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쪽방촌의 무더위 피하기…에어컨에 음료수까지

입력 2017.06.21 (10:4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취재후] 쪽방촌의 무더위 피하기…에어컨에 음료수까지

[취재후] 쪽방촌의 무더위 피하기…에어컨에 음료수까지

서울시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여름맞이

628개 방에 520가구가 살고 있는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작은 틈도 없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집집마다 문과 창문이 활짝 열려있다. 6월 중순이지만 폭염주의보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 문을 닫으면 숨이 턱 막힌다" 쪽방촌에 20년 넘게 살고 있는 박병우 할아버지(74)는 설명했다. "매년 여름은 고역이지만 올해는 유난이 더위가 빠른 것 같아" 박 할아버지는 덧붙였다.

방 안에서 더위를 견디는 박병우 할아버지방 안에서 더위를 견디는 박병우 할아버지

박 할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장애수당과 합쳐 월 64만 원을 받는다. 몸 하나 누이면 가득차는 방의 월세로 24만 원을 내면 나머지 40만 원으로 식비와 병원비를 충당해야 한다. 집에 있는 냉방기구는 선풍기 한 대. 방안 기온은 바깥보다 1도에서 2도가량 더 높지만 에어컨은 꿈도 꾸기 어렵다. 텔레비전과 냉장고가 열기를 뿜어내면 한여름 방안에선 땀이 뻘뻘 나기 일쑤다.

정부는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전기 요금을 감면해주고 있지만 선풍기를 트는 박 할아버지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기초생홀수급자에 대한 전기요금은 수급자에게 직접 지원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월세를 사는 경우, 집주인이 임차인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수를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면 이에 따라 정부가 집주인에게 전기요금을 지원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여름 구호물품도 필수품이다. 인근 복지시설에선 여름을 맞아 물과 음료수를 수천 병 씩 미리 확보해놓고 있다. 온열질환자가 생길 것을 대비해 쪽방촌 입구에 임시 진료소도 설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쪽방촌 주민들이 최고로 꼽는 것이 있다. 바로 '무더위 쉼터', 에어컨이 켜진 쾌적한 쉼터는 쪽방촌 주민들의 한여름 대피소다.

주민들이 무더위를 피해 쉼터로 대피해 있다주민들이 무더위를 피해 쉼터로 대피해 있다

전국 4만 여개로 증설된 '무더위 쉼터' .. 시설 관리는 아직 '부족'

종로구에 사는 이범례 할머니는 여름이 와도 걱정이 없다. 집에서 5분만 걸으면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구립 복지관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네 노인 30여 명이 편히 쉴 수 있는 이 '무더위 쉼터'에는 선풍기 석대와 최신형 에어컨이 들어서 있다.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시원한 음료수와 수박도 마련 돼 있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즐길 수 있는 TV는 덤이다. 김학순 할머니는 "더운 여름이 와도 옛날만큼 두렵지 않다"며 "동네에 이렇게 쉴 수 있는 곳이 생겨 너무 든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들쑥날쑥한 운영 시간 때문이다. 복지관이 발 디딜틈 없이 붐비면, 올해 새롭게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근처 도서관에도 발걸음을 한다. 하지만 허탕을 친 경우가 많다. 매주 월요일이면 휴관을 하는터라 문이 잠겨 있고, 개관 기념일인지 모르고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이 더 더웠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생겼다지만, 여전히 맘껏 쉴 수 있는 여건은 부족한 셈이다. 동사무소와 은행 등도 무더위 쉼터로 지정이 돼 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아버린다. 열대야는 여전히 홀로 견뎌야 한다.

올해 기준 4만 3천여 개로 증설된 무더위 쉼터. 구청 차원에서 시설과 관리비를 대폭 늘려 주민들에게 새로운 쉼터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폭염에 취약한 노약자와 소외 계층에게는 쉽게 맞을 수 있는 에어컨 바람이 반갑기만 하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정책이 자리 잡지 못하다 보니 운영 시간이나 시설 등에서 미비한 경우가 종종 있다. 구청에서 매주 민원을 받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 되지 않은 탓인지 대응은 느린 편이다.

쪽방 안의 기온(섭씨30도)이 바깥 기온(섭씨29도)보다 더 높다쪽방 안의 기온(섭씨30도)이 바깥 기온(섭씨29도)보다 더 높다

뜨거워지는 한반도…복지 정책도 "변해야"

정부는 겨울이면 난방에 쓸 수 있는 '에너지바우처'를 지원하고 있다. 민간 구호단체들의 연탄기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름에는 사실상 선풍기와 물을 지원하고 전기요금을 감면하는 것이 전부다. 집 밖을 나서면 '무더위 쉼터'를 설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여름 더위는 매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6월~8월) 온열질환자는 2,029명.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치다.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도 16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복지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발맞춰 복지 정책도 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가 정체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와 함께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특히 독거노인의 경우에는 여름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가정 방문 등의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도 덧붙였다.

