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작가 한원 박석호 재조명 작업 활발
입력 2017.07.12 (15:32)
수정 2017.07.1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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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음울하고 어두운 느낌의 단조로운 청색 계열의 모노톤이 화면을 가득 지배하고 있는 한원 박석호 화백의 어부들이라는 작품이다. 고단하고 힘든 어촌의 일상을 그린 이 작품 처럼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특유의 조형 어법으로 화폭에 담아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박석호 화백의 작품에 대해 국립 현대 미술관장을 지낸 바 있는고 이경성 미술평론가는 "화가 박석호의 작품세계는 사실이라기 보다는 구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알맞는다. 그것은 객관적인 진실을 존중하되 눈에 비치는 그대로가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을 통한 자연의 긍정이기 때문이다." 라고 적었다.
평소 고 박석호 화백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생전에 스스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나의 그림은 좀 어두운 편이다. 어두운 항구나 폐선 부두의 선교와 을씨년스러운 마스트들의 윤곽을 즐겨 다룬 화면속에 나의 지성과 감성을 완전하게 쏟아 넣는다는 것은 내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큼중요하다. 그러므로 나의 작업은 자연의 대상을 소재로 빌린다는 것일 뿐 결코 그 자체를 그린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작업을 하면 할 수 록 고통을 더 느낀다."
고 한원 박석호화백(1919-1994)의 화업 한평생을 재조명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지난 1996년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대대적으로 열린데 이어 정문규 미술관에서는 올 가을 이번엔 그의 미공개 유작들을 중심으로 한 대형 회고전이 열릴 예정이다.
고 박석호 화백은 1919 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4대 독자인 부친 밑에서 가난하기는 했으나 선비적 기풍이 강한 가문의 분위기에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홍대에 입학한 이후에는 수화 김환기 이봉상 유영국 남관등 한국미술계의 거목이라 고 할 수 있는선배 화가들과 교류하며 작품세계의 지평을 넓혀 나갔다.
1967년 8월 어느 무더운 뉴욕의 여름날 서울 박석호 화백의 안부를 묻는 편지에는 이제부터 120호 대작을 시작해 보려 한다며 어차피 예술이란 자기의 신앙일 수 밖에 없다고 적는 수화 김환기의 자기 고백이 이채롭다.
1992년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1년 반여의 투병 생활끝에 94년 5월 임종을 맞은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북한산 비봉 자락에 뿌려 졌으며 올 가을 그를 회고 하는 작품전에는 그가 남긴 몇 안되는 초기 누드 작품들로 부터 서민들의 고된 삶의 애환이 담긴 한국적 정서가 짙게 베인 작품들까지 또 기다리는 사람들과 희망 등 완결을 보지 못한 그의 유작들이 대거 미술 애호가들의 품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박석호 화백의 작품에 대해 국립 현대 미술관장을 지낸 바 있는고 이경성 미술평론가는 "화가 박석호의 작품세계는 사실이라기 보다는 구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알맞는다. 그것은 객관적인 진실을 존중하되 눈에 비치는 그대로가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을 통한 자연의 긍정이기 때문이다." 라고 적었다.
평소 고 박석호 화백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생전에 스스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나의 그림은 좀 어두운 편이다. 어두운 항구나 폐선 부두의 선교와 을씨년스러운 마스트들의 윤곽을 즐겨 다룬 화면속에 나의 지성과 감성을 완전하게 쏟아 넣는다는 것은 내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큼중요하다. 그러므로 나의 작업은 자연의 대상을 소재로 빌린다는 것일 뿐 결코 그 자체를 그린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작업을 하면 할 수 록 고통을 더 느낀다."
고 한원 박석호화백(1919-1994)의 화업 한평생을 재조명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지난 1996년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대대적으로 열린데 이어 정문규 미술관에서는 올 가을 이번엔 그의 미공개 유작들을 중심으로 한 대형 회고전이 열릴 예정이다.
