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이 현장에 전분 뿌린 이유, 알고보니…

입력 2017.06.19 (16:32) 수정 2017.06.1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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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이 현장에 전분 뿌린 이유, 알고보니…

살인범이 현장에 전분 뿌린 이유, 알고보니…


[연관 기사] [뉴스7] 옛 직장 상사 살해한 20대 붙잡혀…돈 때문에?

"사람이 사람 죽이는데 이유가 있냐?"

영화 <공공의 적>에서 연쇄 살인범 조규환(이성재 분)이 형사 강철중(설경구 분)에게 하는 말이다. 가정에서는 다정한 남편이자 친구 같은 아버지 역할을 마다치 않는 규환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들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해한다.

한순간의 기분을 못 이겨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듯 보이지만 범행 수법이 제법 정교하고 치밀하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우의를 입고 범행을 저지른다. 범행이 끝난 후엔 지문과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시신 주변에 밀가루까지 뿌리기까지 한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살인 사건이 서울 시내에서도 일어났다. 지난 15일 오전 10시 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 아파트에서 인터넷 쇼핑몰 대표 이 모(43)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이 씨의 시신 주변에는 정체불명의 흰색 가루와 흑설탕이 뿌려져 있었다.

영화 ‘공공의 적’의 한 장면.영화 ‘공공의 적’의 한 장면.

숨지기 전날 밤 직장 동료들과 수상한 술자리

사건 초기 이 흰색 가루는 밀가루로 알려졌다. 밀가루는 수분과 기름 등을 흡수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사람의 지문은 수분과 체내 지방 등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밀가루에 닿으면 변형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증거 없는 살인 사건으로 자칫 수사가 미궁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경찰은 최초 신고자와 주변 주민들에 대한 탐문수사부터 시작했다. 그 결과 시신이 발견되기 전날인 14일 밤 숨진 이 씨가 직장 동료 3명과 함께 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경비원과 주민들에게서 직장 동료들이 이 씨의 집 현관 비밀번호를 알고 자주 출입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경찰은 함께 술자리를 가진 직원 3명부터 조사했다. 직원 중에는 최초 신고자도 포함돼 있었다. 특별한 혐의점이 없는 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 씨의 부하 직원이었던 남 모(29) 씨는 예외였다. 두 차례 진행된 참고인 조사에서 남 씨가 계속해서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계속된 추궁 끝에 남 씨는 술자리가 있던 날 누군가에게 "술 마신다"는 연락을 줬다고 진술했다.

살인 현장 주변에 경찰 통제선이 둘러쳐져 있다.살인 현장 주변에 경찰 통제선이 둘러쳐져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살인범...정체는 과거 부하 직원

공범의 진술을 확보하자 경찰의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경찰은 수사 착수 사흘 만인 어젯밤 서울 성북구의 한 모텔에서 피의자 이 모(29) 씨를 붙잡았다. 이 씨 역시 숨진 피해자가 운영하던 쇼핑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검거 당시 이 씨는 현금 6,300여만 원을 갖고 있었는데 이 돈은 숨진 남성의 집안 금고에 보관 중이었던 돈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수법 등을 조사한 후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앞서 이 씨에게 술을 마신다는 정보를 알려준 남 씨는 살인 방조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돼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조사 단계이지만 과거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씨는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지난 5월부터 남 씨와 공모해 계획을 세운 것으로 조사됐다. 남 씨는 이 씨와 주로 '대포폰'을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시신에 뿌린 흰 가루가 피해 남성 집에 있던 전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 <공공의 적>을 보지 않았으며 자신이 영화를 따라한 건 아니라고 진술했다. 다만 시신에 전분과 흑설탕을 뿌린 이유는 "피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의도가 어떻든 범행 현장에서 이 씨의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건이 처음 보도됐을 때 사람들은 영화 같은 일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 <공공의 적>은 지난 1994년 서울 강남구에서 일어난 '대한한약협회 서울시지부장 부부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다. 단순히 '영화 같은 사건'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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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범이 현장에 전분 뿌린 이유, 알고보니…
    • 입력 2017-06-19 16:32:14
    • 수정2017-06-19 19:44:10
    취재K

[연관 기사] [뉴스7] 옛 직장 상사 살해한 20대 붙잡혀…돈 때문에?

