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미국의 북한 폭격설” 진실은?

입력 2017.06.0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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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미국의 북한 폭격설” 진실은?

1994년 “미국의 북한 폭격설” 진실은?

한승주(77)전 외무부 장관은 평생 외교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지난 50여 년간 대학에서 외교를 배우고 가르쳤으며 1993년에는 김영삼 정부의 초대 외무부 장관으로,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초대 주미 대사로 임명돼 각각 22개월간 격변의 외교 현장을 누볐다.

그가 맡았던 외무부 장관과 주미 대사 두 보직의 배경에는 모두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위협이 있었다. 이에 대처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였다.

이렇듯 대한민국 외교사의 중요한 순간에 핵심 역할을 맡았던 한 전 장관이 최근 회고록 ‘외교의 길’을 펴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한 전 장관의 회고록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노무현- 부시' 조합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진보 성향 대통령(문재인)과 미국 공화당 정권 대통령(도널드 트럼프)의 조합이 이뤄졌는데, 사드 문제를 포함한 한미간의 원만한 대북 조율 여부가 한반도 정세에 중대 변수로 떠오른 만큼 한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은 문재인 정부에서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 장관의 회고록 중 이목을 끄는 일부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미국의 북한 공격을 한국이 막았다?

1993년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한반도에는 큰 긴장감이 흘렀다.

이에 미국은 1994년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한반도는 전쟁이라는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전 장관은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 검토설이 실제보다 과장됐다고 서술했다.

한 전 장관은 윌리엄 페리 당시 미국 국방장관의 발언을 소개했다.
페리 장관은 “(북한 핵시설을 공격하는 긴급사태 대책은) 내 책상 서랍에는 있었지만,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도 아니고, 그것을 책상 위에 꺼내놓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미국의 외교안보 당사자들도 하나같이 미국 정부가 북한을 공격하기로 방침을 정하는 단계까지는 간 일이 없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계획을 한국의 동의 없이 강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현실 자체를 놓고 볼 때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고 했는데 한국이 막았다’라는 항간의 주장은 과장된 것이라고 한 전 장관은 설명한다.

한미공조 실패

한 전 장관은 제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2002년 가을부터 2005년 2월 북한 외무성의 핵 보유 선언 때까지 북핵 저지를 위한 한미공조가 실패한 이유도 밝혔다.

그는 “미국과 한국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너무나 상반된 견해와 접근 방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나라가 같이 취할 수 있는 대안이랄 것이 거의 없었다”며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미 양국의 회의는 협의라기보다는 강경책을 취할 것인지 온건책을 취할 것인지의 선택을 놓고 양측이 협상이나 논쟁하는 자리가 되기 일쑤였다”고 지적했다.

한 전 장관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보다는 이란 핵 문제를 더 중시했다고 소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대통령 각하, 미안하지만 우리(미국)로서는 북한보다 이란의 핵 무장이 더 심각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 한 전 장관의 회고다.

한 전 장관은 "미국 입장에서는 이란이 아직 북한보다 핵무기 개발의 진도는 늦지만 테러집단에 핵물질이나 무기를 이전할 가능성이 더 크고, 이스라엘에 더 직접적인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이란이라는 나라가 중동의 화약고 한복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며 "부시가 이라크 전쟁과 이란 핵 문제에 몰두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정책적 적극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이라크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는 판단하에 핵무기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했지만, 미국은 이라크 평정에 매달리느라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압력을 가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가슴 아팠던 사건

한 전 장관은 주미 대사로 재임하던 중 이라크에서 발생한 김선일 씨 피살 사건이 가장 가슴 아팠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선일 씨 피살로 국내에서는 이라크 파병 문제와 그를 구해내지 못한 우리 외교 능력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며 “특히 납치 집단이 이라크에서 한국군 즉시 철수를 석방의 조건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이라크에 파병을 결정하고 또 철수를 거부한 정부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정부가 피랍자의 석방을 위해 몸값을 치른다든지 납치 테러 집단의 협박에 굴복해 중요한 정책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나도 김정일을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

한 전 장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의 정상 회담과 관련한 일화도 소개했다.

당시 회담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하자 노 전 대통령도 “나도 김정일을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며 맞장구를 쳤다.

부시는 노 전 대통령에게 친근감을 강조하기 위해 ‘대화하기 쉬운 사람(easy man to talk with)’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표현은 노 전 대통령이 미국에 쉽게 양보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며 국내 일각에서 트집을 잡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고 한 전 장관은 서술했다.


대한민국 외교가 나아갈 길

한 전 장관은 오늘날 우리의 외교는 최소한 다섯 가지의 위기와 그에 따른 도전을 맞고 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는 북한의 핵무장, 두 번째는 떠오르는 ‘미국 중심주의’, 세 번째는 부활하는 주변국의 대국주의, 네 번째는 갈등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현실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의 위기는 리더십, 전략, 국민적 합의라는 세 가지 결핍 사항(Deficiencies)이다.

