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고 졸업식이 매년 축제인 이유?

입력 2017.07.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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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고등학교. 가평군 외곽에 있는 이 학교 졸업식은 매년 떠들썩하다. 어떤 해에는 육군 의장대가 오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군악대가 요란하게 마을을 누비기도 한다. 우리 군 장성은 물론 멀리 미국에서도 영관급 장교와 노병들이 찾아온다.


미국에서 오는 손님들은 모두 미 보병 제40사단 소속이다. 80대 노구를 이끌고 오는 6.25 참전 용사도 있다. 이들은 왜 60년이 넘도록 한국의 이 작은 학교를 방문하는 걸까.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미 보병 제40사단은 원래 후방의 지원 부대였지만, 전쟁이 심각한 양상으로 흘러가자 전투에 투입됐다. 그들이 주둔했던 곳이 바로 가평이다.


포화로 자욱한 전쟁터에서 미군 장병들은 특이한 장면을 보게 된다. 포성이 끊이지 않고, 수시로 산이나 방공호에 숨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어른들이 천막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공부시켰던 것이다.

조셉 클리랜드(Joseph Cleland) 장군은 전쟁 중에도 변함없는 이들의 교육열에 크게 감동했다. 클리랜드 장군은 곧바로 본국 본부에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호응해 장교와 병사 만 5천 명이 모두 2달러씩 약 3만 달러를 기금으로 모아 학교를 세우게 됐다.

학교 설계는 40사단 160연대 공병 장교 에이스 대위가 맡았다. 하버드 대학 건축학과를 나온 설계전문가였다. 전방에서 40사단 병사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에이스 대위와 공병대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학교를 건설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이들의 노력으로 학교는 40일 만에 기적적으로 완성됐다. 천막 교실이 있던 곳에 벽돌로 지은 정식 학교가 들어섰다. 학교의 건축 표지석에는 '이 학교는 미 보병 40사단 장병들이 한국의 미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해 세웠다'는 설립 취지가 새겨졌다.


40사단 병사들은 사단장 이름을 따 학교 이름을 '클리랜드 가평중학원'으로 지으려 했다. 하지만 클리랜드 장군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대신 장군은 어린 나이에 한국 평화를 위해 싸우다 숨진, 40사단 최초의 전사자 가이사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고집했다. 1952년 세워진 이 '가이사 중학원'이 바로 현재 가평고등학교의 전신이다.

전쟁은 끝났고, 40사단 병사들도 철수했다. 하지만 클리랜드 장군과 장병들은 첫 졸업식이 열린 1954년부터 매년 약 500달러의 장학금을 들고 학교를 찾아왔다. 클리랜드 장군은 세상을 떠난 1975년까지 가평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고, 죽기 전에 "내 연금 일부로 가평 아이들을 계속해서 도우라"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이후 장군의 아내 캐토트 클리랜드가 남편의 뜻을 이어받아 2004년 숨질 때까지 장학금을 전달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졸업식을 찾아오던 병사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65년 전 감동의 역사도 점점 잊히고 있다. 올해 졸업식에 참석한 사람은 노병 한 명뿐이다.

캘리포니아 로스 알라미토스에 위치한 미 보병 제 40사단의 본부캘리포니아 로스 알라미토스에 위치한 미 보병 제 40사단의 본부

숭고한 뜻을 이어가기 위해 학교는 미국 40사단 방문 계획을 세웠다. 지난 65년간 40사단 장병들이 보여준 '사랑과 우정'을 이제 우리가 기억할 차례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심사를 거쳐 800명 학생을 대표할 3명도 선발했다.


학생 3명과 교사 1명으로 구성된 학교 대표단은 미국에 있는 사단 본부를 찾아 그동안 미뤄온 감사 인사를 전달했다.

