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노출도 안돼”…만화 검열의 흑역사

입력 2017.05.26 (15:08) 수정 2017.05.2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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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노출도 안돼”…만화 검열의 흑역사

“아기 노출도 안돼”…만화 검열의 흑역사

거미줄(이희재 作, 1982년)거미줄(이희재 作, 1982년)

기저귀를 차고 태어난 쌍둥이의 등장


[연관 기사] [뉴스7] 검열로 고통받은 만화의 흑역사

여기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가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볼 수 없는 기구한 운명이네요. 무슨 사연일까요. 그런데 갓 태어난 아기가 기저귀를 차고 있습니다. 돌봐줄 어머니도 없는데 말입니다.

불쌍한 아이들에게 기저귀를 채워준 사람은 뜻밖에도 검열관이었습니다. 이희재 작가는 "당연히" 알몸인 신생아를 그렸지만 검열관은 그 장면을 음란하다고 봤습니다.

이 작가는 기저귀로 성기 부분을 가리라는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급해진 편집부가 기저귀를 그려 넣고서야 만화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레슬러(박기정 作, 1965년)레슬러(박기정 作, 1965년)

너무나도 '노골적인' 그 스포츠, 레슬링

기술을 걸고 있는 레슬러의 역동적인 모습이 일품입니다. 온몸을 굳게 지탱하는 굵은 허벅지와 기술에 걸린 레슬러의 찡그린 표정이 대비됩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팬츠였습니다. 검열관은 복장과 인물의 자세가 너무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출판을 금했습니다. 무엇이 노골적이었던 걸까요? 검열관은 도대체 이 그림을 보고 무슨 상상을 한 걸까요?

결국 박기정 작가의 이 작품은 레슬러에게 온몸을 다 가린 옷을 입히고 모자까지 씌운 다음에야 검열을 통과했습니다. (아래 사진)

레슬러 표지의 변화. 단정한 ‘모범국민’의 모습만 남아있다.레슬러 표지의 변화. 단정한 ‘모범국민’의 모습만 남아있다.

검열관의 느낌적인 느낌?

검열 사례를 하나 더 볼까요? 우리나라 만화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입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이현세 作, 1982년)공포의 외인구단(이현세 作, 1982년)

주인공 오혜성은 야구고 사랑이고 간에 극단적입니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며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죠. 사랑하는 엄지가 라이벌에게 시집가는 것까지 보게 되는 그 속은 말해 뭐할까요.

그래서인지 오혜성의 눈매는 유독 검은 빛으로 짙게 표현됩니다. 우수를 표현하기 위함이겠지요. 하지만 검열관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나 봅니다. "눈 밑에 그려지는 그늘이 우울하다"며 옅게 그리고, 눈알도 그려 넣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작가는 아예 머리카락을 눈 밑까지 그려서 얼굴을 덮어버리거나, 잡혀갈 것을 각오하고 검열받은 원고를 재차 원래대로 고쳤다고 그 시절을 회상합니다.

국제신문 만평(1980년 2월 28일)국제신문 만평(1980년 2월 28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검열은 만화책만 대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풍자를 무기로 독재와 맞서 싸운 신문 만평에도 현미경을 들이댔습니다.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 때 한 신문에 실린 만평입니다. 당시 김대중 전 의원의 복권 소식을 전합니다.

하지만 만평 어디에도 김 전 의원을 지칭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원래 'DJ'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지만, 검열에 삭제됐습니다. 참 꼼꼼하네요.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만평이 먹칠을 당하거나 사라졌습니다. 정권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에 섭니다.

신문 만평을 둘러싼 검열 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 물론 정권의 검열이 아니라 언론사 내부의 자체검열을 말하는 겁니다.

비둘기 합창(이상무 作, 1987년) 따뜻한 가족만화도 검열을 피해갈 수 없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며 큰누나와 남동생이 한 이불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우측 가운데 컷) 매정한 검열관이여.비둘기 합창(이상무 作, 1987년) 따뜻한 가족만화도 검열을 피해갈 수 없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며 큰누나와 남동생이 한 이불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우측 가운데 컷) 매정한 검열관이여.

도대체 누가, 도대체 왜, 도대체 어떻게

한국만화가 이렇게 재밌을 수 없다며 일본만화를 베낀 거 아니냐고 검열당했다. 빈민촌을 배경으로 했더니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다며 누더기를 수정하라고 했다. 어쨌거나 남녀 간 애정표현은 절대 금지했다. 주인공 이름을 오징어가 아니라 오준호로 바꾸라고 했다…….

