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몽골 스모 왕자님…일본인이 되란 말이야!

입력 2017.07.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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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일본 스포츠계에서 단연 이슈는 스모 요코즈나(천하장사) 하쿠호(白鵬)의 최다 승리 기록 달성이었다.

하쿠호는 이번 나고야 대회를 통해 지금까지 통산 최다 승리 기록을 갈아치우고 1,050승을 달성하며 스모 최강자로서의 위용을 뽐냈다. 2개 대회 연속 우승, 역대 최다 39회 우승은 덤이었다.

하쿠호가 가진 기록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승으로 우승한 횟수, 연간 최다승 기록, 요코즈나로서의 승리 수 등 연승 기록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기록을 하쿠호가 가지고 있다. 사실상 스모 역사를 새로이 쓰고 있는 기록의 사나이라 할 수 있다.


하쿠호는 일본인이 아닌 몽골 출신이다. 15세에 일본 스모계에 스카우트돼 32살이 되는 지금 일본의 전통 스포츠인 스모의 최강자로 군림하기까지 17년간 줄곧 일본에 살아왔고, 일본인과 결혼해 자녀도 두고 있지만, 어찌 됐건 여전히 그는 귀화하지 않은 채 몽골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일본 사람보다 더 스모에 지극한 애정을 표하고 있는 그에게 국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이냐 마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일본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인가 보다. 하쿠호가 최다승 타이기록을 세운 지난 20일 다음 날인 21일 일본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보도하며 하쿠호가 일본 국적을 취득할 생각이라고 덧붙여 전했다.

하쿠호 본인의 코멘트 없이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기사들은 '하쿠호가 은퇴 뒤 본인의 스모 도장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고 싶어 하며, 현 일본 스모협회 규정상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국적이어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전했다. 심지어 일본의 모 스포츠 신문은 '일본인 하쿠호'라는 제목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싣기도 했다.


사실 일본 스모계는 근세 들어 외국세가 강세를 보여왔다. 한때 하와이 출신들의 장사들이 대거 진출했고, 현재는 몽골 출신들이 막강한 힘을 발휘해 4명의 요코즈나 가운데 3명이 몽골 출신일 정도다. 그나마 일본인 요코즈나가 탄생한 것도 올해 들어서의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스모 역사상 최강자로 우뚝 선 하쿠호의 국적 문제는 일본 내에서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진보 성향의 도쿄 신문은 이런 현상에 대해 '하쿠호 도장을 가로막는 국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는 '굴절된 내셔널리즘'이라고 꼬집었다.

하쿠호의 부친은 몽골 씨름의 천하장사 출신으로 멕시코 올림픽 레슬링에서 은메달을 따낸 국민 영웅이다. 그런 부친을 둔 하쿠호가 몽골 국적을 버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일 수 있지만, 어쩐지 일본 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면 일본 국적을 취득하라며 몰아가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된다.

국가대표 경기에 열광하고 우리 선수의 금메달 획득에 환호하는 것처럼 스포츠와 내셔널리즘이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베를린 올림픽을 체제 선전 홍보의 장으로 활용했던 것처럼, 그 정도를 지나쳐 도를 넘어설 경우 스포츠 자체를 즐기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스포츠 본연의 정신을 잃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굴절된 내셔널리즘'을 스포츠에 투영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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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4 11:35:18
    특파원 리포트
지난 주말 일본 스포츠계에서 단연 이슈는 스모 요코즈나(천하장사) 하쿠호(白鵬)의 최다 승리 기록 달성이었다.

하쿠호는 이번 나고야 대회를 통해 지금까지 통산 최다 승리 기록을 갈아치우고 1,050승을 달성하며 스모 최강자로서의 위용을 뽐냈다. 2개 대회 연속 우승, 역대 최다 39회 우승은 덤이었다.

하쿠호가 가진 기록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승으로 우승한 횟수, 연간 최다승 기록, 요코즈나로서의 승리 수 등 연승 기록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기록을 하쿠호가 가지고 있다. 사실상 스모 역사를 새로이 쓰고 있는 기록의 사나이라 할 수 있다.


하쿠호는 일본인이 아닌 몽골 출신이다. 15세에 일본 스모계에 스카우트돼 32살이 되는 지금 일본의 전통 스포츠인 스모의 최강자로 군림하기까지 17년간 줄곧 일본에 살아왔고, 일본인과 결혼해 자녀도 두고 있지만, 어찌 됐건 여전히 그는 귀화하지 않은 채 몽골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일본 사람보다 더 스모에 지극한 애정을 표하고 있는 그에게 국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이냐 마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일본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인가 보다. 하쿠호가 최다승 타이기록을 세운 지난 20일 다음 날인 21일 일본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보도하며 하쿠호가 일본 국적을 취득할 생각이라고 덧붙여 전했다.

하쿠호 본인의 코멘트 없이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기사들은 '하쿠호가 은퇴 뒤 본인의 스모 도장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고 싶어 하며, 현 일본 스모협회 규정상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국적이어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전했다. 심지어 일본의 모 스포츠 신문은 '일본인 하쿠호'라는 제목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싣기도 했다.


사실 일본 스모계는 근세 들어 외국세가 강세를 보여왔다. 한때 하와이 출신들의 장사들이 대거 진출했고, 현재는 몽골 출신들이 막강한 힘을 발휘해 4명의 요코즈나 가운데 3명이 몽골 출신일 정도다. 그나마 일본인 요코즈나가 탄생한 것도 올해 들어서의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스모 역사상 최강자로 우뚝 선 하쿠호의 국적 문제는 일본 내에서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진보 성향의 도쿄 신문은 이런 현상에 대해 '하쿠호 도장을 가로막는 국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는 '굴절된 내셔널리즘'이라고 꼬집었다.

하쿠호의 부친은 몽골 씨름의 천하장사 출신으로 멕시코 올림픽 레슬링에서 은메달을 따낸 국민 영웅이다. 그런 부친을 둔 하쿠호가 몽골 국적을 버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일 수 있지만, 어쩐지 일본 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면 일본 국적을 취득하라며 몰아가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된다.

국가대표 경기에 열광하고 우리 선수의 금메달 획득에 환호하는 것처럼 스포츠와 내셔널리즘이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베를린 올림픽을 체제 선전 홍보의 장으로 활용했던 것처럼, 그 정도를 지나쳐 도를 넘어설 경우 스포츠 자체를 즐기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스포츠 본연의 정신을 잃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굴절된 내셔널리즘'을 스포츠에 투영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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