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트럼프-마크롱 에펠탑 만찬…불편한 진실은?

입력 2017.07.15 (10:58) 수정 2017.07.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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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트럼프-마크롱 에펠탑 만찬…불편한 진실은?

[특파원리포트] 트럼프-마크롱 에펠탑 만찬…불편한 진실은?

쥘 베른은 프랑스 과학소설 분야를 개척한 사람이다. '해저 2만 리'와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어린이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는 그의 대표작들이다. 하지만 소설가 쥘 베른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이름을 딴 유명 식당인 '쥘 베른'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식당 '쥘 베른'은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1983년에 문을 연 이곳은 지난 2007년부터는 프랑스 요식업계의 미다스 손으로 일컬어지는 '알랭 뒤카스'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하나 식당이지만 에펠탑에 위치한 덕분에 분위기 하나만 놓고 본다면 별 세 개가 충분하다.

파리의 낭만은 에펠탑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더 짙어진다. 그 때문에 파리의 낭만을 즐기고 싶은 연인들에게는 '쥘 베른'은 일종의 '성지'다. 프러포즈의 공간으로 인기가 높고 또한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1년 전부터 예약을 해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특별한 공간이 최근 더 특별해졌다. 바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가 비공식 만찬을 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 혁명 기념일인 7월 14일 행사에 공식적으로 초대받았다. 미국이 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동맹국으로 참전한 지 백 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하루 전날인 13일에 파리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간의 정상 회담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난 뒤 만찬을 바로 에펠탑의 식당 '쥘 베른'에서 한 것이다.)


'쥘 베른' 만찬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크게 두 가지 이유로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테러 등으로 관광 1위의 나라에서 밀려난 프랑스가 미국 대통령을 불러 세계인들에게 에펠탑을 다시 한 번 자연스럽게 광고를 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스스로 '요리 천국'이라고 부르는 프랑스가 엘리제 궁을 벗어나 미국 대통령에게 대중 음식점에서 식사하게 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음식 문화를 알릴 기회가 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자의 그런 순진한 생각은 곧바로 깨졌다. 만찬 시간 앞뒤로 에펠탑을 오가는 도로를 1시간 이상씩 교통 통제를 하면서 이 일대는 극심한 교통 혼잡을 일으켰다. 때마침 기자도 택시를 타고 에펠탑 부근을 가고 있었는데 교통 통제 때문에 둘러 둘러서 평상시보다 3배 가까운 시간이 걸려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물론 요금도 3배 이상 들었다. 트럼프를 너무나 싫어했던 택시 기사도 계속 올라가는 요금보다는 교통 체증으로 인한 짜증을 엄청나게 냈다. 지금까지 그 많은 해외 정상들이 프랑스를 방문해서 엘리제 궁 만찬을 할 때 느끼지 못했던 불편이었다.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더 큰 불편이 따랐다. 두 대통령 만찬 때문에 에펠탑이 폐쇄되면서 관광객들은 헛걸음해야만 했다. 파리의 야경을 한눈에 즐길 기회가 사라진 것이었다. 특히 다음날 파리를 떠나야 하는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아쉬울 것 같다. 하루에 3만 명 정도가 다녀간다고 하니... 프랑스는 3만 명의 '입소문 주자'들을 잃은 셈이다.

두 대통령 부부의 만찬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다만, 만찬 직전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몇 가지 이미지들을 보면서 또 다른 의미의 불편함을 느꼈다. 그 넓은 곳에 차려진 4명만을 위한 테이블. 그 테이블을 뒤로하고 창밖을 보면서 뭔가를 이야기하는 두 대통령. 그리고 세프인 알랭 뒤카스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두 정상 부부. '쥘 베른'의 실질적인 주인인 일반 손님들은 당연히 없었다. 그곳은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과 한껏 차려입은 중장년층 남녀 손님들을 모두 몰아내고 '대통령 부부를 위한, 대통령 부부에 의한, 대통령 부부의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방인인 기자에게 그들의 아주 친근한 저녁(?)은 최고의 갑질로 느껴졌다. 엘리제 궁이며 베르사유며 그 많은 곳을 두고 굳이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불편을 끼치며 그곳에서 식사해야만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PS1: 대중음식점에서 만찬을 한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언론 기사를 중심으로 찾아보니 빌 클린턴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비공식 만찬을 대중 음식점에서 했다고 한다. 다만 당시에 선정했던 식당들은 고급 식당이었지만 이번처럼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장소에 위치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테러 이전이라서 안전과 관련한 경계수위가 지금처럼 삼엄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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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트럼프-마크롱 에펠탑 만찬…불편한 진실은?
    • 입력 2017-07-15 10:58:57
    • 수정2017-07-15 17:40:32
    특파원 리포트
쥘 베른은 프랑스 과학소설 분야를 개척한 사람이다. '해저 2만 리'와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어린이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는 그의 대표작들이다. 하지만 소설가 쥘 베른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이름을 딴 유명 식당인 '쥘 베른'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식당 '쥘 베른'은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1983년에 문을 연 이곳은 지난 2007년부터는 프랑스 요식업계의 미다스 손으로 일컬어지는 '알랭 뒤카스'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하나 식당이지만 에펠탑에 위치한 덕분에 분위기 하나만 놓고 본다면 별 세 개가 충분하다.

