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지연 과태료 내라”…유족 울린 ‘무심한 행정’

입력 2017.06.26 (10:57) 수정 2017.06.2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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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지연 과태료 내라”…유족 울린 ‘무심한 행정’

[취재후] “지연 과태료 내라”…유족 울린 ‘무심한 행정’

지난달 9일은 대통령 선거 날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대선 당일, 어떤 기억을 갖고 계신가요?

중국 웨이하이 시에서는 터널에서 버스가 불타는 사고가 나 한국 국적 유치원생 10명이 숨졌습니다. 우리 나이로 7살 난 故 김 모 군을 떠나보낸 아버지 김정호 씨는, 중국에서 사고 처리 과정을 거치고 지친 마음을 이끌고 40일 만인 6월 19일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 주민센터를 방문해 아이 사망신고를 했습니다.

김 씨는 이날, 여태까지 참아왔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습니다. 주민센터에서 사망 신고가 늦었다며 과태료를 물라는 말을 들었는데, "사망 증명서가 이미 신고 기한을 지난 6월 12일에야 나왔다"라는 설명을 거듭 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같았다는 겁니다.

사망 신고는 법원 업무이며, 주민센터는 접수만 도와 드릴 뿐,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얘기를 거듭하면서, 다만 과태료 감면을 받으시려면 지연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말에, 그간의 마음고생이 서러움으로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연관기사] [뉴스9] “지연 과태료 내라”…유족 울린 ‘무심한 행정’

지난달 9일 중국 웨이하이 시의 터널 안 버스 화재지난달 9일 중국 웨이하이 시의 터널 안 버스 화재

한 달 넘는 중국 체류..."고의 방화 사건"

김정호 씨는 중국에 한 달이 넘도록 머물면서 화재 원인 조사와 배상, 보상 문제 등 여러 절차를 거치고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중국 측이 장기간 조사 끝내 내린 결론은 '불만을 품은 버스 기사의 고의 방화 사건'이었습니다.

석연치 않은 부분도 남아 있었지만, 중국 측이 보인 '성의'에 유족 측은 수긍했다고 합니다. 시진핑 주석이 해당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 지시를 내렸고, 웨이하이 시 차원이 아닌 산둥성 차원에서 조사에 나섰습니다.

또 중국 조사 당국은 결과를 유족 측에게 알리면서 3차례 브리핑을 열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확보한 CCTV 화면까지 모두 보여주는 등 상세히 설명하려는 노력을 보였다고 김정호 씨는 전합니다.

또한 한국 영사관 측도 장거리를 오가면서 유족 측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나서줘 고맙다고도 말했습니다. 영사관 측은 서류 처리에 드는 각종 수수료 등도 사안의 특수성을 감안해 면제해주기도 했습니다. 또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도 전했습니다.

사망신고서에 필요한 공식 서류가 6월 12일에 발급됐다. 이미 ‘기한’은 지난 것이다.사망신고서에 필요한 공식 서류가 6월 12일에 발급됐다. 이미 ‘기한’은 지난 것이다.

이미 한 달 지나서 나온 사망 증명서..."과태료 납부하라"

중국 측은 '5월 9일 사망했음을 공식 확인한다'는 내용의 공증서를 원인 조사와 유족 측에 대한 배상, 보상 절차를 마치고 6월 12일 발급했습니다. 우리 영사관 측도 즉각 한글 번역본을 만들어 문서의 효력을 인증했고, 날인을 찍어 유족 측에 발급했습니다. 유족들이 최종적으로 이 공증서를 받은 것이 6월 18일입니다.

국내로 들어와 성남에 마련된 분향소에 들르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오랜 기간 자리를 비웠던 회사에도 잠시 얼굴을 비춘 뒤, 김정호 씨는 6월 22일 아이 사망 신고를 하러 동 주민센터에 찾아갔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사망 신고 기한이 한 달 이내이므로 규정상 과태료를 납부하셔야 한다." "지연사유서를 내면 법원에서 과태료를 감면 받을 수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잃은 부모는 한 번 더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타지에서 고생하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국내에 들어와서 이런 일을 겪게 돼 참 야박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담당 공무원도 이리 저리 계속 전화를 돌리면서 알아는 봤지만, 그 얼마 안 되는 돈, 내야 한다는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김 씨는 '사유서를 내면 깎아주겠다'는 식으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주민센터→구청→법원→구청→주민센터

기자는 김 씨의 사연을 듣고, 해당 동 주민센터에 찾아가 담당자를 만나봤습니다. 담당 공무원도 사안의 특수성을 익히 알고 있고, 방문한 김 씨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사망 신고는 본래 법원의 일이고, 광역단체의 경우 구청에 '일을 할 수 있는' 담당자가 배정돼 있습니다. 구청 담당자가 법원에 질의하고, 답변을 받아서 주민센터에 어떻게 하라고 전달하는 구조로 일 처리가 진행됩니다. "주민센터는 신고 서류를 접수할 권한밖에 없다"는 것이 주민센터 측 공무원의 설명이었습니다.

