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져야 살아남는 ‘사초’…‘정태제 사초’는 예외인 이유

입력 2017.06.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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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져야 살아남는 ‘사초’…‘정태제 사초’는 예외인 이유

지워져야 살아남는 ‘사초’…‘정태제 사초’는 예외인 이유

문 틈새로 몰래 엿듣고, 때로 계단 아래 숨어있기도 한다. 무심코 내뱉은 말, 벌어지는 모든 일을 관찰해서 적는다.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왕의 곁에서 국가적 사건, 왕의 언행 등을 기록해 역사를 편찬하는 사관(史官)이다. 조선 사관들은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위해 임금 옆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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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태종 때의 사관 '민인생'은 태종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기 위해 고위 관료만 참석할 수 있는 연회를 몰래 따라가는 것은 물론, 변장하고 사냥을 쫓아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임금의 눈치를 보며 사관들이 작성한 내용은 고스란히 '사초(史草)'에 기록된다. 이후 왕이 죽고 난 뒤, 실록청으로 거둬들여지면 이 사초를 중심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만든다. 세계에 유례없는 역사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사초의 역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초는 치밀하게 적었음에도 지워져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완벽한 역사를 남기기 위해 사라져야만 했던 사초. 그렇다면 '정태제 사초'는 어떻게 지워지지 않고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게 된 걸까.



정태제 사초는 1987년 3월, 인조 때 사관 '정태제'의 묘에서 발견됐다. 상하 두 권으로 구성된 정태제 사초는 인조 15년 12월 26일부터 인조 16년 5월 22일까지, 6개월간 조정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하고 있다.

사초는 매일 간지(干支) 형태로 날짜와 날씨를 기록한 후, 왕의 행선들을 자세하게 담는다. 같은 날 일어난 여러 사실을 기록할 때는 붓 뚜껑과 같은 것으로 ○ 표시를 해 구분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초엔 주어진 운명이 있다. 바로 쓰고 난 뒤에 지워야 한다는 것이다. 실록 편찬이 끝난 뒤, 실록에 사용된 사초는 자하문 밖 세검정에서 모조리 물에 씻겨 지워졌다.

이토록 치열하게 기록한 사초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10월 서울한지문화제 세초식 재현 행사. ‘세초'(洗草)’란 실록을 완성한 뒤 실록 편찬에 사용했던 기록을 기밀 보호를 위해 물로 씻어내는 것을 말한다.지난해 10월 서울한지문화제 세초식 재현 행사. ‘세초'(洗草)’란 실록을 완성한 뒤 실록 편찬에 사용했던 기록을 기밀 보호를 위해 물로 씻어내는 것을 말한다.

당시 조선왕조실록은 사관 외에는 누구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절대 권력인 왕조차 실록을 열람할 수 없었다. 왕에 대한 기록인 실록을 왕이 보게 될 때, 사관들이 역사를 제대로 못 남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실록의 토대가 되는 사초도 위험했다. 그래서 실록이 완성되면, 사초 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초를 모조리 물에 씻어 지워버렸다.

그런데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문서인 사초가 우리 곁에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태제 사초가 지워지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이유는 KBS 1TV '천상의 컬렉션'에서 공개된다.

(사진 왼쪽부터) 훈민정음 해례본, 정태제 사초, 난중일기(사진 왼쪽부터) 훈민정음 해례본, 정태제 사초, 난중일기

이 밖에도 모델 이현이는 백성들이 한글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한 세종의 애민정신이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을, 개그맨 서경석은 전쟁의 고난 속에서 7년 동안의 일을 생생하게 기록한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소개한다.

이번 '천상의 컬렉션'에서 소개된 기록유산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10월 12일까지 열리는 '훈민정음, 난중일기展 : 다시, 바라보다'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


순간을 영원한 역사로 남긴 우리의 기록유산들. '기록의 나라' 조선을 들여다보는 기록유산을 다룬 이야기는 6월 4일(일) 오후 9시 40분 KBS 1TV '천상의 컬렉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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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워져야 살아남는 ‘사초’…‘정태제 사초’는 예외인 이유
    • 입력 2017-06-04 08:00:20
    방송·연예
문 틈새로 몰래 엿듣고, 때로 계단 아래 숨어있기도 한다. 무심코 내뱉은 말, 벌어지는 모든 일을 관찰해서 적는다.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왕의 곁에서 국가적 사건, 왕의 언행 등을 기록해 역사를 편찬하는 사관(史官)이다. 조선 사관들은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위해 임금 옆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천상의 컬렉션 공식 블로그
특히 태종 때의 사관 '민인생'은 태종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기 위해 고위 관료만 참석할 수 있는 연회를 몰래 따라가는 것은 물론, 변장하고 사냥을 쫓아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임금의 눈치를 보며 사관들이 작성한 내용은 고스란히 '사초(史草)'에 기록된다. 이후 왕이 죽고 난 뒤, 실록청으로 거둬들여지면 이 사초를 중심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만든다. 세계에 유례없는 역사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사초의 역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초는 치밀하게 적었음에도 지워져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완벽한 역사를 남기기 위해 사라져야만 했던 사초. 그렇다면 '정태제 사초'는 어떻게 지워지지 않고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게 된 걸까.



정태제 사초는 1987년 3월, 인조 때 사관 '정태제'의 묘에서 발견됐다. 상하 두 권으로 구성된 정태제 사초는 인조 15년 12월 26일부터 인조 16년 5월 22일까지, 6개월간 조정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하고 있다.

사초는 매일 간지(干支) 형태로 날짜와 날씨를 기록한 후, 왕의 행선들을 자세하게 담는다. 같은 날 일어난 여러 사실을 기록할 때는 붓 뚜껑과 같은 것으로 ○ 표시를 해 구분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초엔 주어진 운명이 있다. 바로 쓰고 난 뒤에 지워야 한다는 것이다. 실록 편찬이 끝난 뒤, 실록에 사용된 사초는 자하문 밖 세검정에서 모조리 물에 씻겨 지워졌다.

이토록 치열하게 기록한 사초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10월 서울한지문화제 세초식 재현 행사. ‘세초'(洗草)’란 실록을 완성한 뒤 실록 편찬에 사용했던 기록을 기밀 보호를 위해 물로 씻어내는 것을 말한다.
당시 조선왕조실록은 사관 외에는 누구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절대 권력인 왕조차 실록을 열람할 수 없었다. 왕에 대한 기록인 실록을 왕이 보게 될 때, 사관들이 역사를 제대로 못 남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실록의 토대가 되는 사초도 위험했다. 그래서 실록이 완성되면, 사초 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초를 모조리 물에 씻어 지워버렸다.

그런데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문서인 사초가 우리 곁에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태제 사초가 지워지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이유는 KBS 1TV '천상의 컬렉션'에서 공개된다.

(사진 왼쪽부터) 훈민정음 해례본, 정태제 사초, 난중일기
이 밖에도 모델 이현이는 백성들이 한글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한 세종의 애민정신이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을, 개그맨 서경석은 전쟁의 고난 속에서 7년 동안의 일을 생생하게 기록한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소개한다.

이번 '천상의 컬렉션'에서 소개된 기록유산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10월 12일까지 열리는 '훈민정음, 난중일기展 : 다시, 바라보다'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


순간을 영원한 역사로 남긴 우리의 기록유산들. '기록의 나라' 조선을 들여다보는 기록유산을 다룬 이야기는 6월 4일(일) 오후 9시 40분 KBS 1TV '천상의 컬렉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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