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먹고 신장장애 2급…맥도날드 “책임 없다”

입력 2017.06.20 (15:30) 수정 2017.06.2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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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먹고 신장장애 2급…맥도날드 “책임 없다”

햄버거 먹고 신장장애 2급…맥도날드 “책임 없다”

[연관기사] [취재후] ‘햄버거병’ 유사 증세에 ‘덜 익은 패티’…제보 잇따라 (2017.6.23)


[연관기사] 햄버거 먹고 신장장애…맥도날드 “책임 없어” (2017.6.20)

"엄마 배가 아파요"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시은이(4·가명)가 갑자기 배를 움켜잡으며 최은주(37·주부)씨에게 다가왔다. 최 씨는 칭얼대는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딸을 변기 위에 앉혔지만 아이는 변을 보지 못하고 배가 아프다는 말만 반복했다. 처음엔 단순히 배탈이 났겠거니 생각했다. 2016년 9월 25일 일요일 저녁이었다.

"내일 유치원 가야하니까 일찍 자자 시은아"

밤 11시. 최 씨는 잠들기 전 한 번 더 딸을 살폈다. 일찌감치 기저귀를 뗀 아이가 옷을 입은 채 침대에 실례를 했다. 깜짝 놀라 아이를 씻기고 겨우 다시 재웠다. 다음날 아침에도 시은이는 고통을 호소했다. 최 씨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약을 처방받았지만 시은이는 약마저 게워냈다.

하루가 지나도 아이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의사는 장이 심하게 부었다고 했다. 약을 먹고 잠든 아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배를 잡고 뒹굴었다. 아이의 변에는 피가 섞여 나왔다. 28일 새벽, 최 씨는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을 찾았다. 장이 심하게 부어 초음파 검사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아이가 뭘 먹었나요?" 찾는 병원마다 같은 질문을 했다. 최 씨의 대답도 늘 같았다. 지난 일요일 늦은 점심, 시은이는 집 근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놀이터에 들려 30분 정도 놀다가 복통을 느끼고 엄마에게 달려왔다. 이후 시은이가 물 외에 제대로 먹은 음식은 없었다.

햄버거 먹고 심한 복통…중환자실 격리치료

시은이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햄버거병'이라고도 불리는 출혈성장염 뒤엔 HUS(Hemolytic Uremic Syndrome·요혈성요독증후군)라는 생소한 질병도 찾아왔다. HUS는 주로 고기를 갈아서 덜 익혀 조리한 음식을 먹었을 때 발병한다. 미국에서는 1982년 햄버거에 의해 집단 발병한 사례가 보고됐다. 햄버거 속 덜 익힌 패티가 원인이었다.

햄버거를 먹고 복통을 호소한 시은이는 3일 만인 9월 28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햄버거를 먹고 복통을 호소한 시은이는 3일 만인 9월 28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아이의 상태는 계속 악화됐다. 경련이 심해지고 췌장염 증세가 나타나더니 뇌까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의식이 거의 없었어요. 눈은 뜨고 있는데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고 그냥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다행히 상태가 호전되면서 시은이는 2개월여 만인 지난해 12월 퇴원했다. 격리 치료가 필요해 1인실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진료비는 3천만 원 가까이 나왔다.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HUS로 시은이의 신장은 90% 가까이 기능을 상실했다. 이제 5살이 된 시은이는 어쩌면 평생 투석에 의존해 살아야 할지 모른다. 최근엔 건강보험공단에서 신장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퇴원한 다음부터 혈액 투석을 했는데 그건 패혈증이나 감염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복막 투석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유치원도 가고 일상생활은 가능한데...매일 밤 8~10시간씩 복막 투석을 해야 하죠"

