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군 부대 주변 산사태 위험!…‘핑퐁 게임’에 8년 째 제자리

입력 2017.07.29 (12:07) 수정 2017.07.2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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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부 군부대 전국에 100여 개.. 산사태 위험 지대

한 달 전, 집중호우로 인해 서울시 종로구의 북한산이 크게 무너내린 적이 있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북한산뿐 아니라 주변 자치구의 산 대부분에 크고 작은 산사태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여름철 산사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취재를 할 계획이었다. 산림 전문가에게 전화를 걸어 재해에 취약한 산지들 명단을 받아들었다. 국토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위험 지역도 많았다. 그런데 명단에 속해 있는 주요 산들에서 공통점이 발견됐다. 모두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8년 전 산사태 위험 경고받았던 국방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취재원에게서 8년 전에 작성된 산림청 내부 문건을 건네받았다. 당시 산림청과 군부대가 공동으로 조사한 "주요 명산 군부대 산사태 위험 지역"에 대한 조사 보고서였다. 전국에 군부대가 있는 산은 100여개. 130쪽 분량의 문건에는 이 중 13곳의 산지를 답사한 뒤 확인한 자연재해 현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작전도로가 훼손된 건 다반사였다. 군부대 펜스가 흙더미에 밀려 터진 사례도 있었다. 집중호우로 인해 산비탈에 산사태가 심하게 나기도 했다. 이미 8년 전, 군과 산림청은 군부대 주변의 산사태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산사태 흔적에 깨진 배수로.. 위험한 휴양계곡

현장 상황이 궁금했다. 직접 가서 살펴보기로 했다. 산림기술사와 경기도에 있는 산 두 곳에 현장 답사를 갔다. 물론 군부대가 있는 산이다. 작전도로 근처 비탈에는 나무가 흙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밀려 있었고, 군데군데 2~3년 전에 산사태가 난 흔적이 확인됐다. 정상에서 이어진 배수로는 낡고 깨져있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었다. 호우 때 빗물을 담아두는 사방댐이 있었지만, 규모도 작고 수도 턱없이 부족했다. 동행한 전문가는 "이 상태로 2011년 우면산 당시와 같은 폭우가 내리면 큰 규모의 산사태를 피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다른 산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제대로 된 배수로가 없었다. 슬레이트 판으로 된 임시 배수로만 있었다. 그리고 불과 차로 1분 거리 계곡에서는 행락객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산지에 일반 토목공사.. 산림전문가 조언도 없어


왜 산사태 위험이 높아진 걸까? 첫째는 군 토목공사에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군부대 특성상 산 정상에 건물을 짓거나 장비를 설치할 때 산을 깎고 배수로를 만드는 등 토목공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산지에는 산림에 적합한 특수 토목 공사를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만 군은 여전히 일반토목 공사 기준으로 시설을 정비한다. 군 특성상 민간인 출입이 통제돼 산림전문가의 조언이 닿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둘째는 군과 지자체와 산림청 사이의 핑퐁 게임이다. 군부대 주변 산림 관리의 주체를 확인하기 위해 지자체와 군, 산림청을 취재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제각각이었다. 산림청 관계자는 군 주변 산림 훼손에 대해 군의 책임이라고 주장했으며, 지자체는 도청에, 군은 지자체와의 공동 책임을 주장했다. 산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부분 2개 이상의 지자체에 동시에 걸쳐있는 경우가 많고, 군부대 주변은 배타적 관리구역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대부분 자연재해가 그렇듯 이런 문제를 조율할 컨트롤타워가없는 것이다.


군부대를 비롯해 많은 산지가 산사태 위험지대다. 군만 지목되는 게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토의 70%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또 전국 산지의 6%에 군부대가 배치돼 있는 우리로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8년 전의 산사태 경고 문건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것은 놀랍다. 군은 자체적인 안전 메뉴얼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군부대의 배수관은 60년대 이후 바뀐 적이 없다. 산림전문가와 함께 토목공사를 하는 것도 선택 사항일 뿐이다. 군이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토를 지키며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안팎 모두 안전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군 시설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산사태 위험을 막는 것도 국민을 보호하는 중요한 임무일 것이다. 