취재과정에서 접한 황당한 검열 사례들입니다. 이런 검열은 어떻게 이뤄진 걸까요.

1958년을 기점으로 만화방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만화에 대한 검열 목소리도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만화를 포함한 모든 언론출판물은 검열 대상이 됩니다. 군 당국에서 파견 나온 심사관들은 거리낌 없는 '칼질'을 시작했습니다.

1968년부터는 문화공보부가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를 신설해 검열을 맡기죠. 70년대 들어 등장한 한국도서잡지윤리위원회도 크게 성격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전검열 체제는 유지됐습니다. 만화를 사회악 취급하던 시절입니다.

1974년부터는 성인만화도 사전심의 대상이 됐고 1980년 12·12 사태 이후에는 계엄사 소속 검열관이 신문사에 상주하며 신문만화를 검열했습니다.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장태산 作, 1984년) 패싸움 장면이 검열 당하자 작가는 캔 하나를 박살내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이를 대체했다.(우측 하단) 검열이 오히려 더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루게 한 웃기고도 슬픈 모습이다.야수라 불리운 사나이(장태산 作, 1984년) 패싸움 장면이 검열 당하자 작가는 캔 하나를 박살내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이를 대체했다.(우측 하단) 검열이 오히려 더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루게 한 웃기고도 슬픈 모습이다.

검열이 완화되기 시작한 건 1987년 민주화 이후입니다. 언론기본법이 폐지돼 신문만화에 대한 규제가 완화됐습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만화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합니다. '천국의 신화'를 둘러싼 소송이 6년 만에 이현세 작가의 승리로 끝나면서 만화검열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웹툰이 대세가 된 요즘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한국만화가협회가 업무협약을 체결해 자율규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기공룡둘리(김수정 作, 1983년) 아이가 어른에게 반말을 하면 안된다는 검열규정. 사람이 아닌 ‘공룡’ 둘리가 등장하게 된 한 배경이라고.아기공룡둘리(김수정 作, 1983년) 아이가 어른에게 반말을 하면 안된다는 검열규정. 사람이 아닌 ‘공룡’ 둘리가 등장하게 된 한 배경이라고.

2017년, 다시 표현의 자유

소개해드린 검열사례들은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둘러볼 수 있습니다. '빼앗긴 창작의 자유展'을 통해서입니다. 더 황당하고 더 배꼽잡게 하는 사례들이 한가득입니다.

전시회 한쪽 벽에는 대한민국헌법 21조의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창작의 자유가 빼앗긴 곳에서는 또 다른 자유도 숨 쉴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로 몸살을 앓은 한국사회, 2017년 지금 표현의 자유는 어느 정도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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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 노출도 안돼”…만화 검열의 흑역사
    • 입력 2017-05-26 15:08:23
    • 수정2017-05-26 19:53:48
    취재K
거미줄(이희재 作, 1982년)
기저귀를 차고 태어난 쌍둥이의 등장


[연관 기사] [뉴스7] 검열로 고통받은 만화의 흑역사

여기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가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볼 수 없는 기구한 운명이네요. 무슨 사연일까요. 그런데 갓 태어난 아기가 기저귀를 차고 있습니다. 돌봐줄 어머니도 없는데 말입니다.

불쌍한 아이들에게 기저귀를 채워준 사람은 뜻밖에도 검열관이었습니다. 이희재 작가는 "당연히" 알몸인 신생아를 그렸지만 검열관은 그 장면을 음란하다고 봤습니다.

이 작가는 기저귀로 성기 부분을 가리라는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급해진 편집부가 기저귀를 그려 넣고서야 만화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레슬러(박기정 作, 1965년)
너무나도 '노골적인' 그 스포츠, 레슬링

기술을 걸고 있는 레슬러의 역동적인 모습이 일품입니다. 온몸을 굳게 지탱하는 굵은 허벅지와 기술에 걸린 레슬러의 찡그린 표정이 대비됩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팬츠였습니다. 검열관은 복장과 인물의 자세가 너무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출판을 금했습니다. 무엇이 노골적이었던 걸까요? 검열관은 도대체 이 그림을 보고 무슨 상상을 한 걸까요?

결국 박기정 작가의 이 작품은 레슬러에게 온몸을 다 가린 옷을 입히고 모자까지 씌운 다음에야 검열을 통과했습니다. (아래 사진)

레슬러 표지의 변화. 단정한 ‘모범국민’의 모습만 남아있다.
검열관의 느낌적인 느낌?

