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패신화’ 에티오피아 ‘강뉴부대’를 아세요?

입력 2017.06.23 (18:17) 수정 2017.06.23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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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뉴스9] 6·25 영웅의 귀환…‘무패 신화’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에서 6,037명의 청년들이 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끝, 에티오피아에서 온 청년들은 253전 253승,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지 않았다. 단 한 번의 패배도,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던 에티오피아 전설의 부대, 우리는 그들을 '초전박살'이란 뜻의 '강뉴부대'라고 불렀다.


"누구나 마땅히 자유를 누려야 한다"며 "한국을 위해 싸우라"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호소에 에티오피아의 꽃다운 청춘들은 한국전에 참전했다. 강뉴부대는 황제의 명을 받들어 한국의 자유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황제의 명령에 대한 충성심, 타고난 용맹성, 끈끈한 전우애 그리고 한국의 자유를 지킨다는 자긍심이 강뉴부대를 최고의 부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한국은 그들을 잊었다. 1970년대 에티오피아가 공산화하면서 강뉴부대 영웅들은 반역자로 전락했다.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재난이 몰수되고 손가락질받으며 가난한 반역자로 몰락했다.

2017년 5월, 대한민국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세 명의 영웅이 67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달라진 한국의 모습과 마주한 세 영웅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강뉴부대, 그들은 어떻게 전설이 되었나?

강뉴부대는 언제나 최전선에서 싸웠다.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으며 전우의 시체도 모두 수습했다. 122구의 시신을 포함한 6,037명의 참전용사가 모두 본국에 있다.

강뉴부대의 주요 격전지는 강원도 화천과 철원, 경기도 연천 지역이었다. 미군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격렬한 전투지에 강뉴부대가 투입됐고 이들은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셀라시에 황제는 한국전쟁 출정식에서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라고 당부했다. 강뉴부대는 셀라시에 황제의 명을 받들어 '용감하게 싸우다 죽겠다'는 사명감으로 한국을 지켰다.

60년도 더 지났지만 참전 노병들은 생생하게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하나의 전설이 된 불패신화 강뉴부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67년 만에 귀환한 세 영웅

아사파 데미사, “아들과 손자 만나러 왔어요.”


강뉴부대 2진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아사파 데미사 씨는 20년 전, 아들 헤녹 씨를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보냈다. 하지만 헤녹 씨는 한국에서 심한 인종차별을 겪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국 생활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을 타일렀다. "나는 전쟁 때도 한국을 포기하지 않았다, 너도 쉽게 한국을 포기하지 마라."

헤녹 씨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렇게 한국은 헤녹 씨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2003년 헤녹 씨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결혼해 아들도 낳았다.

아들 헤녹 씨가 한국에 자리 잡게 되면서 아세파 씨는 한 번도 손자를 만난 적이 없다. 자신이 지킨 나라에서 행복하게 사는 아들과 손자를 보러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불차 올레카, “전쟁고아 ‘박동화’를 찾아요.”


불차 올레카 씨는 1951년 22살의 나이에 강뉴부대 1진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그에겐 전쟁 때 만난 '한국인 아들'이 있다. 전쟁 당시 부대로 데려와 군복을 줄여 입히고 키웠던 고아 박동화 씨다. 전쟁이 끝난 후 귀국 명령이 떨어지자 불차 씨는 아이를 고아원에 맡겼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던 그 날 이후로 벌써 70여 년이 흘렀다.

아들을 찾을 단서는 아이의 이름 '박동화' 세 글자와 낡은 사진 두 장이 유일하다. 다행히 강뉴부대의 유일한 한국인 군무원 윤중완 씨가 '박동화'에 대한 단서를 알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비록 몇 년간이기는 했지만, 자식처럼 키웠던 아들 박동화를 죽기 전에 꼭 한번 만나기 위해 불차 씨는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박동화'는 제 인생 첫 번째 아들입니다."

일마 벨라처, “한국전 자료를 기증하고 싶습니다.”


19살의 나이로 강뉴부대 2진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일마 벨라처 씨는 전쟁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그에게 마지막 소원이 있다. 한국전에 참전한 자신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는 것, 그리고 힘들게 수집한 자료들을 대한민국에 기증하는 것이다.

일마 씨는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운 그들의 빛나는 청춘과 자부심을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강뉴부대 전설의 귀환


아무런 대가 없이 한국에 '자유'를 선물한 강뉴부대의 영웅들이 67년 만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제 이 땅을 지킬 젊은 군인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거저 얻는 것이 아닙니다).”

