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노래방에서 카드 결제했는데 ‘쌀’을 샀다?

입력 2017.07.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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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에서 돈 냈는데 '쌀'이 사졌다

노래방에서 카드 결제를 했는데, 결제내역엔 쌀을 샀다고 나온다. 물론, 실제로 쌀을 산 건 아니다. '카드깡' 조직 총책이 운영하는 유령회사가 쌀을 판 것처럼 구매 내용만 조작했기 때문이다.

결제한 사람 입장에선 비록 영수증에 나오는 상호가 다르지만, 금액만 맞는다면 크게 개의치 않게 된다. 5만 원을 내야 하는데, 5만 원이 정상 결제됐으니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제한 사람은 위장 업체에서 결제했기 때문에 조세특례제한법상 소득공제를 받지 못하게 된다.

노래방 주인은 손님 카드로 남의 가게의 '쌀'을 결제한 셈이 된다. 노래방 주인은 돈을 어떻게 벌까? 손님에게 5만 원을 결제하도록 유도하면, 카드깡 조직 총책은 가게 주인과 미리 약속한 수수료인 7.7%~12%를 떼고, 물품 대금을 넣어준다.

노래방 주인은 부가가치세 10%와 카드사와 카드결제 대행사에 내야 할 수수료 5%를 합쳐 15% 정도를 뺀 돈을 벌 수 있었는데, 총책에게 지급하는 7.7%~12% 수수료만 내면 된다. 적게는 매출 한 건당 3%, 많게는 7.3%를 이득 보게 된다. 조직 모집책은 이런 이점을 내세워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일대에 3천 곳의 가맹점을 마련했다.

조직은 자체 개발 앱을 통해 온라인 결제로 면세품을 산 것처럼 꾸미고, 해외카드 변조로 허위 매출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조직은 자체 개발 앱을 통해 온라인 결제로 면세품을 산 것처럼 꾸미고, 해외카드 변조로 허위 매출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22명의 조직원...'가맹점' 3천 곳에서 범행

이들 조직은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이런 방식으로 365억 원 상당의 허위 매출을 올리고, 부가가치세를 36억 원 넘게 탈루했다. 업체명을 바꿔가면서 초기에는 농수산물 위주로 실물이 판매된 것처럼 속이다가, 조직 덩치가 불어나자 '가맹점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속여 '할인 쿠폰'을 판매했다. 모두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품목들이다.

이런 방식으로 가맹 업체들로부터 수수료 명목으로 받아 챙긴 금액이 31억 원에 달한다. 경찰에 따르면 총책은 카드단말기 영업사원 출신으로, 자신의 경험을 나쁜 방향으로 살려 범행을 계획해 실행에 옮겼다.

카드깡 조직 때문에 세금이 줄줄 샜다. 비단 부가가치세 10%뿐만 아니라, 개별 업체들로서는 해당 거래 방식을 이용할 경우 자신의 가게 매상으로 아예 잡히지도 않게 된다. 소득 규모를 속일 수 있어 종합소득세 산정 때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경찰이 조직 수사과정에서 압수한 물품들. 약관과 가맹점 목록, 카드 단말기 등이 있다.경찰이 조직 수사과정에서 압수한 물품들. 약관과 가맹점 목록, 카드 단말기 등이 있다.

현장 카드 결제인데...'온라인' 거래가 된다

카드 결제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구분하면, 대개 현장에서 '카드를 긁는다'고 하면 카드 단말기 업체인 '밴'사를 통해 결제하게 된다.

이번 범행의 특징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결제를 하지만, 온라인으로 다른 물품을 결제한 것처럼 되는 것이다. 전자결제 'PG(Payment Gateway)'사가 나온다. 총책이 설립한 유령회사의 제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한 것처럼 꾸며놨기 때문이다.

온라인 카드 결제는 반드시 인증 절차를 거치게 돼 있다. 단순히 카드번호와 유효기간 등만 입력해서는 결제가 안 된다. 조직원 가운데 총책이 섭외한 프로그래머가 있어 자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인증 없이 결제되도록 해놨다. 조직은 모집책을 통해 수도권 3천 곳에서 노래방, 마사지업소, 렌터카, 한식당 등 업종을 불문하고 범행에 가담시켰다.

