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취득세의 함정…우리는 정말 ‘탈세’했을까?

입력 2017.07.15 (09:10) 수정 2017.07.1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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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취득세의 함정…우리는 정말 ‘탈세’했을까?

[취재후] 취득세의 함정…우리는 정말 ‘탈세’했을까?

주호영, 정운찬, 진수희, 양건, 문재인, 안철수, 유정복, 윤병세, 임종룡, 유일호, 황교안, 김상조... 이분들의 공통점이 뭘까요?

공직(후보)자라는 것 말고는, 이념적 성향도, 전문 분야도 제각각이어서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 보이는데요, 부동산을 사면서 이른바 '다운계약서(가짜 검인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 취득세 탈루 의혹과 도덕성 논란이 제기됐던 분들입니다.

최근 크게 주목을 받은 인물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었죠. 1999년 1억 7,550만 원에 서울 목동 아파트를 사면서 구청에는 5,000만 원에 구매했다는 계약서를 제출한 사실이 지난달 후보자 청문회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만큼 취득세를 덜 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 위원장은 "당시 관행이었다. 송구하다"고 사과했습니다.

편법 상속 등 재벌의 부도덕성을 오랫동안 질타해왔고 외부 강연료를 자진해서 덜 받을 정도로 청렴하다고 알려진 인물이었기에 많은 사람이 당혹스러워했습니다.

김 위원장 사례와 같은 취득세 탈루 의혹은 공직자 청문회의 단골 메뉴입니다. 2006년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가 의무화된 뒤로, 위에 거론한 인물들 외에도 수많은 공직 후보자가 이 문제로 도덕성에 흠집이 났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지난 10년간 이 문제를 대하는 정치권의 논리가 자신의 처지에 따라 수시로 바뀌어왔다는 겁니다.

야당이었을 때는 여당이 내세운 공직 후보자가 "취득세를 탈루했다. 부도덕하다"고 비판하고, 여당이 되면 같은 행위에 대해 "관행이었다. 불법은 아니었다"고 옹호했습니다. 정치권이 '내로남불'을 반복하는 사이에 국민들 사이에서는 "진보든 보수든 다 썪었다. 깨끗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식의 냉소만 커졌습니다.

공직 후보자 청문회마다 빠짐없이 등장했고 앞으로도 반복될 소지가 큰 취득세 탈루 논쟁, 그 역사와 실체적 진실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정권 따라 바뀌는 논리...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취득세 탈루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건 이명박 정부 때부터입니다. 2008년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에서만 18명에게서 다운계약서 작성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야당들은 "취득세를 탈루한 것이다, 가짜 계약서를 쓴 것 자체로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특히 국세청장과 법무장관, 감사원장 등 세정이나 법질서와 연관된 공직 후보자들은 더 큰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대선이 다가오자 상황이 반전됩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부인 김미경 교수가 2001년 사들인 아파트의 취득세 신고를 하면서 다운계약서를 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뒤이어,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도 부인 김정숙 여사 명의로 빌라를 사면서 구매가격을 낮게 신고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 새누리당이 썼던 방어 논리를 가져다 썼고, 새누리당은 과거 민주당이 썼던 공격 논리를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대선이 끝나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상황은 다시 반전됐습니다. 임기 동안 공직 후보자 15명이 취득세 탈루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공격 논리도, 방어 논리도 여전히 같았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처지가 또 한 번 바뀌었습니다. 첫 장관급 인사에서 김상조 후보자를 비롯해 안경환(법무), 조대엽(노동) 후보자 등에 대해 야당이 다운계약서 작성 사실을 거론하며 도덕성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지방세법 111조...'취득당시 가액'의 수수께끼

이렇게 10년이 다 되도록 말 바꾸기가 되풀이되는 이유가 뭘까요? 정치권의 공방만 듣다 보면, 다운계약서 신고가 위법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고 세금을 탈루했는지 안 했는지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 의문을 풀려면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가 의무화된 2006년 이전의 지방세법 111조를 들여다보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제1항의 '취득당시의 가액'이라는 표현에서 혼란이 시작됩니다.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해석(1)
'취득당시의 가액'은 '실제 거래가액'을 의미한다.
'취득당시의 가액'이라는 표현 자체가
언어적으로, 상식적으로 그 뜻을 담고 있지 않은가?

해석(2)
'취득당시의 가액'은 '취득자가 신고한 가액'을 의미한다.
2항과 결합해보면, 'A는 B이며, B는 C다'라는 형식을
이용해 '취득당시의 가액'이 '신고 가액'임을
정의하고 있지 않은가?

