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트럼프의 예산안이 ‘사기’라고?

입력 2017.05.25 (13:43) 수정 2017.05.2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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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트럼프의 예산안이 ‘사기’라고?

[특파원리포트] 트럼프의 예산안이 ‘사기’라고?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으면 부의 불평등은 심화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013년 출간한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논란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저성장기에 정책 결정자들이 더 깊게 고민해야 할 말임에는 틀림없다.

소득 불균형, 부의 불평등 축소에 정부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정부는 조세정책과 복지정책, 그리고 공정경쟁까지, 부의 불평등을 축소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 주체다.

정부의 이런 '결정적 역할'에 주목한 정치가가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빈부격차 축소를 '우리 시대의 결정적 도전'이라고 정의했고, 부의 불평등 축소를 정책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 오바마 정부는 부시 정부가 도입한 '부자 감세'를 끝냈고, 오바마 케어로 알려진 건강보험 정책을 실시해 중산층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화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 지원도 확대했다.

그런데, '오바마 뒤집기'를 사명으로 여기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부의 불평등 축소'라는 정책기조마저 뒤집으려는 모양이다. 부유층과 기업들의 세금을 획기적으로 깎아주는 세제개혁안을 내놓더니, 이제는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트럼프 정부는 23일 4조 천억 달러, 약 4천6백조 원 규모의 2018 회계연도 (2017년 10월 ~ 2018년 9월) 예산안을 공개했다. '미국의 위대함을 위한 새로운 기반(A New Foundation for American Greatness)', 예산안의 제목은 문자 그대로 위대한데, 내용을 보면 '사회안전망 예산 대폭 축소, 국방과 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로 요약된다.

트럼프 예산안 사회안전망 예산 감축률 (자료 : 워싱턴포스트)트럼프 예산안 사회안전망 예산 감축률 (자료 : 워싱턴포스트)

트럼프 예산안의 내용을 살펴보자. 저소득층의 의료비와 식비 지원 예산 등 사회안전망 예산을 앞으로 10년간 4조 5천억 달러, 약 5천조 원 줄이는 계획이 담겨 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저소득층의 의료비를 지원하는 메디케이드 예산은 17%, 푸드 스탬프로 알려진 보조영양지원계획 예산은 29%, 실업보험 예산은 12%가 대폭 삭감되는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회보장과 의료지원 예산을 깎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유일한 공화당 대선 후보라고 자랑스럽게 외쳤다.)
대신 트럼프 정부는 민관 인프라 투자 펀드에 2천억 달러, 225조 원을 투입하고, 국방 예산은 10% 늘리는 예산안을 내놨다. 여기엔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짓는 예산 16억 달러가 포함됐다.

예산안 설명하는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예산안 설명하는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

"우리는 국민들이 일하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푸드 스탬프에 의존하고 있지만, 신체 건강하다면, 우리는 당신이 일하기를 원합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이, 기자들에게 예산안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하지만 빈곤 추방을 위한 시민단체들은, 많은 푸드 스탬프 수혜자들이 이미 일을 하고 있지만, '먹고 살'만큼 충분한 수입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또 트럼프 예산안은 멀베이니 국장의 위의 말과도 모순을 빚는다고 지적한다. 직업훈련 예산을 비롯해 저소득층의 취업 지원을 위한 예산도 삭감될 처지이기 때문이다. 또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북돋우기 위한 근로장려세제 (EITC, Earned Income Tax Credit, 저소득 근로자에게 세금 환급 형태로 근로장려금을 주는 제도다.) 예산도 대폭 삭감이 예고됐다.

트럼프 예산안은, 당장의 '구호'를 위한 예산도, '빈곤 탈출'의 희망을 살려주는 예산도, 대폭 삭감을 계획한 셈이다.

 “나는 트럼프에게 투표했다우.” (자료:머큐리 뉴스) “나는 트럼프에게 투표했다우.” (자료:머큐리 뉴스)

일부 보수 언론을 제외하고 미국의 언론들은 트럼프 예산안에 대해 격한 비난을 쏟아냈다. "트럼프 예산안은 가장 적게 가진 사람이 가장 큰 고통을 겪게 하고,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가장 적게 기여하게 한다. 한마디로, 비양심적이다." 의회전문지 '더 힐'에 실린 말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트럼프 정부가, 1960년대에 도입된 '빈곤 추방과 경제번영 정책'인 '위대한 사회' 정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도덕한 예산안이다.", "부자를 위한 선물이다.", "가슴이 없는 예산안이다."라는 비난도 나온다.

