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아닌 밤중에 산사태 주의보…발령만 하면 끝?

입력 2017.07.1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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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건건] 아닌 밤중에 산사태 주의보…발령만 하면 끝?

[사사건건] 아닌 밤중에 산사태 주의보…발령만 하면 끝?


성동구 주민들에게 발송된 한 통의 '긴급재난문자'

서울 일부 지역에 집중 폭우가 내리던 지난 10일 밤, 성동구의 주민들은 '긴급재난문자'라는 제목의 문자메시지 한통을 받았다. '[성동구청]안전안내. 오늘 22시 성동구 지역 산사태 주의보가 발령되어 알려드리니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각종 커뮤니티와 SNS 등에는 해당 문자를 받았다는 글이 폭주했지만, 문자를 받은 누구도 어떤 지역이 위험하고 위험하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국민재난안전포털 내 긴급재난문자 현황국민재난안전포털 내 긴급재난문자 현황

아닌 밤중에 산사태 주의보?

긴급재난문자란, 태풍·호우·폭염·황사 등 '자연재해'나 정전·붕괴·화재·가스누출 등 '사회재난'이 일어났을 경우 발생지역의 이동통신사 기지국을 통해 역내에 머물고 있는 이용자 전체에게 발송하는 국민안전처의 문자시스템이다. 휴대전화에 내장된 이른바 '문자메시지 송출 서비스(CBS·CELL BROADCASTING SERVICE)'를 통해 각 이용자에게 보내진다.

지난 10일 오후 성동구에 시간당 40㎜의 비가 수 시간 동안 이어지자, 산림청은 '산사태 예측정보 산사태 주의보 2017년 7월 10일 10시'라는 메시지를 성동구청에 전달했고, 성동구청은 국민안전처 시스템을 이용해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산림청의 산사태 예측정보 시스템에 입력된 전국 2만 천여 곳의 산사태 취약지 정보를 바탕으로, 성동구 내 토양 수분 함유량이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하자 산림청이 산사태 주의보를 발령하고 성동구청에 메시지 발송을 지시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산사태 주의보는 토양의 수분 함량이 80% 이상일 때 발령되고, 100%가 넘어가면 경보가 발령된다.


산림청과 성동구청의 엇박자

하지만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한 성동구청 담당과 관계자는 주의보 발령 다음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산림청과 엇박자를 냈다. 성동구 관내에 산사태 위험이 날 만한 곳이 없는데, 주의보가 발령돼 주민들에게 혼란을 줬다는 이야기였다.

성동구 대부분이 평지인 데다 동네 뒷산조차 산사태 날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개발되어있는데, 산림청이 현황 여건을 모르고 강수량만을 기준으로 주의보를 발령해 혼란을 줬다는 것이었다. 밤새 흙이 조금이라도 쓸려 내려간 곳이 하나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담당과 관계자 역시 '성동구 내 강수량을 측정하는 26개 표본 지역'과 '성동구 내 산사태 취약지역 3곳'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었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긴급재난문자의 한계성도 지적했다. 긴급재난문자 용량이 60자로 제한되다 보니 정확한 위험지역이나 대응 요령을 문자에 다 담을 수 없고, 발송 지역 역시 CBS 시스템상 구 전체로만 발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예견된 혼란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산림청은 지난 2007년 국립산림과학원과 함께 "산사태 위험지 관리시스템"을 개발하면서 산사태 위험지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만 문자를 발송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직접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시스템에 등록해야 하는 탓에 신청률이 저조해지면서, 현재는 동의를 거친 일부 주민들에게 산사태 예방 훈련 문자를 발송하는 데에만 사용되고 있다.

산사태 취약지역 지도산사태 취약지역 지도

산사태 담당 컨트롤타워의 부재

관련 기관 사이 엇박자뿐만 아니라, 산사태 문제에 종합적으로 대처할 주체 역시 여전히 애매한 상태다. 앞서 언급한 "산사태 취약지역"이란 산림청이 산림보호법에 의해 지정한 '산사태로 인명과 재산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으로 2016년 10월 기준 전국적으로 21,406곳이다.

