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폐지’ 반발 거세져…이유는?

입력 2017.06.19 (15:50) 수정 2017.06.2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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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뉴스9] “자사고·외고 폐지 부당”…학교·학부모 반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는 전국에 46개 있다. 그 중 절반인 23개가 서울에 있다. 최근 자사고 폐지 방침 발표에 뿔이 난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 소속 학부모들이 19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민원실에 조희연 교육감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학부모들은 “고교 서열화의 책임을 자사고로 돌리는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자사고 폐지 방침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사고학부모연합회는 오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26일에는 학부모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자사고학부모연합회, 서울시교육감 면담 신청서 제출자사고학부모연합회, 서울시교육감 면담 신청서 제출

서울의 경우 자사고는 지역별 거점 학교 형태로 운영됐기 때문에 강남 등 교육 특구에 몰리는 수요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굳이 강남구나 서초구 등으로 이사를 가지 않더라도 수월성 교육을 바라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었다.

자사고 진학은 ‘내신 불리’라는 위험성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선호되지는 않는다. 특히 내신 중심의 수시전형이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현 대학 입시 제도 아래에서는 더욱 그렇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내신은 조금 불리하더라도 다양한 교내 활동과 교실 분위기 때문에 자사고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대학 입시 외에 다른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서울자사고교장협의회 오세목 회장(중동고 교장)은 “고교 서열화를 해결하려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바꾼다는데, 이는 또 다른 변형된 서열화를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교육이 획일화돼 있어 학생,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을 확대하자는 의견이 많아 결국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자사고가 탄생했다. 아무리 대통령 공약이라고 하더라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자사고교장협의회는 이번 주 중 대책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자율형 사립고의 모태는 자립형 사립고이다. 2001년 김대중 정부가 “평준화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획일성을 보완하는 한편 고교 교육의 다양화·특성화를 확대하고 수월성 추구를 배려한다”며 자립형 사립고를 도입했다.

이후 자사고는 수월성 교육을 지향했던 이명박 정부 때 크게 늘어났다. 자사고는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갖는 대신 재정 부담을 감내해야 했다. 전국 단위 자사고의 경우 법인이 해마다 학생 납입금의 20% 이상을 부담해야 하고 광역 단위 자사고는 3~5%를 내야 했다. 자사고에는 보조금이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는 매년 200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재정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자사고를 운영하고 있는 사학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폐지 방침에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대표적 자사고인 전주 상산고의 홍성대 이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생 모은 돈을 2세 교육을 위해 학교에 쏟아 부었다며 지금까지 투자한 돈만도 439억 원이 넘는다”고 밝혔다. 홍 이사장은 이어 “자사고를 없앤다고 경쟁이 사라지지 않으며 무엇보다 교육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사고 등 몇몇 자사고들도 보도 자료를 통해 “자사고가 중학생 과외를 부추기고 사교육비를 증대시키는 요인이라는 주장은 현행 선발 방식을 도외시한 것”이라며 “(서울의) 자사고는 중학교 내신과 상관없이 선지원 후 정원의 1.5배수를 추첨으로 선발한 뒤 면접으로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기 때문에 자사고 진학 준비가 사교육 유발 요인이라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자사고가 원래 목적에서 벗어나 대입 준비학교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명문대 합격률이 높은 것만으로 입시준비 기관으로 폄하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라며 "실력에 큰 편차가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내실 있는 수업과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한 성과"라고 말했다. 이어 "평등성을 내세워 수월성 교육을 문제 삼는 주장은 교육을 정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편견"이라며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물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마저도 다양한 인재를 기르는데 힘쓰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사고 폐지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정 경기교육감과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잇따라 자사고 등을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 대부분 자사고에 대한 재지정 심사가 2019~2020년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사고 지정 철회 권한을 갖고 있는 현 교육감 임기는 채 1년도 남아 있지 않다. 내년 6월 교육감 선거에서 어떤 성향의 인사들이 당선되느냐에 따라 자사고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 정부가 자사고 폐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변화는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사고와 외고 등의 폐지를 ‘일반고 살리기’ 방안의 하나로 내세웠다. 하지만 자사고 등이 없어진다고 일반고가 저절로 살아날 수 있을까? 정작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일반고에서도 양질의 교육 기회와 교육 환경을 제공할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대책 마련이 아닐까? 정책의 구체성이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학 입시 등 교육 정책이 바뀌는 것을 수없이 봐 왔다. 그 과정에서 학교는 실험실이 되고 학생은 실험쥐가 됐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인 교육 정책이 오년지계(五年之計)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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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9 15:50:07
    • 수정2017-06-27 11:19:56
    취재K

