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사라진 광장시장 계주…잡으면 돈 돌려받을 수 있을까?

입력 2017.07.2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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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건건] 사라진 광장시장 계주…잡으면 돈 돌려받을 수 있을까?

[사사건건] 사라진 광장시장 계주…잡으면 돈 돌려받을 수 있을까?

박 모(58·여) 씨는 광장시장에서 25년간 이불 장사를 했다. 명절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일했고, 어느새 그녀의 외동딸도 어른이 됐다. 박 씨는 지난 2015년 5월 계를 들었다. 가입 당시 받는 번호 순서대로 특정 날짜가 되면 돈을 타는 번호 계였다. 알뜰하게 모은 돈을 조금이나마 더 불려보려는 마음에서였다.

계주는 25년간 광장시장에서 함께 장사한 상인 김 모(68·여) 씨였다. 이불가게 상인들 사이에선 '돼지엄마'로 통했다. 김 씨 큰아들의 어릴 적 별명이 '돼지'였기 때문이다. 김 씨는 마당발로 통했다. 온갖 정보도 다 알았다.

일부 상인들 사이에선 김 씨의 남편 최 모(67) 씨가 은행장 출신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그녀의 큰아들이 국정원 직원이라는 말도 돌았다. 김 씨는 4개의 계를 운영했고, 수십 명의 광장시장 상인들이 계원으로 참여했다. 운영자금만 수십억 원에 달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김 씨가 사라졌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광장시장 계주 김 모 (68·여) 씨.사라진 광장시장 계주 김 모 (68·여) 씨.

피해 상인만 18명..."17억 원 잃어"

경찰에 고소장이 접수된 건 지난 13일. 계주가 돈을 들고 도망쳤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피해자들과 피해 액수가 상당한 것으로 보고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우선 법무부에 김 씨와 남편 최 씨에 대한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혹시라도 이들 부부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김 씨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그 사이 피해자들의 신고 접수는 계속됐다. 현재까지 돈을 떼였다며 피해 신고를 한 상인은 18명. 피해자들은 대부분 김 씨와 오랜 기간 함께 일한 광장시장 상인들이었다. 상인 중에는 1개의 계가 아닌 2~3개씩의 계에 가입한 이들도 있다. 4개의 계가 모두 고액 낙찰 계였던 만큼 상인들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 금액만 17억 원에 달한다.

김 씨는 자취를 감추기 전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를 폐업 신고하고 가게에 들었던 화재보험까지 해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김 씨가 계를 모집할 당시부터 돈을 갖고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역시 계획적인 범행으로 보고 수사력을 집중해 김 씨 부부의 행방을 쫓고 있다.

광장시장 상인들이 들었던 번호계 장부광장시장 상인들이 들었던 번호계 장부

곗돈의 딜레마...떼인 돈 찾기도 어려워

문제는 계주를 잡는다 해도 떼인 돈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계주가 모은 회원들의 돈을 적립했다가 순서대로 돈을 타가는 계 모임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계가 깨졌을 때다. 계주를 잡더라도 이미 돈이 없어진 경우가 다반사고, 개인 간 신뢰를 바탕으로 오간 돈을 법적인 절차에 따라 다시 회수하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곗돈의 특성상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가령 1~8번 계원들이 돈을 타낸 상태에서 계주가 잠적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당연히 9~16번 계원들은 자신들이 낸 돈을 계주가 모두 챙겼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계주는 1~8번 계원들에게 이미 순서대로 돈을 줬다고 주장할 것이다. 1~8번 계원들 역시 자신들이 부은 곗돈만큼 돈을 회수했다면 굳이 경찰에 신고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돈을 타낸 계원에게 다시 돈을 돌려 달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2008년 서울 강남의 '다복회' 계주 윤 모(60·여) 씨가 돌연 잠적했다. 무려 374억 원의 돈이 모인 귀족계였지만, 계주 단 한 명의 잠적으로 수백 명의 계원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윤 씨는 2009년 곗돈을 착복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대부분의 피해자는 당시 떼인 돈을 찾지 못했다.