다른 곳은 어떻게 했을까. 취재 당시 국내에 들어온 유족은 김 씨를 포함해 네 가족이었습니다. 인천, 대전, 경북 구미에 거주하는 유족들도 각각 주민센터에서 사망신고를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각 주민센터 마다 모두 다른 절차를 밟고 있었습니다. 미리 동의를 얻어 유족분들과 통화했고, 주민센터와 구청(혹은 시청)에 처리 과정을 문의해봤습니다.

어떤 주민센터는 담당 공무원이 사비를 털어 해결했습니다. 행여나 선의로 행한 일이 '규정'에 어긋나 문제가 될지 몰라 기사에서 어느 지역인지를 밝힐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유족께서도 '대리 납부' 사실을 모르고 계십니다.

해당 공무원은 유족이 방문했을 당시, 유족의 안색이나 좋지 않아 보여서 사망신고 접수만 하고 바로 댁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후 과태료가 나왔지만, 유족분을 다시 부르기도, 그렇다고 '지로'를 댁으로 보내 과태료를 납부하시란 말씀을 차마 못 전하겠다면서, 유족분의 명의로 과태료를 대납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선, 유족분과 함께 울며 과태료 부과가 안 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았고, 나머지 한 곳도 주민센터보다 상위 단체에서 발 벗고 나서 법원과 상의해 과태료 부과를 하지 않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취재했던 모든 공무원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 방향을 찾고 있었습니다.

유족 울린 '무심한 행정'

이번 사례에서 취재를 할수록 느낀 점은 '무심한' 공무원은 사실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무심한' 행정 시스템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무심한 행정은 유족을 두 번 울렸습니다.

제보자가 방문한 주민센터 직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연히 사정을 알고, 공무원 본인도 마음이 아픈데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었다는 겁니다. 본인은 접수 권한밖에 없고, 구청을 통해 법원 답변을 거듭 들어도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는 데다 사유서를 제출하라니 난감했다고 전합니다.

또 사망신고 입력하는 전산망에는 '사망 날짜'와 '오늘 날짜'밖에 입력할 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사망 증명서가 한 달이 지나 기간이 지난 상태여도, 전산망에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고 나오니 일선 공무원으로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사망 신고 접수는 본래 법원 업무입니다. 주민 접근성을 높이고 편의를 위해 주민센터에서 접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업무는 넘어왔지만, 정작 다양한 사연을 가진 주민들에게 유연하게 대처할 권한은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여러 고려 끝에 정착한 제도겠지만, 예외적인 사례가 발생할 경우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든, 아니면 '권한 있는 부서 담당자'와 즉각 통화가 될 수 있는 조치는 어떨지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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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지연 과태료 내라”…유족 울린 ‘무심한 행정’
    • 입력 2017-06-26 10:57:32
    • 수정2017-06-26 10:59:08
    취재후·사건후
지난달 9일은 대통령 선거 날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대선 당일, 어떤 기억을 갖고 계신가요?

중국 웨이하이 시에서는 터널에서 버스가 불타는 사고가 나 한국 국적 유치원생 10명이 숨졌습니다. 우리 나이로 7살 난 故 김 모 군을 떠나보낸 아버지 김정호 씨는, 중국에서 사고 처리 과정을 거치고 지친 마음을 이끌고 40일 만인 6월 19일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 주민센터를 방문해 아이 사망신고를 했습니다.

김 씨는 이날, 여태까지 참아왔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습니다. 주민센터에서 사망 신고가 늦었다며 과태료를 물라는 말을 들었는데, "사망 증명서가 이미 신고 기한을 지난 6월 12일에야 나왔다"라는 설명을 거듭 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같았다는 겁니다.

사망 신고는 법원 업무이며, 주민센터는 접수만 도와 드릴 뿐,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얘기를 거듭하면서, 다만 과태료 감면을 받으시려면 지연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말에, 그간의 마음고생이 서러움으로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연관기사] [뉴스9] “지연 과태료 내라”…유족 울린 ‘무심한 행정’

지난달 9일 중국 웨이하이 시의 터널 안 버스 화재
한 달 넘는 중국 체류..."고의 방화 사건"

김정호 씨는 중국에 한 달이 넘도록 머물면서 화재 원인 조사와 배상, 보상 문제 등 여러 절차를 거치고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중국 측이 장기간 조사 끝내 내린 결론은 '불만을 품은 버스 기사의 고의 방화 사건'이었습니다.

석연치 않은 부분도 남아 있었지만, 중국 측이 보인 '성의'에 유족 측은 수긍했다고 합니다. 시진핑 주석이 해당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 지시를 내렸고, 웨이하이 시 차원이 아닌 산둥성 차원에서 조사에 나섰습니다.

또 중국 조사 당국은 결과를 유족 측에게 알리면서 3차례 브리핑을 열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확보한 CCTV 화면까지 모두 보여주는 등 상세히 설명하려는 노력을 보였다고 김정호 씨는 전합니다.

