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반복되는 산불…꼬박꼬박 뇌물 챙긴 공무원

입력 2017.07.0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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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날씨 탓에 올봄에는 유독 산불이 잦았다. 지난 5월 발생한 강릉·삼척 산불에 이어 지난달엔 서울 수락산에서도 불이 나 인근 주민들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수많은 소방대원과 구청 공무원, 자원봉사자의 노력으로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처럼 잦은 산불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이익 챙기기에 바빴던 산불 담당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있다. 그것도 6년 동안 꼬박꼬박 꾸준하게 챙겼다. 적게는 100만 원부터 많게는 2,000여만 원까지 액수도 다양하다. 주로 잔불을 끄는 용도로 쓰이는 등짐펌프를 제작하는 산불 진화 장비업체 납품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이다.

금품을 받은 대가로 공무원들은 납품업자들에게 일감을 몰아줬다. 문제는 여기에 쓰인 비용이 국가 예산이라는 점이다. 산림청에서 각 도청으로 지급되고 다시 시·군·구로 지급되는 산불진화장비 구입 예산을 공정한 심사 절차 없이 뇌물을 준 업체에 몰아준 셈이다.

산불 진화 장비 납품 비리에 휘말린 공무원 30명이 경찰에 적발됐다.산불 진화 장비 납품 비리에 휘말린 공무원 30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뇌물 챙기려고 진화장비 구매량까지 부풀리기도

경기도 A 시청 산불진화 담당 팀장 박 모(53) 씨 등 9개 지자체 공무원 23명은 지난 2010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노 모(56) 씨 등 산불진화 장비업체 납품업자 6명과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박 씨 등은 실제 구매량보다 더 많은 장비를 구매한 것처럼 속인 뒤 차액을 돌려받거나 뇌물을 받는 방식으로 9천만 원 상당을 챙겼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정답은 부실한 감사 체계에 있다. 등짐펌프와 작업복 등 산불 진화 장비는 소모품으로 분류돼 2년에 한 번꼴로 시행되는 정기 재물조사 검사 대상에서 빠진다. 실사 검사가 없기 때문에 담당 공무원들은 서류만 간단히 조작해 구매량을 속일 수 있었다. 이들은 검수 조서를 꾸며 부풀린 구매량만큼의 장비가 실제로 들어온 것처럼 꾸몄다.

이들 외에 진화장비 납품 계약을 여러 개로 쪼개 노 씨 등이 운영하는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뇌물을 챙긴 2개 지자체 공무원 3명도 있다. 이들은 계약금액이 2천만 원 이하일 경우 경쟁입찰 계약이 아닌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

산불 진화 장비 뇌물수수 흐름도.산불 진화 장비 뇌물수수 흐름도.

'산불진화 커넥션'...로비 대상 리스트까지 만들어

노 씨 등 납품업자들은 산불 진화 담당 공무원들과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이들은 산불 진화 담당 공무원 워크숍에도 비공식적으로 참석하는 등 공무원들과 오랜 기간 친분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인맥을 쌓은 공무원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했다. 특히 2개 도청 공무원 4명으로부터는 진화장비와 관련한 예산편성 자료를 받아 챙겼다. 이 역시 전자정부법 위반에 해당되는 범죄였지만, 공무원들은 친분을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자료를 넘겼다. 자료에는 지자체별로 책정된 산불 진화 장비 구입 예산이 기재돼 있었다.

노 씨는 지자체별 장비 구입 예산을 토대로 로비 대상 리스트를 만들었다. 주로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일수록 책정된 예산이 많았기 때문에 산림이 많은 지역의 공무원들을 노렸다. 로비 표적이 된 공무원 중 일부는 뇌물을 받아 챙기는 데 그치지 않았다. 납품업자에게 술값 계산을 시키거나, 평소 이동할 때 차량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하는 등 갑질까지 일삼은 것이다.

