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국정과제 선정 ‘한전공대’…급물살 타나?

입력 2017.07.2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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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분야 연구와 전문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는 한전공대(KEPCOTECH·켑코텍) 설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한전공대 설립을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것이다.

국정기획위는 지난 19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와 광주 도시첨단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에너지밸리를 조성하고 한전공대를 설립한다는 내용의 광주·전남 상생 공약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한전공대를 설립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에너지 산업을 이끌 고급 두뇌를 육성하고 이를 ‘빛가람 에너지밸리’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전공대 설립 문제는 이낙연 당시 전남도지사가 제안해 문재인 대통령의 호남 대표 공약 중 하나로 채택되면서 공론화됐다.

제안 내용을 보면 한전공대는 에너지 특화 대학으로 148만 7,603m²(약 45만 평) 정도의 부지에 조성되며, 설립에는 2020년까지 예산 5,000억 원 정도가 들 것으로 예상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받아들여, 후보 시절 “빛가람 에너지밸리에 세계 최고의 에너지분야 연구 중심대학을 설립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지역 사회는 한전공대가 들어설 장소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에너지밸리가 조성될 광주와 전남 나주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였는데, 두 지자체간의 유치 경쟁은 한때 기 싸움을 넘어 갈등 양상까지 보였다.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

한전공대 설립이 국정과제로 최종 선정되자 광주와 전남 나주는 각각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그간 불협화음을 의식한 듯 상생을 강조하고 나섰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19일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발표 뒤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전공대가 어디로 가느냐 하는 입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지금은 보다 많은 지원이 이뤄지도록 광주·전남이 협력하고 준비해야 할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강인규 전남 나주시장도 “한전공대 설립은 광주·전남이 다시 한 번 상생 발전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며 지역 간 불협화음으로 추진 시기를 놓치는 불상사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시장의 이 같은 발언은 시도 간 지나친 유치 경쟁으로 자칫 대형 국책 사업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일단 한국전력도 한전공대 설립에 우호적이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5월 25일 전남도지사 시절 한전공대 설립을 기안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한전공대 설립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조 사장은 이날 “한전공대는 일반종합대학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분야가 될 것”이라며 “유망한 미래산업에서 해당 분야 인재를 키우자는 취지이고 한전공대는 기존 일자리의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한전공대 설립과 관련한 회사 내부의 움직임은 아직까지는 없다. 한전 관계자는 “최근에서야 국정과제로 선정된 만큼 현재까지 대학 설립과 관련한 진행 사항은 없다”며 “이제라도 TF팀을 구성해 준비 작업에 들어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포항공대 전경포항공대 전경

정부는 한전공대의 모델을 포항공대로 삼고 있다. 작지만 강한 연구 중심대학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포항공대가 지방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에 이공계 명문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박태준 설립이사장이 있었다. 박 이사장은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과학과 첨단 기술 분야의 인력 양성이 절대적이라는 교육보국(敎育保國)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소수정예 교육으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수 과학자를 집중 초빙했으며 1,500억 원을 들여 방사광가속기를 건설하는 등 교육과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포항공대의 성공에는 이러한 박태준 이사장의 리더십과 파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그럼, 앞으로 설립될 한전공대는 포항공대처럼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진 과정에서 많은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한전공대 설립은 대선 공약이라는 정치적 결과물이다. 한국전력이 내부의 필요와 고민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대학의 설립 기획부터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 한전의 참여는 없었다. 따라서 주체성도 부족하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대학 설립에는 수천억 원의 돈이 들어간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한전의 경영구조로 볼 때 쉬운 문제는 아니다. 특히 지금 한전에는 박태준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없다.

여기에다 교육환경이 포항공대가 설립된 1980년대와 크게 다르다. 당시에는 대학도 별로 없었고 이공계 특성화대학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유일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비롯해 포항공대(POSTECH),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5곳이나 된다.

한전공대가 들어설 광주·전남에도 이공계 특성화대학으로 광주과학기술원(GIST)이 있고 전남대 공대 등 지역 공과대학들이 있다. 이들 대학에는 이미 한전의 혁신도시 이전에 발맞춰 에너지 신산업분야 특성화 채비를 갖추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2015년 11월 에너지밸리 전문 연구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융합기술원을 출범시켰고 동신대는 에너지융합대학을 신설하고 올해 신입생을 처음 선발했다. 전남대 역시 전기공학과 등이 교육과정 개편에 나선 바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역 내 우수 인재들이 한전공대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며 “거점 국립대 육성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고등교육정책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전공대가 입학 자원을 지역인재에 맞추지 않고 전국적인 규모로 선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주과학기술원 전경광주과학기술원 전경

한전 측은 한전공대 설립에 대해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구체적인 입장이 없고 아직까지 내부에서 논의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즉 한전공대 설립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으니 정부가 국정과제로 선정해 진행하기 전까지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논의할 내용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포항공대와 한전공대 설립의 출발점이 다름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전공대가 당초 공약대로 세계 최고의 에너지분야 연구 중심대학이 되려면 이제부터라도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야 한다. 부지 선정부터 할 일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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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국정과제 선정 ‘한전공대’…급물살 타나?
    • 입력 2017-07-23 09:02:41
    취재후·사건후
에너지 분야 연구와 전문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는 한전공대(KEPCOTECH·켑코텍) 설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한전공대 설립을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것이다.