"실거래가 알아도 추징 못 한다"...대법원 판결이 왜 이래?

법적으로 어떤 해석이 맞을까요? 2006년 내려진 대법원 판결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남성이 부동산 취득신고를 하면서 취득가액을 시가표준액 수준으로 써냈습니다. 서울 도봉구청이 계약서를 통해 실제 가액을 파악한 뒤 취득세를 더 내라고 합니다. 소송이 붙었습니다.

대법원은, 놀랍게도,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취득가액을 낮게 신고한 사람의 손을 들어줍니다. 도봉구청이 실제 계약서를 근거로 취득세를 부과한 것을 오히려 '위법'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건전한 상식으로 보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판결입니다. 납세자가 다운계약서를 써서 취득세를 적게 낸 사실을 담당 기관이 밝혀내서 세금을 추징하는 행위가 위법이라니요...

대법원은 그렇게 판단한 이유로 지방세법 111조의 취지가 다음과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위 (2)의 해석처럼, 지방세법에 등장하는 '취득당시의 가액'은 '납세자가 신고한 금액'이며, 그 신고 금액이 시가표준액을 넘기만 하면 실거래가액이 얼마로 밝혀지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판정한 겁니다.

그 이듬해 서울행정법원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놓습니다. 나아가, 지방세법 111조가 실거래가와 관계없이 시가표준액을 취득세 과표로 삼도록 규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2006년 이전까지는 정부가 실거래가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시가표준액을 기준으로 취득세를 내도록 법을 설계했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정말 취득세를 덜 냈을까?...세율의 함정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 시절 정부가 취득세 과표로 규정한 시가표준액은 당시 실거래가의 20~30%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시가표준액을 기준으로 취득세를 낸 사람들은, 위법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세금을 정상적 수준 보다 70~80%나 덜 낸 걸까요? 그렇다면, 정부는 왜 시가표준액을 더 높이는 방법으로라도 이런 탈세를 막으려 하지 않았을까요? 그 해답은 세율에 있습니다.

4억 원짜리 국민주택규모 이하 아파트를 사서 취득세 신고를 한다고 가정해봅니다. 현재는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취득세를 내게 돼 있고, 취득세율(교육세 포함)은 1.1%이니 납부세액은 440만 원입니다.

2006년 이전에는 어땠을까요? 시가표준액이 실거래가의 25%였다고 가정할 경우 과표는 1억 원이 됩니다. 여기에 당시 취득세율 5.6%를 곱하면 560만 원을 취득세로 내야 합니다.


그 시절 4억 원짜리 집을 1억 원에 샀다고 신고했어도 우리 국민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취득세를 냈던 겁니다. 정부가 낮은 시가표준액을 고려해 5.6%라는 '터무니없는' 취득세율을 매겨놓았으니까요. 5.6%는 OECD 평균 취득세율의 4~5배 수준입니다.

만약 당시 지방세법 111조가 '취득세의 과세표준을 실거래가로 한다'고 규정했다면 4억짜리 집을 살 경우 취득세로 2천240만 원을 내야 했습니다. 약탈적 세금이라는 비난과 조세 저항을 부를 만한 액수죠.

그런 저항이 불거지지 않았던 것은 실제로 그렇게 세금을 낸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을 사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소유권 이전 절차를 법무사에게 위임했고, 법무사가 시가표준액 수준의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뒤 매수인과 매도인 명의의 도장까지 만들어 찍는 방식으로 취득신고가 이뤄졌습니다.

부동산 취득자는 법무사에게 관련 서류와 비용을 넘겨준 뒤 등기필증만 받으면 되는 시스템이었기에 그 중간 과정(신고용 다운계약서가 작성되고 본인 명의의 도장이 찍힌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2002년 어느 아파트 단지...'다운계약서 100%'의 추억

기자는 15년 전인 2002년 서울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 매수자들이 취득세 신고를 어떻게 했는지 취재해 보도한 바 있습니다. 2천4백 세대 규모에 입주 2년 차였던 그 단지에서는 매달 수십 건씩 매매가 이뤄졌습니다.

기자가 담당구청을 찾아 석 달 간의 계약서 100여 건을 들여다봤지만, 실거래가에 신고된 계약서는 한 건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구청에 제출된 모든 계약서가 '다운계약서'였던 겁니다.