성동구 내에는 매봉산 일대 2곳과 달맞이 봉 일대 1곳, 모두 3곳의 산사태 취약지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 급경사지와 붕괴 위험지, 도로와 축대 등 인공적인 시설물은 제외된 상태다. 산지는 산림청이, 국토나 도로는 국토부, 주택 등은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합적인 산사태 대책을 담당할 컨트롤타워가 요원한 상황이다.

산사태 주의보 문자에 대해 "우면산 산사태도 겪었는데, 이렇게 예비차원에서 문자라도 발송한 것은 잘한 것이다."라는 산림청 관계자의 이야기는 일견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전국 2만여 곳의 산사태 위험지역 주민 가운데 산사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위험 대피 매뉴얼을 알고 있는 주민들은 여전히 극히 드물다.

'주의보'와 '경보'가 각각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모르는 주민들도 태반이다. 게다가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산사태 위험지역으로 알려지면 집값이 내려가 주민들의 민원이 발생한다며 공지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지난 2011년 우면산 산사태지난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언젠가 다시 반복될 참사의 경고

실질적인 산사태 주의보·경보 시스템 구축을 위한 첫걸음으로는 산림청이 앞서 도입했던 '위험지별 주민 연락처 등록'의 재추진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만 그 지역에 맞는 적확한 위험 고지와 대피 요령이 배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해서는 일괄 등록과 같은 강제적인 방법도 고려해봐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별 대응 매뉴얼 마련과 실질적인 대피 훈련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 시간이 걸린다면 우선적으로 긴급재난문자를 동 단위로 나누어 발송할 수 있는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한다.

지난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당시, 산사태 위험경보문자 수신 여부를 놓고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기관 간 벌어졌던 책임 공방을 우리는 기억한다. 6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책임 소재를 피하기 위해 '주의보 발령하고 재난문자 보내면 그만'이라는 기관들의 모습은 언젠가 우리에게 산사태 참사라는 위협이 또다시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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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7 18:22:06
    사사건건

성동구 주민들에게 발송된 한 통의 '긴급재난문자'

서울 일부 지역에 집중 폭우가 내리던 지난 10일 밤, 성동구의 주민들은 '긴급재난문자'라는 제목의 문자메시지 한통을 받았다. '[성동구청]안전안내. 오늘 22시 성동구 지역 산사태 주의보가 발령되어 알려드리니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각종 커뮤니티와 SNS 등에는 해당 문자를 받았다는 글이 폭주했지만, 문자를 받은 누구도 어떤 지역이 위험하고 위험하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국민재난안전포털 내 긴급재난문자 현황
아닌 밤중에 산사태 주의보?

긴급재난문자란, 태풍·호우·폭염·황사 등 '자연재해'나 정전·붕괴·화재·가스누출 등 '사회재난'이 일어났을 경우 발생지역의 이동통신사 기지국을 통해 역내에 머물고 있는 이용자 전체에게 발송하는 국민안전처의 문자시스템이다. 휴대전화에 내장된 이른바 '문자메시지 송출 서비스(CBS·CELL BROADCASTING SERVICE)'를 통해 각 이용자에게 보내진다.

지난 10일 오후 성동구에 시간당 40㎜의 비가 수 시간 동안 이어지자, 산림청은 '산사태 예측정보 산사태 주의보 2017년 7월 10일 10시'라는 메시지를 성동구청에 전달했고, 성동구청은 국민안전처 시스템을 이용해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산림청의 산사태 예측정보 시스템에 입력된 전국 2만 천여 곳의 산사태 취약지 정보를 바탕으로, 성동구 내 토양 수분 함유량이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하자 산림청이 산사태 주의보를 발령하고 성동구청에 메시지 발송을 지시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산사태 주의보는 토양의 수분 함량이 80% 이상일 때 발령되고, 100%가 넘어가면 경보가 발령된다.


