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하루 1시간 겨우 땅 디뎌요”…화물기사의 24시간

입력 2017.08.01 (09:54) 수정 2017.08.0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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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건건] “하루 1시간 겨우 땅 디뎌요”…화물기사의 24시간

[사사건건] “하루 1시간 겨우 땅 디뎌요”…화물기사의 24시간


[연관 기사] [뉴스9] [르포] “하루 1시간 겨우 땅 디뎌요”…화물기사의 24시간


"하루에 1시간 정도만 땅 디뎌요."


7월 27일 14:00

화물 트레일러 기사 최영준 씨를 처음 만난 건, 의왕 컨테이너 기지 근처에서였다. 단골 주유소 화장실에서 간단한 세수를 마치고 나오던 그는, 오늘따라 오전에 화물을 내리는 업무가 늦게 끝나 출발이 늦어졌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의왕 컨테이너 기지를 근거로 하는 화물 기사들은 대부분 이렇게 기지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오후에 화물을 실으러 업체로 이동한다고 그가 귀띔했다. 오늘 그가 옮기게 될 화물은 안산 공장에서 부산신항으로 향하는 금속 창틀이었다.


7월 27일 14:30

기름도 넣고, 차량 정비도 하는 등 준비를 마친 그는 안산을 향해 출발했다. 늘 혼자 가는 길에 길동무가 함께해서 그런지 그의 표정은 어색해 보였다. 한 시간여만에 도착한 안산 공장. 공장의 지게차로 화물이 실리는 동안, 그는 잠시 의자 뒤편의 매트리스에 몸을 맡기고 휴식을 취했다. 그는 이렇게 사이사이 조금씩 취하는 휴식이 없다면 운송 일을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사실, 매트리스와 에어컨, 차량 운행이 멈췄을 때 작동되는 TV 등이 갖춰진 최 씨의 운전석은 하나의 생활공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하루에 1시간 정도만 겨우 땅을 디디는 날이 잦다고 덧붙였다.


7월 27일 17:00

화물을 싣고 부산으로 향하는 길은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6시간 정도 걸리는 길에 원래 저녁은 잘 챙겨 먹지 않는 편이지만, 동행하는 취재진을 위해서 특별히 옥천 휴게소에 들려 가끔 먹는 비빔밥을 먹기로 했다. 비빔밥은 맛도 있지만 빠르게 먹을 수 있어, 화물 기사들에게는 베스트 메뉴라고 그는 말했다. 15분도 안 걸린 식사시간, 그는 시간이 늦어졌다며 이내 다시 차에 올라탔다.


7월 27일 23:00

6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부산 신항. 어마어마한 컨테이너들의 위용에 깜짝 놀랐다. 보안 등의 이유로 출입이 통제돼 화물을 내릴 때는 동행할 수 없었지만, 작업 자체는 반자동식 크레인의 활약으로 20분 만에 끝났다. 하지만 최 씨는 곧바로 옆 부두로 이동했다. 의왕 컨테이너 기지로 향하는 또 다른 화물을 싣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루 만에 왕복으로 부산을 찍고 돌아가는 것은 기사들 사이에서 "탕바리" 혹은 "당일바리"라는 속어로 불린다. 운송비는 15년째 그대로인데다, 표준 운임마저 따로 없다보니 알선수수료만 오르는 상황, 체력적 부담에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몸이 조금 힘들더라도 바로 서울로 향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화물기사에게 휴식시간 준수는 그림의 떡"

7월 28일 00:00

한 시간여에 걸친 화물 내리기, 싣기 작업을 끝낸 최 씨는 다시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향했다. 최근 잇따른 졸음운전 사고에도, 최 씨는 50%의 야간 통행료 할인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고속도로에 진입한 뒤 휴게소에 도착한 뒤에야 쪽잠을 잘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고속도로변의 졸음 쉼터는 승용차가 한 대만 주차해있어도 화물차량이 쉽게 진입할 수 없는 데다, 최근 건설되는 휴게소 주차장은 경계석으로 인해 화물차 진입이 어려워 밤새 웬만한 휴게소의 화물차 주차공간은 꽉꽉 들어찬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렇게 두 시간 반을 달려, 남성주 휴게소에 도착한 최 씨는 두 시간 동안의 꿀 같은 쪽잠에 들었다.


