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국새 미스터리

입력 2017.06.11 (22:48) 수정 2017.06.1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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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각종 기록물이 보관된 국가기록원 서고.

보관함을 열자 역대 정부가 사용한 국가의 공식 인장 '국새'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현재 사용 중인 5대 국새를 뺀 2, 3, 4대 국새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대한민국 초대 국새는 보이지 않습니다.

<녹취> 국가기록원 관계자 : "(왜 여기에 없는 겁니까?) 저희한테 아예 이관이 안 됐습니다. 사실은."

초대 국새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반 세기가 넘는 긴 시간이 흐른 지금 국새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내년, 2018년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꼭 7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이 역사적인 시점에 맞춰 사라진 대한민국 초대 국새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8.15 광복과 3년 간의 미 군정을 거쳐 1948년 8월 15일,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가 문을 엽니다.

이승만 정부는 이와 동시에 국새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국새가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초대 국새의 흔적은 과거 정부 기록에만 남아 있습니다.

건국 이후 정부의 공식 기록물을 보관하고 있는 국가기록원.

차곡차곡 쌓인 자료 더미에서 국가기록원 연구관이 오래된 자료 하나를 꺼냅니다.

1958년에 촬영한 초대 국새 마이크로 필름입니다.

남아 있는 필름은 11장.

사진으로 인화해 보니 글씨는 한자로 여섯 자, '대한민국지새'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손잡이는 뭔지 정확하게 단정짓기 힘든 동물 한 마리가 앉아 있는 모양입니다.

<인터뷰> 손환일(대전대 서화문화연구소 책임연구위원) : "혹시 삽살개나 우리 한국의 개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 봤는데 개 모양도 또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자도 아니고. 그래서 이거는 당시에 만들 때에도 어떠한 특정한 동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상상해서 신령스러운 짐승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1954년에 작성된 정부 도장 관련 기록물인 '관인대장'을 확인해 보니, 초대 국새는 단기 4281년, 즉 1948년 8월에 제작됐습니다.

재질은 은이며, 가로 세로 변이 각각 두 치, 즉 6센티미터가 조금 넘습니다.

남아 있는 사진과 기록을 토대로 실물과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복원한 초대 국새 모형입니다.

바로 이것이 모형으로나마 처음 공개되는 대한민국 초대 국새의 모습입니다.

초대 국새는 6.25 전쟁도 무사히 견뎌내고 1950년대 내내 사용됐습니다.

그렇다면 초대 국새는 언제까지 사용됐을까?

단서를 쫓기 위해 취재진이 찾아간 곳은 충남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과 관련된 각종 유물과 자료가 보관된 수장고 건물로 들어가자 직원이 수장고 안에서 유물 한 점을 꺼내와 취재진에게 보여줍니다.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정부로부터 받은 건국공로훈장증.

국새를 찍은 자국이 선명합니다.

초대 국새로 찍은 겁니다.

<인터뷰> 이명화(독립기념관 연구위원) : "저희 독립기념관이 개관을 할 때 안창호 선생님의 소중한 모든 자료들을 저희 독립기념관에 기증해주실 때 그때 함께 저희에게 기증되어온 자료입니다."

발행된 날짜는 1962년 3월 1일.

적어도 이때까지 초대 국새가 사용됐던 겁니다.

하지만 이후 초대 국새가 사용된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초대 국새는 1962년까지 사용되고, 1963년부터는 정부의 한글 전용 정책에 따라 새로 제작한 2대 국새가 사용됩니다.

국새를 교체하면 기존 국새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기록을 따로 남깁니다.

바로 '폐기관인대장'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초대 국새를 어떻게 처리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초대 국새의 행방을 추적할 공식 기록이 여기서 끊긴 겁니다.

<인터뷰> 정상봉(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 보존서비스과장) : "그런 기록들을 하나라도 찾으면 행방에 대해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으니까 찾았습니다만은 아직까지는 말씀드릴 만한 성과가없었다. 사용된 기록이라든가 행방을 추적할 만한 단서라든가 이런 거는 아직까지 미궁에 빠져 있다..."

지금 사용 중인 대한민국 국새는 철저한 보안 속에 관리되고 있습니다.

정부서울청사에 있는 행정자치부 의정관실.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별도의 공간으로 들어가면….

육중한 철제 보안문이 앞을 막아섭니다.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 또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금고가 나옵니다.

4중 잠금장치를 풀고 나서야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국새.

현재 정부가 사용하고 있는 5대 국새입니다.

