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본능 이겨낸 68살 버스 운전사, 대참사 막았다

입력 2017.06.12 (17:56) 수정 2017.06.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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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중앙분리대를 넘어 공중에 뜬 승용차가 맞은편의 관광버스 윗부분과 정면 충돌했다. 승용차는 버스 유리창 안쪽으로 밀고 들어오면서 완전히 부서졌고, 운전자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버스 쪽에서는 45명의 중경상자가 나왔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불과 몇 초 동안의 짧은 순간에 이뤄진 일이다. 사고 당시 모습을 담은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한 결과, 버스 운전기사의 용기와 침착함이 대형 참사를 막은 정황이 드러났다.

승용차가 버스에 공중 충돌…46명 사상

지난 10일 아침 7시 30분쯤 일본 아이치 현 신시로 시의 도메이 고속도로 상행선에서 47명이 탄 전세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정면 충돌했다. 맞은 편 차로에서 달리던 승용차가 중앙분리대와 충돌하면서 도약하듯 날아올라 버스 정면 유리창으로 돌진했다.


승용차 측면이 버스 정면으로 파고들면서 납작하게 일그러졌다. 버스는 승용차와 일체가 된 상태에서 300m를 더 진행한 뒤 멈췄다. 버스 내 블랙박스에는 사고 당시의 끔찍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형체도 없이 일그러진 승용차에서 4시간 만에 운전자를 구조했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사망 원인은 다발성 외상이었다. 사망자는 하마마츠 시의 의사 이쿠마 마사미츠(62세, 남성) 씨. 자신의 차량이 수리 중이어서, 빌린 차를 이용해 병원으로 향하다 변을 당했다.

버스에는 나들이에 나선 도요카와 시 주민들이 타고 있었다. 승객들은 사고 당시 충격으로 버스가 허공에 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충격과 동시에 엄청난 유리 파편이 날아와 승객들의 얼굴과 팔 등에 박혔다. 즐거운 주말 나들잇길은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버스에 타고 있던 47명 가운데 45명이 다쳤다. 이 가운데 6명은 골절상 등 중상을 입었다.


중앙분리대가 도약대처럼 차량을 띄우다

고속도로에서 중앙선을 침범하는 사고는 종종 벌어진다. 그런데 이번 경우처럼 차량이 도약하듯 날아올라 일종의 '공중 충돌'처럼 부딪치는 사고는 매우 이례적이다.

사고 지점은 우측으로 완만하게 굽은 도로였다. 승용차는 진행 방향인 왼쪽의 갓길 쪽 가드 레일과 먼저 부딪친 뒤, 제어력을 잃은 채 중앙분리대와 충돌하면서 허공으로 날아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공교롭게도 중앙분리대 아래쪽이 70cm 높이로 경사가 져 있어서, 일종의 도약대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 조사 결과, 타이어가 미끄러진 흔적은 있었지만,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승용차 운전자가 알코올이나 약물을 섭취한 흔적도 없었다. 사고 직전 승용차에는 무슨 일이 었었던 것일까? 경찰 앞에 난제가 남았다.

목숨 걸고 운전대를 지킨 버스 운전기사

고속도로에서 질주하는 차량의 정면충돌 사고는 대부분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특히 버스 등 대형차량이 관련되면, 2차 사고로 이어지면서 참사 수준의 인명피해가 나기도 한다.

이번 사고도 자칫 대량 인명피해가 날 뻔했다. 형체가 사라진 승용차의 잔해와 완전히 찌그러진 버스 앞부분을 보면, 사고 당시의 충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망자는 다행히 없었고, 중상자는 상대적으로 소수에 그쳤다. 승객들이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고, 버스가 뒤집히거나 중앙선을 넘거나 하는 2차 사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버스 내부 블랙박스 화면에는 운전기사 야마모토(68세) 씨의 침착한 대응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흐릿한 화면 속의 야마모토 씨는 사고 직전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며 확 움켜쥐고 있었다. 덕분에 버스는 오른쪽 중앙분리대를 넘어가지 않은 채, 차로 이탈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사고 당시 차량 앞부분에 타고 있던 승객들도 버스 운전기사가 끝까지 핸들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자신에게 가장 위험한, 그러나 승객에겐 가장 안전한 선택

이 선택이 왜 중요했을까? 일본의 차로는 좌측통행이다. 버스는 오른쪽 끝 추월차로를 달리고 있었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면 당연히 중앙분리대를 추돌한 뒤 반대차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차량이 넘어지거나 뒤집히고, 맞은편 차량과 충돌하는 2, 3차 사고로 이어지기도 쉽다.


그런데 운전자는 위급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선택을 하기 쉽다. 즉, 맞은 편에서 장애물이 돌진해오거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서 자신을 보호하기 마련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 반사작용이 더 큰 피해를 유발하게 된다.