67년 만에 돌아온 노병들이 이제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제는 전설이 된 에티오피아 강뉴부대를 다룬 6.25 특집 다큐 '영웅의 귀환-에티오피아 강뉴부대'는 24일(토) 16시, KBS 1TV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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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패신화’ 에티오피아 ‘강뉴부대’를 아세요?
    • 입력 2017-06-23 18:17:51
    • 수정2017-06-23 22: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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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뉴스9] 6·25 영웅의 귀환…‘무패 신화’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에서 6,037명의 청년들이 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끝, 에티오피아에서 온 청년들은 253전 253승,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지 않았다. 단 한 번의 패배도,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던 에티오피아 전설의 부대, 우리는 그들을 '초전박살'이란 뜻의 '강뉴부대'라고 불렀다. "누구나 마땅히 자유를 누려야 한다"며 "한국을 위해 싸우라"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호소에 에티오피아의 꽃다운 청춘들은 한국전에 참전했다. 강뉴부대는 황제의 명을 받들어 한국의 자유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황제의 명령에 대한 충성심, 타고난 용맹성, 끈끈한 전우애 그리고 한국의 자유를 지킨다는 자긍심이 강뉴부대를 최고의 부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한국은 그들을 잊었다. 1970년대 에티오피아가 공산화하면서 강뉴부대 영웅들은 반역자로 전락했다.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재난이 몰수되고 손가락질받으며 가난한 반역자로 몰락했다. 2017년 5월, 대한민국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세 명의 영웅이 67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달라진 한국의 모습과 마주한 세 영웅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강뉴부대, 그들은 어떻게 전설이 되었나? 강뉴부대는 언제나 최전선에서 싸웠다.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으며 전우의 시체도 모두 수습했다. 122구의 시신을 포함한 6,037명의 참전용사가 모두 본국에 있다. 강뉴부대의 주요 격전지는 강원도 화천과 철원, 경기도 연천 지역이었다. 미군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격렬한 전투지에 강뉴부대가 투입됐고 이들은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셀라시에 황제는 한국전쟁 출정식에서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라고 당부했다. 강뉴부대는 셀라시에 황제의 명을 받들어 '용감하게 싸우다 죽겠다'는 사명감으로 한국을 지켰다. 60년도 더 지났지만 참전 노병들은 생생하게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하나의 전설이 된 불패신화 강뉴부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67년 만에 귀환한 세 영웅 아사파 데미사, “아들과 손자 만나러 왔어요.” 강뉴부대 2진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아사파 데미사 씨는 20년 전, 아들 헤녹 씨를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보냈다. 하지만 헤녹 씨는 한국에서 심한 인종차별을 겪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국 생활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을 타일렀다. "나는 전쟁 때도 한국을 포기하지 않았다, 너도 쉽게 한국을 포기하지 마라." 헤녹 씨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렇게 한국은 헤녹 씨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2003년 헤녹 씨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결혼해 아들도 낳았다. 아들 헤녹 씨가 한국에 자리 잡게 되면서 아세파 씨는 한 번도 손자를 만난 적이 없다. 자신이 지킨 나라에서 행복하게 사는 아들과 손자를 보러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불차 올레카, “전쟁고아 ‘박동화’를 찾아요.” 불차 올레카 씨는 1951년 22살의 나이에 강뉴부대 1진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그에겐 전쟁 때 만난 '한국인 아들'이 있다. 전쟁 당시 부대로 데려와 군복을 줄여 입히고 키웠던 고아 박동화 씨다. 전쟁이 끝난 후 귀국 명령이 떨어지자 불차 씨는 아이를 고아원에 맡겼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던 그 날 이후로 벌써 70여 년이 흘렀다. 아들을 찾을 단서는 아이의 이름 '박동화' 세 글자와 낡은 사진 두 장이 유일하다. 다행히 강뉴부대의 유일한 한국인 군무원 윤중완 씨가 '박동화'에 대한 단서를 알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비록 몇 년간이기는 했지만, 자식처럼 키웠던 아들 박동화를 죽기 전에 꼭 한번 만나기 위해 불차 씨는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박동화'는 제 인생 첫 번째 아들입니다." 일마 벨라처, “한국전 자료를 기증하고 싶습니다.” 19살의 나이로 강뉴부대 2진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일마 벨라처 씨는 전쟁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그에게 마지막 소원이 있다. 한국전에 참전한 자신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는 것, 그리고 힘들게 수집한 자료들을 대한민국에 기증하는 것이다. 일마 씨는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운 그들의 빛나는 청춘과 자부심을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강뉴부대 전설의 귀환 아무런 대가 없이 한국에 '자유'를 선물한 강뉴부대의 영웅들이 67년 만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제 이 땅을 지킬 젊은 군인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거저 얻는 것이 아닙니다).” 67년 만에 돌아온 노병들이 이제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제는 전설이 된 에티오피아 강뉴부대를 다룬 6.25 특집 다큐 '영웅의 귀환-에티오피아 강뉴부대'는 24일(토) 16시, KBS 1TV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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