파리의 낭만은 에펠탑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더 짙어진다. 그 때문에 파리의 낭만을 즐기고 싶은 연인들에게는 '쥘 베른'은 일종의 '성지'다. 프러포즈의 공간으로 인기가 높고 또한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1년 전부터 예약을 해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특별한 공간이 최근 더 특별해졌다. 바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가 비공식 만찬을 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 혁명 기념일인 7월 14일 행사에 공식적으로 초대받았다. 미국이 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동맹국으로 참전한 지 백 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하루 전날인 13일에 파리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간의 정상 회담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난 뒤 만찬을 바로 에펠탑의 식당 '쥘 베른'에서 한 것이다.)


'쥘 베른' 만찬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크게 두 가지 이유로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테러 등으로 관광 1위의 나라에서 밀려난 프랑스가 미국 대통령을 불러 세계인들에게 에펠탑을 다시 한 번 자연스럽게 광고를 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스스로 '요리 천국'이라고 부르는 프랑스가 엘리제 궁을 벗어나 미국 대통령에게 대중 음식점에서 식사하게 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음식 문화를 알릴 기회가 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자의 그런 순진한 생각은 곧바로 깨졌다. 만찬 시간 앞뒤로 에펠탑을 오가는 도로를 1시간 이상씩 교통 통제를 하면서 이 일대는 극심한 교통 혼잡을 일으켰다. 때마침 기자도 택시를 타고 에펠탑 부근을 가고 있었는데 교통 통제 때문에 둘러 둘러서 평상시보다 3배 가까운 시간이 걸려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물론 요금도 3배 이상 들었다. 트럼프를 너무나 싫어했던 택시 기사도 계속 올라가는 요금보다는 교통 체증으로 인한 짜증을 엄청나게 냈다. 지금까지 그 많은 해외 정상들이 프랑스를 방문해서 엘리제 궁 만찬을 할 때 느끼지 못했던 불편이었다.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더 큰 불편이 따랐다. 두 대통령 만찬 때문에 에펠탑이 폐쇄되면서 관광객들은 헛걸음해야만 했다. 파리의 야경을 한눈에 즐길 기회가 사라진 것이었다. 특히 다음날 파리를 떠나야 하는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아쉬울 것 같다. 하루에 3만 명 정도가 다녀간다고 하니... 프랑스는 3만 명의 '입소문 주자'들을 잃은 셈이다.

두 대통령 부부의 만찬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다만, 만찬 직전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몇 가지 이미지들을 보면서 또 다른 의미의 불편함을 느꼈다. 그 넓은 곳에 차려진 4명만을 위한 테이블. 그 테이블을 뒤로하고 창밖을 보면서 뭔가를 이야기하는 두 대통령. 그리고 세프인 알랭 뒤카스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두 정상 부부. '쥘 베른'의 실질적인 주인인 일반 손님들은 당연히 없었다. 그곳은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과 한껏 차려입은 중장년층 남녀 손님들을 모두 몰아내고 '대통령 부부를 위한, 대통령 부부에 의한, 대통령 부부의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방인인 기자에게 그들의 아주 친근한 저녁(?)은 최고의 갑질로 느껴졌다. 엘리제 궁이며 베르사유며 그 많은 곳을 두고 굳이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불편을 끼치며 그곳에서 식사해야만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PS1: 대중음식점에서 만찬을 한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언론 기사를 중심으로 찾아보니 빌 클린턴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비공식 만찬을 대중 음식점에서 했다고 한다. 다만 당시에 선정했던 식당들은 고급 식당이었지만 이번처럼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장소에 위치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테러 이전이라서 안전과 관련한 경계수위가 지금처럼 삼엄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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