봉황 두 마리 위로 활짝 핀 무 궁화가 조각돼 있고, 반듯한 훈민정음 체로 대한민국 네 글자가 새겨졌습니다.

국새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가 고위공무원 임명장, 훈장, 중요 외교문서 등에 한 해 평균 2만 번가량 사용됩니다.

문서에 대한 공적인 증명과 함께 문서의 품격을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1963년부터 사용된 2대 국새는 손잡이가 거북이 모양, 최초로 대한민국 네 글자를 한글로 새겼습니다.

1999년에 만들어진 3대 국새와 2008년에 교체된 4대 국새는 손잡이가 모두 봉황 모양.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이 국새들은 모두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습니다.

오직 초대 국새 하나만 분실된 겁니다.

수십 년 동안 까맣게 잊혔던 초대 국새 분실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2005년.

<녹취> 당시 9시 뉴스 앵커멘트(2005.10.27) :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최초로 만들어진 제정 헌법 원본과 국새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당시 감사원이 공공 기록물 보존 관리 실태를 일제 조사하는 과정에서 초대 국새가 분실된 사실이 처음 공식 확인됩니다.

사라진 건 국새만이 아니었습니다.

초대 국새와 함께 만든 대한민국 대통령 도장 '대통령인'도 분실됐습니다.

<인터뷰> 전진한(알권리연구소장) : "공공기록물법이 2000년에 시행이 됐습니다. 근데 그 전에는 사실상 기록물을 본인이 가져가거나 소각하거나 심지어 외부에 그것을 팔아도 사실 불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전직 공무원들이나 대통령들이 사실은 자기와 중요한 기록들을 대부분 소각하거나 또 자기가 보존하거나 이런 것들은 개인적으로 챙겨서 다 가져갔던 것이죠."

국새의 행방을 쫓기 위해 정부는 당시 국새를 관리했던 공무원들부터 찾기 시작했습니다.

고령의 생존자들을 수소문하던 국가기록원은 2004년 1950년대 국새 담당 공무원 한 명을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노경호 씨였습니다.

노 씨는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9.28 서울 수복 때 국새를 품에 안고 서울까지 이송했고….

1952년부터 56년까지 당시 총무처 문서과에서 초대 국새를 관리한 인물입니다.

팔십 대 고령이었지만 노 씨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했습니다.

초대 국새 사진을 보여줬더니 자신이 사용하던 국새가 확실하다고 증언했습니다.

게다가 옛 기억을 되살려 국새함과 인주함을 직접 그려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노 씨도 1956년에 담당 업무가 바뀐 뒤론 국새의 행방을 알지 못했습니다.

노 씨의 후임자들까지 스무 명이 넘는 생존자를 찾아 국새의 행방을 물었지만 끝내 단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정상봉(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 보존서비스과장) : "힘듭니다. 이게 워낙 오랜된 일이 돼가지고 만나본 결과 그 분들이 국새의, 1대 국새, 1호 국새에 대해 가지고 기억 자체를 잘 못하고 계세요. 이게 여러 가지 그 당시에 격변기였잖습니까. 6.25도 있었고 또 5.16 군사정변도 있었고 여러 가지 격변기를 거치다 보니까 1호 국새에 대해 가지고는 기억을 잘 못하고 있었다..."

국새가 사라진 이후 5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초대 국새 실물을 직접 봤다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손환일(대전대 서화문화연구소 책임연구위원) : "유독 대한민국지새와 대통령인은 관리가 되지 않고 분실이 되었을까. 이것은 대한민국지새와 대통령인장이 같이 분실되었다는 점에 있어서 이거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없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녹취> "국새를 찾아라! 국새를 찾아라! 국새를 찾아라!"

사라진 국새를 찾아보자며 이번엔 시민단체가 나섰습니다.

초대 국새 관련자들을 추적하고 시민 제보를 받는 등 대대적인 국새 찾기 운동을 벌이겠다는 겁니다.

또, 국회에 청원서를 내 초대 국새를 찾는 데 정부가 적극 나서줄 것도 촉구할 예정입니다.

<인터뷰>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저희는 일단 시민운동의 차원에서 국새 분실 사실을 널리 알리고 이것에 대한 행방을 알고 있는 관계자, 내부의 제보를 받음으로써 국새의 행방을 추적해 나가도록 할 계획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처음으로 만들어진 국가의 상징물이자, 귀중한 문화재인 '초대 국새'.

