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후쿠시마 ‘방사능’ 멧돼지…변종·외래종 출현

입력 2017.07.06 (11:14) 수정 2017.07.0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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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후쿠시마 ‘방사능’ 멧돼지…변종·외래종 출현

[특파원리포트] 후쿠시마 ‘방사능’ 멧돼지…변종·외래종 출현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를 덮친 강진과 지진해일은 그 자체로도 지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 하지만 지진과 지진해일이 비교적 단발성(?) 발생 사안이라 한다면 후쿠시마 주민들은 그 후 원전 폭발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 사례 자체가 몇 차례 되지 않는, 후유증이 계속 지속되는 미증유의 재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해당 지역에서 당장 살 수 없어 피난을 떠나야 하고, 몇십 년이 흘러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은 방사능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기조차 힘든 고단한 삶이 이어지게 됐다.

지난달 취재진이 찾은 후쿠시마 현 나미에마치와 토미오카마치. 모두 후쿠시마 원전에서 수 km 밖에 떨어지지 않아 주민들이 모두 피난을 떠나야 했던 곳들이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이들 마을에서는 이른바 방사능 오염 제염 작업이 진행됐다. 가옥과 경작지 등의 방사능 정도를 측정해 그 위에 쌓여있는 흙을 거둬내는 작업인데, 제염작업을 위한 작업자들만 마을에 출입이 가능했을 뿐 마을은 인적이 없는 유령 마을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곳을 채운 것은 동물들이었다.

유유자적 멧돼지. 그리고 세슘

나미에마치를 관통하는 제방 둑에서 야생동물을 찍기 위해 차를 세우고 잠복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순간, 촬영기자가 급하게 이름을 불렀다.

방금 멧돼지가 앞에 나타나더니 쓱 사람을 흘려보고는 제방에서 강 쪽으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제방 아래 강변은 사람 키 높이는 돼 보이는 갈대로 뒤덮여 있는 곳. 혹, 멧돼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갈대의 움직임을 살폈지만 한번 사라진 녀석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미에마치에서 멧돼지의 흔적을 찾기는 쉽고도 쉬운 일이었다. 지나가다 정원을 치우고 있는 마을 주민의 집에 들어가 보면 숱하게 찍힌 발자국과 대면할 수 있고, 강변 모래톱에는 어제는 없던 새로운 멧돼지 가족의 발자국이 다음날이면 나타나곤 한다.

나미에마치에 출몰하는 것은 멧돼지뿐이 아니다.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이노부타'. 멧돼지를 가리키는 일본어인 '이노시시'와 돼지를 뜻하는 '부타'의 합성어다. 집에서 키우던 멧돼지들이 탈출해 야생 멧돼지와 교미해 나타난 이른바 후쿠시마식 변종이다.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지역에서 방사능이 동물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는 오쿠다 교수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이들 이노부타의 출연을 걱정하고 있었다. 애초 명확히 구분됐던 멧돼지와 집돼지의 경계가 무너지고 변종이 생기면서, 순수한 멧돼지 유전자가 사라질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우려다.


이미 후쿠시마에서 잡힌 멧돼지들에게서는 상당량의 세슘이 검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사능 오염에 더해 유전자 오염이라는 근원적인 생태 파괴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부작용이다.

새로운 종의 출연...'라쿤','흰코사슴고양이'

원전폭발 전 후쿠시마 나미에마치 부근에서 가장 많이 출몰하는 동물은 멧돼지였다. 그리고 일본어로 '타누키'라고 하는 너구리도 마을 주변에 서식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비운 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예상외로 '아메리카 너구리(라쿤)'와 '흰코사슴고양이' 등 외래종이었다.

두 종류 모두 집 천장 등에 자리 잡고 새끼를 잘 키우는 습성이 있는데, 후쿠시마 원전 근처의 빈집들은 이들 외래종에는 최고의 서식처를 제공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와도 천장에서 나는 소리에 생활에 지장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라쿤과 흰코사향고양이는 널리 퍼져 있는 상태였다.

1년에 800여 마리 살처분...동물들에게 찾아온 비극

후쿠시마 동물들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의 존재를 모르거나 무시한다는 거다. 벚꽃 축제가 열리는 장소에 불쑥 나타난 여우가 유유히 사람 사이를 지나가고, 100kg은 되는 멧돼지가 꼬리를 흔들며 사람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사람들이 돌아와야 할 마을을 활보하는 멧돼지는 어쩐지 위협적인(?) 존재다. 후쿠시마 사고 원전 인근 마을 일부 지역에 피난이 해제돼 지난 4월부터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야생 동물 문제는 방사능 오염과 함께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인간들이 생각해낸 것은 동물들을 잡아 처리하는 방안이었다. 피난 해제가 되기 전부터 본격화된 포획틀 설치와 동물 살처분.

2016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1년간 나미에마치 한 곳에서만 동물 구제 작업을 위한 덫에 걸려 처분된 동물이 837마리에 이른다. 멧돼지가 659마리로 압도적으로 많고, 아메리카 너구리/라쿤(95마리), 너구리(59마리), 흰코사향고양이(16마리), 원숭이(6마리) 등이다.


스스로 초래한 비극인 원전 폭발에 인간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인간이 떠난 빈자리를 동물들이 채웠지만, 사람이 다시 돌아오면서 동물들은 또 다른 비극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고통의 릴레이 같은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곳이 후쿠시마다.