경찰은 적발된 공무원 30명에 대해 해당 기관에 통보하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불구속 송치했다. 또 적발된 지자체 외의 다른 지자체의 진화 장비 납품 관련 비리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해 적발될 경우 엄정하게 처벌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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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마다 반복되는 산불…꼬박꼬박 뇌물 챙긴 공무원
    • 입력 2017-07-06 17:26:22
    취재K
건조한 날씨 탓에 올봄에는 유독 산불이 잦았다. 지난 5월 발생한 강릉·삼척 산불에 이어 지난달엔 서울 수락산에서도 불이 나 인근 주민들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수많은 소방대원과 구청 공무원, 자원봉사자의 노력으로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처럼 잦은 산불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이익 챙기기에 바빴던 산불 담당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있다. 그것도 6년 동안 꼬박꼬박 꾸준하게 챙겼다. 적게는 100만 원부터 많게는 2,000여만 원까지 액수도 다양하다. 주로 잔불을 끄는 용도로 쓰이는 등짐펌프를 제작하는 산불 진화 장비업체 납품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이다.

금품을 받은 대가로 공무원들은 납품업자들에게 일감을 몰아줬다. 문제는 여기에 쓰인 비용이 국가 예산이라는 점이다. 산림청에서 각 도청으로 지급되고 다시 시·군·구로 지급되는 산불진화장비 구입 예산을 공정한 심사 절차 없이 뇌물을 준 업체에 몰아준 셈이다.

산불 진화 장비 납품 비리에 휘말린 공무원 30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뇌물 챙기려고 진화장비 구매량까지 부풀리기도

경기도 A 시청 산불진화 담당 팀장 박 모(53) 씨 등 9개 지자체 공무원 23명은 지난 2010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노 모(56) 씨 등 산불진화 장비업체 납품업자 6명과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박 씨 등은 실제 구매량보다 더 많은 장비를 구매한 것처럼 속인 뒤 차액을 돌려받거나 뇌물을 받는 방식으로 9천만 원 상당을 챙겼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정답은 부실한 감사 체계에 있다. 등짐펌프와 작업복 등 산불 진화 장비는 소모품으로 분류돼 2년에 한 번꼴로 시행되는 정기 재물조사 검사 대상에서 빠진다. 실사 검사가 없기 때문에 담당 공무원들은 서류만 간단히 조작해 구매량을 속일 수 있었다. 이들은 검수 조서를 꾸며 부풀린 구매량만큼의 장비가 실제로 들어온 것처럼 꾸몄다.

이들 외에 진화장비 납품 계약을 여러 개로 쪼개 노 씨 등이 운영하는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뇌물을 챙긴 2개 지자체 공무원 3명도 있다. 이들은 계약금액이 2천만 원 이하일 경우 경쟁입찰 계약이 아닌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

산불 진화 장비 뇌물수수 흐름도.
'산불진화 커넥션'...로비 대상 리스트까지 만들어

노 씨 등 납품업자들은 산불 진화 담당 공무원들과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이들은 산불 진화 담당 공무원 워크숍에도 비공식적으로 참석하는 등 공무원들과 오랜 기간 친분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인맥을 쌓은 공무원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했다. 특히 2개 도청 공무원 4명으로부터는 진화장비와 관련한 예산편성 자료를 받아 챙겼다. 이 역시 전자정부법 위반에 해당되는 범죄였지만, 공무원들은 친분을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자료를 넘겼다. 자료에는 지자체별로 책정된 산불 진화 장비 구입 예산이 기재돼 있었다.

노 씨는 지자체별 장비 구입 예산을 토대로 로비 대상 리스트를 만들었다. 주로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일수록 책정된 예산이 많았기 때문에 산림이 많은 지역의 공무원들을 노렸다. 로비 표적이 된 공무원 중 일부는 뇌물을 받아 챙기는 데 그치지 않았다. 납품업자에게 술값 계산을 시키거나, 평소 이동할 때 차량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하는 등 갑질까지 일삼은 것이다.

경찰은 적발된 공무원 30명에 대해 해당 기관에 통보하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불구속 송치했다. 또 적발된 지자체 외의 다른 지자체의 진화 장비 납품 관련 비리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해 적발될 경우 엄정하게 처벌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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