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픽] 조선 시대 붕당사 한눈에 정리!

입력 2017.06.29 (10:36) 수정 2017.06.2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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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朋黨)'은 조선 중기, 권력을 잡았던 사림들이 정치적인 입장이나 학맥에 따라 만든 집단입니다. 대표적인 붕당으로는 동인과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등이 있는데요. 붕당은 왜 생겨났을까요?

조선 초기 권력을 잡았던 훈구는 신진 세력인 사림파와 대립했습니다. 훈구는 사화(사림이 당한 재앙)를 일으키며 사림을 몰아내려고 했지만, 조선 중기 결국 사림이 대부분의 관직을 차지하며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사림이 권력을 잡은 뒤 훈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나라는 어떻게 이끌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습니다. 이때 같은 입장을 취한 사람들끼리 집단을 이루며 붕당이 생겨났습니다.

붕당 간 경쟁이 심할 때는 특정 붕당이 다른 붕당을 모조리 제거하고자 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임금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붕당의 대립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영조와 정조는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붕당과 관계없이 두루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을 펴기도 했지만, 붕당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의 정치는 붕당이 좌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붕당사를 알아두면 좋은 이유입니다. 조선 시대 붕당사 한눈에 정리해볼까요?

붕당의 탄생..사림의 분열

15세기 조선 건국 세력과 맥을 같이 하는 세력이 바로 훈구입니다. 이들은 세조의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습니다. 그러나 16세기 사림의 집요한 탄핵으로 훈구는 세력을 잃게 됩니다.

1572년(선조 5년) 사림은 인사권을 쥔 이조 전랑 관직을 누가 차지하느냐와 훈구세력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따라 내부 분열이 이루어집니다. 그중 강경파는 '동인', 온건파는 '서인'으로 나뉩니다.

동인 VS 서인

초반에는 동인이 우세했지만 '정여립 모반 사건'을 계기로 서인이 권력을 잡게 됩니다. 그런데 서인이었던 정철이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건의했다가 선조의 분노를 사 유배를 가게 되면서 다시 동인이 집권하게 됩니다.

북인 VS 남인

이때 서인을 처리하는 문제로, 동인이 분열하게 됩니다. 강경파가 '북인'이고 온건파가 '남인'입니다.

임진왜란 때 주전론을 주장하고 의병장을 배출한 북인이 먼저 정권을 장악합니다. 광해군을 지지하는 북인은 임진왜란 이후 영창대군의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위시킵니다.

폐모 사건에 반발해 서인과 남인이 인조반정을 일으키게 되고, 북인이 숙청당합니다. 그 후 이괄의 난으로 북인이 또 숙청되면서 북인은 정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고, 서인과 남인 세력만 남게 됩니다.

남은 건 오직 '서인'

이제 서인과 남인은 북벌론과 예송논쟁으로 집권과 실각을 반복하다가 숙종 때 환국 정쟁, 특히 허적 유악사건과 장희빈 사사 등과 함께 남인이 완전히 실각하게 됩니다.

노론 VS 소론

남인 처벌 문제로 서인이 다시 분열합니다. 강경파가 '노론', 온건파가 '소론'으로 나뉩니다. 소론은 경종, 노론은 영조(연잉군)를 지지합니다. 영조는 탕평을 추구해 노론과 소론이 공존하긴 했지만, 노론이 더 우세했습니다.

노론은 사도세자 처리의 정당성 문제로 다시 '벽파'와 '시파'로 나뉘게 됩니다. 먼저 벽파가 세력을 얻지만 결국 시파의 소수 가문에 힘이 몰리면서 19세기 세도정치로 이어집니다.

조선의 붕당은 나라 이익보다 자기 붕당의 이익을 우선해 단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붕당 간 경쟁을 통해 견제가 가능했고, 학문 연구가 활발해졌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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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9 10: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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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朋黨)'은 조선 중기, 권력을 잡았던 사림들이 정치적인 입장이나 학맥에 따라 만든 집단입니다. 대표적인 붕당으로는 동인과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등이 있는데요. 붕당은 왜 생겨났을까요?

조선 초기 권력을 잡았던 훈구는 신진 세력인 사림파와 대립했습니다. 훈구는 사화(사림이 당한 재앙)를 일으키며 사림을 몰아내려고 했지만, 조선 중기 결국 사림이 대부분의 관직을 차지하며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사림이 권력을 잡은 뒤 훈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나라는 어떻게 이끌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습니다. 이때 같은 입장을 취한 사람들끼리 집단을 이루며 붕당이 생겨났습니다.

붕당 간 경쟁이 심할 때는 특정 붕당이 다른 붕당을 모조리 제거하고자 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임금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붕당의 대립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영조와 정조는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붕당과 관계없이 두루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을 펴기도 했지만, 붕당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의 정치는 붕당이 좌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붕당사를 알아두면 좋은 이유입니다. 조선 시대 붕당사 한눈에 정리해볼까요?

붕당의 탄생..사림의 분열

15세기 조선 건국 세력과 맥을 같이 하는 세력이 바로 훈구입니다. 이들은 세조의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습니다. 그러나 16세기 사림의 집요한 탄핵으로 훈구는 세력을 잃게 됩니다.

1572년(선조 5년) 사림은 인사권을 쥔 이조 전랑 관직을 누가 차지하느냐와 훈구세력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따라 내부 분열이 이루어집니다. 그중 강경파는 '동인', 온건파는 '서인'으로 나뉩니다.

동인 VS 서인

초반에는 동인이 우세했지만 '정여립 모반 사건'을 계기로 서인이 권력을 잡게 됩니다. 그런데 서인이었던 정철이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건의했다가 선조의 분노를 사 유배를 가게 되면서 다시 동인이 집권하게 됩니다.

북인 VS 남인

이때 서인을 처리하는 문제로, 동인이 분열하게 됩니다. 강경파가 '북인'이고 온건파가 '남인'입니다.

임진왜란 때 주전론을 주장하고 의병장을 배출한 북인이 먼저 정권을 장악합니다. 광해군을 지지하는 북인은 임진왜란 이후 영창대군의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위시킵니다.

폐모 사건에 반발해 서인과 남인이 인조반정을 일으키게 되고, 북인이 숙청당합니다. 그 후 이괄의 난으로 북인이 또 숙청되면서 북인은 정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고, 서인과 남인 세력만 남게 됩니다.

남은 건 오직 '서인'

이제 서인과 남인은 북벌론과 예송논쟁으로 집권과 실각을 반복하다가 숙종 때 환국 정쟁, 특히 허적 유악사건과 장희빈 사사 등과 함께 남인이 완전히 실각하게 됩니다.

노론 VS 소론

남인 처벌 문제로 서인이 다시 분열합니다. 강경파가 '노론', 온건파가 '소론'으로 나뉩니다. 소론은 경종, 노론은 영조(연잉군)를 지지합니다. 영조는 탕평을 추구해 노론과 소론이 공존하긴 했지만, 노론이 더 우세했습니다.

노론은 사도세자 처리의 정당성 문제로 다시 '벽파'와 '시파'로 나뉘게 됩니다. 먼저 벽파가 세력을 얻지만 결국 시파의 소수 가문에 힘이 몰리면서 19세기 세도정치로 이어집니다.

조선의 붕당은 나라 이익보다 자기 붕당의 이익을 우선해 단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붕당 간 경쟁을 통해 견제가 가능했고, 학문 연구가 활발해졌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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