법무사가 터무니없는 금액이 적힌 계약서를 들고 와도 담당 공무원은 취득세 신고가 가능하도록 검인 도장을 찍어줬습니다. 당시 기자가 담당 공무원에게 "직무유기 하는 게 아니냐"고 따져 묻자, "법 자체가 그렇게 돼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2002년 9월 30일 KBS 9시뉴스 보도 2002년 9월 30일 KBS 9시뉴스 보도

당시 거래가 가장 활발했던 전용면적 85㎡의 신고가액을 살펴보다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실거래가는 3억 4천만 원 안팎이었는데, 다운계약서에 쓰인 금액은 크게 1억 7천만 원과 9천만 원 안팎, 두 종류로 나뉘었습니다.

9천만 원은 해당 아파트의 시가표준액, 1억 7천만 원은 분양가격과 비슷한 액수였습니다. 지방세법의 취지를 제대로 알고 '독하게' 이용한 법무사는 분양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시가표준액을 거래가액으로 써냈고, '아무리 합법적이라도 그렇지, 분양가보다 두 배 오른 아파트를 어떻게 분양가의 절반에 샀다고 써내나' 싶었던 법무사는 분양가 수준으로 써낸 겁니다.

취재 과정에서 이 아파트를 3억 4천만 원에 산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은 실제 매매가격으로 계약서를 썼다며 "다들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더군요. 하지만 구청에서 확인해보니, 이 지인의 취득세 신고용 계약서에도 1억 7천만 원 정도가 적혀 있었습니다. 법무사가 관행적으로 고객의 막도장을 파서 별도의 '다운계약서'를 만든 사실 자체를 매매 당사자가 몰랐으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지요.

앞서 언급한 대로, 정부는 원래부터 낮은 시가표준액에 높은 세율을 곱하는 방식으로 세수 목표를 달성하도록 법을 설계했으니, 법무사가 9천만 원으로 신고해준 부동산의 매수인은 사실상 '정상적인' 세금을 낸 셈입니다.

그런데 법무사가 1억 7천만 원으로 신고한 부동산의 매수인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다운계약서를 써서 거래가액을 절반으로 속였으니 '부도덕하게' 세금을 덜 냈다고 비판해야 할까요? 아니면, 9천만 원만 써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1억 7천만 원을 써냈으니 남들보다 '더 양심적으로' 세금을 많이 냈다고 칭찬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취득세 탈루 문제를 살펴온 한국납세자연맹은, 이 난감한 질문과 관련해, 2012년 안철수 대선 후보 측 다운계약서 논란이 불거졌을 때 낸 보도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습니다.


10년 가까이 여야가 태도를 바꿔가며 공직 후보자들에게 '부도덕'의 올가미를 씌우고 있는 '다운계약서-취득세 탈루' 논란의 본질은 납세자의 도덕성 이슈가 아니라 국가의 '입법 미비'에 있다는 겁니다.

국가의 잘못이 부른 10년 공방...'도덕성 담론'은 건강한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보면, 실거래가 신고가 의무화된 2006년 이전의 지방세법은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취득세를 내는 과표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시가표준액과 실거래가액 사이에서 납세자가 알아서 내도록 내버려뒀습니다. 그 결과는 납세자(사실은 납세자의 위임을 받은 법무사)가 얼마나 법을 잘 알고 있느냐와 얼마나 '양심적'이냐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낮은 과표와 높은 세율을 조합해놓고, 납세자가 법을 제대로 알고 이용하면 정부가 목표로 한 취득세가 납부됐고, 납세자가 법을 잘 모르거나 도덕적(?)일 경우 국가는 '목표 취득세+@'를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보수진영의 많은 공직 후보자들은 물론 진보진영의 문재인 대통령도, 김상조 위원장도 지방세법 111조의 덫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야 어쨌든, 송구해 하고 사과해야 했습니다.

열심히 일해 집 한 칸을 마련한, 투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대다수 국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청문회에 설 일이 없다면 사과할 일은 없겠지만, 정치권에서 다운계약서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나도 그랬는데...' 라는 찜찜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당연히 엄격해야 합니다. 합법성을 넘어 도덕성의 잣대도 통과해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가 부실하게 만든 법 때문에 대다수 국민이 빠진 '함정'을 도덕성의 잣대로 들이댄다면 우리 사회의 담론 수준이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치권이 실체적 진실을 외면한 채 '내로남불'을 반복하는 현실에 "검증 잘한다"고 박수를 칠 수 있을까요? 왜 국가는 국민에게 송구해 하고 사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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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취득세의 함정…우리는 정말 ‘탈세’했을까?
    • 입력 2017-07-15 09:10:01
    • 수정2017-07-17 10:38:13
    취재후·사건후
주호영, 정운찬, 진수희, 양건, 문재인, 안철수, 유정복, 윤병세, 임종룡, 유일호, 황교안, 김상조... 이분들의 공통점이 뭘까요?

