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폭염에 에어컨 실외기 ‘활활’…내부 들여다 보니

입력 2017.08.03 (11:42) 수정 2017.08.03 (13:3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취재후] 폭염에 에어컨 실외기 ‘활활’…내부 들여다 보니

[취재후] 폭염에 에어컨 실외기 ‘활활’…내부 들여다 보니

최근 1주일에만 에어컨 실외기 화재 3건

최근의 사고부터 말해보자. 지난달 28일 오전 2시쯤 경기도 하남시의 20층짜리 아파트 5층 최모(39)씨 집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에서 불이 나 주민 7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그로부터 이틀 전인 26일 밤 8시 45분쯤에는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3층짜리 빌딩 옥상에서 불이 나 10분 만에 꺼졌다. 또 지난 22일에는 경상남도 진주시의 23층 건물에서 불이나 주민들이 대피하는 사건이 있었다. 모두 에어컨 실외기로부터 시작된 화재였다.


소방 전문가와 현장 취재.. 번화가 곳곳이 화재 위험지대

잇따른 실외기 화재에 소방 전문가와 함께 현장에 나가 설치 실태를 확인했다. 서울 종로구 번화가 뒷골목과 서울 영등포구의 먹자골목을 찾아갔다. 벽면을 타고 실외기 수십 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전선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군데군데 기름때와 먼지들로 가득했고 사람을 향해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인해 숨이 막혔다.

이렇게 간격 없이 실외기가 한 곳에 몰려 있을 경우, 불이 났을 때 쉽게 다른 곳으로 옮겨붙어 큰불로 발전할 수 있다. 고깃집이 몰려 있는 먹자골목의 경우에는 고기 연기를 빼내는 연통 바로 위에 실외기가 붙어 있기도 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온도가 오르는 것이다. 몰려 있는 모텔 가에는 건물 벽면에 실외기가 다닥다닥 붙어 서로 마주 본 채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내시경 카메라로 실외기 내부 촬영.. 켜켜이 쌓인 먼지

가지고 간 내시경 카메라로 멈춰있는 실외기 내부를 촬영해봤다. 두꺼운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으며, 하얀 장갑으로 내시경 카메라를 닦아보니 시커먼 때가 묻어나왔다. 소방 전문가는 먼지가 기계의 열을 보존하기 때문에 온도가 크게 오르고 불꽃에 쉽게 반응하는 성질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외기 전선만 50도.. 전선 결전 지점에서 화재 잇따라

그뿐만 아니다. 가져간 열전도 카메라로 주변 전선의 열기를 재어보니 50도를 넘었다. 대부분의 실외기 전선은 설치 여건상 피복 내구성이 약해진다. 소방 전문가는 최근 일어나는 실외기 화재의 대부분은 전선의 발화로 시작된다고 밝혔다.

대부분 실외기를 잇는 전선의 길이가 2M 남짓인데, 밖에 설치를 하려다 보니 중간에 선을 이어 붙여서 중간 내구도가 약해진다. 이곳에서 불꽃이 쉽게 생기고 화재로 이어진다는 것. 받아본 소방청의 자료에 따르면 3년간 발생한 실외기 화재 중 분기된 전선의 결선지점에서 61%에 달하는 화재가 발생했다.


실외기 화재 실험.. 1시간 만에 시뻘건 불 '활활'

KBS 취재진이 직접 에어컨 실외기를 가동해 불이 나는지 여부를 실험해봤다. 실외기 주변에 먼지 등 이물질을 뿌려놓고 실외기를 가동한지 1시간여가 지나자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시뻘건 불이 붙기 시작했다. 밀폐된 공간을 조성한 곳도 마찬가지. 순식간에 실외기 온도가 100도를 넘었다.


최근 3년 동안 일어난 에어컨 화재 472건.. 실외기 화재만 299건

이같은 화재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최근 3년 동안 일어난 에어컨 화재는 모두 472건. 그 가운데 실외기 화재만 299건으로 전체 화재의 63.3%에 달했다. 또 실외기 화재 299건을 월별로 보면 153건(51.2%)이 7∼8월에 일어나 여름철에 집중됐다. 그 중 발화 요인이 확인 가능한 289건 중 194건(67.1%)은 실외기의 부적절한 설치 및 사용, 제품 노후화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외기에서 발생한 열이 빠져나가기 어려운 구조인 탓에 불이 나기도 하고 배선 꺾임, 전선 갈라짐, 모터 과부하 등도 화재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실외기 설치 둘러싼 강제 규정도 없어

문제는 이같은 실외기 설지에 대한 규제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 국토교통부가 만든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상, 실외기는‘상업지역 및 주거지역에서 건축물에 설치하는 냉방시설 및 환기시설의 배기구와 배기장치'에 속한다. 정확히 '실외기'라는 항목도 없는 셈. 이 기준에 따르면 실외기는 도로 면으로부터 2M 이상의 높이에 설치하거나 배기장치의 열기가 보행자에게 직접 닿지 않도록 설치해야 한다.

이 항목은 어디까지나 보행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항목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규정마저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실외기 화재에 이제 체계적으로 대비할 때가 왔다.