이런 비난과는 별도로 트럼프의 세제개혁과 예산안은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트럼프 대학 이후 최대의 사기다."라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그 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는다.

부자와 기업들의 세금은 대폭 깎아주고도 정부는 균형 재정을 달성해 가고, 저소득층이 정부 지원을 받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좋은' 일자리가 생겨나게 하고, 이런 '마술'을 가능하게 하는 건 '경제 성장'이다. 정확히 말하면, 트럼프 정부의 '경제 성장 전망'이다.

미국의 경제 성장률 3%, 이 전망에 트럼프 예산안이 기초를 두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대규모 감세가 경기를 부양해 3% 성장이 가능할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 경제는 1.6% 성장했고, 미국의 중앙은행 연준과 의회예산국(Congressional Budget Office)은 미국의 중기 경제성장률을 1.8%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정부가 노동인력 고령화를 감안하지 않고 경제성장률을 전망했다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의 예산안대로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교육과 연구개발 예산이 대폭 삭감된다면, 이 또한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분석했다.

"내가 추적해온 40년 간의 대통령 예산안 가운데, 가장 터무니없는 '회계 착오'로 보인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먼저 정해놓고 나머지 숫자들을 채워넣은 듯하다." 미국의 전직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의 말이다.

그럼,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 전에, 의회 통과는 가능할까?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연방정부 폐쇄, '셧다운'까지 불사할 태세다. 공화당 내에도 부정적 의견이 만만치 않다. 사회보장 축소가 지역구 민심에 미칠 영향을 따져야 하는 공화당 의원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미국은 한국과 달리 예산 '편성' 권한도 의회가 가지고 있다. 대통령의 예산안은 '제안'에 그칠 뿐이다.


이처럼 트럼프의 예산안이 실현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이런 예산안을 내고 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트럼프 정부의 '인식'은, 너무 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낳는다. 특히 저성장기에 소득 불균형, 부의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을 정부마저 방치한다면, 이른바 '지속가능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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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트럼프의 예산안이 ‘사기’라고?
    • 입력 2017-05-25 13:43:09
    • 수정2017-05-25 13:44:10
    특파원 리포트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으면 부의 불평등은 심화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013년 출간한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논란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저성장기에 정책 결정자들이 더 깊게 고민해야 할 말임에는 틀림없다.

소득 불균형, 부의 불평등 축소에 정부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정부는 조세정책과 복지정책, 그리고 공정경쟁까지, 부의 불평등을 축소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 주체다.

정부의 이런 '결정적 역할'에 주목한 정치가가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빈부격차 축소를 '우리 시대의 결정적 도전'이라고 정의했고, 부의 불평등 축소를 정책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 오바마 정부는 부시 정부가 도입한 '부자 감세'를 끝냈고, 오바마 케어로 알려진 건강보험 정책을 실시해 중산층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화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 지원도 확대했다.

그런데, '오바마 뒤집기'를 사명으로 여기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부의 불평등 축소'라는 정책기조마저 뒤집으려는 모양이다. 부유층과 기업들의 세금을 획기적으로 깎아주는 세제개혁안을 내놓더니, 이제는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트럼프 정부는 23일 4조 천억 달러, 약 4천6백조 원 규모의 2018 회계연도 (2017년 10월 ~ 2018년 9월) 예산안을 공개했다. '미국의 위대함을 위한 새로운 기반(A New Foundation for American Greatness)', 예산안의 제목은 문자 그대로 위대한데, 내용을 보면 '사회안전망 예산 대폭 축소, 국방과 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로 요약된다.

