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위의 집’…한국의 산토리니 ‘흰여울 마을’

입력 2017.05.2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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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너머 푸른 집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있다. 부산 영도 '흰여울 마을'이다. 한 폭의 수채와 같은 풍경 덕에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린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좀 다르다. 골목은 미로처럼 어질어질하지, 집들은 비좁지, 불편한 점이 꽤 있다.

한국전쟁 당시 형성되어 지금은 옛 모습 그대로 낡고 오래됐지만,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 거친 파도 같은 삶을 잘 견뎌 왔다 싶었는데 다시 또 밀려오는 파도 같은 나날들. 흰여울 마을 사람들의 바람은 별거 없다. 지금 이대로 이곳에서 이 사람들과 살고 싶을 뿐.


그 소박한 바람을 위해 흰여울 마을 공동체 사람들은 고민하며 애쓰고 있다. 부산 로컬 밴드 '아이씨 밴드'의 노래와 함께 흰여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한국의 산토리니! 부산 영도 흰여울 마을


영도다리를 건너자마자 다다른 첫 삼거리, 벼랑 위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한 마을. 봉래산에서 내려온 물이 바다에 굽이쳐 내리면서 하얗게 물거품이 인다고 해서 '흰여울 마을'이다. 어느 골목이든 자박자박 걸어가다 보면 어디든 바다가 열리고, 그 바다 위로 커다란 배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흰여울 마을 사람들에게는 넓고 푸르게 펼쳐진 바다가 내 집 앞뜰이다. 어디 그뿐인가. 집집마다 옥상은 하늘과 가깝고 이웃과 가까워 수시로 정이 넘나든다. 마을의 어디를 둘러 봐도 그 흔한 은행 하나, 약국 하나 없다.

집들은 비좁아 세탁기조차 들여놓을 공간이 없어 골목에서 불쑥 빨래한다. 하지만 그러한 풍광마저 이색적인 아름다움이 되는 곳, 바다를 끼고 있는 그 풍경해 반해 혹자는 흰여울 마을을 두고 한국의 '산토리니'라고도 했다. 흰여울 사람들은 푸른 파도 너머에서 매일을 산다.

“물도 정들면 피보다 진하다 안 하요?!”


"물도 정들면 피보다 진하다 안 하요? 인생 뭐 있습니까"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64년째 살고 있는 피란민의 후손, 병에 걸린 엄마 때문에 타지 생활을 접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 눌러앉은 사람 등 마을에는 굽어진 골목마다 제각각의 사연을 품은 이들이 많다.

흰여울 사람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요즘 세상에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꿰고 있다. 어느 집이든 대문 열렸다 하면 불쑥 들어가 밥 한 술 내놔라 해도 당당하고, 옥상 마주 보며 티격태격하다가도 한 송이 꽃을 툭 건네주는 게 일상이다.

이들은 골목에서도 누구 하나 눈에 띄면 그냥 보내지 못한다. 거친 파도를 쏙 빼닮아 목청은 크고 말투는 투박하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도 속정 많고 따뜻하다. 그 정 때문에 사람들은 수십 년째 대를 이어가며 마을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파도에 맞서는 마을 공동체


얼마 전부터 마을이 부쩍 어수선하다. 재개발 소문이 들리는가 싶더니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사람들이 자꾸만 집값을 묻고, 또 집을 팔라고들 한다. 도심에서 이만큼 풍경 좋은 데도 없으니 탐낼 만도 하다. 하지만 집을 팔아봤자 그 돈으로 갈 데도 없거니와 오랜 세월이 쌓이고 그 세월만큼 정을 나눈 사람들이 있으니 이 마을을 떠날 수는 없다.

3년 전, 사람들은 흰여울 마을 공동체를 만들었다. 관청에 손 벌리지 않고 주민 스스로 조금씩 돈을 모아 작은 점방과 민박을 차렸다. 직접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만들어 내다 팔기도 한다. 모아진 돈은 오롯이 마을을 위해 쓴다.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국밥 데이'도 만들었다. 이웃끼리 서로 얼굴 한 번 더 보기 위해서다. 이렇게라도 서로 똘똘 뭉치고, 흰여울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면 이 마을을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란다.

흰여울은 이들에게 마음의 고향이고, 저마다의 역사며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픈 삶의 유산이다.