공직(후보)자라는 것 말고는, 이념적 성향도, 전문 분야도 제각각이어서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 보이는데요, 부동산을 사면서 이른바 '다운계약서(가짜 검인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 취득세 탈루 의혹과 도덕성 논란이 제기됐던 분들입니다.

최근 크게 주목을 받은 인물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었죠. 1999년 1억 7,550만 원에 서울 목동 아파트를 사면서 구청에는 5,000만 원에 구매했다는 계약서를 제출한 사실이 지난달 후보자 청문회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만큼 취득세를 덜 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 위원장은 "당시 관행이었다. 송구하다"고 사과했습니다.

편법 상속 등 재벌의 부도덕성을 오랫동안 질타해왔고 외부 강연료를 자진해서 덜 받을 정도로 청렴하다고 알려진 인물이었기에 많은 사람이 당혹스러워했습니다.

김 위원장 사례와 같은 취득세 탈루 의혹은 공직자 청문회의 단골 메뉴입니다. 2006년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가 의무화된 뒤로, 위에 거론한 인물들 외에도 수많은 공직 후보자가 이 문제로 도덕성에 흠집이 났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지난 10년간 이 문제를 대하는 정치권의 논리가 자신의 처지에 따라 수시로 바뀌어왔다는 겁니다.

야당이었을 때는 여당이 내세운 공직 후보자가 "취득세를 탈루했다. 부도덕하다"고 비판하고, 여당이 되면 같은 행위에 대해 "관행이었다. 불법은 아니었다"고 옹호했습니다. 정치권이 '내로남불'을 반복하는 사이에 국민들 사이에서는 "진보든 보수든 다 썪었다. 깨끗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식의 냉소만 커졌습니다.

공직 후보자 청문회마다 빠짐없이 등장했고 앞으로도 반복될 소지가 큰 취득세 탈루 논쟁, 그 역사와 실체적 진실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정권 따라 바뀌는 논리...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취득세 탈루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건 이명박 정부 때부터입니다. 2008년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에서만 18명에게서 다운계약서 작성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야당들은 "취득세를 탈루한 것이다, 가짜 계약서를 쓴 것 자체로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특히 국세청장과 법무장관, 감사원장 등 세정이나 법질서와 연관된 공직 후보자들은 더 큰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대선이 다가오자 상황이 반전됩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부인 김미경 교수가 2001년 사들인 아파트의 취득세 신고를 하면서 다운계약서를 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뒤이어,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도 부인 김정숙 여사 명의로 빌라를 사면서 구매가격을 낮게 신고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 새누리당이 썼던 방어 논리를 가져다 썼고, 새누리당은 과거 민주당이 썼던 공격 논리를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대선이 끝나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상황은 다시 반전됐습니다. 임기 동안 공직 후보자 15명이 취득세 탈루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공격 논리도, 방어 논리도 여전히 같았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처지가 또 한 번 바뀌었습니다. 첫 장관급 인사에서 김상조 후보자를 비롯해 안경환(법무), 조대엽(노동) 후보자 등에 대해 야당이 다운계약서 작성 사실을 거론하며 도덕성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지방세법 111조...'취득당시 가액'의 수수께끼

이렇게 10년이 다 되도록 말 바꾸기가 되풀이되는 이유가 뭘까요? 정치권의 공방만 듣다 보면, 다운계약서 신고가 위법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고 세금을 탈루했는지 안 했는지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 의문을 풀려면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가 의무화된 2006년 이전의 지방세법 111조를 들여다보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제1항의 '취득당시의 가액'이라는 표현에서 혼란이 시작됩니다.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해석(1)
'취득당시의 가액'은 '실제 거래가액'을 의미한다.
'취득당시의 가액'이라는 표현 자체가
언어적으로, 상식적으로 그 뜻을 담고 있지 않은가?

해석(2)
'취득당시의 가액'은 '취득자가 신고한 가액'을 의미한다.
2항과 결합해보면, 'A는 B이며, B는 C다'라는 형식을
이용해 '취득당시의 가액'이 '신고 가액'임을
정의하고 있지 않은가?

