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동산① 돌투성이 곶자왈에 물이 고인 까닭은?

입력 2017.07.0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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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한 쪽에 물이 고였습니다. 여느 숲이라면 이런 연못이 그리 특별하지 않겠지만 여기는 제주 곶자왈, 선흘리 동백동산입니다. 바닥이 흙이 아닙니다.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쪼개지면서 형성된 현무암 암석지대입니다. 비가 오더라도 돌 틈으로 빗물이 순식간에 빠져 내려갑니다. 이 때문에 곶자왈은 넓은 연못이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돌무더기 위에서도 나무들은 울창하게 자랍니다. 돌 사이로 억센 뿌리를 뻗습니다. 하지만 뿌리를 깊이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바람이나 눈의 무게에 못 이겨 쓰러지곤 합니다. 넘어진 나무의 뿌리는 품고 있던 돌들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돌 때문에 농지로 활용할 수도 없어 숲으로 남았습니다. 이런 돌투성이 위에 어떻게 습지가 만들어졌을까요?

곶자왈의 특징인 현무암 바위. 곶자왈의 특징인 현무암 바위.


만 년 전, 제주는 곳곳에서 화산이 폭발했습니다.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은 장소마다 각각 성분과 밀도가 달랐습니다. 어떤 용암은 끈적끈적, 밀가루 반죽처럼 점성이 높습니다. 식을 때 조각조각 부서지고 표면도 거칩니다. 이런 용암을 아아 용암이라고 합니다. 화산이 많은 하와이의 토착어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판 형태로 굳은 용암. 제주 선흘리 동백동산.판 형태로 굳은 용암. 제주 선흘리 동백동산.

반면에 마치 토마토 주스처럼 점성이 낮은 용암도 있습니다. 파호이호이 용암이라고 부릅니다. 빠르게 흘러내리고 굳을 때 표면이 상대적으로 매끄럽습니다. 표면이 식은 뒤에도 내부에는 용암이 흘러 동굴도 많이 만듭니다. 만장굴과 김녕굴이 대표적입니다. 용암이 식을 때 부서지지 않은 채 넓은 판 형태로 남아있곤 합니다. 그 위에 물이 고입니다.

판 형태로 굳은 파호이호이 용암의 단면.판 형태로 굳은 파호이호이 용암의 단면.

제주의 다른 곶자왈은 아아 용암만 흘렀거나 파호이호이 용암이 일부 섞였습니다. 하지만 동백동산은 유일하게 파호이호이 용암만으로 형성됐습니다. 탐방로를 걷다 보면 판 형태로 식은 용암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습지와 동굴이 많습니다. 제주 전체 면적 가운데 곶자왈 지대는 6%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중에서도 선흘 곶자왈은 묽은 용암으로 형성된 독특한 곳입니다.

동백동산 먼물깍.동백동산 먼물깍.

주민들이 이름을 지은 연못만도 백여 곳에 이릅니다. 위 연못은 '먼물깍'입니다. 마을에서 멀리 있다는 뜻인 '먼물'과 끄트머리라는 뜻의 '깍'이 더해진 이름입니다. 주민들이 식수를 얻기 위해 조성하거나 가축용으로 사용한 연못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식수를 얻기 위해 돌을 쌓은 연못 터식수를 얻기 위해 돌을 쌓은 연못 터

가축에게 물을 먹이던 연못.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가축에게 물을 먹이던 연못.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

동백동산은 이런 습지와 돌무더기가 어우러져 독특한 생태계를 이룹니다. 구멍이 많은 현무암은 거대한 지하수 저장고입니다. 빗물을 머금었다가 조금씩 내뿜습니다. 사시사철 80% 이상의 습도를 유지해줍니다. 국내 양치류의 80%가량이 곶자왈에서 발견되는 이유입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만 자라는 제주고사리삼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주고사리삼. 제주고사리삼.

양치류 군락.양치류 군락.

습지에서는 다양한 수생식물과 곤충, 양서 파충류가 서식합니다. 이들을 먹이로 하는 조류도 다양합니다. 식물이 390여 종, 곤충과 동물이 900여 종으로 제주의 아마존으로 불립니다. 곶자왈 자체의 특성에 습지까지 어우러져 생태적으로 탁월한 다양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낙엽으로 덮인 동백동산 탐방로. 낙엽으로 덮인 동백동산 탐방로.

