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수포자’의 나라 대한민국…빠른 풀이가 정답?

입력 2017.07.25 (14:52) 수정 2017.07.2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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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수포자’의 나라 대한민국…빠른 풀이가 정답?

[취재후] ‘수포자’의 나라 대한민국…빠른 풀이가 정답?

전 세계 청소년 영재들이 수학 실력을 겨룬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영광스런 얼굴입니다.

지난 2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폐막한 제58회 IMO(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한국 대표단은 선수 6명이 합계 170점(만점 252점)을 얻어, 2위 중국을 11점 차로 누르고 111개국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표학생 6명이 전원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수학천재'들의 싸움에서 당당하게 우승한 학생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럼 이번엔 일반 수학 수업 교실로 들어가 볼까요.

5년마다 초등학교 4학년과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러 분석하는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 변화 국제비교 연구(TIMSS)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표본학생 5천여 명이 이 시험을 치릅니다.

대한민국은 TIMSS 2015에서 수학성취도 초등학교 4학년 세계 3위, 중학교 2학년 세계 2위에 올랐습니다. 세계적인 호성적입니다.

그런데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물었더니, 엉뚱한 결과가 나옵니다.

수학에 '매우 자신 있음'이라고 응답한 학생이 초등학교 4학년 세계 꼴찌(45개국 중 45등), 중학교 2학년은 '뒤에서 4등'(39개국 중 36등)을 기록한 겁니다.

수학 성취도가 비교적 높지만, 자신감은 없는 우리나라 수학 교실의 단면입니다.

해결 방법은 없을까요?

한국과학창의재단에 따르면, 수학 포기자 흔히 '수포자' 학생들의 비율은 초등학교 6학년에서는 9.5%지만,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면 16.7%로 상승해 최대폭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중학교 1학년' 시기에 어떻게 수학 교육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몇 가지 사례 중심으로 실마리를 찾아보겠습니다.

고양 덕양중학교의 수학 수업고양 덕양중학교의 수학 수업

'입 수학'부터 '수학 축제'까지

공부는 손과 엉덩이로 하는 거라고 누가 그랬던가요. 고양 덕양중학교를 갔더니, 수학 시간에 한바탕 입씨름이 벌어졌습니다.

책상을 돌려 앉아 학생들끼리 문제 하나를 놓고 토론이 펼쳐진 겁니다. 방정식 단원에 있는 간단한 개념으로 과자 가격을 구하는 문제였지만,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풀이법을 내놓고 답을 주장했습니다.

이 수업의 교사는 풀이법을 알려주지 않고, 학생들의 토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각 학생이 어떻게 풀어가는지 관찰하고, 여러 학생들의 풀이법을 공유하는 역할만 했습니다.

독특한 접근으로 정답을 맞힌 정현우 학생은 "학원에 다니지 않아서 처음 배운 개념인데 어떻게 풀지 고민했다"면서, "내 풀이법을 친구들에게 알려줄 때 희열과 쾌감 같은 게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조혜정 수학 교사는 "완벽한 강의를 원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알아가게 만드는 수업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면서 "수업 준비는 훨씬 어려워졌지만, 졸지 않는 학생을 보면 뿌듯하다"고 밝혔습니다.

수학 체험전이 열린 세종과학고도 찾았습니다.

황금비 개념을 알려주는 부스에서는 참가자의 이목구비 비율을 측정해주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얼굴이 황금비에 얼마나 가까운지 알려주는 부스였습니다. 동공 사이 거리 : 눈썹-입술 사이 거리의 비율을 재는 겁니다.

마침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앉아 황금비 체험을 하고 자신의 '비율'을 듣고 있었습니다.

숭실중학교 2학년 이재용 학생은 "수학에는 사실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직접 뭔가를 해보니까 흥미가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이 부스를 맡은 세종과학고 2학년 전상진 학생은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수학의 원리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설치 배경을 밝혔습니다.

세종과학고의 수학체험전세종과학고의 수학체험전

'대안 교과서'부터 '수학나눔학교'까지

시민단체에서는 대안교과서 집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교과서는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의 설명 체계라서 자기 주도적 학습이 가능한 책을 써보자는 겁니다.