내년 정부 수립 70주년을 앞두고 그 행방을 밝혀내기 위한 민간 차원의 국새 찾기 운동에 시동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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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대 국새 미스터리
    • 입력 2017-06-11 22:57:07
    • 수정2017-06-11 23:18:27
    취재파일K
정부의 각종 기록물이 보관된 국가기록원 서고.

보관함을 열자 역대 정부가 사용한 국가의 공식 인장 '국새'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현재 사용 중인 5대 국새를 뺀 2, 3, 4대 국새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대한민국 초대 국새는 보이지 않습니다.

<녹취> 국가기록원 관계자 : "(왜 여기에 없는 겁니까?) 저희한테 아예 이관이 안 됐습니다. 사실은."

초대 국새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반 세기가 넘는 긴 시간이 흐른 지금 국새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내년, 2018년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꼭 7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이 역사적인 시점에 맞춰 사라진 대한민국 초대 국새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8.15 광복과 3년 간의 미 군정을 거쳐 1948년 8월 15일,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가 문을 엽니다.

이승만 정부는 이와 동시에 국새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국새가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초대 국새의 흔적은 과거 정부 기록에만 남아 있습니다.

건국 이후 정부의 공식 기록물을 보관하고 있는 국가기록원.

차곡차곡 쌓인 자료 더미에서 국가기록원 연구관이 오래된 자료 하나를 꺼냅니다.

1958년에 촬영한 초대 국새 마이크로 필름입니다.

남아 있는 필름은 11장.

사진으로 인화해 보니 글씨는 한자로 여섯 자, '대한민국지새'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손잡이는 뭔지 정확하게 단정짓기 힘든 동물 한 마리가 앉아 있는 모양입니다.

<인터뷰> 손환일(대전대 서화문화연구소 책임연구위원) : "혹시 삽살개나 우리 한국의 개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 봤는데 개 모양도 또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자도 아니고. 그래서 이거는 당시에 만들 때에도 어떠한 특정한 동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상상해서 신령스러운 짐승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1954년에 작성된 정부 도장 관련 기록물인 '관인대장'을 확인해 보니, 초대 국새는 단기 4281년, 즉 1948년 8월에 제작됐습니다.

재질은 은이며, 가로 세로 변이 각각 두 치, 즉 6센티미터가 조금 넘습니다.

남아 있는 사진과 기록을 토대로 실물과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복원한 초대 국새 모형입니다.

바로 이것이 모형으로나마 처음 공개되는 대한민국 초대 국새의 모습입니다.

초대 국새는 6.25 전쟁도 무사히 견뎌내고 1950년대 내내 사용됐습니다.

그렇다면 초대 국새는 언제까지 사용됐을까?

단서를 쫓기 위해 취재진이 찾아간 곳은 충남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과 관련된 각종 유물과 자료가 보관된 수장고 건물로 들어가자 직원이 수장고 안에서 유물 한 점을 꺼내와 취재진에게 보여줍니다.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정부로부터 받은 건국공로훈장증.

국새를 찍은 자국이 선명합니다.

초대 국새로 찍은 겁니다.

<인터뷰> 이명화(독립기념관 연구위원) : "저희 독립기념관이 개관을 할 때 안창호 선생님의 소중한 모든 자료들을 저희 독립기념관에 기증해주실 때 그때 함께 저희에게 기증되어온 자료입니다."

발행된 날짜는 1962년 3월 1일.

적어도 이때까지 초대 국새가 사용됐던 겁니다.

하지만 이후 초대 국새가 사용된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초대 국새는 1962년까지 사용되고, 1963년부터는 정부의 한글 전용 정책에 따라 새로 제작한 2대 국새가 사용됩니다.

국새를 교체하면 기존 국새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기록을 따로 남깁니다.

바로 '폐기관인대장'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초대 국새를 어떻게 처리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초대 국새의 행방을 추적할 공식 기록이 여기서 끊긴 겁니다.

<인터뷰> 정상봉(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 보존서비스과장) : "그런 기록들을 하나라도 찾으면 행방에 대해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으니까 찾았습니다만은 아직까지는 말씀드릴 만한 성과가없었다. 사용된 기록이라든가 행방을 추적할 만한 단서라든가 이런 거는 아직까지 미궁에 빠져 있다..."

지금 사용 중인 대한민국 국새는 철저한 보안 속에 관리되고 있습니다.

정부서울청사에 있는 행정자치부 의정관실.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별도의 공간으로 들어가면….

육중한 철제 보안문이 앞을 막아섭니다.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 또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금고가 나옵니다.

4중 잠금장치를 풀고 나서야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국새.

현재 정부가 사용하고 있는 5대 국새입니다.