정이 넘치는 '흰여울 마을' 이야기는 5월 27일(토) 저녁 7시 10분 KBS 1TV '다큐공감'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문경림 kbs.petitl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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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도 위의 집’…한국의 산토리니 ‘흰여울 마을’
    • 입력 2017-05-26 10:27:46
    방송·연예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너머 푸른 집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있다. 부산 영도 '흰여울 마을'이다. 한 폭의 수채와 같은 풍경 덕에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린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좀 다르다. 골목은 미로처럼 어질어질하지, 집들은 비좁지, 불편한 점이 꽤 있다.

한국전쟁 당시 형성되어 지금은 옛 모습 그대로 낡고 오래됐지만,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 거친 파도 같은 삶을 잘 견뎌 왔다 싶었는데 다시 또 밀려오는 파도 같은 나날들. 흰여울 마을 사람들의 바람은 별거 없다. 지금 이대로 이곳에서 이 사람들과 살고 싶을 뿐.


그 소박한 바람을 위해 흰여울 마을 공동체 사람들은 고민하며 애쓰고 있다. 부산 로컬 밴드 '아이씨 밴드'의 노래와 함께 흰여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한국의 산토리니! 부산 영도 흰여울 마을


영도다리를 건너자마자 다다른 첫 삼거리, 벼랑 위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한 마을. 봉래산에서 내려온 물이 바다에 굽이쳐 내리면서 하얗게 물거품이 인다고 해서 '흰여울 마을'이다. 어느 골목이든 자박자박 걸어가다 보면 어디든 바다가 열리고, 그 바다 위로 커다란 배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흰여울 마을 사람들에게는 넓고 푸르게 펼쳐진 바다가 내 집 앞뜰이다. 어디 그뿐인가. 집집마다 옥상은 하늘과 가깝고 이웃과 가까워 수시로 정이 넘나든다. 마을의 어디를 둘러 봐도 그 흔한 은행 하나, 약국 하나 없다.

집들은 비좁아 세탁기조차 들여놓을 공간이 없어 골목에서 불쑥 빨래한다. 하지만 그러한 풍광마저 이색적인 아름다움이 되는 곳, 바다를 끼고 있는 그 풍경해 반해 혹자는 흰여울 마을을 두고 한국의 '산토리니'라고도 했다. 흰여울 사람들은 푸른 파도 너머에서 매일을 산다.

“물도 정들면 피보다 진하다 안 하요?!”


"물도 정들면 피보다 진하다 안 하요? 인생 뭐 있습니까"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64년째 살고 있는 피란민의 후손, 병에 걸린 엄마 때문에 타지 생활을 접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 눌러앉은 사람 등 마을에는 굽어진 골목마다 제각각의 사연을 품은 이들이 많다.

흰여울 사람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요즘 세상에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꿰고 있다. 어느 집이든 대문 열렸다 하면 불쑥 들어가 밥 한 술 내놔라 해도 당당하고, 옥상 마주 보며 티격태격하다가도 한 송이 꽃을 툭 건네주는 게 일상이다.

이들은 골목에서도 누구 하나 눈에 띄면 그냥 보내지 못한다. 거친 파도를 쏙 빼닮아 목청은 크고 말투는 투박하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도 속정 많고 따뜻하다. 그 정 때문에 사람들은 수십 년째 대를 이어가며 마을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파도에 맞서는 마을 공동체


얼마 전부터 마을이 부쩍 어수선하다. 재개발 소문이 들리는가 싶더니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사람들이 자꾸만 집값을 묻고, 또 집을 팔라고들 한다. 도심에서 이만큼 풍경 좋은 데도 없으니 탐낼 만도 하다. 하지만 집을 팔아봤자 그 돈으로 갈 데도 없거니와 오랜 세월이 쌓이고 그 세월만큼 정을 나눈 사람들이 있으니 이 마을을 떠날 수는 없다.

3년 전, 사람들은 흰여울 마을 공동체를 만들었다. 관청에 손 벌리지 않고 주민 스스로 조금씩 돈을 모아 작은 점방과 민박을 차렸다. 직접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만들어 내다 팔기도 한다. 모아진 돈은 오롯이 마을을 위해 쓴다.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국밥 데이'도 만들었다. 이웃끼리 서로 얼굴 한 번 더 보기 위해서다. 이렇게라도 서로 똘똘 뭉치고, 흰여울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면 이 마을을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란다.

흰여울은 이들에게 마음의 고향이고, 저마다의 역사며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픈 삶의 유산이다.


정이 넘치는 '흰여울 마을' 이야기는 5월 27일(토) 저녁 7시 10분 KBS 1TV '다큐공감'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문경림 kbs.petitl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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