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중2 중간고사에 미적분 출제…학교가 선행학습 조장

입력 2017.07.13 (08:50) 수정 2017.07.1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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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중2 중간고사에 미적분 출제…학교가 선행학습 조장

[취재후] 중2 중간고사에 미적분 출제…학교가 선행학습 조장

대치동 A중학교 중간고사, 일반 학생 줬더니

경기도 고양시에서 학교 수업만을 열심히 듣는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학원은 다니지 않지만, 수학에 대한 관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학생들이었습니다. 3명의 학생에게 한 시험문제를 풀어보도록 했습니다. '사교육 1번지' 서울 대치동에 있는 중학교에서 출제한 중간고사 시험지였습니다.

이 학생들은 10번대 문제에서 한 문제를 푸는데 3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2명은 완전히 포기했고, 1명 학생은 30분이 지나서야 문제 하나의 실마리를 잡은 겁니다. 5지선다 20문제와 서술형문제 3문제를 50분만에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문제를 맞췄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문제는 중학교 2학년 때 배우는 합차공식을 통해서 풀도록 하는 문제라고 교사는 출제했습니다. 하지만, 곱셈공식을 과도하게 활용하도록 문제를 비틀어놨습니다. 또한, 고2 미적분Ⅱ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지수방정식과 지수함수 개념을 빌어왔습니다.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지수법칙'만을 배우도록 돼 있습니다. 교육부가 고시한 '수학과 교육과정'을 보겠습니다. '지수법칙은 지수가 자연수인 범위에서 단항식의 곱셈과 나눗셈을 하는 데 필요한 정도로 다룬다'고 돼 있습니다. 엄연히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입니다. 합차공식도 제곱의 경우만 다루라고 돼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었던 중학교 2학년 김지우 학생은 "산 넘으면 산, 함정을 피하면 또 함정을 만나는 느낌이었다"고 해당 문제를 평가했습니다.

중학교 수학교사 A씨는 이 문제에 대해 "10여년 전 과학고 입시에서 보던 문제"라며 "해당 문제를 한 번도 사교육 등을 통해 풀어보지 않고 시험에서 마주친 학생들은 풀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학원을 가지 않고선 사실상 수학 100점을 포기해야 하는 시험지인 겁니다.


3개 중학교 시험지 분석했더니 모두 선행교육규제법 위반

중학교 중간고사 문제에 이런 '초고난도' 문제가 등장하는 건 사실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런 문제는 이미 많은 학교에서 출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KBS 취재진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3개 중학교 2~3학년 2017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지를 분석했습니다. 이른바 '사교육 과열지구'라고 불리는 서울 대치동, 서울 목동,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중학교였습니다.

6개 시험지가 모두 선행교육규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항수로 보면 138문제 중에 43개가 선행교육규제법을 위반한 문항이었습니다.

올해 1월에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18곳의 2016년 1학기 2, 3학년 수학 시험지 35개를 분석했습니다. 8개를 제외한 27개(77.1%)에서 선행교육을 유발하는 문항이 출제됐습니다. 32개(91.4%) 시험지에서는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없는 '극상' 문항이 출제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치동 수학전문강사의 고백…"무의미하다는 걸 안다"

이런 문제들은 학교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해선 대부분 학생들이 풀 수 없다는 게 공통된 지적입니다.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 개설된 반은 무엇을 가르칠까요. '미분과 적분Ⅰ', '미분과 적분Ⅱ'를 가르치는 반이 가장 일반적인 반이었습니다.

대치동 수학전문강사 김민하 씨를 만났습니다. 김 씨는 "양심때문에, 가르치면서도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김 씨는 "과도한 선행학습과 문제풀이 위주 교육방식이 눈 앞의 학생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가르치게 된다"면서 "능력이 있는 학생은 선행학습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또 "힘들어하는 학생에게 과도한 선행교육을 시킬 때마다 의미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끌고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교육에 몸 담고 있지만,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했으면 좋겠다"면서 "기계적인 수학 훈련이 줄어들 수 있게 시험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선행교육규제법' 있는데도…왜 유명무실?

'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교육규제법)'은 2014년 9월 도입된 법입니다. 이 법은 "학교 시험에서 학생이 배운 학교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여 평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법이 존재하는데도 교육과정범위를 벗어난 문제가 출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학고 등에서 수학교사로 있었던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는 "관행이다"고 말했습니다.

최 대표는 "이 법이 없을 때 관행처럼 출제하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본다"라고 분석한 겁니다.

