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체제’ 30년…“새 패러다임 필요”

입력 2017.06.10 (21:24) 수정 2017.06.10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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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10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로 상징되는 이른바 87년 체제를 탄생시켰습니다.

87년 체제는 이후 적잖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돼왔는데요,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맞은 6 10 항쟁 30주년을 계기로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은준수 기자가 심층 보도합니다

<리포트>

<녹취> "호헌 철폐! 독재 타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도심 곳곳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대학생 시위대에 넥타이부대가 가세하고, 택시와 버스는 일제히 경적을 울려 응원합니다.

<인터뷰> 김지현(당시 명동성당 청년연합회 회장) : "농성단이 진출을 하면 양쪽 건물 창문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고 지나던 회사원들이 합류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이미 민심은 임계점에 다다른 상황,

<녹취> 전두환(전 대통령/1987년 4월 13일) :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4.13 호헌 조치와 고 이한열 열사의 사망 사건은 항쟁의 결정적 도화선이 됐습니다.

87년 6월 10일부터 보름 넘게 이어진 전국의 민주화 항쟁은 결국 6·29 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녹취> 노태우(당시 민정당 대표위원/1987년 6월 29일) :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녹취> "민주주의 만세!"

이후 탄생한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87년 체제, 6번의 평화적 정권교체 등 적잖은 성과를 이뤄내며 우리 사회를 지탱해왔지만, 한편으론 최순실 게이트로 상징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등 한계도 나타났습니다.

<인터뷰> 이남주(성공회대 교수/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 : "당시 정치권에 의해서 협상이 진행됐고, 사실 많은 그런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입장이 제대로 87년 체제에 반영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제도적 개선은 물론, 특히 경제 불평등과 이념, 세대 간 갈등 해소 등 시대적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손호철(서강대 교수) : "경제 민주화를 통한 불평등 해소가 없는 한 우리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안정될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6·10민주항쟁 30년, 불의에 맞섰던 당시의 주역들이 정치권 등 우리 사회 전반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한 가운데, 미완의 6·10항쟁을 완성시키는 노력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KBS 뉴스 은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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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년 체제’ 30년…“새 패러다임 필요”
    • 입력 2017-06-10 21:26:43
    • 수정2017-06-10 21: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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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10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로 상징되는 이른바 87년 체제를 탄생시켰습니다.

87년 체제는 이후 적잖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돼왔는데요,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맞은 6 10 항쟁 30주년을 계기로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은준수 기자가 심층 보도합니다

<리포트>

<녹취> "호헌 철폐! 독재 타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도심 곳곳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대학생 시위대에 넥타이부대가 가세하고, 택시와 버스는 일제히 경적을 울려 응원합니다.

<인터뷰> 김지현(당시 명동성당 청년연합회 회장) : "농성단이 진출을 하면 양쪽 건물 창문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고 지나던 회사원들이 합류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이미 민심은 임계점에 다다른 상황,

<녹취> 전두환(전 대통령/1987년 4월 13일) :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4.13 호헌 조치와 고 이한열 열사의 사망 사건은 항쟁의 결정적 도화선이 됐습니다.

87년 6월 10일부터 보름 넘게 이어진 전국의 민주화 항쟁은 결국 6·29 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녹취> 노태우(당시 민정당 대표위원/1987년 6월 29일) :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녹취> "민주주의 만세!"

이후 탄생한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87년 체제, 6번의 평화적 정권교체 등 적잖은 성과를 이뤄내며 우리 사회를 지탱해왔지만, 한편으론 최순실 게이트로 상징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등 한계도 나타났습니다.

<인터뷰> 이남주(성공회대 교수/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 : "당시 정치권에 의해서 협상이 진행됐고, 사실 많은 그런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입장이 제대로 87년 체제에 반영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제도적 개선은 물론, 특히 경제 불평등과 이념, 세대 간 갈등 해소 등 시대적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손호철(서강대 교수) : "경제 민주화를 통한 불평등 해소가 없는 한 우리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안정될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6·10민주항쟁 30년, 불의에 맞섰던 당시의 주역들이 정치권 등 우리 사회 전반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한 가운데, 미완의 6·10항쟁을 완성시키는 노력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KBS 뉴스 은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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