사고버스의 운전기사는 반대되는 선택을 했다.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는 것은 운전자 자신이 장애물과 가장 먼저 부딪친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사고버스의 운전석 윗부분이 가장 많이 파손됐다. 운전기사는 머리와 어깨를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 충돌 부분이 조금만 낮았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야마모토 씨는 경력 48년의 베테랑 기사였다. 그는 위급한 순간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뭔가가 날아왔는데,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면 중앙분리대 때문에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면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겼다'고 말했다. 자신은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승객 중에 사망자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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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2 17:56:46
    • 수정2017-06-12 17:58:23
    특파원 리포트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를 넘어 공중에 뜬 승용차가 맞은편의 관광버스 윗부분과 정면 충돌했다. 승용차는 버스 유리창 안쪽으로 밀고 들어오면서 완전히 부서졌고, 운전자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버스 쪽에서는 45명의 중경상자가 나왔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불과 몇 초 동안의 짧은 순간에 이뤄진 일이다. 사고 당시 모습을 담은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한 결과, 버스 운전기사의 용기와 침착함이 대형 참사를 막은 정황이 드러났다. 승용차가 버스에 공중 충돌…46명 사상 지난 10일 아침 7시 30분쯤 일본 아이치 현 신시로 시의 도메이 고속도로 상행선에서 47명이 탄 전세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정면 충돌했다. 맞은 편 차로에서 달리던 승용차가 중앙분리대와 충돌하면서 도약하듯 날아올라 버스 정면 유리창으로 돌진했다. 승용차 측면이 버스 정면으로 파고들면서 납작하게 일그러졌다. 버스는 승용차와 일체가 된 상태에서 300m를 더 진행한 뒤 멈췄다. 버스 내 블랙박스에는 사고 당시의 끔찍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형체도 없이 일그러진 승용차에서 4시간 만에 운전자를 구조했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사망 원인은 다발성 외상이었다. 사망자는 하마마츠 시의 의사 이쿠마 마사미츠(62세, 남성) 씨. 자신의 차량이 수리 중이어서, 빌린 차를 이용해 병원으로 향하다 변을 당했다. 버스에는 나들이에 나선 도요카와 시 주민들이 타고 있었다. 승객들은 사고 당시 충격으로 버스가 허공에 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충격과 동시에 엄청난 유리 파편이 날아와 승객들의 얼굴과 팔 등에 박혔다. 즐거운 주말 나들잇길은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버스에 타고 있던 47명 가운데 45명이 다쳤다. 이 가운데 6명은 골절상 등 중상을 입었다. 중앙분리대가 도약대처럼 차량을 띄우다 고속도로에서 중앙선을 침범하는 사고는 종종 벌어진다. 그런데 이번 경우처럼 차량이 도약하듯 날아올라 일종의 '공중 충돌'처럼 부딪치는 사고는 매우 이례적이다. 사고 지점은 우측으로 완만하게 굽은 도로였다. 승용차는 진행 방향인 왼쪽의 갓길 쪽 가드 레일과 먼저 부딪친 뒤, 제어력을 잃은 채 중앙분리대와 충돌하면서 허공으로 날아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공교롭게도 중앙분리대 아래쪽이 70cm 높이로 경사가 져 있어서, 일종의 도약대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 조사 결과, 타이어가 미끄러진 흔적은 있었지만,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승용차 운전자가 알코올이나 약물을 섭취한 흔적도 없었다. 사고 직전 승용차에는 무슨 일이 었었던 것일까? 경찰 앞에 난제가 남았다. 목숨 걸고 운전대를 지킨 버스 운전기사 고속도로에서 질주하는 차량의 정면충돌 사고는 대부분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특히 버스 등 대형차량이 관련되면, 2차 사고로 이어지면서 참사 수준의 인명피해가 나기도 한다. 이번 사고도 자칫 대량 인명피해가 날 뻔했다. 형체가 사라진 승용차의 잔해와 완전히 찌그러진 버스 앞부분을 보면, 사고 당시의 충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망자는 다행히 없었고, 중상자는 상대적으로 소수에 그쳤다. 승객들이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고, 버스가 뒤집히거나 중앙선을 넘거나 하는 2차 사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버스 내부 블랙박스 화면에는 운전기사 야마모토(68세) 씨의 침착한 대응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흐릿한 화면 속의 야마모토 씨는 사고 직전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며 확 움켜쥐고 있었다. 덕분에 버스는 오른쪽 중앙분리대를 넘어가지 않은 채, 차로 이탈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사고 당시 차량 앞부분에 타고 있던 승객들도 버스 운전기사가 끝까지 핸들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자신에게 가장 위험한, 그러나 승객에겐 가장 안전한 선택 이 선택이 왜 중요했을까? 일본의 차로는 좌측통행이다. 버스는 오른쪽 끝 추월차로를 달리고 있었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면 당연히 중앙분리대를 추돌한 뒤 반대차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차량이 넘어지거나 뒤집히고, 맞은편 차량과 충돌하는 2, 3차 사고로 이어지기도 쉽다. 그런데 운전자는 위급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선택을 하기 쉽다. 즉, 맞은 편에서 장애물이 돌진해오거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서 자신을 보호하기 마련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 반사작용이 더 큰 피해를 유발하게 된다. 사고버스의 운전기사는 반대되는 선택을 했다.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는 것은 운전자 자신이 장애물과 가장 먼저 부딪친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사고버스의 운전석 윗부분이 가장 많이 파손됐다. 운전기사는 머리와 어깨를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 충돌 부분이 조금만 낮았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야마모토 씨는 경력 48년의 베테랑 기사였다. 그는 위급한 순간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뭔가가 날아왔는데,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면 중앙분리대 때문에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면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겼다'고 말했다. 자신은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승객 중에 사망자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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