올해도 어느새 성큼 다가운 무더위. 폭염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복지 지원책이 절실하다.

[연관 기사] [뉴스7] 때 이른 무더위…여름이 두려운 쪽방촌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쪽방촌의 무더위 피하기…에어컨에 음료수까지
    • 입력 2017-06-21 10:46:10
    취재후·사건후
서울시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여름맞이

628개 방에 520가구가 살고 있는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작은 틈도 없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집집마다 문과 창문이 활짝 열려있다. 6월 중순이지만 폭염주의보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 문을 닫으면 숨이 턱 막힌다" 쪽방촌에 20년 넘게 살고 있는 박병우 할아버지(74)는 설명했다. "매년 여름은 고역이지만 올해는 유난이 더위가 빠른 것 같아" 박 할아버지는 덧붙였다.

방 안에서 더위를 견디는 박병우 할아버지
박 할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장애수당과 합쳐 월 64만 원을 받는다. 몸 하나 누이면 가득차는 방의 월세로 24만 원을 내면 나머지 40만 원으로 식비와 병원비를 충당해야 한다. 집에 있는 냉방기구는 선풍기 한 대. 방안 기온은 바깥보다 1도에서 2도가량 더 높지만 에어컨은 꿈도 꾸기 어렵다. 텔레비전과 냉장고가 열기를 뿜어내면 한여름 방안에선 땀이 뻘뻘 나기 일쑤다.

정부는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전기 요금을 감면해주고 있지만 선풍기를 트는 박 할아버지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기초생홀수급자에 대한 전기요금은 수급자에게 직접 지원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월세를 사는 경우, 집주인이 임차인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수를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면 이에 따라 정부가 집주인에게 전기요금을 지원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여름 구호물품도 필수품이다. 인근 복지시설에선 여름을 맞아 물과 음료수를 수천 병 씩 미리 확보해놓고 있다. 온열질환자가 생길 것을 대비해 쪽방촌 입구에 임시 진료소도 설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쪽방촌 주민들이 최고로 꼽는 것이 있다. 바로 '무더위 쉼터', 에어컨이 켜진 쾌적한 쉼터는 쪽방촌 주민들의 한여름 대피소다.

주민들이 무더위를 피해 쉼터로 대피해 있다
전국 4만 여개로 증설된 '무더위 쉼터' .. 시설 관리는 아직 '부족'

종로구에 사는 이범례 할머니는 여름이 와도 걱정이 없다. 집에서 5분만 걸으면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구립 복지관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네 노인 30여 명이 편히 쉴 수 있는 이 '무더위 쉼터'에는 선풍기 석대와 최신형 에어컨이 들어서 있다.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시원한 음료수와 수박도 마련 돼 있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즐길 수 있는 TV는 덤이다. 김학순 할머니는 "더운 여름이 와도 옛날만큼 두렵지 않다"며 "동네에 이렇게 쉴 수 있는 곳이 생겨 너무 든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들쑥날쑥한 운영 시간 때문이다. 복지관이 발 디딜틈 없이 붐비면, 올해 새롭게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근처 도서관에도 발걸음을 한다. 하지만 허탕을 친 경우가 많다. 매주 월요일이면 휴관을 하는터라 문이 잠겨 있고, 개관 기념일인지 모르고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이 더 더웠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생겼다지만, 여전히 맘껏 쉴 수 있는 여건은 부족한 셈이다. 동사무소와 은행 등도 무더위 쉼터로 지정이 돼 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아버린다. 열대야는 여전히 홀로 견뎌야 한다.

올해 기준 4만 3천여 개로 증설된 무더위 쉼터. 구청 차원에서 시설과 관리비를 대폭 늘려 주민들에게 새로운 쉼터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폭염에 취약한 노약자와 소외 계층에게는 쉽게 맞을 수 있는 에어컨 바람이 반갑기만 하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정책이 자리 잡지 못하다 보니 운영 시간이나 시설 등에서 미비한 경우가 종종 있다. 구청에서 매주 민원을 받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 되지 않은 탓인지 대응은 느린 편이다.

쪽방 안의 기온(섭씨30도)이 바깥 기온(섭씨29도)보다 더 높다
뜨거워지는 한반도…복지 정책도 "변해야"

정부는 겨울이면 난방에 쓸 수 있는 '에너지바우처'를 지원하고 있다. 민간 구호단체들의 연탄기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름에는 사실상 선풍기와 물을 지원하고 전기요금을 감면하는 것이 전부다. 집 밖을 나서면 '무더위 쉼터'를 설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여름 더위는 매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6월~8월) 온열질환자는 2,029명.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치다.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도 16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복지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발맞춰 복지 정책도 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가 정체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와 함께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특히 독거노인의 경우에는 여름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가정 방문 등의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도 덧붙였다.

올해도 어느새 성큼 다가운 무더위. 폭염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복지 지원책이 절실하다.

[연관 기사] [뉴스7] 때 이른 무더위…여름이 두려운 쪽방촌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