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내역이 고스란히 통신사로…“누가 믿고 신고하겠나”

입력 2017.06.19 (14:46) 수정 2017.06.1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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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불법 신고했더니…주민등록증 사진이 문자로

통신사 불법 신고했더니…주민등록증 사진이 문자로

강 모 씨는 올해 4월 새 휴대전화를 한 대 샀다. 그런데 휴대전화 판매 대리점 측에서 강 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판매 경쟁이 치열하다며 휴대전화를 사주면 몇 달 후 40여 만 원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불법보조금'이었다.

강 씨는 우선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께름칙한 마음이 앞섰다. 때마침 휴대전화 개통과 함께 '불법보조금'을 신고해달라는 알림 문자가 왔고, 강 씨는 남자친구와 상의한 끝에 해당 대리점을 신고했다.

그런데 며칠 후 강 씨는 해당 대리점 측으로부터 불법보조금 신고를 취소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면서 해당 대리점 측은 강 씨의 주민등록증이 찍힌 문자를 내밀었다. 해당 문자는 KT 측이 대리점 직원에게 보낸 것으로 강 씨에게 신고를 취소해줄 것을 독촉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강 씨는 자신의 주민등록증 사진이 직원들 사이에서 버젓이 공유되고 있는 상황에 화가 난 한편, 도대체 KT 측이 자신의 신고 사실을 어떻게 알고 연락이 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KT 측이 대리점 직원에게 보낸 문자 내용. KT 측은 강 씨 외에 다른 사람에게도 신고를 취소해달라고 종용했다.KT 측이 대리점 직원에게 보낸 문자 내용. KT 측은 강 씨 외에 다른 사람에게도 신고를 취소해달라고 종용했다.

알고 보니 강 씨가 불법보조금 지급 사실을 신고한 신고센터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정부에서 운영하는 곳이 아니었다.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곳은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업무 위탁을 받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라는 이름의 단체. 이동통신 3사를 비롯해 여러 정보통신 업체를 회원사로 둔 사단법인이다. 해당 신고센터는 통신 3사가 불법보조금 지급 행위를 막기 위해 협회와 손잡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센터에 신고가 접수되면 센터 측은 해당 통신사에 신고 내용을 전달하게 된다. 이후 통신사는대리점에 사실 확인 작업을 거친 후 제재 조치를 취하고, 그 결과를 센터에 통보하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강 씨의 사례처럼 통신사나 대리점 측이 신고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사례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자율 규제' 형식이기 때문에 협회는 대리점 측을 직접 조사할 수 없고 오로지 통신사의 제재 조치에 맡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건 협회의 위치 때문이다. 협회는 애당초 이동통신사들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오히려 회원사인 통신사들이 내는 회비를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통신사를 상대로 '을'의 위치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에 협회장은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이, 부회장과 이사는 각각 KT와 LG U+ 출신이 맡고 있다. 통신사사 직원들이 임원을 맡고 통신사의 회비로 운영되는 단체가 통신사의 위법행위를 감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협회에 업무를 위탁한 미래창조과학부는 정식 위탁 계약조차 맺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2014년 이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협회에 대해 감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 미래부는 협회에 부정가입방지시스템, 명의도용방지서비스, 분실도난단말장치 조회시스템 등 같은 통신이용자의 정보보호 업무를 맡기며 매년 80억 원이 넘는 보조금을지급하고 있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의 윤철한 국장은 "정부가 민간업체에 위탁을 할 경우 1. 위탁 목적과 비용·위탁기간·책임과 의무가 적힌 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2. 정부가 민간위탁기관을 지휘·감독하고 매년 1회 이상 업무를 잘 처리했는지 감사를 벌이도록 돼 있다"며 "그러나 미래부는 이 중 어느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윤 국장은 또 "KAIT는 전형적인 이익단체로 이동통신 3사의 이익을 수호하는 데 앞장서왔다. 이런 협회가 거꾸로 3사를 관리 감독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2014년 10월 도입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이른바 단통법. 이동통신 3사의 배만 불려줬을 뿐이라는 지적이 법 도입 이후부터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건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것과 같은 미래부의 업무 처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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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 내역이 고스란히 통신사로…“누가 믿고 신고하겠나”
    • 입력 2017-06-19 14:46:11
    • 수정2017-06-19 17:37:32
    취재K
강 모 씨는 올해 4월 새 휴대전화를 한 대 샀다. 그런데 휴대전화 판매 대리점 측에서 강 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판매 경쟁이 치열하다며 휴대전화를 사주면 몇 달 후 40여 만 원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불법보조금'이었다.