교육당국에서도 선행학습 유발 문항에 대해 자체점검을 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수학과목에서 선행교육규제법을 위반한 학교는 단 5곳에 불과합니다. 각 시도교육청의 자체 분석에서 법 기준을 두루뭉술하게 들이대진 않았는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수학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예상입니다. 하지만, 뜻 모를 공식을 암기하게 하고, 기계적인 문제풀이로 빠르게 풀어내도록 요구하는 게 현재 수학 시험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수학 시험은 이젠 바뀔 때도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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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중2 중간고사에 미적분 출제…학교가 선행학습 조장
    • 입력 2017-07-13 08:50:22
    • 수정2017-07-13 19:49:56
    취재후·사건후
대치동 A중학교 중간고사, 일반 학생 줬더니

경기도 고양시에서 학교 수업만을 열심히 듣는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학원은 다니지 않지만, 수학에 대한 관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학생들이었습니다. 3명의 학생에게 한 시험문제를 풀어보도록 했습니다. '사교육 1번지' 서울 대치동에 있는 중학교에서 출제한 중간고사 시험지였습니다.

이 학생들은 10번대 문제에서 한 문제를 푸는데 3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2명은 완전히 포기했고, 1명 학생은 30분이 지나서야 문제 하나의 실마리를 잡은 겁니다. 5지선다 20문제와 서술형문제 3문제를 50분만에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문제를 맞췄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문제는 중학교 2학년 때 배우는 합차공식을 통해서 풀도록 하는 문제라고 교사는 출제했습니다. 하지만, 곱셈공식을 과도하게 활용하도록 문제를 비틀어놨습니다. 또한, 고2 미적분Ⅱ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지수방정식과 지수함수 개념을 빌어왔습니다.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지수법칙'만을 배우도록 돼 있습니다. 교육부가 고시한 '수학과 교육과정'을 보겠습니다. '지수법칙은 지수가 자연수인 범위에서 단항식의 곱셈과 나눗셈을 하는 데 필요한 정도로 다룬다'고 돼 있습니다. 엄연히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입니다. 합차공식도 제곱의 경우만 다루라고 돼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었던 중학교 2학년 김지우 학생은 "산 넘으면 산, 함정을 피하면 또 함정을 만나는 느낌이었다"고 해당 문제를 평가했습니다.

중학교 수학교사 A씨는 이 문제에 대해 "10여년 전 과학고 입시에서 보던 문제"라며 "해당 문제를 한 번도 사교육 등을 통해 풀어보지 않고 시험에서 마주친 학생들은 풀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학원을 가지 않고선 사실상 수학 100점을 포기해야 하는 시험지인 겁니다.


3개 중학교 시험지 분석했더니 모두 선행교육규제법 위반

중학교 중간고사 문제에 이런 '초고난도' 문제가 등장하는 건 사실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런 문제는 이미 많은 학교에서 출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KBS 취재진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3개 중학교 2~3학년 2017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지를 분석했습니다. 이른바 '사교육 과열지구'라고 불리는 서울 대치동, 서울 목동,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중학교였습니다.

6개 시험지가 모두 선행교육규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항수로 보면 138문제 중에 43개가 선행교육규제법을 위반한 문항이었습니다.

올해 1월에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18곳의 2016년 1학기 2, 3학년 수학 시험지 35개를 분석했습니다. 8개를 제외한 27개(77.1%)에서 선행교육을 유발하는 문항이 출제됐습니다. 32개(91.4%) 시험지에서는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없는 '극상' 문항이 출제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치동 수학전문강사의 고백…"무의미하다는 걸 안다"

이런 문제들은 학교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해선 대부분 학생들이 풀 수 없다는 게 공통된 지적입니다.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 개설된 반은 무엇을 가르칠까요. '미분과 적분Ⅰ', '미분과 적분Ⅱ'를 가르치는 반이 가장 일반적인 반이었습니다.

대치동 수학전문강사 김민하 씨를 만났습니다. 김 씨는 "양심때문에, 가르치면서도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김 씨는 "과도한 선행학습과 문제풀이 위주 교육방식이 눈 앞의 학생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가르치게 된다"면서 "능력이 있는 학생은 선행학습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또 "힘들어하는 학생에게 과도한 선행교육을 시킬 때마다 의미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끌고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교육에 몸 담고 있지만,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했으면 좋겠다"면서 "기계적인 수학 훈련이 줄어들 수 있게 시험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선행교육규제법' 있는데도…왜 유명무실?

'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교육규제법)'은 2014년 9월 도입된 법입니다. 이 법은 "학교 시험에서 학생이 배운 학교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여 평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법이 존재하는데도 교육과정범위를 벗어난 문제가 출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학고 등에서 수학교사로 있었던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는 "관행이다"고 말했습니다.

최 대표는 "이 법이 없을 때 관행처럼 출제하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본다"라고 분석한 겁니다.

교육당국에서도 선행학습 유발 문항에 대해 자체점검을 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수학과목에서 선행교육규제법을 위반한 학교는 단 5곳에 불과합니다. 각 시도교육청의 자체 분석에서 법 기준을 두루뭉술하게 들이대진 않았는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수학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예상입니다. 하지만, 뜻 모를 공식을 암기하게 하고, 기계적인 문제풀이로 빠르게 풀어내도록 요구하는 게 현재 수학 시험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수학 시험은 이젠 바뀔 때도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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