트럼프 예산안 사회안전망 예산 감축률 (자료 : 워싱턴포스트)
트럼프 예산안의 내용을 살펴보자. 저소득층의 의료비와 식비 지원 예산 등 사회안전망 예산을 앞으로 10년간 4조 5천억 달러, 약 5천조 원 줄이는 계획이 담겨 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저소득층의 의료비를 지원하는 메디케이드 예산은 17%, 푸드 스탬프로 알려진 보조영양지원계획 예산은 29%, 실업보험 예산은 12%가 대폭 삭감되는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회보장과 의료지원 예산을 깎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유일한 공화당 대선 후보라고 자랑스럽게 외쳤다.)
대신 트럼프 정부는 민관 인프라 투자 펀드에 2천억 달러, 225조 원을 투입하고, 국방 예산은 10% 늘리는 예산안을 내놨다. 여기엔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짓는 예산 16억 달러가 포함됐다.

예산안 설명하는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
"우리는 국민들이 일하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푸드 스탬프에 의존하고 있지만, 신체 건강하다면, 우리는 당신이 일하기를 원합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이, 기자들에게 예산안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하지만 빈곤 추방을 위한 시민단체들은, 많은 푸드 스탬프 수혜자들이 이미 일을 하고 있지만, '먹고 살'만큼 충분한 수입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또 트럼프 예산안은 멀베이니 국장의 위의 말과도 모순을 빚는다고 지적한다. 직업훈련 예산을 비롯해 저소득층의 취업 지원을 위한 예산도 삭감될 처지이기 때문이다. 또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북돋우기 위한 근로장려세제 (EITC, Earned Income Tax Credit, 저소득 근로자에게 세금 환급 형태로 근로장려금을 주는 제도다.) 예산도 대폭 삭감이 예고됐다.

트럼프 예산안은, 당장의 '구호'를 위한 예산도, '빈곤 탈출'의 희망을 살려주는 예산도, 대폭 삭감을 계획한 셈이다.

 “나는 트럼프에게 투표했다우.” (자료:머큐리 뉴스)
일부 보수 언론을 제외하고 미국의 언론들은 트럼프 예산안에 대해 격한 비난을 쏟아냈다. "트럼프 예산안은 가장 적게 가진 사람이 가장 큰 고통을 겪게 하고,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가장 적게 기여하게 한다. 한마디로, 비양심적이다." 의회전문지 '더 힐'에 실린 말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트럼프 정부가, 1960년대에 도입된 '빈곤 추방과 경제번영 정책'인 '위대한 사회' 정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도덕한 예산안이다.", "부자를 위한 선물이다.", "가슴이 없는 예산안이다."라는 비난도 나온다.

이런 비난과는 별도로 트럼프의 세제개혁과 예산안은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트럼프 대학 이후 최대의 사기다."라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그 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는다.

부자와 기업들의 세금은 대폭 깎아주고도 정부는 균형 재정을 달성해 가고, 저소득층이 정부 지원을 받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좋은' 일자리가 생겨나게 하고, 이런 '마술'을 가능하게 하는 건 '경제 성장'이다. 정확히 말하면, 트럼프 정부의 '경제 성장 전망'이다.

미국의 경제 성장률 3%, 이 전망에 트럼프 예산안이 기초를 두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대규모 감세가 경기를 부양해 3% 성장이 가능할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 경제는 1.6% 성장했고, 미국의 중앙은행 연준과 의회예산국(Congressional Budget Office)은 미국의 중기 경제성장률을 1.8%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정부가 노동인력 고령화를 감안하지 않고 경제성장률을 전망했다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의 예산안대로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교육과 연구개발 예산이 대폭 삭감된다면, 이 또한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분석했다.

"내가 추적해온 40년 간의 대통령 예산안 가운데, 가장 터무니없는 '회계 착오'로 보인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먼저 정해놓고 나머지 숫자들을 채워넣은 듯하다." 미국의 전직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의 말이다.

그럼,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 전에, 의회 통과는 가능할까?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연방정부 폐쇄, '셧다운'까지 불사할 태세다. 공화당 내에도 부정적 의견이 만만치 않다. 사회보장 축소가 지역구 민심에 미칠 영향을 따져야 하는 공화당 의원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미국은 한국과 달리 예산 '편성' 권한도 의회가 가지고 있다. 대통령의 예산안은 '제안'에 그칠 뿐이다.


이처럼 트럼프의 예산안이 실현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이런 예산안을 내고 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트럼프 정부의 '인식'은, 너무 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낳는다. 특히 저성장기에 소득 불균형, 부의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을 정부마저 방치한다면, 이른바 '지속가능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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