시은이의 투석 모습. HUS로 신장은 90% 가까이 기능을 상실해 시은이는 투석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시은이의 투석 모습. HUS로 신장은 90% 가까이 기능을 상실해 시은이는 투석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 씨가 만난 의사들은 모두 시은이가 먹은 햄버거를 원인으로 의심했다. 딱히 눈여겨볼 만한 다른 음식도 없었다. HUS는 드물게 유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남편과 함께 유전자 검사까지 받았지만 유전에 의한 HUS는 아니었다. 최 씨는 맥도날드에 보상을 요구했다. 맥도날드 측은 진단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최 씨가 제출한 진단서엔 'HUS'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그러나 맥도날드 측은 보험 접수를 거부했다. 인과관계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맥도날드 측은 "최 씨의 상담이 접수된 뒤 곧바로 해당 지점에서 판매된 모든 제품에 대해 점검을 했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동일한 제품이 당일에 300개 이상 판매됐지만 최 씨와 같은 사례가 신고된 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 접수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서 "진단서에는 어떤 음식을 먹고 난 뒤 HUS가 발병했다는 식의 구체적인 원인이 적시돼 있어야 보험 접수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장장애 2급 판정…맥도날드 “책임 없다”

최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어느 의사가 그런 식의 진단서를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광식 KBS의학전문기자(가정의학전문의)는 "진단서는 증상과 함께 검사 결과에 따른 환자의 건강 상태를 증명하는 문서"라며 "환자의 말에 의존에 무엇을 먹고 어떤 병이 걸렸다는 식의 진단서를 쓸 수 있는 의사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맥도널드 측은 최 씨에게 불가능한 요구를 한 셈이다.

시은이의 소견서와 진단서에는 모두 ‘HUS·용혈성요독증후군’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맥도날드 측은 구체적인 원인이 적시되지 않은 진단서로는 보상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시은이의 소견서와 진단서에는 모두 ‘HUS·용혈성요독증후군’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맥도날드 측은 구체적인 원인이 적시되지 않은 진단서로는 보상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시은이는 이유도 모른 채 매일 밤 투석기를 몸에 꽂는다. 이런 일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 딸을 볼 때마다 최 씨는 몰래 눈물을 훔친다.

"얼마 전에 맥도날드가 어린이 환자 가족들을 위해 기부를 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눈물이 났어요. 그런 정성의 절반만이라도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건강을 잃은 딸아이한테 기울여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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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0 15:30:35
    • 수정2017-06-23 19:13:59
    취재K
[연관기사] [취재후] ‘햄버거병’ 유사 증세에 ‘덜 익은 패티’…제보 잇따라 (2017.6.23)


[연관기사] 햄버거 먹고 신장장애…맥도날드 “책임 없어” (2017.6.20)

"엄마 배가 아파요"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시은이(4·가명)가 갑자기 배를 움켜잡으며 최은주(37·주부)씨에게 다가왔다. 최 씨는 칭얼대는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딸을 변기 위에 앉혔지만 아이는 변을 보지 못하고 배가 아프다는 말만 반복했다. 처음엔 단순히 배탈이 났겠거니 생각했다. 2016년 9월 25일 일요일 저녁이었다.

"내일 유치원 가야하니까 일찍 자자 시은아"

밤 11시. 최 씨는 잠들기 전 한 번 더 딸을 살폈다. 일찌감치 기저귀를 뗀 아이가 옷을 입은 채 침대에 실례를 했다. 깜짝 놀라 아이를 씻기고 겨우 다시 재웠다. 다음날 아침에도 시은이는 고통을 호소했다. 최 씨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약을 처방받았지만 시은이는 약마저 게워냈다.

하루가 지나도 아이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의사는 장이 심하게 부었다고 했다. 약을 먹고 잠든 아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배를 잡고 뒹굴었다. 아이의 변에는 피가 섞여 나왔다. 28일 새벽, 최 씨는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을 찾았다. 장이 심하게 부어 초음파 검사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아이가 뭘 먹었나요?" 찾는 병원마다 같은 질문을 했다. 최 씨의 대답도 늘 같았다. 지난 일요일 늦은 점심, 시은이는 집 근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놀이터에 들려 30분 정도 놀다가 복통을 느끼고 엄마에게 달려왔다. 이후 시은이가 물 외에 제대로 먹은 음식은 없었다.

