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림에서 돌에 새긴 족보까지…조상들의 뿌리 찾기

입력 2017.06.26 (18:17) 수정 2017.06.2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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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오씨참봉공파화수도나주오씨참봉공파화수도


거목으로 우뚝 선 7백년의 시간

빛바랜 한지 위에 아름드리 나무 한그루가 우뚝 섰습니다. 오래된 수묵화일까요?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일세(一世), 이세(二世)와 같은 글자들이 보입니다. 나무줄기를 따라 동심원 형태로 뻗어나가 이십사세(二十四世)에서 멈춰선 그림. 바로 나주오씨 참봉공파의 1대부터 24대까지 7백여년의 시간이 담긴 족보입니다.

처음 공개된 나무 형태의 족보

1900년대 초반에 제작된 이 족보의 이름은 화수도(花樹圖). 나주오씨의 구성원들이 마치 나무처럼 하나의 뿌리에서 수없이 가지쳐 뻗어나가고 또 꽃을 피운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각 세대 옆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이름과 거주지가 적혀있네요. 섬세한 모습에서 가문에 대한 애정과 긍지가 보입니다.

울산김씨내외보 울산김씨내외보


딸은 배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다?

1689년에 작성된 이 족보는 울산김씨 집안의 족보입니다. 그런데 이름이 내외(內外)보입니다. 특이하죠? 여기서 내(內)는 남자, 외(外)는 남자의 배우자를 뜻합니다. 즉 내외보는 남자와 여자가 모두 들어가있는 족보를 말합니다. 남자만, 아들만 들어있는게 족보라고 생각했는데 조상들이 그렇게 꽉 막혔던건 아닌가 봅니다.

금남최선생외손보금남최선생외손보


조선시대 딸바보의 족보

위의 족보는 '표해록'으로 유명한 조선 초기의 문신 최부(1454~1504)선생의 외손보입니다. 오른쪽 상단에는 "금남 최선생"이라고 적혀있으나 족보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전부 "유(柳)"씨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최부의 첫째 사위인 유계린의 자손들을 표기한 족보입니다. (최부는 딸만 셋이었습니다) 이름부터가 외손보. 외손 가닥만을 수록한 족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외손만을 대상으로 한 족보가 발견되기는 처음입니다.

시대상이 반영된 '살아있는' 족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족보 문화가 들어온게 대략 15세기 무렵.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족보에는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들어가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다 17세기부터 맏아들 중심의 작성법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18세기에 이르러 형태가 정착된 것으로 보입니다. 유교사상이 점점 지배적인 사상으로 자리잡는 동안, 딸로 이어지는 외손도 똑같은 자손이라는 생각이 옅어진 것이죠.

연산서씨석보연산서씨석보



돌에 새긴 역사, 지금도 새겨지는 가족의 정

충남 홍성에서 맥을 잇고 있는 연산서씨. 이 가문은 돌판에 족보를 새겼습니다. 나라가 혼란하던 1853년 당시, 가장 훼손우려가 적은 소재가 돌이라 판단한거죠. 가족의 역사를 지키려는 의지가 보입니다.

"족보, 나의 뿌리를 찾아가다"(국립중앙도서관, 8월 27일까지) 전시회에서는 이밖에도 여러가지 이색 족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낳은 정만큼이나 기른 정도 크다"며 성이 다른 양자의 이름을 빼곡히 기록한 환관들의 족보 앞에서는 말못할 뭉클함도 느껴집니다.

경주정씨의 족보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조 한분이었다가 한분의 몸이 나뉘어 드디어 길에서 만난 사람과 같은 처지에 이르게 되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친척끼리 나이들며 서먹해지는건 요즘의 일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기록을 남겨서라도 가족의 인연을 잊지 않으려는 옛 선인들의 모습이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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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 그림에서 돌에 새긴 족보까지…조상들의 뿌리 찾기
    • 입력 2017-06-26 18:17:39
    • 수정2017-06-26 18:22:14
    취재K
나주오씨참봉공파화수도

거목으로 우뚝 선 7백년의 시간

빛바랜 한지 위에 아름드리 나무 한그루가 우뚝 섰습니다. 오래된 수묵화일까요?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일세(一世), 이세(二世)와 같은 글자들이 보입니다. 나무줄기를 따라 동심원 형태로 뻗어나가 이십사세(二十四世)에서 멈춰선 그림. 바로 나주오씨 참봉공파의 1대부터 24대까지 7백여년의 시간이 담긴 족보입니다.

처음 공개된 나무 형태의 족보

1900년대 초반에 제작된 이 족보의 이름은 화수도(花樹圖). 나주오씨의 구성원들이 마치 나무처럼 하나의 뿌리에서 수없이 가지쳐 뻗어나가고 또 꽃을 피운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각 세대 옆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이름과 거주지가 적혀있네요. 섬세한 모습에서 가문에 대한 애정과 긍지가 보입니다.

울산김씨내외보

딸은 배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다?

1689년에 작성된 이 족보는 울산김씨 집안의 족보입니다. 그런데 이름이 내외(內外)보입니다. 특이하죠? 여기서 내(內)는 남자, 외(外)는 남자의 배우자를 뜻합니다. 즉 내외보는 남자와 여자가 모두 들어가있는 족보를 말합니다. 남자만, 아들만 들어있는게 족보라고 생각했는데 조상들이 그렇게 꽉 막혔던건 아닌가 봅니다.

금남최선생외손보

조선시대 딸바보의 족보

위의 족보는 '표해록'으로 유명한 조선 초기의 문신 최부(1454~1504)선생의 외손보입니다. 오른쪽 상단에는 "금남 최선생"이라고 적혀있으나 족보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전부 "유(柳)"씨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최부의 첫째 사위인 유계린의 자손들을 표기한 족보입니다. (최부는 딸만 셋이었습니다) 이름부터가 외손보. 외손 가닥만을 수록한 족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외손만을 대상으로 한 족보가 발견되기는 처음입니다.

시대상이 반영된 '살아있는' 족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족보 문화가 들어온게 대략 15세기 무렵.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족보에는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들어가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다 17세기부터 맏아들 중심의 작성법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18세기에 이르러 형태가 정착된 것으로 보입니다. 유교사상이 점점 지배적인 사상으로 자리잡는 동안, 딸로 이어지는 외손도 똑같은 자손이라는 생각이 옅어진 것이죠.

연산서씨석보


돌에 새긴 역사, 지금도 새겨지는 가족의 정

충남 홍성에서 맥을 잇고 있는 연산서씨. 이 가문은 돌판에 족보를 새겼습니다. 나라가 혼란하던 1853년 당시, 가장 훼손우려가 적은 소재가 돌이라 판단한거죠. 가족의 역사를 지키려는 의지가 보입니다.

"족보, 나의 뿌리를 찾아가다"(국립중앙도서관, 8월 27일까지) 전시회에서는 이밖에도 여러가지 이색 족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낳은 정만큼이나 기른 정도 크다"며 성이 다른 양자의 이름을 빼곡히 기록한 환관들의 족보 앞에서는 말못할 뭉클함도 느껴집니다.

경주정씨의 족보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조 한분이었다가 한분의 몸이 나뉘어 드디어 길에서 만난 사람과 같은 처지에 이르게 되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친척끼리 나이들며 서먹해지는건 요즘의 일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기록을 남겨서라도 가족의 인연을 잊지 않으려는 옛 선인들의 모습이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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