"사람이 사람 죽이는데 이유가 있냐?"

영화 <공공의 적>에서 연쇄 살인범 조규환(이성재 분)이 형사 강철중(설경구 분)에게 하는 말이다. 가정에서는 다정한 남편이자 친구 같은 아버지 역할을 마다치 않는 규환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들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해한다.

한순간의 기분을 못 이겨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듯 보이지만 범행 수법이 제법 정교하고 치밀하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우의를 입고 범행을 저지른다. 범행이 끝난 후엔 지문과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시신 주변에 밀가루까지 뿌리기까지 한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살인 사건이 서울 시내에서도 일어났다. 지난 15일 오전 10시 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 아파트에서 인터넷 쇼핑몰 대표 이 모(43)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이 씨의 시신 주변에는 정체불명의 흰색 가루와 흑설탕이 뿌려져 있었다.

영화 ‘공공의 적’의 한 장면.
숨지기 전날 밤 직장 동료들과 수상한 술자리

사건 초기 이 흰색 가루는 밀가루로 알려졌다. 밀가루는 수분과 기름 등을 흡수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사람의 지문은 수분과 체내 지방 등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밀가루에 닿으면 변형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증거 없는 살인 사건으로 자칫 수사가 미궁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경찰은 최초 신고자와 주변 주민들에 대한 탐문수사부터 시작했다. 그 결과 시신이 발견되기 전날인 14일 밤 숨진 이 씨가 직장 동료 3명과 함께 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경비원과 주민들에게서 직장 동료들이 이 씨의 집 현관 비밀번호를 알고 자주 출입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경찰은 함께 술자리를 가진 직원 3명부터 조사했다. 직원 중에는 최초 신고자도 포함돼 있었다. 특별한 혐의점이 없는 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 씨의 부하 직원이었던 남 모(29) 씨는 예외였다. 두 차례 진행된 참고인 조사에서 남 씨가 계속해서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계속된 추궁 끝에 남 씨는 술자리가 있던 날 누군가에게 "술 마신다"는 연락을 줬다고 진술했다.

살인 현장 주변에 경찰 통제선이 둘러쳐져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살인범...정체는 과거 부하 직원

공범의 진술을 확보하자 경찰의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경찰은 수사 착수 사흘 만인 어젯밤 서울 성북구의 한 모텔에서 피의자 이 모(29) 씨를 붙잡았다. 이 씨 역시 숨진 피해자가 운영하던 쇼핑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검거 당시 이 씨는 현금 6,300여만 원을 갖고 있었는데 이 돈은 숨진 남성의 집안 금고에 보관 중이었던 돈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수법 등을 조사한 후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앞서 이 씨에게 술을 마신다는 정보를 알려준 남 씨는 살인 방조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돼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조사 단계이지만 과거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씨는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지난 5월부터 남 씨와 공모해 계획을 세운 것으로 조사됐다. 남 씨는 이 씨와 주로 '대포폰'을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시신에 뿌린 흰 가루가 피해 남성 집에 있던 전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 <공공의 적>을 보지 않았으며 자신이 영화를 따라한 건 아니라고 진술했다. 다만 시신에 전분과 흑설탕을 뿌린 이유는 "피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의도가 어떻든 범행 현장에서 이 씨의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건이 처음 보도됐을 때 사람들은 영화 같은 일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 <공공의 적>은 지난 1994년 서울 강남구에서 일어난 '대한한약협회 서울시지부장 부부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다. 단순히 '영화 같은 사건'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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