지났을 때 연통 내부에 있던 줄이 끊어졌다. 잠시 뒤 연통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기름때를 타고 불은 꺼질 줄 모르고 계속 타들어 갔다.


이번엔 새 연통과 기름때가 낀 연통 일부를 잘라 각각 6초씩 열을 가해봤다. 새 연통은 열을 가한 부분만 26초가량 타다가 스스로 꺼졌지만, 기름때가 낀 연통은 전체로 번져나가면서 타들어 갔고 1분 16초가 지나서야 꺼졌다. 기름때가 낀 연통이 불에 취약하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된 것이다.

"청결하게 관리하고 자주 교체해야"

연통 관리 소홀로 일어난 화재 건수는 지난해에만 81건으로 1년 전보다 20건 늘었다. 재산 피해액도 7,200여만 원에서 1억 5천여만 원까지 증가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측은 "지난해 발생한 전체 음식점 화재의 약 10%는 이런 사고였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기름때가 낀 연통은 여러 가지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알루미늄으로 된 연통의 경우 세제를 넣은 물에 10분 정도 담가뒀다가 솔로 문질러주면 세척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또 청소하기 전에 연통을 조금 가열해서 내부의 기름때를 녹이고 세제와 소다를 뿌려 닦으면 쉽게 제거된다고 말했다. 다만 분리가 어렵거나 연통 내부까지 청소가 힘든 경우에는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음식점 업주들 입장에선 장사하기도 빠듯한데 전문 업체를 부르는 건 사치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겠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불이나 인명·재산 피해로 이어진다면 그땐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다소 번거롭더라도 꾸준한 관리가 사고를 예방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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