산림청과 성동구청의 엇박자

하지만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한 성동구청 담당과 관계자는 주의보 발령 다음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산림청과 엇박자를 냈다. 성동구 관내에 산사태 위험이 날 만한 곳이 없는데, 주의보가 발령돼 주민들에게 혼란을 줬다는 이야기였다.

성동구 대부분이 평지인 데다 동네 뒷산조차 산사태 날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개발되어있는데, 산림청이 현황 여건을 모르고 강수량만을 기준으로 주의보를 발령해 혼란을 줬다는 것이었다. 밤새 흙이 조금이라도 쓸려 내려간 곳이 하나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담당과 관계자 역시 '성동구 내 강수량을 측정하는 26개 표본 지역'과 '성동구 내 산사태 취약지역 3곳'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었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긴급재난문자의 한계성도 지적했다. 긴급재난문자 용량이 60자로 제한되다 보니 정확한 위험지역이나 대응 요령을 문자에 다 담을 수 없고, 발송 지역 역시 CBS 시스템상 구 전체로만 발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예견된 혼란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산림청은 지난 2007년 국립산림과학원과 함께 "산사태 위험지 관리시스템"을 개발하면서 산사태 위험지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만 문자를 발송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직접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시스템에 등록해야 하는 탓에 신청률이 저조해지면서, 현재는 동의를 거친 일부 주민들에게 산사태 예방 훈련 문자를 발송하는 데에만 사용되고 있다.

산사태 취약지역 지도
산사태 담당 컨트롤타워의 부재

관련 기관 사이 엇박자뿐만 아니라, 산사태 문제에 종합적으로 대처할 주체 역시 여전히 애매한 상태다. 앞서 언급한 "산사태 취약지역"이란 산림청이 산림보호법에 의해 지정한 '산사태로 인명과 재산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으로 2016년 10월 기준 전국적으로 21,406곳이다.

성동구 내에는 매봉산 일대 2곳과 달맞이 봉 일대 1곳, 모두 3곳의 산사태 취약지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 급경사지와 붕괴 위험지, 도로와 축대 등 인공적인 시설물은 제외된 상태다. 산지는 산림청이, 국토나 도로는 국토부, 주택 등은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합적인 산사태 대책을 담당할 컨트롤타워가 요원한 상황이다.

산사태 주의보 문자에 대해 "우면산 산사태도 겪었는데, 이렇게 예비차원에서 문자라도 발송한 것은 잘한 것이다."라는 산림청 관계자의 이야기는 일견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전국 2만여 곳의 산사태 위험지역 주민 가운데 산사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위험 대피 매뉴얼을 알고 있는 주민들은 여전히 극히 드물다.

'주의보'와 '경보'가 각각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모르는 주민들도 태반이다. 게다가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산사태 위험지역으로 알려지면 집값이 내려가 주민들의 민원이 발생한다며 공지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지난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언젠가 다시 반복될 참사의 경고

실질적인 산사태 주의보·경보 시스템 구축을 위한 첫걸음으로는 산림청이 앞서 도입했던 '위험지별 주민 연락처 등록'의 재추진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만 그 지역에 맞는 적확한 위험 고지와 대피 요령이 배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해서는 일괄 등록과 같은 강제적인 방법도 고려해봐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별 대응 매뉴얼 마련과 실질적인 대피 훈련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 시간이 걸린다면 우선적으로 긴급재난문자를 동 단위로 나누어 발송할 수 있는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한다.

지난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당시, 산사태 위험경보문자 수신 여부를 놓고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기관 간 벌어졌던 책임 공방을 우리는 기억한다. 6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책임 소재를 피하기 위해 '주의보 발령하고 재난문자 보내면 그만'이라는 기관들의 모습은 언젠가 우리에게 산사태 참사라는 위협이 또다시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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