대안교과서는 현행 교과서보다 훨씬 두꺼운 형태로 제작됐습니다. 좀 더 친절한 설명을 위해 그렇게 개발됐다는 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이야기입니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는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 발견을 실현하도록 최대한 노력했다"면서 "교과서가 바뀌면 수업도 혁신할 수 있고, 수업이 바뀌면 평가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수학나눔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 50개교를 선도학교로 지정해 '재밌는 수학'과 '탐구하는 수학'을 중심으로 수업합니다.

올해 568곳이 수학 연구·나눔학교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수학나눔학교 운영결과는 어땠을까요. 수학학습 의지 부족 학생은 2015년 18.1%에서 2016년 14.4%로 줄었고, 수학이 좋다는 학생들은 2016년 초 59%에서 2016년 말에 64.7%로 늘었습니다.

덕양중학교의 생각하는 수학덕양중학교의 생각하는 수학

공통 처방 '생각하게 만드는 수학'

결국,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수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 처방입니다. 제한시간 내에 빠르게 풀어내야 하는 수학 말고, 골똘히 생각하도록 돕는 수학입니다.

박형주 전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은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 문제와 우리나라 시험지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문제가 4배 많다"면서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내려면 골똘히 생각만 하다간 절대 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 수학 교육은 깊이 생각하지 말도록 하는 교육이라는 쓴소리도 했습니다.

일선 교사들도 이런 수학 교육방식에 공감하고 수학 교육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2016년 12월에 전국의 수학교사 7,229명에게 물었습니다. 이 중 "배움을 즐기는 활동과 탐구 중심 수학교육에 동의한다"는 교사는 92%에 달했습니다.

"수학에 흥미와 자신감을 느끼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교사는 88.8%였습니다.

수학 직무 연수에 참여하고 싶다는 교사도 89.2%나 됐습니다. 수학 교육을 바꿔보자는 수학 교사들의 열망이 적지 않은 겁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학 교육이 중요하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미래 사회에 수학 교사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질 겁니다.

학생과 교사가 모두 수학 교육이 바뀌길 바라고 있습니다. 공식 암기와 계산 위주 수학 교육은 이젠 달라질 때도 됐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 ‘수포자’ 줄이려면?…“암기·계산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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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5 14:52:02
    • 수정2017-07-25 14:58:59
    취재후·사건후
전 세계 청소년 영재들이 수학 실력을 겨룬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영광스런 얼굴입니다.

지난 2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폐막한 제58회 IMO(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한국 대표단은 선수 6명이 합계 170점(만점 252점)을 얻어, 2위 중국을 11점 차로 누르고 111개국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표학생 6명이 전원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수학천재'들의 싸움에서 당당하게 우승한 학생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럼 이번엔 일반 수학 수업 교실로 들어가 볼까요.

5년마다 초등학교 4학년과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러 분석하는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 변화 국제비교 연구(TIMSS)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표본학생 5천여 명이 이 시험을 치릅니다.

대한민국은 TIMSS 2015에서 수학성취도 초등학교 4학년 세계 3위, 중학교 2학년 세계 2위에 올랐습니다. 세계적인 호성적입니다.

그런데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물었더니, 엉뚱한 결과가 나옵니다.

수학에 '매우 자신 있음'이라고 응답한 학생이 초등학교 4학년 세계 꼴찌(45개국 중 45등), 중학교 2학년은 '뒤에서 4등'(39개국 중 36등)을 기록한 겁니다.

수학 성취도가 비교적 높지만, 자신감은 없는 우리나라 수학 교실의 단면입니다.

해결 방법은 없을까요?

한국과학창의재단에 따르면, 수학 포기자 흔히 '수포자' 학생들의 비율은 초등학교 6학년에서는 9.5%지만,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면 16.7%로 상승해 최대폭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중학교 1학년' 시기에 어떻게 수학 교육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몇 가지 사례 중심으로 실마리를 찾아보겠습니다.

고양 덕양중학교의 수학 수업
'입 수학'부터 '수학 축제'까지

공부는 손과 엉덩이로 하는 거라고 누가 그랬던가요. 고양 덕양중학교를 갔더니, 수학 시간에 한바탕 입씨름이 벌어졌습니다.

