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보이스 피싱 당했어요”…조폭이 신고한 이유는?

입력 2017.06.22 (18:25) 수정 2017.06.2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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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보이스 피싱 당했어요”…조폭이 신고한 이유는?

[취재후] “보이스 피싱 당했어요”…조폭이 신고한 이유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거든요. 방금 입금했거든요..."

다급한 목소리로 은행에 전화를 건 한 남성. 메신저로 친구가 사고가 났다며 돈을 빌려달라는 연락을 받고 돈을 입금했다고 말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며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남성은 자신이 입금한 계좌를 불러주며 '지급정지'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남성은 허위신고일 경우 본인이 처벌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주는 상담원에게 "허위 신고 아닙니다"라며 큰 소리를 냈다. 그리고 여러 번에 걸쳐 출금이 완전히 중지되는지를 확인했다.

화면제공 :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화면제공 :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다급하게 지급정지 요청...알고 보니?

전화 통화 내용만 보면 보이스피싱을 당한 피해자 같다. 하지만 이들은 '조폭'이었다. 김 모(30) 씨 등 A파 조직원 5명은 지난 2012년 7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전국 각지에서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며 금융기관에 약 220회에 걸쳐 허위 지급정지를 신청했다.

이들이 지급정지를 신청한 계좌는 도박사이트 운영자 등이 쓰던 계좌였다. 김 씨 등은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게 지급정지를 해제하는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해 약 5억 원을 받아 챙겼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조직에 속한 박 모(30) 씨는 조폭 행동대원으로 활동하다 지난 2011년 한 지역의 금융기관에 취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씨는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불법 도박사이트 계좌에 지급정지를 신청하고, 풀어주는 대가로 돈을 뜯어내자"는 김 씨의 권유를 받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씨는 은행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계좌정보를 조회할 수 있었고, 이 정보를 김 씨에게 제공해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 이들은 모텔과 아파트에 합숙하면서 도박사이트 정보 입수팀, 지급정지팀, 협박, 인출팀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조직에 속한 또 다른 김 모(30) 씨 등 4명도 2013년 6월부터 2015년 8월까지 280여 차례에 걸쳐 지급정지를 신청해 도박사이트 운영자들로부터 약 7,000만 원을 갈취했다. 이들은 도박에 1억 원을 베팅하고 대출사기를 당했다며 금융기관에 피해구제를 신청해 6,000만 원을 환급받기도 했다.


'지급정지'제도 악용...지능화되는 조폭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며 금융기관에 허위로 지급정지를 신청하고 이를 빌미로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을 협박해 수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조직폭력배 김 씨 등 9명을 검거하고 그 중 박 씨 등 4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금융기관에서 보이스피싱 피해 사실과 입금 내역만 신고되면 해당 계좌의 지급정지가 곧바로 적용되는 점을 이용했다. '지급정지제도'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해 피해자의 신청이 있을 경우 범죄에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계좌의 입·출금을 즉각 정지하는 제도다.

대포 통장을 이용해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이 지급정지가 되면 영업을 할 수 없고, 계좌 안에 있는 돈을 찾기도 어렵다"며 "대포 통장을 마련하는 데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돈을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조직폭력배들이 금융 제도를 악용하는 등 지능화된 경향이 파악됐다며 앞으로도 금융당국과 협력해 허위 신고 의심자의 자료를 받아 지속해서 단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관 기사] [뉴스7] 조폭이 ‘전화 사기’ 신고?…협박해 5억 원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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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2 18:25:57
    • 수정2017-06-22 20:12:18
    취재후·사건후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거든요. 방금 입금했거든요..."

다급한 목소리로 은행에 전화를 건 한 남성. 메신저로 친구가 사고가 났다며 돈을 빌려달라는 연락을 받고 돈을 입금했다고 말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며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남성은 자신이 입금한 계좌를 불러주며 '지급정지'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남성은 허위신고일 경우 본인이 처벌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주는 상담원에게 "허위 신고 아닙니다"라며 큰 소리를 냈다. 그리고 여러 번에 걸쳐 출금이 완전히 중지되는지를 확인했다.

화면제공 :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다급하게 지급정지 요청...알고 보니?

전화 통화 내용만 보면 보이스피싱을 당한 피해자 같다. 하지만 이들은 '조폭'이었다. 김 모(30) 씨 등 A파 조직원 5명은 지난 2012년 7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전국 각지에서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며 금융기관에 약 220회에 걸쳐 허위 지급정지를 신청했다.

이들이 지급정지를 신청한 계좌는 도박사이트 운영자 등이 쓰던 계좌였다. 김 씨 등은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게 지급정지를 해제하는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해 약 5억 원을 받아 챙겼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조직에 속한 박 모(30) 씨는 조폭 행동대원으로 활동하다 지난 2011년 한 지역의 금융기관에 취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씨는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불법 도박사이트 계좌에 지급정지를 신청하고, 풀어주는 대가로 돈을 뜯어내자"는 김 씨의 권유를 받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씨는 은행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계좌정보를 조회할 수 있었고, 이 정보를 김 씨에게 제공해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 이들은 모텔과 아파트에 합숙하면서 도박사이트 정보 입수팀, 지급정지팀, 협박, 인출팀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조직에 속한 또 다른 김 모(30) 씨 등 4명도 2013년 6월부터 2015년 8월까지 280여 차례에 걸쳐 지급정지를 신청해 도박사이트 운영자들로부터 약 7,000만 원을 갈취했다. 이들은 도박에 1억 원을 베팅하고 대출사기를 당했다며 금융기관에 피해구제를 신청해 6,000만 원을 환급받기도 했다.


'지급정지'제도 악용...지능화되는 조폭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며 금융기관에 허위로 지급정지를 신청하고 이를 빌미로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을 협박해 수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조직폭력배 김 씨 등 9명을 검거하고 그 중 박 씨 등 4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금융기관에서 보이스피싱 피해 사실과 입금 내역만 신고되면 해당 계좌의 지급정지가 곧바로 적용되는 점을 이용했다. '지급정지제도'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해 피해자의 신청이 있을 경우 범죄에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계좌의 입·출금을 즉각 정지하는 제도다.

대포 통장을 이용해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이 지급정지가 되면 영업을 할 수 없고, 계좌 안에 있는 돈을 찾기도 어렵다"며 "대포 통장을 마련하는 데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돈을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조직폭력배들이 금융 제도를 악용하는 등 지능화된 경향이 파악됐다며 앞으로도 금융당국과 협력해 허위 신고 의심자의 자료를 받아 지속해서 단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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