또한 한국 영사관 측도 장거리를 오가면서 유족 측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나서줘 고맙다고도 말했습니다. 영사관 측은 서류 처리에 드는 각종 수수료 등도 사안의 특수성을 감안해 면제해주기도 했습니다. 또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도 전했습니다.

사망신고서에 필요한 공식 서류가 6월 12일에 발급됐다. 이미 ‘기한’은 지난 것이다.
이미 한 달 지나서 나온 사망 증명서..."과태료 납부하라"

중국 측은 '5월 9일 사망했음을 공식 확인한다'는 내용의 공증서를 원인 조사와 유족 측에 대한 배상, 보상 절차를 마치고 6월 12일 발급했습니다. 우리 영사관 측도 즉각 한글 번역본을 만들어 문서의 효력을 인증했고, 날인을 찍어 유족 측에 발급했습니다. 유족들이 최종적으로 이 공증서를 받은 것이 6월 18일입니다.

국내로 들어와 성남에 마련된 분향소에 들르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오랜 기간 자리를 비웠던 회사에도 잠시 얼굴을 비춘 뒤, 김정호 씨는 6월 22일 아이 사망 신고를 하러 동 주민센터에 찾아갔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사망 신고 기한이 한 달 이내이므로 규정상 과태료를 납부하셔야 한다." "지연사유서를 내면 법원에서 과태료를 감면 받을 수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잃은 부모는 한 번 더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타지에서 고생하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국내에 들어와서 이런 일을 겪게 돼 참 야박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담당 공무원도 이리 저리 계속 전화를 돌리면서 알아는 봤지만, 그 얼마 안 되는 돈, 내야 한다는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김 씨는 '사유서를 내면 깎아주겠다'는 식으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주민센터→구청→법원→구청→주민센터

기자는 김 씨의 사연을 듣고, 해당 동 주민센터에 찾아가 담당자를 만나봤습니다. 담당 공무원도 사안의 특수성을 익히 알고 있고, 방문한 김 씨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사망 신고는 본래 법원의 일이고, 광역단체의 경우 구청에 '일을 할 수 있는' 담당자가 배정돼 있습니다. 구청 담당자가 법원에 질의하고, 답변을 받아서 주민센터에 어떻게 하라고 전달하는 구조로 일 처리가 진행됩니다. "주민센터는 신고 서류를 접수할 권한밖에 없다"는 것이 주민센터 측 공무원의 설명이었습니다.

다른 곳은 어떻게 했을까. 취재 당시 국내에 들어온 유족은 김 씨를 포함해 네 가족이었습니다. 인천, 대전, 경북 구미에 거주하는 유족들도 각각 주민센터에서 사망신고를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각 주민센터 마다 모두 다른 절차를 밟고 있었습니다. 미리 동의를 얻어 유족분들과 통화했고, 주민센터와 구청(혹은 시청)에 처리 과정을 문의해봤습니다.

어떤 주민센터는 담당 공무원이 사비를 털어 해결했습니다. 행여나 선의로 행한 일이 '규정'에 어긋나 문제가 될지 몰라 기사에서 어느 지역인지를 밝힐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유족께서도 '대리 납부' 사실을 모르고 계십니다.

해당 공무원은 유족이 방문했을 당시, 유족의 안색이나 좋지 않아 보여서 사망신고 접수만 하고 바로 댁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후 과태료가 나왔지만, 유족분을 다시 부르기도, 그렇다고 '지로'를 댁으로 보내 과태료를 납부하시란 말씀을 차마 못 전하겠다면서, 유족분의 명의로 과태료를 대납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선, 유족분과 함께 울며 과태료 부과가 안 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았고, 나머지 한 곳도 주민센터보다 상위 단체에서 발 벗고 나서 법원과 상의해 과태료 부과를 하지 않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취재했던 모든 공무원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 방향을 찾고 있었습니다.

유족 울린 '무심한 행정'

이번 사례에서 취재를 할수록 느낀 점은 '무심한' 공무원은 사실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무심한' 행정 시스템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무심한 행정은 유족을 두 번 울렸습니다.

제보자가 방문한 주민센터 직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연히 사정을 알고, 공무원 본인도 마음이 아픈데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었다는 겁니다. 본인은 접수 권한밖에 없고, 구청을 통해 법원 답변을 거듭 들어도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는 데다 사유서를 제출하라니 난감했다고 전합니다.

또 사망신고 입력하는 전산망에는 '사망 날짜'와 '오늘 날짜'밖에 입력할 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사망 증명서가 한 달이 지나 기간이 지난 상태여도, 전산망에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고 나오니 일선 공무원으로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사망 신고 접수는 본래 법원 업무입니다. 주민 접근성을 높이고 편의를 위해 주민센터에서 접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업무는 넘어왔지만, 정작 다양한 사연을 가진 주민들에게 유연하게 대처할 권한은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여러 고려 끝에 정착한 제도겠지만, 예외적인 사례가 발생할 경우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든, 아니면 '권한 있는 부서 담당자'와 즉각 통화가 될 수 있는 조치는 어떨지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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