국정기획위는 지난 19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와 광주 도시첨단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에너지밸리를 조성하고 한전공대를 설립한다는 내용의 광주·전남 상생 공약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한전공대를 설립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에너지 산업을 이끌 고급 두뇌를 육성하고 이를 ‘빛가람 에너지밸리’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전공대 설립 문제는 이낙연 당시 전남도지사가 제안해 문재인 대통령의 호남 대표 공약 중 하나로 채택되면서 공론화됐다.

제안 내용을 보면 한전공대는 에너지 특화 대학으로 148만 7,603m²(약 45만 평) 정도의 부지에 조성되며, 설립에는 2020년까지 예산 5,000억 원 정도가 들 것으로 예상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받아들여, 후보 시절 “빛가람 에너지밸리에 세계 최고의 에너지분야 연구 중심대학을 설립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지역 사회는 한전공대가 들어설 장소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에너지밸리가 조성될 광주와 전남 나주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였는데, 두 지자체간의 유치 경쟁은 한때 기 싸움을 넘어 갈등 양상까지 보였다.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
한전공대 설립이 국정과제로 최종 선정되자 광주와 전남 나주는 각각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그간 불협화음을 의식한 듯 상생을 강조하고 나섰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19일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발표 뒤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전공대가 어디로 가느냐 하는 입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지금은 보다 많은 지원이 이뤄지도록 광주·전남이 협력하고 준비해야 할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강인규 전남 나주시장도 “한전공대 설립은 광주·전남이 다시 한 번 상생 발전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며 지역 간 불협화음으로 추진 시기를 놓치는 불상사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시장의 이 같은 발언은 시도 간 지나친 유치 경쟁으로 자칫 대형 국책 사업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일단 한국전력도 한전공대 설립에 우호적이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5월 25일 전남도지사 시절 한전공대 설립을 기안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한전공대 설립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조 사장은 이날 “한전공대는 일반종합대학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분야가 될 것”이라며 “유망한 미래산업에서 해당 분야 인재를 키우자는 취지이고 한전공대는 기존 일자리의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한전공대 설립과 관련한 회사 내부의 움직임은 아직까지는 없다. 한전 관계자는 “최근에서야 국정과제로 선정된 만큼 현재까지 대학 설립과 관련한 진행 사항은 없다”며 “이제라도 TF팀을 구성해 준비 작업에 들어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포항공대 전경
정부는 한전공대의 모델을 포항공대로 삼고 있다. 작지만 강한 연구 중심대학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포항공대가 지방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에 이공계 명문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박태준 설립이사장이 있었다. 박 이사장은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과학과 첨단 기술 분야의 인력 양성이 절대적이라는 교육보국(敎育保國)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소수정예 교육으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수 과학자를 집중 초빙했으며 1,500억 원을 들여 방사광가속기를 건설하는 등 교육과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포항공대의 성공에는 이러한 박태준 이사장의 리더십과 파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그럼, 앞으로 설립될 한전공대는 포항공대처럼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진 과정에서 많은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한전공대 설립은 대선 공약이라는 정치적 결과물이다. 한국전력이 내부의 필요와 고민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대학의 설립 기획부터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 한전의 참여는 없었다. 따라서 주체성도 부족하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대학 설립에는 수천억 원의 돈이 들어간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한전의 경영구조로 볼 때 쉬운 문제는 아니다. 특히 지금 한전에는 박태준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없다.

여기에다 교육환경이 포항공대가 설립된 1980년대와 크게 다르다. 당시에는 대학도 별로 없었고 이공계 특성화대학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유일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비롯해 포항공대(POSTECH),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5곳이나 된다.

한전공대가 들어설 광주·전남에도 이공계 특성화대학으로 광주과학기술원(GIST)이 있고 전남대 공대 등 지역 공과대학들이 있다. 이들 대학에는 이미 한전의 혁신도시 이전에 발맞춰 에너지 신산업분야 특성화 채비를 갖추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2015년 11월 에너지밸리 전문 연구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융합기술원을 출범시켰고 동신대는 에너지융합대학을 신설하고 올해 신입생을 처음 선발했다. 전남대 역시 전기공학과 등이 교육과정 개편에 나선 바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역 내 우수 인재들이 한전공대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며 “거점 국립대 육성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고등교육정책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전공대가 입학 자원을 지역인재에 맞추지 않고 전국적인 규모로 선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주과학기술원 전경
한전 측은 한전공대 설립에 대해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구체적인 입장이 없고 아직까지 내부에서 논의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즉 한전공대 설립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으니 정부가 국정과제로 선정해 진행하기 전까지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논의할 내용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포항공대와 한전공대 설립의 출발점이 다름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전공대가 당초 공약대로 세계 최고의 에너지분야 연구 중심대학이 되려면 이제부터라도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야 한다. 부지 선정부터 할 일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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