"실거래가 알아도 추징 못 한다"...대법원 판결이 왜 이래?

법적으로 어떤 해석이 맞을까요? 2006년 내려진 대법원 판결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남성이 부동산 취득신고를 하면서 취득가액을 시가표준액 수준으로 써냈습니다. 서울 도봉구청이 계약서를 통해 실제 가액을 파악한 뒤 취득세를 더 내라고 합니다. 소송이 붙었습니다.

대법원은, 놀랍게도,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취득가액을 낮게 신고한 사람의 손을 들어줍니다. 도봉구청이 실제 계약서를 근거로 취득세를 부과한 것을 오히려 '위법'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건전한 상식으로 보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판결입니다. 납세자가 다운계약서를 써서 취득세를 적게 낸 사실을 담당 기관이 밝혀내서 세금을 추징하는 행위가 위법이라니요...

대법원은 그렇게 판단한 이유로 지방세법 111조의 취지가 다음과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위 (2)의 해석처럼, 지방세법에 등장하는 '취득당시의 가액'은 '납세자가 신고한 금액'이며, 그 신고 금액이 시가표준액을 넘기만 하면 실거래가액이 얼마로 밝혀지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판정한 겁니다.

그 이듬해 서울행정법원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놓습니다. 나아가, 지방세법 111조가 실거래가와 관계없이 시가표준액을 취득세 과표로 삼도록 규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2006년 이전까지는 정부가 실거래가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시가표준액을 기준으로 취득세를 내도록 법을 설계했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정말 취득세를 덜 냈을까?...세율의 함정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 시절 정부가 취득세 과표로 규정한 시가표준액은 당시 실거래가의 20~30%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시가표준액을 기준으로 취득세를 낸 사람들은, 위법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세금을 정상적 수준 보다 70~80%나 덜 낸 걸까요? 그렇다면, 정부는 왜 시가표준액을 더 높이는 방법으로라도 이런 탈세를 막으려 하지 않았을까요? 그 해답은 세율에 있습니다.

4억 원짜리 국민주택규모 이하 아파트를 사서 취득세 신고를 한다고 가정해봅니다. 현재는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취득세를 내게 돼 있고, 취득세율(교육세 포함)은 1.1%이니 납부세액은 440만 원입니다.

2006년 이전에는 어땠을까요? 시가표준액이 실거래가의 25%였다고 가정할 경우 과표는 1억 원이 됩니다. 여기에 당시 취득세율 5.6%를 곱하면 560만 원을 취득세로 내야 합니다.


그 시절 4억 원짜리 집을 1억 원에 샀다고 신고했어도 우리 국민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취득세를 냈던 겁니다. 정부가 낮은 시가표준액을 고려해 5.6%라는 '터무니없는' 취득세율을 매겨놓았으니까요. 5.6%는 OECD 평균 취득세율의 4~5배 수준입니다.

만약 당시 지방세법 111조가 '취득세의 과세표준을 실거래가로 한다'고 규정했다면 4억짜리 집을 살 경우 취득세로 2천240만 원을 내야 했습니다. 약탈적 세금이라는 비난과 조세 저항을 부를 만한 액수죠.

그런 저항이 불거지지 않았던 것은 실제로 그렇게 세금을 낸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을 사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소유권 이전 절차를 법무사에게 위임했고, 법무사가 시가표준액 수준의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뒤 매수인과 매도인 명의의 도장까지 만들어 찍는 방식으로 취득신고가 이뤄졌습니다.

부동산 취득자는 법무사에게 관련 서류와 비용을 넘겨준 뒤 등기필증만 받으면 되는 시스템이었기에 그 중간 과정(신고용 다운계약서가 작성되고 본인 명의의 도장이 찍힌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2002년 어느 아파트 단지...'다운계약서 100%'의 추억

기자는 15년 전인 2002년 서울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 매수자들이 취득세 신고를 어떻게 했는지 취재해 보도한 바 있습니다. 2천4백 세대 규모에 입주 2년 차였던 그 단지에서는 매달 수십 건씩 매매가 이뤄졌습니다.

기자가 담당구청을 찾아 석 달 간의 계약서 100여 건을 들여다봤지만, 실거래가에 신고된 계약서는 한 건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구청에 제출된 모든 계약서가 '다운계약서'였던 겁니다.

