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중국 훈춘에서 무슨 일이…청진 처녀 ‘옥자’의 운명은?

입력 2017.06.2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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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에게 '옥자'라는 이름을 들려준다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지난해 중국 지린 성의 훈춘 공단에서 취재 중 마추쳤던 한 북한 여성 근로자가 먼저 떠오른다. 청진에서 왔다며 얼굴을 붉히던 '옥자'는 갓 스물을 넘었을까 싶어 보이는 앳된 모습이었다.

의류 공장에서 봉제 일을 하는 기능공으로 일하며 미화 300달러 정도를 월급으로 받지만, 상납금을 제외하면 월 100달러도 채 손에 쥐지 못하는 신세. 하지만 그나마 북한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에 훈춘 공단에서 일하는 수많은 '옥자'들은 외화벌이로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중국 지린 성 훈춘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근로자들중국 지린 성 훈춘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근로자들

지난해 훈춘 공단이 갓 조성되기 시작했을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북한 노동자들은 5천 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이후 신규 공장들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현재 이곳의 봉제·섬유 공장과 수산물 가공 공장 등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은 1만 명에서 최대 1만 5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 노동자들이 매우 증가하면서 아침 출근 시간에는 공단 대로변에 북한 근로자들이 숙소에서 열을 맞추어 일터로 걸어가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띌 정도다. 중국 기업들도 싼 임금에 기술이 뛰어난 인력을 쓸 수 있다 보니 북한 노동자를 선호하는 추세다. 아예 북한 숙련공 유입을 전제로 공장을 증설하는 계획을 세우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줄지어 출근하는 북한 근로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줄지어 출근하는 북한 근로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유엔의 2015년 보고서를 보면 북한이 중국 등 해외에 파견한 노동자는 5만 명 이상으로 이들로부터 연간 23억 달러(우리 돈 2조 6천억 원)로 추산됐다. 노동자 파견이 북한의 주요한 외화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는 건데, 점점 더 엄격해지는 대북제재하에서 최근 유엔이 북한 노동자 고용 제한 카드를 만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미 중국 당국이 자국 내 북한 노동자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있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북·중 접경 지역인 지린 성과 랴오닝 성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중국 당국이 노동자 수용을 제한하는 지시를 내렸다고 일본 언론이 북·중 소식통을 인용해 전하기도 했다. 이런 언론보도와 관련해 중국 당국의 움직임에 정통한 한 친북성향의 대북전문가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해줬다.

이런 지시가 내려진 시기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 제재 결의가 이뤄진 지난해 3월부터인데, 최근 美 트럼프 정권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그 대상을 서서히 넓히는 모양새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로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린 성의 훈춘과 랴오닝 성의 단둥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통보가 내려졌는데, 정식 통보의 형식이 아닌 구두 등의 비공식 지시 형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북·중 접경지역 가운데서도 압록강 지역과 두만강 지역은 정책의 온도 차가 느껴진다. 이목이 쏠리고 있는 압록강 쪽 단둥에서는 북한 노동자 고용 제한 지시의 강도가 제법 강하지만, 북·중 교역이 늘고 있는 두만강 쪽 훈춘과 연길 지역에서는 아직 선언적인 측면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 많은 훈춘에서는 당장 이들을 내보낼 경우 인력 수급 대안이 마땅치 않은 터라, 경제 개발구를 설립하고 기업들을 유치한 지린 성 정부가 강하게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중국도 북한 체제의 혼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강력한 제재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한쪽은 숨통을 열어주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쉬고 있는 근로자들/훈춘은 고용 제한 강도가 다소 약하다.쉬고 있는 근로자들/훈춘은 고용 제한 강도가 다소 약하다.