7월 28일 05:00

비몽사몽 간에 휴대폰 알람 소리에 일어난 기자와 달리, 최 씨는 어느새 운전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서울로 가는 길은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타기로 했다. 운행 중 머리 위쪽의 디지털 운행기록장치가 눈에 띄었다. 마침 지난주 화물차량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진 상황, 하지만 최 씨는 "4시간 운전-30분 휴식"이라는 정부의 방침을 이른바 '시간 따먹기'로 생계를 이어가는 화물 트럭 기사들이 지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업체와 화물기사 사이에 수많은 중간업체가 자리 잡고 있는 현재 운반비 구조에 대해, 근본적인 개선 없이 휴식 시간을 강제하는 것은 언 발의 오줌 누기일 뿐이라는 말이었다.


7월 28일 09:30

그렇게 4시간 반을 달려, 의왕 컨테이너 기지에 도착했다. 올라오는 길에 중부 지역을 강타한 집중호우에 차량 운행이 쉽지 않았지만, 오전 중 화물 내리기를 끝내야 했던 최 씨는 결국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렇게 왕복 운반을 하고 나면 그가 손에 쥐는 돈은 85만 원.

일주일에 많으면 4차례 왕복 운행을 하는 그가, 수입 가운데 절반을 넘는 기름값과 차량 할부 비용 등을 빼고 한 달에 챙길 수 있는 돈은 2백여만 원. 그것도 일이 있을 때뿐, 일이 없거나 최근 젊은 기사들의 유입으로 가격 덤핑이 심해졌을 경우엔 더 적을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금요일이니 주말은 쉬어야겠다는 최 씨의 뒷모습을 끝으로 그와 함께한 24시간이 끝났다. 사실 최 씨의 경우는 매우 영세한 화물 트럭 기사들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행하며 보고 듣고 경험한 화물 트럭 기사들의 열악한 처우는 시급하고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졸음운전" 사고를 막기 위해 "4시간 운전 시 30분 휴식"만을 내걸고 단속에 나선 정부의 대책, 뭔가 중요한 부분이 빠진 것은 아닐까? 운송비 표준운임의 도입과 알선 수수료 인하 등 박리다매식 수익구조의 근본적 개선 없다면, 졸음을 무릅쓴 그들의 강행군은 매일밤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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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사건건] “하루 1시간 겨우 땅 디뎌요”…화물기사의 24시간
    • 입력 2017-08-01 09:54:41
    • 수정2017-08-01 22:24:00
    사사건건
[연관 기사] [뉴스9] [르포] “하루 1시간 겨우 땅 디뎌요”…화물기사의 24시간 "하루에 1시간 정도만 땅 디뎌요." 7월 27일 14:00 화물 트레일러 기사 최영준 씨를 처음 만난 건, 의왕 컨테이너 기지 근처에서였다. 단골 주유소 화장실에서 간단한 세수를 마치고 나오던 그는, 오늘따라 오전에 화물을 내리는 업무가 늦게 끝나 출발이 늦어졌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의왕 컨테이너 기지를 근거로 하는 화물 기사들은 대부분 이렇게 기지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오후에 화물을 실으러 업체로 이동한다고 그가 귀띔했다. 오늘 그가 옮기게 될 화물은 안산 공장에서 부산신항으로 향하는 금속 창틀이었다. 7월 27일 14:30 기름도 넣고, 차량 정비도 하는 등 준비를 마친 그는 안산을 향해 출발했다. 늘 혼자 가는 길에 길동무가 함께해서 그런지 그의 표정은 어색해 보였다. 한 시간여만에 도착한 안산 공장. 공장의 지게차로 화물이 실리는 동안, 그는 잠시 의자 뒤편의 매트리스에 몸을 맡기고 휴식을 취했다. 그는 이렇게 사이사이 조금씩 취하는 휴식이 없다면 운송 일을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사실, 매트리스와 에어컨, 차량 운행이 멈췄을 때 작동되는 TV 등이 갖춰진 최 씨의 운전석은 하나의 생활공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하루에 1시간 정도만 겨우 땅을 디디는 날이 잦다고 덧붙였다. 7월 27일 17:00 화물을 싣고 부산으로 향하는 길은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6시간 정도 걸리는 길에 원래 저녁은 잘 챙겨 먹지 않는 편이지만, 동행하는 취재진을 위해서 특별히 옥천 휴게소에 들려 가끔 먹는 비빔밥을 먹기로 했다. 