[연관 기사] [뉴스9] “자사고·외고 폐지 부당”…학교·학부모 반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는 전국에 46개 있다. 그 중 절반인 23개가 서울에 있다. 최근 자사고 폐지 방침 발표에 뿔이 난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 소속 학부모들이 19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민원실에 조희연 교육감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학부모들은 “고교 서열화의 책임을 자사고로 돌리는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자사고 폐지 방침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사고학부모연합회는 오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26일에는 학부모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자사고학부모연합회, 서울시교육감 면담 신청서 제출
서울의 경우 자사고는 지역별 거점 학교 형태로 운영됐기 때문에 강남 등 교육 특구에 몰리는 수요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굳이 강남구나 서초구 등으로 이사를 가지 않더라도 수월성 교육을 바라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었다.

자사고 진학은 ‘내신 불리’라는 위험성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선호되지는 않는다. 특히 내신 중심의 수시전형이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현 대학 입시 제도 아래에서는 더욱 그렇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내신은 조금 불리하더라도 다양한 교내 활동과 교실 분위기 때문에 자사고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대학 입시 외에 다른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서울자사고교장협의회 오세목 회장(중동고 교장)은 “고교 서열화를 해결하려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바꾼다는데, 이는 또 다른 변형된 서열화를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교육이 획일화돼 있어 학생,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을 확대하자는 의견이 많아 결국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자사고가 탄생했다. 아무리 대통령 공약이라고 하더라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자사고교장협의회는 이번 주 중 대책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자율형 사립고의 모태는 자립형 사립고이다. 2001년 김대중 정부가 “평준화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획일성을 보완하는 한편 고교 교육의 다양화·특성화를 확대하고 수월성 추구를 배려한다”며 자립형 사립고를 도입했다.

이후 자사고는 수월성 교육을 지향했던 이명박 정부 때 크게 늘어났다. 자사고는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갖는 대신 재정 부담을 감내해야 했다. 전국 단위 자사고의 경우 법인이 해마다 학생 납입금의 20% 이상을 부담해야 하고 광역 단위 자사고는 3~5%를 내야 했다. 자사고에는 보조금이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는 매년 200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재정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자사고를 운영하고 있는 사학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폐지 방침에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대표적 자사고인 전주 상산고의 홍성대 이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생 모은 돈을 2세 교육을 위해 학교에 쏟아 부었다며 지금까지 투자한 돈만도 439억 원이 넘는다”고 밝혔다. 홍 이사장은 이어 “자사고를 없앤다고 경쟁이 사라지지 않으며 무엇보다 교육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사고 등 몇몇 자사고들도 보도 자료를 통해 “자사고가 중학생 과외를 부추기고 사교육비를 증대시키는 요인이라는 주장은 현행 선발 방식을 도외시한 것”이라며 “(서울의) 자사고는 중학교 내신과 상관없이 선지원 후 정원의 1.5배수를 추첨으로 선발한 뒤 면접으로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기 때문에 자사고 진학 준비가 사교육 유발 요인이라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자사고가 원래 목적에서 벗어나 대입 준비학교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명문대 합격률이 높은 것만으로 입시준비 기관으로 폄하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라며 "실력에 큰 편차가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내실 있는 수업과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한 성과"라고 말했다. 이어 "평등성을 내세워 수월성 교육을 문제 삼는 주장은 교육을 정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편견"이라며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물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마저도 다양한 인재를 기르는데 힘쓰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사고 폐지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정 경기교육감과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잇따라 자사고 등을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 대부분 자사고에 대한 재지정 심사가 2019~2020년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사고 지정 철회 권한을 갖고 있는 현 교육감 임기는 채 1년도 남아 있지 않다. 내년 6월 교육감 선거에서 어떤 성향의 인사들이 당선되느냐에 따라 자사고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 정부가 자사고 폐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변화는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사고와 외고 등의 폐지를 ‘일반고 살리기’ 방안의 하나로 내세웠다. 하지만 자사고 등이 없어진다고 일반고가 저절로 살아날 수 있을까? 정작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일반고에서도 양질의 교육 기회와 교육 환경을 제공할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대책 마련이 아닐까? 정책의 구체성이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학 입시 등 교육 정책이 바뀌는 것을 수없이 봐 왔다. 그 과정에서 학교는 실험실이 되고 학생은 실험쥐가 됐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인 교육 정책이 오년지계(五年之計)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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