해외카드 위조해 허위 매출까지

조직은 위조한 해외 카드로, 자신의 유령회사에서 물건을 구매한 것처럼 꾸며 3억 3천만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8월부터 9월까지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에만 750차례에 걸쳐 위조 카드로 불법 결제했다. 세금, 수수료 등을 제하고 조직이 받아 챙긴 금액이 2억 7천만 원이다.

모두 중국, 필리핀 등 외국인 정보를 입수해 불법 결제를 진행했고, 피해자들은 외국에 있기 때문에 자신 몰래 결제된 사실을 한 달에서 두 달이 지나야 알 수 있다는 점을 노렸다.

더욱이 해외카드의 경우 대형업체가 아닌 경우 전자상거래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위변조 해외카드로 결제하는 데다가, 본인 인증도 없이 결제가 진행됐다면 뒤를 봐준 사람이 있을 것으로 수사하던 경찰은 생각했다. 경찰이 대형 PG사 직원 2명을 검거한 것도 이 대목이다.

"영수증 상호 꼭 확인해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검거한 사람만 58명이다. 조직 총책 김 모(65) 씨와 해외카드 위조를 주도적으로 한 박 모(50) 씨 등 2명을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 조직의 모집책과 인출책 등 19명도 형사 입건했다. 또 가맹점 3,000곳 중에서 상습적으로 불법 결제를 한 업자 34명을 조사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대형 PG사 직원 2명에 대해서도 조사하면서 이 업체의 비리가 있는지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피해자는 몇 명일까. 허위 결제로 365억 원이 결제됐다면, 결제 대금이 보통 10만 원에서 20만 원 수준인 것을 감안했을 때 소득 공제를 받지 못하게 된 결제 건수는 20만 건이다. 1명이 1건을 결제했다면 산술적으로 피해자가 20만 명에 달하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피해를 예방하려면, 카드 결제 시 반드시 자신이 방문한 업체명과 영수증에 나온 업체명이 같은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신종 범죄수법인 만큼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등 관계부처와 협업해 또 다른 조직이 있는지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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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사건건] 노래방에서 카드 결제했는데 ‘쌀’을 샀다?
    • 입력 2017-07-19 20:17:36
    사사건건
노래방에서 돈 냈는데 '쌀'이 사졌다

노래방에서 카드 결제를 했는데, 결제내역엔 쌀을 샀다고 나온다. 물론, 실제로 쌀을 산 건 아니다. '카드깡' 조직 총책이 운영하는 유령회사가 쌀을 판 것처럼 구매 내용만 조작했기 때문이다.

결제한 사람 입장에선 비록 영수증에 나오는 상호가 다르지만, 금액만 맞는다면 크게 개의치 않게 된다. 5만 원을 내야 하는데, 5만 원이 정상 결제됐으니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제한 사람은 위장 업체에서 결제했기 때문에 조세특례제한법상 소득공제를 받지 못하게 된다.

노래방 주인은 손님 카드로 남의 가게의 '쌀'을 결제한 셈이 된다. 노래방 주인은 돈을 어떻게 벌까? 손님에게 5만 원을 결제하도록 유도하면, 카드깡 조직 총책은 가게 주인과 미리 약속한 수수료인 7.7%~12%를 떼고, 물품 대금을 넣어준다.

노래방 주인은 부가가치세 10%와 카드사와 카드결제 대행사에 내야 할 수수료 5%를 합쳐 15% 정도를 뺀 돈을 벌 수 있었는데, 총책에게 지급하는 7.7%~12% 수수료만 내면 된다. 적게는 매출 한 건당 3%, 많게는 7.3%를 이득 보게 된다. 조직 모집책은 이런 이점을 내세워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일대에 3천 곳의 가맹점을 마련했다.