비빔밥은 맛도 있지만 빠르게 먹을 수 있어, 화물 기사들에게는 베스트 메뉴라고 그는 말했다. 15분도 안 걸린 식사시간, 그는 시간이 늦어졌다며 이내 다시 차에 올라탔다. 7월 27일 23:00 6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부산 신항. 어마어마한 컨테이너들의 위용에 깜짝 놀랐다. 보안 등의 이유로 출입이 통제돼 화물을 내릴 때는 동행할 수 없었지만, 작업 자체는 반자동식 크레인의 활약으로 20분 만에 끝났다. 하지만 최 씨는 곧바로 옆 부두로 이동했다. 의왕 컨테이너 기지로 향하는 또 다른 화물을 싣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루 만에 왕복으로 부산을 찍고 돌아가는 것은 기사들 사이에서 "탕바리" 혹은 "당일바리"라는 속어로 불린다. 운송비는 15년째 그대로인데다, 표준 운임마저 따로 없다보니 알선수수료만 오르는 상황, 체력적 부담에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몸이 조금 힘들더라도 바로 서울로 향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화물기사에게 휴식시간 준수는 그림의 떡" 7월 28일 00:00 한 시간여에 걸친 화물 내리기, 싣기 작업을 끝낸 최 씨는 다시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향했다. 최근 잇따른 졸음운전 사고에도, 최 씨는 50%의 야간 통행료 할인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고속도로에 진입한 뒤 휴게소에 도착한 뒤에야 쪽잠을 잘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고속도로변의 졸음 쉼터는 승용차가 한 대만 주차해있어도 화물차량이 쉽게 진입할 수 없는 데다, 최근 건설되는 휴게소 주차장은 경계석으로 인해 화물차 진입이 어려워 밤새 웬만한 휴게소의 화물차 주차공간은 꽉꽉 들어찬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렇게 두 시간 반을 달려, 남성주 휴게소에 도착한 최 씨는 두 시간 동안의 꿀 같은 쪽잠에 들었다. 7월 28일 05:00 비몽사몽 간에 휴대폰 알람 소리에 일어난 기자와 달리, 최 씨는 어느새 운전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서울로 가는 길은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타기로 했다. 운행 중 머리 위쪽의 디지털 운행기록장치가 눈에 띄었다. 마침 지난주 화물차량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진 상황, 하지만 최 씨는 "4시간 운전-30분 휴식"이라는 정부의 방침을 이른바 '시간 따먹기'로 생계를 이어가는 화물 트럭 기사들이 지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업체와 화물기사 사이에 수많은 중간업체가 자리 잡고 있는 현재 운반비 구조에 대해, 근본적인 개선 없이 휴식 시간을 강제하는 것은 언 발의 오줌 누기일 뿐이라는 말이었다. 7월 28일 09:30 그렇게 4시간 반을 달려, 의왕 컨테이너 기지에 도착했다. 올라오는 길에 중부 지역을 강타한 집중호우에 차량 운행이 쉽지 않았지만, 오전 중 화물 내리기를 끝내야 했던 최 씨는 결국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렇게 왕복 운반을 하고 나면 그가 손에 쥐는 돈은 85만 원. 일주일에 많으면 4차례 왕복 운행을 하는 그가, 수입 가운데 절반을 넘는 기름값과 차량 할부 비용 등을 빼고 한 달에 챙길 수 있는 돈은 2백여만 원. 그것도 일이 있을 때뿐, 일이 없거나 최근 젊은 기사들의 유입으로 가격 덤핑이 심해졌을 경우엔 더 적을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금요일이니 주말은 쉬어야겠다는 최 씨의 뒷모습을 끝으로 그와 함께한 24시간이 끝났다. 사실 최 씨의 경우는 매우 영세한 화물 트럭 기사들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행하며 보고 듣고 경험한 화물 트럭 기사들의 열악한 처우는 시급하고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졸음운전" 사고를 막기 위해 "4시간 운전 시 30분 휴식"만을 내걸고 단속에 나선 정부의 대책, 뭔가 중요한 부분이 빠진 것은 아닐까? 운송비 표준운임의 도입과 알선 수수료 인하 등 박리다매식 수익구조의 근본적 개선 없다면, 졸음을 무릅쓴 그들의 강행군은 매일밤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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