책상을 돌려 앉아 학생들끼리 문제 하나를 놓고 토론이 펼쳐진 겁니다. 방정식 단원에 있는 간단한 개념으로 과자 가격을 구하는 문제였지만,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풀이법을 내놓고 답을 주장했습니다.

이 수업의 교사는 풀이법을 알려주지 않고, 학생들의 토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각 학생이 어떻게 풀어가는지 관찰하고, 여러 학생들의 풀이법을 공유하는 역할만 했습니다.

독특한 접근으로 정답을 맞힌 정현우 학생은 "학원에 다니지 않아서 처음 배운 개념인데 어떻게 풀지 고민했다"면서, "내 풀이법을 친구들에게 알려줄 때 희열과 쾌감 같은 게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조혜정 수학 교사는 "완벽한 강의를 원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알아가게 만드는 수업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면서 "수업 준비는 훨씬 어려워졌지만, 졸지 않는 학생을 보면 뿌듯하다"고 밝혔습니다.

수학 체험전이 열린 세종과학고도 찾았습니다.

황금비 개념을 알려주는 부스에서는 참가자의 이목구비 비율을 측정해주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얼굴이 황금비에 얼마나 가까운지 알려주는 부스였습니다. 동공 사이 거리 : 눈썹-입술 사이 거리의 비율을 재는 겁니다.

마침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앉아 황금비 체험을 하고 자신의 '비율'을 듣고 있었습니다.

숭실중학교 2학년 이재용 학생은 "수학에는 사실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직접 뭔가를 해보니까 흥미가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이 부스를 맡은 세종과학고 2학년 전상진 학생은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수학의 원리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설치 배경을 밝혔습니다.

세종과학고의 수학체험전
'대안 교과서'부터 '수학나눔학교'까지

시민단체에서는 대안교과서 집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교과서는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의 설명 체계라서 자기 주도적 학습이 가능한 책을 써보자는 겁니다.

대안교과서는 현행 교과서보다 훨씬 두꺼운 형태로 제작됐습니다. 좀 더 친절한 설명을 위해 그렇게 개발됐다는 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이야기입니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는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 발견을 실현하도록 최대한 노력했다"면서 "교과서가 바뀌면 수업도 혁신할 수 있고, 수업이 바뀌면 평가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수학나눔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 50개교를 선도학교로 지정해 '재밌는 수학'과 '탐구하는 수학'을 중심으로 수업합니다.

올해 568곳이 수학 연구·나눔학교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수학나눔학교 운영결과는 어땠을까요. 수학학습 의지 부족 학생은 2015년 18.1%에서 2016년 14.4%로 줄었고, 수학이 좋다는 학생들은 2016년 초 59%에서 2016년 말에 64.7%로 늘었습니다.

덕양중학교의 생각하는 수학
공통 처방 '생각하게 만드는 수학'

결국,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수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 처방입니다. 제한시간 내에 빠르게 풀어내야 하는 수학 말고, 골똘히 생각하도록 돕는 수학입니다.

박형주 전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은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 문제와 우리나라 시험지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문제가 4배 많다"면서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내려면 골똘히 생각만 하다간 절대 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 수학 교육은 깊이 생각하지 말도록 하는 교육이라는 쓴소리도 했습니다.

일선 교사들도 이런 수학 교육방식에 공감하고 수학 교육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2016년 12월에 전국의 수학교사 7,229명에게 물었습니다. 이 중 "배움을 즐기는 활동과 탐구 중심 수학교육에 동의한다"는 교사는 92%에 달했습니다.

"수학에 흥미와 자신감을 느끼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교사는 88.8%였습니다.

수학 직무 연수에 참여하고 싶다는 교사도 89.2%나 됐습니다. 수학 교육을 바꿔보자는 수학 교사들의 열망이 적지 않은 겁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학 교육이 중요하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미래 사회에 수학 교사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질 겁니다.

학생과 교사가 모두 수학 교육이 바뀌길 바라고 있습니다. 공식 암기와 계산 위주 수학 교육은 이젠 달라질 때도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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