[연관 기사] [현장추적] 산 정상 군부대 주변 곳곳 산사태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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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군 부대 주변 산사태 위험!…‘핑퐁 게임’에 8년 째 제자리
    • 입력 2017-07-29 12:07:12
    • 수정2017-07-29 12:07:47
    취재후·사건후
산 정상부 군부대 전국에 100여 개.. 산사태 위험 지대

한 달 전, 집중호우로 인해 서울시 종로구의 북한산이 크게 무너내린 적이 있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북한산뿐 아니라 주변 자치구의 산 대부분에 크고 작은 산사태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여름철 산사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취재를 할 계획이었다. 산림 전문가에게 전화를 걸어 재해에 취약한 산지들 명단을 받아들었다. 국토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위험 지역도 많았다. 그런데 명단에 속해 있는 주요 산들에서 공통점이 발견됐다. 모두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8년 전 산사태 위험 경고받았던 국방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취재원에게서 8년 전에 작성된 산림청 내부 문건을 건네받았다. 당시 산림청과 군부대가 공동으로 조사한 "주요 명산 군부대 산사태 위험 지역"에 대한 조사 보고서였다. 전국에 군부대가 있는 산은 100여개. 130쪽 분량의 문건에는 이 중 13곳의 산지를 답사한 뒤 확인한 자연재해 현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작전도로가 훼손된 건 다반사였다. 군부대 펜스가 흙더미에 밀려 터진 사례도 있었다. 집중호우로 인해 산비탈에 산사태가 심하게 나기도 했다. 이미 8년 전, 군과 산림청은 군부대 주변의 산사태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산사태 흔적에 깨진 배수로.. 위험한 휴양계곡

현장 상황이 궁금했다. 직접 가서 살펴보기로 했다. 산림기술사와 경기도에 있는 산 두 곳에 현장 답사를 갔다. 물론 군부대가 있는 산이다. 작전도로 근처 비탈에는 나무가 흙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밀려 있었고, 군데군데 2~3년 전에 산사태가 난 흔적이 확인됐다. 정상에서 이어진 배수로는 낡고 깨져있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었다. 호우 때 빗물을 담아두는 사방댐이 있었지만, 규모도 작고 수도 턱없이 부족했다. 동행한 전문가는 "이 상태로 2011년 우면산 당시와 같은 폭우가 내리면 큰 규모의 산사태를 피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다른 산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제대로 된 배수로가 없었다. 슬레이트 판으로 된 임시 배수로만 있었다. 그리고 불과 차로 1분 거리 계곡에서는 행락객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산지에 일반 토목공사.. 산림전문가 조언도 없어


왜 산사태 위험이 높아진 걸까? 첫째는 군 토목공사에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군부대 특성상 산 정상에 건물을 짓거나 장비를 설치할 때 산을 깎고 배수로를 만드는 등 토목공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산지에는 산림에 적합한 특수 토목 공사를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만 군은 여전히 일반토목 공사 기준으로 시설을 정비한다. 군 특성상 민간인 출입이 통제돼 산림전문가의 조언이 닿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둘째는 군과 지자체와 산림청 사이의 핑퐁 게임이다. 군부대 주변 산림 관리의 주체를 확인하기 위해 지자체와 군, 산림청을 취재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제각각이었다. 산림청 관계자는 군 주변 산림 훼손에 대해 군의 책임이라고 주장했으며, 지자체는 도청에, 군은 지자체와의 공동 책임을 주장했다. 산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부분 2개 이상의 지자체에 동시에 걸쳐있는 경우가 많고, 군부대 주변은 배타적 관리구역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대부분 자연재해가 그렇듯 이런 문제를 조율할 컨트롤타워가없는 것이다.


군부대를 비롯해 많은 산지가 산사태 위험지대다. 군만 지목되는 게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토의 70%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또 전국 산지의 6%에 군부대가 배치돼 있는 우리로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8년 전의 산사태 경고 문건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것은 놀랍다. 군은 자체적인 안전 메뉴얼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군부대의 배수관은 60년대 이후 바뀐 적이 없다. 산림전문가와 함께 토목공사를 하는 것도 선택 사항일 뿐이다. 군이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토를 지키며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안팎 모두 안전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군 시설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산사태 위험을 막는 것도 국민을 보호하는 중요한 임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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