고 박석호 화백은 1919 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4대 독자인 부친 밑에서 가난하기는 했으나 선비적 기풍이 강한 가문의 분위기에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홍대에 입학한 이후에는 수화 김환기 이봉상 유영국 남관등 한국미술계의 거목이라 고 할 수 있는선배 화가들과 교류하며 작품세계의 지평을 넓혀 나갔다.
1961년 홍익대학교 시절 앞줄 왼쪽부터 김환기 한사람 건너 이경성, 김원 둘째줄 왼쪽 부터 이종무 , 김숙진 맨뒤가 고 박석호 화백
수화 김환기가 뉴욕에서 보내온 편지
1967년 8월 어느 무더운 뉴욕의 여름날 서울 박석호 화백의 안부를 묻는 편지에는 이제부터 120호 대작을 시작해 보려 한다며 어차피 예술이란 자기의 신앙일 수 밖에 없다고 적는 수화 김환기의 자기 고백이 이채롭다.
1992년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1년 반여의 투병 생활끝에 94년 5월 임종을 맞은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북한산 비봉 자락에 뿌려 졌으며 올 가을 그를 회고 하는 작품전에는 그가 남긴 몇 안되는 초기 누드 작품들로 부터 서민들의 고된 삶의 애환이 담긴 한국적 정서가 짙게 베인 작품들까지 또 기다리는 사람들과 희망 등 완결을 보지 못한 그의 유작들이 대거 미술 애호가들의 품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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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운의 작가 한원 박석호 재조명 작업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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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7-12 15:32:27
- 수정2017-07-13 09:42:25
어딘가 음울하고 어두운 느낌의 단조로운 청색 계열의 모노톤이 화면을 가득 지배하고 있는 한원 박석호 화백의 어부들이라는 작품이다. 고단하고 힘든 어촌의 일상을 그린 이 작품 처럼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특유의 조형 어법으로 화폭에 담아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박석호 화백의 작품에 대해 국립 현대 미술관장을 지낸 바 있는고 이경성 미술평론가는 "화가 박석호의 작품세계는 사실이라기 보다는 구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알맞는다. 그것은 객관적인 진실을 존중하되 눈에 비치는 그대로가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을 통한 자연의 긍정이기 때문이다." 라고 적었다.
평소 고 박석호 화백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생전에 스스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나의 그림은 좀 어두운 편이다. 어두운 항구나 폐선 부두의 선교와 을씨년스러운 마스트들의 윤곽을 즐겨 다룬 화면속에 나의 지성과 감성을 완전하게 쏟아 넣는다는 것은 내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큼중요하다. 그러므로 나의 작업은 자연의 대상을 소재로 빌린다는 것일 뿐 결코 그 자체를 그린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작업을 하면 할 수 록 고통을 더 느낀다."
고 한원 박석호화백(1919-1994)의 화업 한평생을 재조명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지난 1996년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대대적으로 열린데 이어 정문규 미술관에서는 올 가을 이번엔 그의 미공개 유작들을 중심으로 한 대형 회고전이 열릴 예정이다.
고 박석호 화백은 1919 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4대 독자인 부친 밑에서 가난하기는 했으나 선비적 기풍이 강한 가문의 분위기에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홍대에 입학한 이후에는 수화 김환기 이봉상 유영국 남관등 한국미술계의 거목이라 고 할 수 있는선배 화가들과 교류하며 작품세계의 지평을 넓혀 나갔다.
1967년 8월 어느 무더운 뉴욕의 여름날 서울 박석호 화백의 안부를 묻는 편지에는 이제부터 120호 대작을 시작해 보려 한다며 어차피 예술이란 자기의 신앙일 수 밖에 없다고 적는 수화 김환기의 자기 고백이 이채롭다.
1992년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1년 반여의 투병 생활끝에 94년 5월 임종을 맞은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북한산 비봉 자락에 뿌려 졌으며 올 가을 그를 회고 하는 작품전에는 그가 남긴 몇 안되는 초기 누드 작품들로 부터 서민들의 고된 삶의 애환이 담긴 한국적 정서가 짙게 베인 작품들까지 또 기다리는 사람들과 희망 등 완결을 보지 못한 그의 유작들이 대거 미술 애호가들의 품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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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 기자 dukha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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