이미 한여름의 더위를 보이는 유월, 동백동산에 들어서면 발길에 버석버석, 푹신한 낙엽이 밟힙니다. 살짝 바람이라도 불면 나무에서 우수수 낙엽이 날립니다. 가을도 아닌 6월, 초여름에 웬 낙엽일까요?

난대상록활엽수의 극상림인 동백동산.난대상록활엽수의 극상림인 동백동산.

가을에 잎을 떨구는 낙엽활엽수와 달리 상록활엽수는 4계절 내내 잎이 무성하게 푸릅니다. 그렇다고 상록활엽수의 나뭇잎이 늘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봄에 새잎이 돋아나 자라면 기존의 잎은 떨어집니다. 그러니 상록활엽수림은 5, 6월에 낙엽이 깔립니다. 동백동산은 난대상록활엽수의 극상림입니다.

동백나무동백나무

동백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름도 '동백동산'입니다. 하지만 숲 속에서는 정작 동백나무 대신 다른 나무들이 눈에 잘 띕니다. 덩치 큰 구실잣밤나무와 종가시나무, 후박나무, 황칠나무가 하늘로 쭉쭉 뻗어 있습니다. 동백나무는 상대적으로 키가 작습니다. 그런데도 왜 '동백동산'일까요?


60년 때까지 주민들은 동백동산에서 땔감을 구했습니다. 커다란 나무도 잘랐습니다. 하지만 동백나무는 자르지 않았습니다. 동백나무 씨앗에서 추출하는 기름, 동백기름을 비싼 값에 팔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동백나무만 많이 남아 '동백동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 뒤 땔감을 하지 않으면서 동백 대신 다른 나무들이 더 크게 자랐습니다. 불과 40여 년 만에 극상림의 형태로 변했습니다. 한 아름에 안기 어려운 커다란 나무들도 실은 수령이 40여 년에 불과합니다. 곶자왈의 탁월한 생태 복원력을 보여줍니다.

제주 선흘리 동백동산 탐방로 입구.제주 선흘리 동백동산 탐방로 입구.

동백동산은 생태적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2010년 환경부 습지보호지역, 2011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습니다. 탐방객도 꾸준히 늘어 지난 2014년 만 8천여 명에서 2016년에는 2만 9천여 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주민들의 일자리와 소득도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과는 동백동산의 생태적 우수성 덕분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동백동산을 소중히 여기는 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동백동산을 지킨 선흘리 주민의 노력을 살펴봅니다.

자료제공: 고제량 제주생태관광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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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백동산① 돌투성이 곶자왈에 물이 고인 까닭은?
    • 입력 2017-07-02 09:01:48
    취재K
숲 속 한 쪽에 물이 고였습니다. 여느 숲이라면 이런 연못이 그리 특별하지 않겠지만 여기는 제주 곶자왈, 선흘리 동백동산입니다. 바닥이 흙이 아닙니다.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쪼개지면서 형성된 현무암 암석지대입니다. 비가 오더라도 돌 틈으로 빗물이 순식간에 빠져 내려갑니다. 이 때문에 곶자왈은 넓은 연못이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돌무더기 위에서도 나무들은 울창하게 자랍니다. 돌 사이로 억센 뿌리를 뻗습니다. 하지만 뿌리를 깊이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바람이나 눈의 무게에 못 이겨 쓰러지곤 합니다. 넘어진 나무의 뿌리는 품고 있던 돌들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돌 때문에 농지로 활용할 수도 없어 숲으로 남았습니다. 이런 돌투성이 위에 어떻게 습지가 만들어졌을까요?

곶자왈의 특징인 현무암 바위.

만 년 전, 제주는 곳곳에서 화산이 폭발했습니다.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은 장소마다 각각 성분과 밀도가 달랐습니다. 어떤 용암은 끈적끈적, 밀가루 반죽처럼 점성이 높습니다. 식을 때 조각조각 부서지고 표면도 거칩니다. 이런 용암을 아아 용암이라고 합니다. 화산이 많은 하와이의 토착어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판 형태로 굳은 용암. 제주 선흘리 동백동산.
반면에 마치 토마토 주스처럼 점성이 낮은 용암도 있습니다. 파호이호이 용암이라고 부릅니다. 빠르게 흘러내리고 굳을 때 표면이 상대적으로 매끄럽습니다. 표면이 식은 뒤에도 내부에는 용암이 흘러 동굴도 많이 만듭니다. 만장굴과 김녕굴이 대표적입니다. 용암이 식을 때 부서지지 않은 채 넓은 판 형태로 남아있곤 합니다. 그 위에 물이 고입니다.