하지만 이런 어정쩡한 상황이 계속될 수 있을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북한을 향한 압박을 완화할 명분이 없고, 결국 '북한 노동자 고용 전면 제한'에 동참하라는 압박이 공개적으로 중국에 가해질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미국 대학생 웜비어의 사망은 미국의 대북 정책과 관련한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기까지 한 상황이다. 지난해 훈춘에서 만난 '옥자'가 북한으로 쫓겨가지 않고 계속 일을 할 수 있으려면, 남한 정부가 손을 내미는 바로 지금 북한도 유의미한 응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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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0 15:21:05
    특파원 리포트
요즘 사람들에게 '옥자'라는 이름을 들려준다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지난해 중국 지린 성의 훈춘 공단에서 취재 중 마추쳤던 한 북한 여성 근로자가 먼저 떠오른다. 청진에서 왔다며 얼굴을 붉히던 '옥자'는 갓 스물을 넘었을까 싶어 보이는 앳된 모습이었다.

의류 공장에서 봉제 일을 하는 기능공으로 일하며 미화 300달러 정도를 월급으로 받지만, 상납금을 제외하면 월 100달러도 채 손에 쥐지 못하는 신세. 하지만 그나마 북한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에 훈춘 공단에서 일하는 수많은 '옥자'들은 외화벌이로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중국 지린 성 훈춘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근로자들
지난해 훈춘 공단이 갓 조성되기 시작했을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북한 노동자들은 5천 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이후 신규 공장들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현재 이곳의 봉제·섬유 공장과 수산물 가공 공장 등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은 1만 명에서 최대 1만 5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 노동자들이 매우 증가하면서 아침 출근 시간에는 공단 대로변에 북한 근로자들이 숙소에서 열을 맞추어 일터로 걸어가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띌 정도다. 중국 기업들도 싼 임금에 기술이 뛰어난 인력을 쓸 수 있다 보니 북한 노동자를 선호하는 추세다. 아예 북한 숙련공 유입을 전제로 공장을 증설하는 계획을 세우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줄지어 출근하는 북한 근로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유엔의 2015년 보고서를 보면 북한이 중국 등 해외에 파견한 노동자는 5만 명 이상으로 이들로부터 연간 23억 달러(우리 돈 2조 6천억 원)로 추산됐다. 노동자 파견이 북한의 주요한 외화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는 건데, 점점 더 엄격해지는 대북제재하에서 최근 유엔이 북한 노동자 고용 제한 카드를 만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미 중국 당국이 자국 내 북한 노동자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있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북·중 접경 지역인 지린 성과 랴오닝 성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중국 당국이 노동자 수용을 제한하는 지시를 내렸다고 일본 언론이 북·중 소식통을 인용해 전하기도 했다. 이런 언론보도와 관련해 중국 당국의 움직임에 정통한 한 친북성향의 대북전문가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해줬다.

이런 지시가 내려진 시기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 제재 결의가 이뤄진 지난해 3월부터인데, 최근 美 트럼프 정권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그 대상을 서서히 넓히는 모양새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로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린 성의 훈춘과 랴오닝 성의 단둥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통보가 내려졌는데, 정식 통보의 형식이 아닌 구두 등의 비공식 지시 형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북·중 접경지역 가운데서도 압록강 지역과 두만강 지역은 정책의 온도 차가 느껴진다. 이목이 쏠리고 있는 압록강 쪽 단둥에서는 북한 노동자 고용 제한 지시의 강도가 제법 강하지만, 북·중 교역이 늘고 있는 두만강 쪽 훈춘과 연길 지역에서는 아직 선언적인 측면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 많은 훈춘에서는 당장 이들을 내보낼 경우 인력 수급 대안이 마땅치 않은 터라, 경제 개발구를 설립하고 기업들을 유치한 지린 성 정부가 강하게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중국도 북한 체제의 혼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강력한 제재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한쪽은 숨통을 열어주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쉬고 있는 근로자들/훈춘은 고용 제한 강도가 다소 약하다.
하지만 이런 어정쩡한 상황이 계속될 수 있을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북한을 향한 압박을 완화할 명분이 없고, 결국 '북한 노동자 고용 전면 제한'에 동참하라는 압박이 공개적으로 중국에 가해질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미국 대학생 웜비어의 사망은 미국의 대북 정책과 관련한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기까지 한 상황이다. 지난해 훈춘에서 만난 '옥자'가 북한으로 쫓겨가지 않고 계속 일을 할 수 있으려면, 남한 정부가 손을 내미는 바로 지금 북한도 유의미한 응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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