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시민 폭행’하고 고개숙인 경찰…인상착의가 비슷해서

입력 2017.05.3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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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시민 폭행’하고 고개숙인 경찰…인상착의가 비슷해서

[취재후] ‘시민 폭행’하고 고개숙인 경찰…인상착의가 비슷해서

'용의자가 아니었다'

지난 27일 토요일 밤 10시 40분쯤. 길을 걷던 시민이 난데없이 남성 3명에게 제압당했다.

앞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범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은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한 상태였다. 피해자는 "딸을 납치했으니 돈을 보내라"는 사기범의 말에 이미 640만 원을 입금한 상태. 그 상황에서 또다시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았다.

서울 성동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이 용의자를 현장에서 검거하기 위해 긴급히 출동한 상태였다. 피해자가 진술한 용의자 인상착의와 비슷한 한 남성이 걸어가는 것을 목격한 형사들. 시간대와 장소, 용모나 인상착의를 볼 때 용의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비슷한 인상착의...메고 있던 가방

피해자가 걸어가는 모습. 허리춤의 가방이 화근이었다.피해자가 걸어가는 모습. 허리춤의 가방이 화근이었다.

허리춤에 멘 가방이 가장 특이한 사항이었다. 말을 건네기 위해 남성의 뒤를 밟아 접근했다. 어깨를 건드리니 주춤하던 '용의자'는 금방이라도 도망갈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년간 경험으로 용의자로 확신하고 검거에 나섰다.

형사 3명이 달라붙어 격렬히 저항하는 '용의자'를 제압하고, 수갑을 채우면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용의자'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경찰서로 이동했다.

용의자인 줄 알고 준현행범으로 체포된 31살 김 모 씨는 보이스피싱과는 상관없는 무고한 일반 시민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자신을 부르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갑자기 당한 봉변. 형사들은 제복이 아니라 사복을 입기 때문에 경찰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김 씨는 "장기밀매 조직이 덮치는 줄 알고 저항했다"라고 당시 기억을 되살렸다.

두 차례 사과...이미 엎질러진 물

피해자는 얼굴 등에 타박상을 입었다.피해자는 얼굴 등에 타박상을 입었다.

김 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가 웬 덩치 좋은 남성 3명이 자신을 덮치고 그 과정에서 눈두덩과 팔꿈치 등을 다쳤다.

사건 당일 밤부터 SNS를 통해 피해자 김 씨의 사진과 사연이 올라오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곧바로 담당 강력팀 등이 나서 피해자 자택을 찾아 사과했다. 사건 바로 다음 날, 해당 강력팀이 자택을 찾아가 피해자 아버지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고, 뒤이어 과장이 직접 자택을 찾아갔다. 하지만 갑자기 벌어진 '폭행'에 달가울 리는 없기 마련. 마음이 풀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설사 범인이라도 폭행은 안 된다...유감"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경찰 관련 이슈들이 산적해 있고, 인권 경찰을 표방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라 난감할 것으로 보인다. 현장 경찰관들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실수인 것도 맞고 물리력을 행사해 멀쩡한 시민이 다쳤지만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처럼 딸이 납치됐다면서, 돈을 재차 요구받은 피해자 신고로 용의자 인상착의를 파악해 긴급히 출동한 상황에서, 완강히 저항하는 용의자에게 말로만 설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검거 과정에서 용의자의 흉기에 형사들이 유명을 달리한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도 제압이 필요한 경우 상황에 따른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애매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현장 경찰관은 걱정한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29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차원에서 즉각 대응에 들어갔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송구스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설령 범인이라고 하더라도 폭행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또 "사안을 보고받고 진솔하게 사과하라고 지시했다"며 "정확하게 진상을 파악하고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해당 경찰서 형사에 대한 감찰에 착수해 체포과정에서 위법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미란다 원칙이 제대로 고지됐는지, 현행범 체포에서 행사한 물리력이 비례원칙 한도를 벗어났는지 여부가 주요 조사 사항인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30일)자로 지난 27일 현장에 나갔던 성동경찰서 강력팀 형사들, 그리고 강력팀장과 강력계장까지 대기발령이 떨어진 상태다.