판 형태로 굳은 파호이호이 용암의 단면.
제주의 다른 곶자왈은 아아 용암만 흘렀거나 파호이호이 용암이 일부 섞였습니다. 하지만 동백동산은 유일하게 파호이호이 용암만으로 형성됐습니다. 탐방로를 걷다 보면 판 형태로 식은 용암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습지와 동굴이 많습니다. 제주 전체 면적 가운데 곶자왈 지대는 6%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중에서도 선흘 곶자왈은 묽은 용암으로 형성된 독특한 곳입니다.

동백동산 먼물깍.
주민들이 이름을 지은 연못만도 백여 곳에 이릅니다. 위 연못은 '먼물깍'입니다. 마을에서 멀리 있다는 뜻인 '먼물'과 끄트머리라는 뜻의 '깍'이 더해진 이름입니다. 주민들이 식수를 얻기 위해 조성하거나 가축용으로 사용한 연못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식수를 얻기 위해 돌을 쌓은 연못 터
가축에게 물을 먹이던 연못.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
동백동산은 이런 습지와 돌무더기가 어우러져 독특한 생태계를 이룹니다. 구멍이 많은 현무암은 거대한 지하수 저장고입니다. 빗물을 머금었다가 조금씩 내뿜습니다. 사시사철 80% 이상의 습도를 유지해줍니다. 국내 양치류의 80%가량이 곶자왈에서 발견되는 이유입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만 자라는 제주고사리삼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주고사리삼.
양치류 군락.
습지에서는 다양한 수생식물과 곤충, 양서 파충류가 서식합니다. 이들을 먹이로 하는 조류도 다양합니다. 식물이 390여 종, 곤충과 동물이 900여 종으로 제주의 아마존으로 불립니다. 곶자왈 자체의 특성에 습지까지 어우러져 생태적으로 탁월한 다양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낙엽으로 덮인 동백동산 탐방로.
이미 한여름의 더위를 보이는 유월, 동백동산에 들어서면 발길에 버석버석, 푹신한 낙엽이 밟힙니다. 살짝 바람이라도 불면 나무에서 우수수 낙엽이 날립니다. 가을도 아닌 6월, 초여름에 웬 낙엽일까요?

난대상록활엽수의 극상림인 동백동산.
가을에 잎을 떨구는 낙엽활엽수와 달리 상록활엽수는 4계절 내내 잎이 무성하게 푸릅니다. 그렇다고 상록활엽수의 나뭇잎이 늘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봄에 새잎이 돋아나 자라면 기존의 잎은 떨어집니다. 그러니 상록활엽수림은 5, 6월에 낙엽이 깔립니다. 동백동산은 난대상록활엽수의 극상림입니다.

동백나무
동백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름도 '동백동산'입니다. 하지만 숲 속에서는 정작 동백나무 대신 다른 나무들이 눈에 잘 띕니다. 덩치 큰 구실잣밤나무와 종가시나무, 후박나무, 황칠나무가 하늘로 쭉쭉 뻗어 있습니다. 동백나무는 상대적으로 키가 작습니다. 그런데도 왜 '동백동산'일까요?


60년 때까지 주민들은 동백동산에서 땔감을 구했습니다. 커다란 나무도 잘랐습니다. 하지만 동백나무는 자르지 않았습니다. 동백나무 씨앗에서 추출하는 기름, 동백기름을 비싼 값에 팔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동백나무만 많이 남아 '동백동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 뒤 땔감을 하지 않으면서 동백 대신 다른 나무들이 더 크게 자랐습니다. 불과 40여 년 만에 극상림의 형태로 변했습니다. 한 아름에 안기 어려운 커다란 나무들도 실은 수령이 40여 년에 불과합니다. 곶자왈의 탁월한 생태 복원력을 보여줍니다.

제주 선흘리 동백동산 탐방로 입구.
동백동산은 생태적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2010년 환경부 습지보호지역, 2011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습니다. 탐방객도 꾸준히 늘어 지난 2014년 만 8천여 명에서 2016년에는 2만 9천여 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주민들의 일자리와 소득도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과는 동백동산의 생태적 우수성 덕분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동백동산을 소중히 여기는 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동백동산을 지킨 선흘리 주민의 노력을 살펴봅니다.

자료제공: 고제량 제주생태관광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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