봉황 두 마리 위로 활짝 핀 무 궁화가 조각돼 있고, 반듯한 훈민정음 체로 대한민국 네 글자가 새겨졌습니다.

국새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가 고위공무원 임명장, 훈장, 중요 외교문서 등에 한 해 평균 2만 번가량 사용됩니다.

문서에 대한 공적인 증명과 함께 문서의 품격을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1963년부터 사용된 2대 국새는 손잡이가 거북이 모양, 최초로 대한민국 네 글자를 한글로 새겼습니다.

1999년에 만들어진 3대 국새와 2008년에 교체된 4대 국새는 손잡이가 모두 봉황 모양.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이 국새들은 모두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습니다.

오직 초대 국새 하나만 분실된 겁니다.

수십 년 동안 까맣게 잊혔던 초대 국새 분실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2005년.

<녹취> 당시 9시 뉴스 앵커멘트(2005.10.27) :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최초로 만들어진 제정 헌법 원본과 국새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당시 감사원이 공공 기록물 보존 관리 실태를 일제 조사하는 과정에서 초대 국새가 분실된 사실이 처음 공식 확인됩니다.

사라진 건 국새만이 아니었습니다.

초대 국새와 함께 만든 대한민국 대통령 도장 '대통령인'도 분실됐습니다.

<인터뷰> 전진한(알권리연구소장) : "공공기록물법이 2000년에 시행이 됐습니다. 근데 그 전에는 사실상 기록물을 본인이 가져가거나 소각하거나 심지어 외부에 그것을 팔아도 사실 불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전직 공무원들이나 대통령들이 사실은 자기와 중요한 기록들을 대부분 소각하거나 또 자기가 보존하거나 이런 것들은 개인적으로 챙겨서 다 가져갔던 것이죠."

국새의 행방을 쫓기 위해 정부는 당시 국새를 관리했던 공무원들부터 찾기 시작했습니다.

고령의 생존자들을 수소문하던 국가기록원은 2004년 1950년대 국새 담당 공무원 한 명을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노경호 씨였습니다.

노 씨는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9.28 서울 수복 때 국새를 품에 안고 서울까지 이송했고….

1952년부터 56년까지 당시 총무처 문서과에서 초대 국새를 관리한 인물입니다.

팔십 대 고령이었지만 노 씨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했습니다.

초대 국새 사진을 보여줬더니 자신이 사용하던 국새가 확실하다고 증언했습니다.

게다가 옛 기억을 되살려 국새함과 인주함을 직접 그려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노 씨도 1956년에 담당 업무가 바뀐 뒤론 국새의 행방을 알지 못했습니다.

노 씨의 후임자들까지 스무 명이 넘는 생존자를 찾아 국새의 행방을 물었지만 끝내 단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정상봉(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 보존서비스과장) : "힘듭니다. 이게 워낙 오랜된 일이 돼가지고 만나본 결과 그 분들이 국새의, 1대 국새, 1호 국새에 대해 가지고 기억 자체를 잘 못하고 계세요. 이게 여러 가지 그 당시에 격변기였잖습니까. 6.25도 있었고 또 5.16 군사정변도 있었고 여러 가지 격변기를 거치다 보니까 1호 국새에 대해 가지고는 기억을 잘 못하고 있었다..."

국새가 사라진 이후 5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초대 국새 실물을 직접 봤다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손환일(대전대 서화문화연구소 책임연구위원) : "유독 대한민국지새와 대통령인은 관리가 되지 않고 분실이 되었을까. 이것은 대한민국지새와 대통령인장이 같이 분실되었다는 점에 있어서 이거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없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녹취> "국새를 찾아라! 국새를 찾아라! 국새를 찾아라!"

사라진 국새를 찾아보자며 이번엔 시민단체가 나섰습니다.

초대 국새 관련자들을 추적하고 시민 제보를 받는 등 대대적인 국새 찾기 운동을 벌이겠다는 겁니다.

또, 국회에 청원서를 내 초대 국새를 찾는 데 정부가 적극 나서줄 것도 촉구할 예정입니다.

<인터뷰>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저희는 일단 시민운동의 차원에서 국새 분실 사실을 널리 알리고 이것에 대한 행방을 알고 있는 관계자, 내부의 제보를 받음으로써 국새의 행방을 추적해 나가도록 할 계획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처음으로 만들어진 국가의 상징물이자, 귀중한 문화재인 '초대 국새'.

내년 정부 수립 70주년을 앞두고 그 행방을 밝혀내기 위한 민간 차원의 국새 찾기 운동에 시동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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