조직은 자체 개발 앱을 통해 온라인 결제로 면세품을 산 것처럼 꾸미고, 해외카드 변조로 허위 매출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22명의 조직원...'가맹점' 3천 곳에서 범행

이들 조직은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이런 방식으로 365억 원 상당의 허위 매출을 올리고, 부가가치세를 36억 원 넘게 탈루했다. 업체명을 바꿔가면서 초기에는 농수산물 위주로 실물이 판매된 것처럼 속이다가, 조직 덩치가 불어나자 '가맹점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속여 '할인 쿠폰'을 판매했다. 모두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품목들이다.

이런 방식으로 가맹 업체들로부터 수수료 명목으로 받아 챙긴 금액이 31억 원에 달한다. 경찰에 따르면 총책은 카드단말기 영업사원 출신으로, 자신의 경험을 나쁜 방향으로 살려 범행을 계획해 실행에 옮겼다.

카드깡 조직 때문에 세금이 줄줄 샜다. 비단 부가가치세 10%뿐만 아니라, 개별 업체들로서는 해당 거래 방식을 이용할 경우 자신의 가게 매상으로 아예 잡히지도 않게 된다. 소득 규모를 속일 수 있어 종합소득세 산정 때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경찰이 조직 수사과정에서 압수한 물품들. 약관과 가맹점 목록, 카드 단말기 등이 있다.
현장 카드 결제인데...'온라인' 거래가 된다

카드 결제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구분하면, 대개 현장에서 '카드를 긁는다'고 하면 카드 단말기 업체인 '밴'사를 통해 결제하게 된다.

이번 범행의 특징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결제를 하지만, 온라인으로 다른 물품을 결제한 것처럼 되는 것이다. 전자결제 'PG(Payment Gateway)'사가 나온다. 총책이 설립한 유령회사의 제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한 것처럼 꾸며놨기 때문이다.

온라인 카드 결제는 반드시 인증 절차를 거치게 돼 있다. 단순히 카드번호와 유효기간 등만 입력해서는 결제가 안 된다. 조직원 가운데 총책이 섭외한 프로그래머가 있어 자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인증 없이 결제되도록 해놨다. 조직은 모집책을 통해 수도권 3천 곳에서 노래방, 마사지업소, 렌터카, 한식당 등 업종을 불문하고 범행에 가담시켰다.

해외카드 위조해 허위 매출까지

조직은 위조한 해외 카드로, 자신의 유령회사에서 물건을 구매한 것처럼 꾸며 3억 3천만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8월부터 9월까지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에만 750차례에 걸쳐 위조 카드로 불법 결제했다. 세금, 수수료 등을 제하고 조직이 받아 챙긴 금액이 2억 7천만 원이다.

모두 중국, 필리핀 등 외국인 정보를 입수해 불법 결제를 진행했고, 피해자들은 외국에 있기 때문에 자신 몰래 결제된 사실을 한 달에서 두 달이 지나야 알 수 있다는 점을 노렸다.

더욱이 해외카드의 경우 대형업체가 아닌 경우 전자상거래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위변조 해외카드로 결제하는 데다가, 본인 인증도 없이 결제가 진행됐다면 뒤를 봐준 사람이 있을 것으로 수사하던 경찰은 생각했다. 경찰이 대형 PG사 직원 2명을 검거한 것도 이 대목이다.

"영수증 상호 꼭 확인해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검거한 사람만 58명이다. 조직 총책 김 모(65) 씨와 해외카드 위조를 주도적으로 한 박 모(50) 씨 등 2명을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 조직의 모집책과 인출책 등 19명도 형사 입건했다. 또 가맹점 3,000곳 중에서 상습적으로 불법 결제를 한 업자 34명을 조사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대형 PG사 직원 2명에 대해서도 조사하면서 이 업체의 비리가 있는지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피해자는 몇 명일까. 허위 결제로 365억 원이 결제됐다면, 결제 대금이 보통 10만 원에서 20만 원 수준인 것을 감안했을 때 소득 공제를 받지 못하게 된 결제 건수는 20만 건이다. 1명이 1건을 결제했다면 산술적으로 피해자가 20만 명에 달하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피해를 예방하려면, 카드 결제 시 반드시 자신이 방문한 업체명과 영수증에 나온 업체명이 같은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신종 범죄수법인 만큼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등 관계부처와 협업해 또 다른 조직이 있는지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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