강 씨는 우선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께름칙한 마음이 앞섰다. 때마침 휴대전화 개통과 함께 '불법보조금'을 신고해달라는 알림 문자가 왔고, 강 씨는 남자친구와 상의한 끝에 해당 대리점을 신고했다.

그런데 며칠 후 강 씨는 해당 대리점 측으로부터 불법보조금 신고를 취소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면서 해당 대리점 측은 강 씨의 주민등록증이 찍힌 문자를 내밀었다. 해당 문자는 KT 측이 대리점 직원에게 보낸 것으로 강 씨에게 신고를 취소해줄 것을 독촉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강 씨는 자신의 주민등록증 사진이 직원들 사이에서 버젓이 공유되고 있는 상황에 화가 난 한편, 도대체 KT 측이 자신의 신고 사실을 어떻게 알고 연락이 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KT 측이 대리점 직원에게 보낸 문자 내용. KT 측은 강 씨 외에 다른 사람에게도 신고를 취소해달라고 종용했다.
알고 보니 강 씨가 불법보조금 지급 사실을 신고한 신고센터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정부에서 운영하는 곳이 아니었다.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곳은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업무 위탁을 받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라는 이름의 단체. 이동통신 3사를 비롯해 여러 정보통신 업체를 회원사로 둔 사단법인이다. 해당 신고센터는 통신 3사가 불법보조금 지급 행위를 막기 위해 협회와 손잡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센터에 신고가 접수되면 센터 측은 해당 통신사에 신고 내용을 전달하게 된다. 이후 통신사는대리점에 사실 확인 작업을 거친 후 제재 조치를 취하고, 그 결과를 센터에 통보하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강 씨의 사례처럼 통신사나 대리점 측이 신고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사례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자율 규제' 형식이기 때문에 협회는 대리점 측을 직접 조사할 수 없고 오로지 통신사의 제재 조치에 맡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건 협회의 위치 때문이다. 협회는 애당초 이동통신사들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오히려 회원사인 통신사들이 내는 회비를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통신사를 상대로 '을'의 위치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에 협회장은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이, 부회장과 이사는 각각 KT와 LG U+ 출신이 맡고 있다. 통신사사 직원들이 임원을 맡고 통신사의 회비로 운영되는 단체가 통신사의 위법행위를 감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협회에 업무를 위탁한 미래창조과학부는 정식 위탁 계약조차 맺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2014년 이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협회에 대해 감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 미래부는 협회에 부정가입방지시스템, 명의도용방지서비스, 분실도난단말장치 조회시스템 등 같은 통신이용자의 정보보호 업무를 맡기며 매년 80억 원이 넘는 보조금을지급하고 있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의 윤철한 국장은 "정부가 민간업체에 위탁을 할 경우 1. 위탁 목적과 비용·위탁기간·책임과 의무가 적힌 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2. 정부가 민간위탁기관을 지휘·감독하고 매년 1회 이상 업무를 잘 처리했는지 감사를 벌이도록 돼 있다"며 "그러나 미래부는 이 중 어느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윤 국장은 또 "KAIT는 전형적인 이익단체로 이동통신 3사의 이익을 수호하는 데 앞장서왔다. 이런 협회가 거꾸로 3사를 관리 감독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2014년 10월 도입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이른바 단통법. 이동통신 3사의 배만 불려줬을 뿐이라는 지적이 법 도입 이후부터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건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것과 같은 미래부의 업무 처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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