검열 사례를 하나 더 볼까요? 우리나라 만화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입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이현세 作, 1982년)
주인공 오혜성은 야구고 사랑이고 간에 극단적입니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며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죠. 사랑하는 엄지가 라이벌에게 시집가는 것까지 보게 되는 그 속은 말해 뭐할까요.

그래서인지 오혜성의 눈매는 유독 검은 빛으로 짙게 표현됩니다. 우수를 표현하기 위함이겠지요. 하지만 검열관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나 봅니다. "눈 밑에 그려지는 그늘이 우울하다"며 옅게 그리고, 눈알도 그려 넣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작가는 아예 머리카락을 눈 밑까지 그려서 얼굴을 덮어버리거나, 잡혀갈 것을 각오하고 검열받은 원고를 재차 원래대로 고쳤다고 그 시절을 회상합니다.

국제신문 만평(1980년 2월 28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검열은 만화책만 대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풍자를 무기로 독재와 맞서 싸운 신문 만평에도 현미경을 들이댔습니다.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 때 한 신문에 실린 만평입니다. 당시 김대중 전 의원의 복권 소식을 전합니다.

하지만 만평 어디에도 김 전 의원을 지칭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원래 'DJ'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지만, 검열에 삭제됐습니다. 참 꼼꼼하네요.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만평이 먹칠을 당하거나 사라졌습니다. 정권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에 섭니다.

신문 만평을 둘러싼 검열 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 물론 정권의 검열이 아니라 언론사 내부의 자체검열을 말하는 겁니다.

비둘기 합창(이상무 作, 1987년) 따뜻한 가족만화도 검열을 피해갈 수 없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며 큰누나와 남동생이 한 이불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우측 가운데 컷) 매정한 검열관이여.
도대체 누가, 도대체 왜, 도대체 어떻게

한국만화가 이렇게 재밌을 수 없다며 일본만화를 베낀 거 아니냐고 검열당했다. 빈민촌을 배경으로 했더니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다며 누더기를 수정하라고 했다. 어쨌거나 남녀 간 애정표현은 절대 금지했다. 주인공 이름을 오징어가 아니라 오준호로 바꾸라고 했다…….

취재과정에서 접한 황당한 검열 사례들입니다. 이런 검열은 어떻게 이뤄진 걸까요.

1958년을 기점으로 만화방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만화에 대한 검열 목소리도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만화를 포함한 모든 언론출판물은 검열 대상이 됩니다. 군 당국에서 파견 나온 심사관들은 거리낌 없는 '칼질'을 시작했습니다.

1968년부터는 문화공보부가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를 신설해 검열을 맡기죠. 70년대 들어 등장한 한국도서잡지윤리위원회도 크게 성격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전검열 체제는 유지됐습니다. 만화를 사회악 취급하던 시절입니다.

1974년부터는 성인만화도 사전심의 대상이 됐고 1980년 12·12 사태 이후에는 계엄사 소속 검열관이 신문사에 상주하며 신문만화를 검열했습니다.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장태산 作, 1984년) 패싸움 장면이 검열 당하자 작가는 캔 하나를 박살내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이를 대체했다.(우측 하단) 검열이 오히려 더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루게 한 웃기고도 슬픈 모습이다.
검열이 완화되기 시작한 건 1987년 민주화 이후입니다. 언론기본법이 폐지돼 신문만화에 대한 규제가 완화됐습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만화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합니다. '천국의 신화'를 둘러싼 소송이 6년 만에 이현세 작가의 승리로 끝나면서 만화검열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웹툰이 대세가 된 요즘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한국만화가협회가 업무협약을 체결해 자율규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기공룡둘리(김수정 作, 1983년) 아이가 어른에게 반말을 하면 안된다는 검열규정. 사람이 아닌 ‘공룡’ 둘리가 등장하게 된 한 배경이라고.
2017년, 다시 표현의 자유

소개해드린 검열사례들은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둘러볼 수 있습니다. '빼앗긴 창작의 자유展'을 통해서입니다. 더 황당하고 더 배꼽잡게 하는 사례들이 한가득입니다.

전시회 한쪽 벽에는 대한민국헌법 21조의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창작의 자유가 빼앗긴 곳에서는 또 다른 자유도 숨 쉴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로 몸살을 앓은 한국사회, 2017년 지금 표현의 자유는 어느 정도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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