[연관기사] “용의자로 오인 폭행”…고개 숙인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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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시민 폭행’하고 고개숙인 경찰…인상착의가 비슷해서
    • 입력 2017-05-30 17:52:17
    취재후·사건후
'용의자가 아니었다'

지난 27일 토요일 밤 10시 40분쯤. 길을 걷던 시민이 난데없이 남성 3명에게 제압당했다.

앞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범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은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한 상태였다. 피해자는 "딸을 납치했으니 돈을 보내라"는 사기범의 말에 이미 640만 원을 입금한 상태. 그 상황에서 또다시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았다.

서울 성동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이 용의자를 현장에서 검거하기 위해 긴급히 출동한 상태였다. 피해자가 진술한 용의자 인상착의와 비슷한 한 남성이 걸어가는 것을 목격한 형사들. 시간대와 장소, 용모나 인상착의를 볼 때 용의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비슷한 인상착의...메고 있던 가방

피해자가 걸어가는 모습. 허리춤의 가방이 화근이었다.
허리춤에 멘 가방이 가장 특이한 사항이었다. 말을 건네기 위해 남성의 뒤를 밟아 접근했다. 어깨를 건드리니 주춤하던 '용의자'는 금방이라도 도망갈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년간 경험으로 용의자로 확신하고 검거에 나섰다.

형사 3명이 달라붙어 격렬히 저항하는 '용의자'를 제압하고, 수갑을 채우면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용의자'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경찰서로 이동했다.

용의자인 줄 알고 준현행범으로 체포된 31살 김 모 씨는 보이스피싱과는 상관없는 무고한 일반 시민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자신을 부르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갑자기 당한 봉변. 형사들은 제복이 아니라 사복을 입기 때문에 경찰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김 씨는 "장기밀매 조직이 덮치는 줄 알고 저항했다"라고 당시 기억을 되살렸다.

두 차례 사과...이미 엎질러진 물

피해자는 얼굴 등에 타박상을 입었다.
김 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가 웬 덩치 좋은 남성 3명이 자신을 덮치고 그 과정에서 눈두덩과 팔꿈치 등을 다쳤다.

사건 당일 밤부터 SNS를 통해 피해자 김 씨의 사진과 사연이 올라오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곧바로 담당 강력팀 등이 나서 피해자 자택을 찾아 사과했다. 사건 바로 다음 날, 해당 강력팀이 자택을 찾아가 피해자 아버지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고, 뒤이어 과장이 직접 자택을 찾아갔다. 하지만 갑자기 벌어진 '폭행'에 달가울 리는 없기 마련. 마음이 풀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설사 범인이라도 폭행은 안 된다...유감"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경찰 관련 이슈들이 산적해 있고, 인권 경찰을 표방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라 난감할 것으로 보인다. 현장 경찰관들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실수인 것도 맞고 물리력을 행사해 멀쩡한 시민이 다쳤지만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처럼 딸이 납치됐다면서, 돈을 재차 요구받은 피해자 신고로 용의자 인상착의를 파악해 긴급히 출동한 상황에서, 완강히 저항하는 용의자에게 말로만 설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검거 과정에서 용의자의 흉기에 형사들이 유명을 달리한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도 제압이 필요한 경우 상황에 따른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애매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현장 경찰관은 걱정한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29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차원에서 즉각 대응에 들어갔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송구스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설령 범인이라고 하더라도 폭행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또 "사안을 보고받고 진솔하게 사과하라고 지시했다"며 "정확하게 진상을 파악하고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해당 경찰서 형사에 대한 감찰에 착수해 체포과정에서 위법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미란다 원칙이 제대로 고지됐는지, 현행범 체포에서 행사한 물리력이 비례원칙 한도를 벗어났는지 여부가 주요 조사 사항인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30일)자로 지난 27일 현장에 나갔던 성동경찰서 강력팀 형사들, 그리고 강력팀장과 강력계장까지 대기발령이 떨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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