법무사가 터무니없는 금액이 적힌 계약서를 들고 와도 담당 공무원은 취득세 신고가 가능하도록 검인 도장을 찍어줬습니다. 당시 기자가 담당 공무원에게 "직무유기 하는 게 아니냐"고 따져 묻자, "법 자체가 그렇게 돼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2002년 9월 30일 KBS 9시뉴스 보도
당시 거래가 가장 활발했던 전용면적 85㎡의 신고가액을 살펴보다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실거래가는 3억 4천만 원 안팎이었는데, 다운계약서에 쓰인 금액은 크게 1억 7천만 원과 9천만 원 안팎, 두 종류로 나뉘었습니다.

9천만 원은 해당 아파트의 시가표준액, 1억 7천만 원은 분양가격과 비슷한 액수였습니다. 지방세법의 취지를 제대로 알고 '독하게' 이용한 법무사는 분양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시가표준액을 거래가액으로 써냈고, '아무리 합법적이라도 그렇지, 분양가보다 두 배 오른 아파트를 어떻게 분양가의 절반에 샀다고 써내나' 싶었던 법무사는 분양가 수준으로 써낸 겁니다.

취재 과정에서 이 아파트를 3억 4천만 원에 산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은 실제 매매가격으로 계약서를 썼다며 "다들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더군요. 하지만 구청에서 확인해보니, 이 지인의 취득세 신고용 계약서에도 1억 7천만 원 정도가 적혀 있었습니다. 법무사가 관행적으로 고객의 막도장을 파서 별도의 '다운계약서'를 만든 사실 자체를 매매 당사자가 몰랐으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지요.

앞서 언급한 대로, 정부는 원래부터 낮은 시가표준액에 높은 세율을 곱하는 방식으로 세수 목표를 달성하도록 법을 설계했으니, 법무사가 9천만 원으로 신고해준 부동산의 매수인은 사실상 '정상적인' 세금을 낸 셈입니다.

그런데 법무사가 1억 7천만 원으로 신고한 부동산의 매수인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다운계약서를 써서 거래가액을 절반으로 속였으니 '부도덕하게' 세금을 덜 냈다고 비판해야 할까요? 아니면, 9천만 원만 써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1억 7천만 원을 써냈으니 남들보다 '더 양심적으로' 세금을 많이 냈다고 칭찬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취득세 탈루 문제를 살펴온 한국납세자연맹은, 이 난감한 질문과 관련해, 2012년 안철수 대선 후보 측 다운계약서 논란이 불거졌을 때 낸 보도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습니다.


10년 가까이 여야가 태도를 바꿔가며 공직 후보자들에게 '부도덕'의 올가미를 씌우고 있는 '다운계약서-취득세 탈루' 논란의 본질은 납세자의 도덕성 이슈가 아니라 국가의 '입법 미비'에 있다는 겁니다.

국가의 잘못이 부른 10년 공방...'도덕성 담론'은 건강한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보면, 실거래가 신고가 의무화된 2006년 이전의 지방세법은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취득세를 내는 과표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시가표준액과 실거래가액 사이에서 납세자가 알아서 내도록 내버려뒀습니다. 그 결과는 납세자(사실은 납세자의 위임을 받은 법무사)가 얼마나 법을 잘 알고 있느냐와 얼마나 '양심적'이냐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낮은 과표와 높은 세율을 조합해놓고, 납세자가 법을 제대로 알고 이용하면 정부가 목표로 한 취득세가 납부됐고, 납세자가 법을 잘 모르거나 도덕적(?)일 경우 국가는 '목표 취득세+@'를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보수진영의 많은 공직 후보자들은 물론 진보진영의 문재인 대통령도, 김상조 위원장도 지방세법 111조의 덫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야 어쨌든, 송구해 하고 사과해야 했습니다.

열심히 일해 집 한 칸을 마련한, 투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대다수 국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청문회에 설 일이 없다면 사과할 일은 없겠지만, 정치권에서 다운계약서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나도 그랬는데...' 라는 찜찜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당연히 엄격해야 합니다. 합법성을 넘어 도덕성의 잣대도 통과해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가 부실하게 만든 법 때문에 대다수 국민이 빠진 '함정'을 도덕성의 잣대로 들이댄다면 우리 사회의 담론 수준이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치권이 실체적 진실을 외면한 채 '내로남불'을 반복하는 현실에 "검증 잘한다"고 박수를 칠 수 있을까요? 왜 국가는 국민에게 송구해 하고 사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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