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여의도에 1700억 짜리 우체국?…타당성 검토해보니

입력 2017.07.1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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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건건] 여의도에 1700억 짜리 우체국?…타당성 검토해보니

[사사건건] 여의도에 1700억 짜리 우체국?…타당성 검토해보니

"이렇게 모호하게 쓴 예비타당성 보고서는 처음 보네요."

정창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예산 전문가다. 그는 1990년대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가 도입된 이후 수많은 예비타당성 보고서를 봤지만, 기자가 들고 온 예비타당성 보고서처럼 불명확한 보고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가 본 보고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가 2015년에 10월에 작성한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다. 그는 "보통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의 경우에는 표현이 명확하다. '적정', '부적정', '조건부 적정'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 보고서는 아무리 봐도 그런 명확한 표현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명확하지 않은 예비타당성 보고서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개발연구원(KDI)가 2015년 10월에 작성한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한국개발연구원(KDI)가 2015년 10월에 작성한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

여의도에 1,700억 원짜리 우체국?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사업은 1975년 처음 문을 연 여의도우체국을 지하 4층, 지상 33층 규모의 건물로 새로 짓는 게 핵심이다. 사업비로 책정된 돈만 1,700억 원에 이를 만큼 규모가 큰 사업비다. 우정사업본부는 건물이 지어지면 우체국으로 쓰는 일부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사무 공간을 민간에 임대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매년 적자에 시달리는 우정사업본부의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부동산 임대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문제는 절차적 타당성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사업에 민간 투자자들을 끌어들이지 않았다. 쉽게 말해 국가 재정 100%로 추진되는 사업인 셈이다.

당연히 KDI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에 해당한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예비타당성 조사 운용지침 4조 1항은 '총 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면서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건설사업, 정보화 사업,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시행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운용지침.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과 분석 방법 등이 명시돼 있다.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운용지침.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과 분석 방법 등이 명시돼 있다.

불과 두 달 만에 뒤바뀐 KDI의 전망

2015년 6월 9일 오전 기획재정부 소회의실에 기재부, 우정사업본부, 우체국 시설관리단, KDI, 외부연구진 등이 모였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사업의 타당성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회의에서 KDI는 "여의도우체국의 수익성 분석 값(PI)이 0.78 정도로 예상된다며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것보다 민간에 매각하는 것이 더 좋을 것으로 판단"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보통 수익성 분석값이 1이 넘는 경우,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수익이 더 높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KDI는 재건축 사업에 대해 부정적으로 전망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기재부는 KDI에 "점진적, 지속적 부동산 개발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국가정책에 부응할 수 있는 예비타당성 조사 수행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가장 독립적으로 사업 심사를 해야 할 KDI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준 셈이다.

1차 회의 후 2달이 지난 2015년 8월 5일 오전 기재부 소회의실에서 2차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KDI는 두 달 전과 다른 입장을 내놓는다. 불과 두 달 전 1이 넘지 않았던 수익성 분석값도 1.19로 수정된다. 심지어 "최종 결과물 제출 전 조사보고서 최종본을 우정사업본부에 송부하여 교차검토 후 문구조정"하겠다고 한다. 독립적인 예산 심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같은 황당한 회의 결과는 오승용 전 우체국 시설관리단 사외 이사에 의해 드러났다. 그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에서 하는 사업이 아무리 목적이 좋다고 하더라도 사업이 예상대로 안 됐거나 그 부담이 국민한테 가느냐 안 가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타당성 조사를 꼼꼼하게 해야 하는 건데 회의에서 소신 있는 의견들은 무시되고 배제됐다"고 밝혔다.

 2015년 6월과 8월 2차례 실시된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사업 관련 예비타당성 검토 회의를 기록한 내부문건. 2015년 6월과 8월 2차례 실시된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사업 관련 예비타당성 검토 회의를 기록한 내부문건.

사업 타당성 가리는 핵심 분석 방법도 생략

예비타당성 조사 방법론의 핵심적인 분석 방법도 생략됐다. 앞서 언급한 기재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운용지침 34조 1항은 '경제성 분석은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의 국민 경제적 파급효과와 투자 적합성을 분석하는 핵심적 조사과정에서 경제성(B/C) 분석을 기본적인 방법론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수익성 분석과 달리 경제성 분석에는 사회적 효용 개념이 반영된다. 고용 창출이나 공공복지 등이 지표로 들어가기 때문에 임대 사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경제성 분석값이 수익성 분석값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였을까? 여의도 우체국 재건축 사업에 대한 경제성 분석은 시행되지 않은 채 수익성 분석으로 대체됐다.

예비타당성 운용지침에 '기금사업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경제성 분석을 수익성 분석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명시된 만큼,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사업은 애초에 이 예외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재부는 지난 2015년 우체국 재건축 사업도 기금사업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KDI에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일종의 유권해석이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여의도 일대 오피스 공실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2분기 기준 여의도 오피스 공실률은 8.9%로 전 분기 대비 0.3% 올랐다. 올 하반기에는 두 자릿수 공실률을 기록해 오피스 공급과잉 현상이 본격적으로 빚어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12명, 올 한 해에만 과로로 숨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우체국 집배원들이다.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임대시장에 뛰어든 우정사업본부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수익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가 그 손실을 내부 구성원들이 떠안을 수 있다. 사업의 타당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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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9 10:55:00
    사사건건
"이렇게 모호하게 쓴 예비타당성 보고서는 처음 보네요."

