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고발권’ 폐지 초읽기…공정위의 자업자득?

입력 2017.06.22 (17:12) 수정 2017.06.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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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4대강 사업 과정에서 이뤄진 국내 건설사들 간의 초대형 담합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당시 공정위는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대림산업, 삼성물산, GS건설, SK건설, 포스코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8개 건설사가 공동협의체를 구성해 사업 전체의 공사금액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했다며 모두 1,11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그러나 이들 업체가 국가사업을 충실히 수행하는 과정에서 담합을 했고, 조사에도 일부 협조한 점 등을 고려해 검찰에는 고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는 공정위가 검찰 고발을 포기하면서 4대강 담합 사건에 관한 한 추가 조사도 사실상 막히게 됐고, 여론은 들끓었다.

전속고발권은 공정위의 고발이 있는 경우에만 검찰이 공소제기를 할 수 있는 제도이다.

과도한 형사처벌을 막고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이지만, 공정위가 기업들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제대로 고발하지 않고 눈감아준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지적 때문에 2014년부터는 검찰 이외에 중소기업청과 감사원, 조달청도 공정위에 고발 요청을 할 수 있도록 '의무고발요청권'이 확대됐지만, 지난해까지 고발요청이 이뤄진 것은 12건에 불과해 이마저도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기에다 공정위에 불공정 거래 피해 신고를 하더라도 이미 밀려있는 사건들이 있기 때문에 조사 착수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우여곡절 끝에 조사에 들어가더라도 실제 형사고발까지는 또 지난한 시간이 소요된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불공정 거래로 인한 피해 사건도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공정위 조직과 인원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보니, 공정위가 고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싶어도 물리적 한계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공정위가 독점한 고발권을 풀어서 보다 효과적으로 갑을 관계 횡포 등 불공정 거래 사건에 대응하도록 하자는 것이 전속고발권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전속고발권이 전면 폐지될 경우 소송 남발 등으로 애꿎은 영세·중소기업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검찰과 공정위가 같은 사건에 동시에 개입하게 되면 뜻하지 않은 혼란을 초래하게 되고 기업들에게도 이중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20일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기로 한 대통령의 공약을 재확인했다.

전속고발권 폐지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 이달 안에 공정위 산하에 내외부 전문가와 관계부처, 재계, 소비자 단체 등 이해 관계자가 참여하는 '공정위법 집행 체계 개선 TF'를 꾸려 운영할 계획이다.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이를 보완해 전속고발권 제도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겠다는 취지이다.

김상조 공정위원장 역시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구제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인 만큼 전속고발권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고, 이날 국정위와의 간담회에서도 전속고발권 폐지에 따른 대안을 적극 모색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동안 공정위는 전속고발권을 바탕으로 '경제 검찰'이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시장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잇따른 기업 봐주기 논란 등 전속고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는다는 비판 속에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권한을 내줄 상황에 처하게 됐다.

다만, 새 정부는 공정위에 재벌 조사를 전담할 기업집단국을 신설해줌으로써 재벌 개혁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할 계획이다.

공정위가 김상조 위원장의 말대로 '기업을 망치는 게 아니라 기업을 살리는 재벌 개혁'을 제대로 해내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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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속고발권’ 폐지 초읽기…공정위의 자업자득?
    • 입력 2017-06-22 17:12:00
    • 수정2017-06-22 17: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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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4대강 사업 과정에서 이뤄진 국내 건설사들 간의 초대형 담합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당시 공정위는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대림산업, 삼성물산, GS건설, SK건설, 포스코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8개 건설사가 공동협의체를 구성해 사업 전체의 공사금액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했다며 모두 1,11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그러나 이들 업체가 국가사업을 충실히 수행하는 과정에서 담합을 했고, 조사에도 일부 협조한 점 등을 고려해 검찰에는 고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는 공정위가 검찰 고발을 포기하면서 4대강 담합 사건에 관한 한 추가 조사도 사실상 막히게 됐고, 여론은 들끓었다.

전속고발권은 공정위의 고발이 있는 경우에만 검찰이 공소제기를 할 수 있는 제도이다.

과도한 형사처벌을 막고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이지만, 공정위가 기업들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제대로 고발하지 않고 눈감아준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지적 때문에 2014년부터는 검찰 이외에 중소기업청과 감사원, 조달청도 공정위에 고발 요청을 할 수 있도록 '의무고발요청권'이 확대됐지만, 지난해까지 고발요청이 이뤄진 것은 12건에 불과해 이마저도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기에다 공정위에 불공정 거래 피해 신고를 하더라도 이미 밀려있는 사건들이 있기 때문에 조사 착수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우여곡절 끝에 조사에 들어가더라도 실제 형사고발까지는 또 지난한 시간이 소요된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불공정 거래로 인한 피해 사건도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공정위 조직과 인원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보니, 공정위가 고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싶어도 물리적 한계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공정위가 독점한 고발권을 풀어서 보다 효과적으로 갑을 관계 횡포 등 불공정 거래 사건에 대응하도록 하자는 것이 전속고발권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전속고발권이 전면 폐지될 경우 소송 남발 등으로 애꿎은 영세·중소기업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검찰과 공정위가 같은 사건에 동시에 개입하게 되면 뜻하지 않은 혼란을 초래하게 되고 기업들에게도 이중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20일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기로 한 대통령의 공약을 재확인했다.

전속고발권 폐지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 이달 안에 공정위 산하에 내외부 전문가와 관계부처, 재계, 소비자 단체 등 이해 관계자가 참여하는 '공정위법 집행 체계 개선 TF'를 꾸려 운영할 계획이다.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이를 보완해 전속고발권 제도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겠다는 취지이다.

김상조 공정위원장 역시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구제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인 만큼 전속고발권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고, 이날 국정위와의 간담회에서도 전속고발권 폐지에 따른 대안을 적극 모색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동안 공정위는 전속고발권을 바탕으로 '경제 검찰'이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시장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잇따른 기업 봐주기 논란 등 전속고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는다는 비판 속에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권한을 내줄 상황에 처하게 됐다.

다만, 새 정부는 공정위에 재벌 조사를 전담할 기업집단국을 신설해줌으로써 재벌 개혁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할 계획이다.

공정위가 김상조 위원장의 말대로 '기업을 망치는 게 아니라 기업을 살리는 재벌 개혁'을 제대로 해내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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