한 전 장관은 우리의 시급한 과제는 정치와 리더십의 안정이라고 지적한다. 정치와 제도 그리고 누가 정부를 이끌고 있는가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외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안정적이고, 감정과 이념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실용적 리더십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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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미국의 북한 폭격설” 진실은?
    • 입력 2017-06-09 15:18:05
    취재K
한승주(77)전 외무부 장관은 평생 외교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지난 50여 년간 대학에서 외교를 배우고 가르쳤으며 1993년에는 김영삼 정부의 초대 외무부 장관으로,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초대 주미 대사로 임명돼 각각 22개월간 격변의 외교 현장을 누볐다.

그가 맡았던 외무부 장관과 주미 대사 두 보직의 배경에는 모두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위협이 있었다. 이에 대처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였다.

이렇듯 대한민국 외교사의 중요한 순간에 핵심 역할을 맡았던 한 전 장관이 최근 회고록 ‘외교의 길’을 펴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한 전 장관의 회고록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노무현- 부시' 조합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진보 성향 대통령(문재인)과 미국 공화당 정권 대통령(도널드 트럼프)의 조합이 이뤄졌는데, 사드 문제를 포함한 한미간의 원만한 대북 조율 여부가 한반도 정세에 중대 변수로 떠오른 만큼 한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은 문재인 정부에서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 장관의 회고록 중 이목을 끄는 일부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미국의 북한 공격을 한국이 막았다?

1993년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한반도에는 큰 긴장감이 흘렀다.

이에 미국은 1994년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한반도는 전쟁이라는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전 장관은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 검토설이 실제보다 과장됐다고 서술했다.

한 전 장관은 윌리엄 페리 당시 미국 국방장관의 발언을 소개했다.
페리 장관은 “(북한 핵시설을 공격하는 긴급사태 대책은) 내 책상 서랍에는 있었지만,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도 아니고, 그것을 책상 위에 꺼내놓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미국의 외교안보 당사자들도 하나같이 미국 정부가 북한을 공격하기로 방침을 정하는 단계까지는 간 일이 없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계획을 한국의 동의 없이 강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현실 자체를 놓고 볼 때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고 했는데 한국이 막았다’라는 항간의 주장은 과장된 것이라고 한 전 장관은 설명한다.

한미공조 실패

한 전 장관은 제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2002년 가을부터 2005년 2월 북한 외무성의 핵 보유 선언 때까지 북핵 저지를 위한 한미공조가 실패한 이유도 밝혔다.

그는 “미국과 한국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너무나 상반된 견해와 접근 방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나라가 같이 취할 수 있는 대안이랄 것이 거의 없었다”며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미 양국의 회의는 협의라기보다는 강경책을 취할 것인지 온건책을 취할 것인지의 선택을 놓고 양측이 협상이나 논쟁하는 자리가 되기 일쑤였다”고 지적했다.

한 전 장관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보다는 이란 핵 문제를 더 중시했다고 소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대통령 각하, 미안하지만 우리(미국)로서는 북한보다 이란의 핵 무장이 더 심각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 한 전 장관의 회고다.

한 전 장관은 "미국 입장에서는 이란이 아직 북한보다 핵무기 개발의 진도는 늦지만 테러집단에 핵물질이나 무기를 이전할 가능성이 더 크고, 이스라엘에 더 직접적인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이란이라는 나라가 중동의 화약고 한복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며 "부시가 이라크 전쟁과 이란 핵 문제에 몰두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정책적 적극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이라크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는 판단하에 핵무기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했지만, 미국은 이라크 평정에 매달리느라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압력을 가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가슴 아팠던 사건

한 전 장관은 주미 대사로 재임하던 중 이라크에서 발생한 김선일 씨 피살 사건이 가장 가슴 아팠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선일 씨 피살로 국내에서는 이라크 파병 문제와 그를 구해내지 못한 우리 외교 능력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며 “특히 납치 집단이 이라크에서 한국군 즉시 철수를 석방의 조건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이라크에 파병을 결정하고 또 철수를 거부한 정부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정부가 피랍자의 석방을 위해 몸값을 치른다든지 납치 테러 집단의 협박에 굴복해 중요한 정책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나도 김정일을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

한 전 장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의 정상 회담과 관련한 일화도 소개했다.

당시 회담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하자 노 전 대통령도 “나도 김정일을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며 맞장구를 쳤다.

부시는 노 전 대통령에게 친근감을 강조하기 위해 ‘대화하기 쉬운 사람(easy man to talk with)’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표현은 노 전 대통령이 미국에 쉽게 양보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며 국내 일각에서 트집을 잡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고 한 전 장관은 서술했다.


대한민국 외교가 나아갈 길

한 전 장관은 오늘날 우리의 외교는 최소한 다섯 가지의 위기와 그에 따른 도전을 맞고 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는 북한의 핵무장, 두 번째는 떠오르는 ‘미국 중심주의’, 세 번째는 부활하는 주변국의 대국주의, 네 번째는 갈등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현실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의 위기는 리더십, 전략, 국민적 합의라는 세 가지 결핍 사항(Deficiencies)이다.

한 전 장관은 우리의 시급한 과제는 정치와 리더십의 안정이라고 지적한다. 정치와 제도 그리고 누가 정부를 이끌고 있는가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외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안정적이고, 감정과 이념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실용적 리더십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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