원전 폭발로 사람과 동물의 경계가 무너진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상황이 빚어진 후쿠시마의 마을들의 이야기는 다시 쫓겨나갈 수밖에 없는 동물들의 슬픈 운명으로 결론 내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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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후쿠시마 ‘방사능’ 멧돼지…변종·외래종 출현
    • 입력 2017-07-06 11:14:21
    • 수정2017-07-06 11:14:52
    특파원 리포트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를 덮친 강진과 지진해일은 그 자체로도 지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 하지만 지진과 지진해일이 비교적 단발성(?) 발생 사안이라 한다면 후쿠시마 주민들은 그 후 원전 폭발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 사례 자체가 몇 차례 되지 않는, 후유증이 계속 지속되는 미증유의 재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해당 지역에서 당장 살 수 없어 피난을 떠나야 하고, 몇십 년이 흘러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은 방사능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기조차 힘든 고단한 삶이 이어지게 됐다.

지난달 취재진이 찾은 후쿠시마 현 나미에마치와 토미오카마치. 모두 후쿠시마 원전에서 수 km 밖에 떨어지지 않아 주민들이 모두 피난을 떠나야 했던 곳들이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이들 마을에서는 이른바 방사능 오염 제염 작업이 진행됐다. 가옥과 경작지 등의 방사능 정도를 측정해 그 위에 쌓여있는 흙을 거둬내는 작업인데, 제염작업을 위한 작업자들만 마을에 출입이 가능했을 뿐 마을은 인적이 없는 유령 마을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곳을 채운 것은 동물들이었다.

유유자적 멧돼지. 그리고 세슘

나미에마치를 관통하는 제방 둑에서 야생동물을 찍기 위해 차를 세우고 잠복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순간, 촬영기자가 급하게 이름을 불렀다.

방금 멧돼지가 앞에 나타나더니 쓱 사람을 흘려보고는 제방에서 강 쪽으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제방 아래 강변은 사람 키 높이는 돼 보이는 갈대로 뒤덮여 있는 곳. 혹, 멧돼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갈대의 움직임을 살폈지만 한번 사라진 녀석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미에마치에서 멧돼지의 흔적을 찾기는 쉽고도 쉬운 일이었다. 지나가다 정원을 치우고 있는 마을 주민의 집에 들어가 보면 숱하게 찍힌 발자국과 대면할 수 있고, 강변 모래톱에는 어제는 없던 새로운 멧돼지 가족의 발자국이 다음날이면 나타나곤 한다.

나미에마치에 출몰하는 것은 멧돼지뿐이 아니다.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이노부타'. 멧돼지를 가리키는 일본어인 '이노시시'와 돼지를 뜻하는 '부타'의 합성어다. 집에서 키우던 멧돼지들이 탈출해 야생 멧돼지와 교미해 나타난 이른바 후쿠시마식 변종이다.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지역에서 방사능이 동물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는 오쿠다 교수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이들 이노부타의 출연을 걱정하고 있었다. 애초 명확히 구분됐던 멧돼지와 집돼지의 경계가 무너지고 변종이 생기면서, 순수한 멧돼지 유전자가 사라질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우려다.


이미 후쿠시마에서 잡힌 멧돼지들에게서는 상당량의 세슘이 검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사능 오염에 더해 유전자 오염이라는 근원적인 생태 파괴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부작용이다.

새로운 종의 출연...'라쿤','흰코사슴고양이'

원전폭발 전 후쿠시마 나미에마치 부근에서 가장 많이 출몰하는 동물은 멧돼지였다. 그리고 일본어로 '타누키'라고 하는 너구리도 마을 주변에 서식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비운 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예상외로 '아메리카 너구리(라쿤)'와 '흰코사슴고양이' 등 외래종이었다.

두 종류 모두 집 천장 등에 자리 잡고 새끼를 잘 키우는 습성이 있는데, 후쿠시마 원전 근처의 빈집들은 이들 외래종에는 최고의 서식처를 제공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와도 천장에서 나는 소리에 생활에 지장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라쿤과 흰코사향고양이는 널리 퍼져 있는 상태였다.

1년에 800여 마리 살처분...동물들에게 찾아온 비극

후쿠시마 동물들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의 존재를 모르거나 무시한다는 거다. 벚꽃 축제가 열리는 장소에 불쑥 나타난 여우가 유유히 사람 사이를 지나가고, 100kg은 되는 멧돼지가 꼬리를 흔들며 사람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사람들이 돌아와야 할 마을을 활보하는 멧돼지는 어쩐지 위협적인(?) 존재다. 후쿠시마 사고 원전 인근 마을 일부 지역에 피난이 해제돼 지난 4월부터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야생 동물 문제는 방사능 오염과 함께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인간들이 생각해낸 것은 동물들을 잡아 처리하는 방안이었다. 피난 해제가 되기 전부터 본격화된 포획틀 설치와 동물 살처분.

2016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1년간 나미에마치 한 곳에서만 동물 구제 작업을 위한 덫에 걸려 처분된 동물이 837마리에 이른다. 멧돼지가 659마리로 압도적으로 많고, 아메리카 너구리/라쿤(95마리), 너구리(59마리), 흰코사향고양이(16마리), 원숭이(6마리) 등이다.


스스로 초래한 비극인 원전 폭발에 인간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인간이 떠난 빈자리를 동물들이 채웠지만, 사람이 다시 돌아오면서 동물들은 또 다른 비극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고통의 릴레이 같은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곳이 후쿠시마다.

원전 폭발로 사람과 동물의 경계가 무너진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상황이 빚어진 후쿠시마의 마을들의 이야기는 다시 쫓겨나갈 수밖에 없는 동물들의 슬픈 운명으로 결론 내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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