햄버거 먹고 심한 복통…중환자실 격리치료

시은이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햄버거병'이라고도 불리는 출혈성장염 뒤엔 HUS(Hemolytic Uremic Syndrome·요혈성요독증후군)라는 생소한 질병도 찾아왔다. HUS는 주로 고기를 갈아서 덜 익혀 조리한 음식을 먹었을 때 발병한다. 미국에서는 1982년 햄버거에 의해 집단 발병한 사례가 보고됐다. 햄버거 속 덜 익힌 패티가 원인이었다.

햄버거를 먹고 복통을 호소한 시은이는 3일 만인 9월 28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아이의 상태는 계속 악화됐다. 경련이 심해지고 췌장염 증세가 나타나더니 뇌까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의식이 거의 없었어요. 눈은 뜨고 있는데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고 그냥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다행히 상태가 호전되면서 시은이는 2개월여 만인 지난해 12월 퇴원했다. 격리 치료가 필요해 1인실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진료비는 3천만 원 가까이 나왔다.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HUS로 시은이의 신장은 90% 가까이 기능을 상실했다. 이제 5살이 된 시은이는 어쩌면 평생 투석에 의존해 살아야 할지 모른다. 최근엔 건강보험공단에서 신장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퇴원한 다음부터 혈액 투석을 했는데 그건 패혈증이나 감염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복막 투석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유치원도 가고 일상생활은 가능한데...매일 밤 8~10시간씩 복막 투석을 해야 하죠"

시은이의 투석 모습. HUS로 신장은 90% 가까이 기능을 상실해 시은이는 투석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 씨가 만난 의사들은 모두 시은이가 먹은 햄버거를 원인으로 의심했다. 딱히 눈여겨볼 만한 다른 음식도 없었다. HUS는 드물게 유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남편과 함께 유전자 검사까지 받았지만 유전에 의한 HUS는 아니었다. 최 씨는 맥도날드에 보상을 요구했다. 맥도날드 측은 진단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최 씨가 제출한 진단서엔 'HUS'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그러나 맥도날드 측은 보험 접수를 거부했다. 인과관계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맥도날드 측은 "최 씨의 상담이 접수된 뒤 곧바로 해당 지점에서 판매된 모든 제품에 대해 점검을 했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동일한 제품이 당일에 300개 이상 판매됐지만 최 씨와 같은 사례가 신고된 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 접수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서 "진단서에는 어떤 음식을 먹고 난 뒤 HUS가 발병했다는 식의 구체적인 원인이 적시돼 있어야 보험 접수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장장애 2급 판정…맥도날드 “책임 없다”

최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어느 의사가 그런 식의 진단서를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광식 KBS의학전문기자(가정의학전문의)는 "진단서는 증상과 함께 검사 결과에 따른 환자의 건강 상태를 증명하는 문서"라며 "환자의 말에 의존에 무엇을 먹고 어떤 병이 걸렸다는 식의 진단서를 쓸 수 있는 의사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맥도널드 측은 최 씨에게 불가능한 요구를 한 셈이다.

시은이의 소견서와 진단서에는 모두 ‘HUS·용혈성요독증후군’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맥도날드 측은 구체적인 원인이 적시되지 않은 진단서로는 보상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시은이는 이유도 모른 채 매일 밤 투석기를 몸에 꽂는다. 이런 일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 딸을 볼 때마다 최 씨는 몰래 눈물을 훔친다.

"얼마 전에 맥도날드가 어린이 환자 가족들을 위해 기부를 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눈물이 났어요. 그런 정성의 절반만이라도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건강을 잃은 딸아이한테 기울여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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