'곗돈 사기'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앞서 기소된 다복회 계주 윤 씨는 징역을 산 뒤 출소해 지난 1월 비슷한 계를 운영하다 또다시 곗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고액의 곗돈을 무조건 탈 수 있다는 말은 신기루에 가깝다. 곗돈을 잃고 싶지 않다면 애당초 계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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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6 17:32:06
    사사건건
박 모(58·여) 씨는 광장시장에서 25년간 이불 장사를 했다. 명절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일했고, 어느새 그녀의 외동딸도 어른이 됐다. 박 씨는 지난 2015년 5월 계를 들었다. 가입 당시 받는 번호 순서대로 특정 날짜가 되면 돈을 타는 번호 계였다. 알뜰하게 모은 돈을 조금이나마 더 불려보려는 마음에서였다.

계주는 25년간 광장시장에서 함께 장사한 상인 김 모(68·여) 씨였다. 이불가게 상인들 사이에선 '돼지엄마'로 통했다. 김 씨 큰아들의 어릴 적 별명이 '돼지'였기 때문이다. 김 씨는 마당발로 통했다. 온갖 정보도 다 알았다.

일부 상인들 사이에선 김 씨의 남편 최 모(67) 씨가 은행장 출신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그녀의 큰아들이 국정원 직원이라는 말도 돌았다. 김 씨는 4개의 계를 운영했고, 수십 명의 광장시장 상인들이 계원으로 참여했다. 운영자금만 수십억 원에 달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김 씨가 사라졌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광장시장 계주 김 모 (68·여) 씨.
피해 상인만 18명..."17억 원 잃어"

경찰에 고소장이 접수된 건 지난 13일. 계주가 돈을 들고 도망쳤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피해자들과 피해 액수가 상당한 것으로 보고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우선 법무부에 김 씨와 남편 최 씨에 대한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혹시라도 이들 부부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김 씨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그 사이 피해자들의 신고 접수는 계속됐다. 현재까지 돈을 떼였다며 피해 신고를 한 상인은 18명. 피해자들은 대부분 김 씨와 오랜 기간 함께 일한 광장시장 상인들이었다. 상인 중에는 1개의 계가 아닌 2~3개씩의 계에 가입한 이들도 있다. 4개의 계가 모두 고액 낙찰 계였던 만큼 상인들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 금액만 17억 원에 달한다.

김 씨는 자취를 감추기 전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를 폐업 신고하고 가게에 들었던 화재보험까지 해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김 씨가 계를 모집할 당시부터 돈을 갖고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역시 계획적인 범행으로 보고 수사력을 집중해 김 씨 부부의 행방을 쫓고 있다.

광장시장 상인들이 들었던 번호계 장부
곗돈의 딜레마...떼인 돈 찾기도 어려워

문제는 계주를 잡는다 해도 떼인 돈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계주가 모은 회원들의 돈을 적립했다가 순서대로 돈을 타가는 계 모임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계가 깨졌을 때다. 계주를 잡더라도 이미 돈이 없어진 경우가 다반사고, 개인 간 신뢰를 바탕으로 오간 돈을 법적인 절차에 따라 다시 회수하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곗돈의 특성상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가령 1~8번 계원들이 돈을 타낸 상태에서 계주가 잠적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당연히 9~16번 계원들은 자신들이 낸 돈을 계주가 모두 챙겼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계주는 1~8번 계원들에게 이미 순서대로 돈을 줬다고 주장할 것이다. 1~8번 계원들 역시 자신들이 부은 곗돈만큼 돈을 회수했다면 굳이 경찰에 신고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돈을 타낸 계원에게 다시 돈을 돌려 달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2008년 서울 강남의 '다복회' 계주 윤 모(60·여) 씨가 돌연 잠적했다. 무려 374억 원의 돈이 모인 귀족계였지만, 계주 단 한 명의 잠적으로 수백 명의 계원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윤 씨는 2009년 곗돈을 착복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대부분의 피해자는 당시 떼인 돈을 찾지 못했다.

'곗돈 사기'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앞서 기소된 다복회 계주 윤 씨는 징역을 산 뒤 출소해 지난 1월 비슷한 계를 운영하다 또다시 곗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고액의 곗돈을 무조건 탈 수 있다는 말은 신기루에 가깝다. 곗돈을 잃고 싶지 않다면 애당초 계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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