정창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예산 전문가다. 그는 1990년대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가 도입된 이후 수많은 예비타당성 보고서를 봤지만, 기자가 들고 온 예비타당성 보고서처럼 불명확한 보고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가 본 보고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가 2015년에 10월에 작성한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다. 그는 "보통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의 경우에는 표현이 명확하다. '적정', '부적정', '조건부 적정'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 보고서는 아무리 봐도 그런 명확한 표현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명확하지 않은 예비타당성 보고서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개발연구원(KDI)가 2015년 10월에 작성한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
여의도에 1,700억 원짜리 우체국?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사업은 1975년 처음 문을 연 여의도우체국을 지하 4층, 지상 33층 규모의 건물로 새로 짓는 게 핵심이다. 사업비로 책정된 돈만 1,700억 원에 이를 만큼 규모가 큰 사업비다. 우정사업본부는 건물이 지어지면 우체국으로 쓰는 일부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사무 공간을 민간에 임대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매년 적자에 시달리는 우정사업본부의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부동산 임대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문제는 절차적 타당성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사업에 민간 투자자들을 끌어들이지 않았다. 쉽게 말해 국가 재정 100%로 추진되는 사업인 셈이다.

당연히 KDI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에 해당한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예비타당성 조사 운용지침 4조 1항은 '총 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면서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건설사업, 정보화 사업,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시행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운용지침.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과 분석 방법 등이 명시돼 있다.
불과 두 달 만에 뒤바뀐 KDI의 전망

2015년 6월 9일 오전 기획재정부 소회의실에 기재부, 우정사업본부, 우체국 시설관리단, KDI, 외부연구진 등이 모였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사업의 타당성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회의에서 KDI는 "여의도우체국의 수익성 분석 값(PI)이 0.78 정도로 예상된다며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것보다 민간에 매각하는 것이 더 좋을 것으로 판단"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보통 수익성 분석값이 1이 넘는 경우,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수익이 더 높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KDI는 재건축 사업에 대해 부정적으로 전망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기재부는 KDI에 "점진적, 지속적 부동산 개발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국가정책에 부응할 수 있는 예비타당성 조사 수행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가장 독립적으로 사업 심사를 해야 할 KDI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준 셈이다.

1차 회의 후 2달이 지난 2015년 8월 5일 오전 기재부 소회의실에서 2차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KDI는 두 달 전과 다른 입장을 내놓는다. 불과 두 달 전 1이 넘지 않았던 수익성 분석값도 1.19로 수정된다. 심지어 "최종 결과물 제출 전 조사보고서 최종본을 우정사업본부에 송부하여 교차검토 후 문구조정"하겠다고 한다. 독립적인 예산 심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같은 황당한 회의 결과는 오승용 전 우체국 시설관리단 사외 이사에 의해 드러났다. 그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에서 하는 사업이 아무리 목적이 좋다고 하더라도 사업이 예상대로 안 됐거나 그 부담이 국민한테 가느냐 안 가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타당성 조사를 꼼꼼하게 해야 하는 건데 회의에서 소신 있는 의견들은 무시되고 배제됐다"고 밝혔다.

 2015년 6월과 8월 2차례 실시된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사업 관련 예비타당성 검토 회의를 기록한 내부문건.
사업 타당성 가리는 핵심 분석 방법도 생략

예비타당성 조사 방법론의 핵심적인 분석 방법도 생략됐다. 앞서 언급한 기재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운용지침 34조 1항은 '경제성 분석은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의 국민 경제적 파급효과와 투자 적합성을 분석하는 핵심적 조사과정에서 경제성(B/C) 분석을 기본적인 방법론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수익성 분석과 달리 경제성 분석에는 사회적 효용 개념이 반영된다. 고용 창출이나 공공복지 등이 지표로 들어가기 때문에 임대 사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경제성 분석값이 수익성 분석값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였을까? 여의도 우체국 재건축 사업에 대한 경제성 분석은 시행되지 않은 채 수익성 분석으로 대체됐다.

예비타당성 운용지침에 '기금사업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경제성 분석을 수익성 분석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명시된 만큼, 여의도우체국 재건축 사업은 애초에 이 예외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재부는 지난 2015년 우체국 재건축 사업도 기금사업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KDI에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일종의 유권해석이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여의도 일대 오피스 공실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2분기 기준 여의도 오피스 공실률은 8.9%로 전 분기 대비 0.3% 올랐다. 올 하반기에는 두 자릿수 공실률을 기록해 오피스 공급과잉 현상이 본격적으로 빚어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12명, 올 한 해에만 과로로 숨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우체국 집배원들이다.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임대시장에 뛰어든 우정사업본부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수익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가 그 손실을 내부 구성원들이 떠안을 수 있다. 사업의 타당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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