전쟁터에서 싹튼 감동과 우정, 그리고 감사의 여행은 22일(토) KBS '다큐 공감-2달러의 우정'(저녁 8시 5분 방송, KBS 1TV)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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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평고 졸업식이 매년 축제인 이유?
    • 입력 2017-07-22 08: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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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고등학교. 가평군 외곽에 있는 이 학교 졸업식은 매년 떠들썩하다. 어떤 해에는 육군 의장대가 오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군악대가 요란하게 마을을 누비기도 한다. 우리 군 장성은 물론 멀리 미국에서도 영관급 장교와 노병들이 찾아온다.


미국에서 오는 손님들은 모두 미 보병 제40사단 소속이다. 80대 노구를 이끌고 오는 6.25 참전 용사도 있다. 이들은 왜 60년이 넘도록 한국의 이 작은 학교를 방문하는 걸까.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미 보병 제40사단은 원래 후방의 지원 부대였지만, 전쟁이 심각한 양상으로 흘러가자 전투에 투입됐다. 그들이 주둔했던 곳이 바로 가평이다.


포화로 자욱한 전쟁터에서 미군 장병들은 특이한 장면을 보게 된다. 포성이 끊이지 않고, 수시로 산이나 방공호에 숨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어른들이 천막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공부시켰던 것이다.

조셉 클리랜드(Joseph Cleland) 장군은 전쟁 중에도 변함없는 이들의 교육열에 크게 감동했다. 클리랜드 장군은 곧바로 본국 본부에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호응해 장교와 병사 만 5천 명이 모두 2달러씩 약 3만 달러를 기금으로 모아 학교를 세우게 됐다.

학교 설계는 40사단 160연대 공병 장교 에이스 대위가 맡았다. 하버드 대학 건축학과를 나온 설계전문가였다. 전방에서 40사단 병사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에이스 대위와 공병대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학교를 건설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이들의 노력으로 학교는 40일 만에 기적적으로 완성됐다. 천막 교실이 있던 곳에 벽돌로 지은 정식 학교가 들어섰다. 학교의 건축 표지석에는 '이 학교는 미 보병 40사단 장병들이 한국의 미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해 세웠다'는 설립 취지가 새겨졌다.


40사단 병사들은 사단장 이름을 따 학교 이름을 '클리랜드 가평중학원'으로 지으려 했다. 하지만 클리랜드 장군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대신 장군은 어린 나이에 한국 평화를 위해 싸우다 숨진, 40사단 최초의 전사자 가이사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고집했다. 1952년 세워진 이 '가이사 중학원'이 바로 현재 가평고등학교의 전신이다.

전쟁은 끝났고, 40사단 병사들도 철수했다. 하지만 클리랜드 장군과 장병들은 첫 졸업식이 열린 1954년부터 매년 약 500달러의 장학금을 들고 학교를 찾아왔다. 클리랜드 장군은 세상을 떠난 1975년까지 가평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고, 죽기 전에 "내 연금 일부로 가평 아이들을 계속해서 도우라"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이후 장군의 아내 캐토트 클리랜드가 남편의 뜻을 이어받아 2004년 숨질 때까지 장학금을 전달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졸업식을 찾아오던 병사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65년 전 감동의 역사도 점점 잊히고 있다. 올해 졸업식에 참석한 사람은 노병 한 명뿐이다.

캘리포니아 로스 알라미토스에 위치한 미 보병 제 40사단의 본부
숭고한 뜻을 이어가기 위해 학교는 미국 40사단 방문 계획을 세웠다. 지난 65년간 40사단 장병들이 보여준 '사랑과 우정'을 이제 우리가 기억할 차례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심사를 거쳐 800명 학생을 대표할 3명도 선발했다.


학생 3명과 교사 1명으로 구성된 학교 대표단은 미국에 있는 사단 본부를 찾아 그동안 미뤄온 감사 인사를 전달했다.

전쟁터에서 싹튼 감동과 우정, 그리고 감사의 여행은 22일(토) KBS '다큐 공감-2달러의 우정'(저녁 8시 5분 방송, KBS 1TV)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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