[연관기사] [뉴스9] 전선 엉키고 먼지까지…실외기 화재 ‘비상’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폭염에 에어컨 실외기 ‘활활’…내부 들여다 보니
    • 입력 2017-08-03 11:42:53
    • 수정2017-08-03 13:35:16
    취재후·사건후
최근 1주일에만 에어컨 실외기 화재 3건

최근의 사고부터 말해보자. 지난달 28일 오전 2시쯤 경기도 하남시의 20층짜리 아파트 5층 최모(39)씨 집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에서 불이 나 주민 7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그로부터 이틀 전인 26일 밤 8시 45분쯤에는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3층짜리 빌딩 옥상에서 불이 나 10분 만에 꺼졌다. 또 지난 22일에는 경상남도 진주시의 23층 건물에서 불이나 주민들이 대피하는 사건이 있었다. 모두 에어컨 실외기로부터 시작된 화재였다.


소방 전문가와 현장 취재.. 번화가 곳곳이 화재 위험지대

잇따른 실외기 화재에 소방 전문가와 함께 현장에 나가 설치 실태를 확인했다. 서울 종로구 번화가 뒷골목과 서울 영등포구의 먹자골목을 찾아갔다. 벽면을 타고 실외기 수십 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전선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군데군데 기름때와 먼지들로 가득했고 사람을 향해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인해 숨이 막혔다.

이렇게 간격 없이 실외기가 한 곳에 몰려 있을 경우, 불이 났을 때 쉽게 다른 곳으로 옮겨붙어 큰불로 발전할 수 있다. 고깃집이 몰려 있는 먹자골목의 경우에는 고기 연기를 빼내는 연통 바로 위에 실외기가 붙어 있기도 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온도가 오르는 것이다. 몰려 있는 모텔 가에는 건물 벽면에 실외기가 다닥다닥 붙어 서로 마주 본 채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내시경 카메라로 실외기 내부 촬영.. 켜켜이 쌓인 먼지

가지고 간 내시경 카메라로 멈춰있는 실외기 내부를 촬영해봤다. 두꺼운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으며, 하얀 장갑으로 내시경 카메라를 닦아보니 시커먼 때가 묻어나왔다. 소방 전문가는 먼지가 기계의 열을 보존하기 때문에 온도가 크게 오르고 불꽃에 쉽게 반응하는 성질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외기 전선만 50도.. 전선 결전 지점에서 화재 잇따라

그뿐만 아니다. 가져간 열전도 카메라로 주변 전선의 열기를 재어보니 50도를 넘었다. 대부분의 실외기 전선은 설치 여건상 피복 내구성이 약해진다. 소방 전문가는 최근 일어나는 실외기 화재의 대부분은 전선의 발화로 시작된다고 밝혔다.

대부분 실외기를 잇는 전선의 길이가 2M 남짓인데, 밖에 설치를 하려다 보니 중간에 선을 이어 붙여서 중간 내구도가 약해진다. 이곳에서 불꽃이 쉽게 생기고 화재로 이어진다는 것. 받아본 소방청의 자료에 따르면 3년간 발생한 실외기 화재 중 분기된 전선의 결선지점에서 61%에 달하는 화재가 발생했다.


실외기 화재 실험.. 1시간 만에 시뻘건 불 '활활'

KBS 취재진이 직접 에어컨 실외기를 가동해 불이 나는지 여부를 실험해봤다. 실외기 주변에 먼지 등 이물질을 뿌려놓고 실외기를 가동한지 1시간여가 지나자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시뻘건 불이 붙기 시작했다. 밀폐된 공간을 조성한 곳도 마찬가지. 순식간에 실외기 온도가 100도를 넘었다.


최근 3년 동안 일어난 에어컨 화재 472건.. 실외기 화재만 299건

이같은 화재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최근 3년 동안 일어난 에어컨 화재는 모두 472건. 그 가운데 실외기 화재만 299건으로 전체 화재의 63.3%에 달했다. 또 실외기 화재 299건을 월별로 보면 153건(51.2%)이 7∼8월에 일어나 여름철에 집중됐다. 그 중 발화 요인이 확인 가능한 289건 중 194건(67.1%)은 실외기의 부적절한 설치 및 사용, 제품 노후화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외기에서 발생한 열이 빠져나가기 어려운 구조인 탓에 불이 나기도 하고 배선 꺾임, 전선 갈라짐, 모터 과부하 등도 화재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실외기 설치 둘러싼 강제 규정도 없어

문제는 이같은 실외기 설지에 대한 규제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 국토교통부가 만든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상, 실외기는‘상업지역 및 주거지역에서 건축물에 설치하는 냉방시설 및 환기시설의 배기구와 배기장치'에 속한다. 정확히 '실외기'라는 항목도 없는 셈. 이 기준에 따르면 실외기는 도로 면으로부터 2M 이상의 높이에 설치하거나 배기장치의 열기가 보행자에게 직접 닿지 않도록 설치해야 한다.

이 항목은 어디까지나 보행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항목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규정마저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실외기 화재에 이제 체계적으로 대비할 때가 왔다.

[연관기사] [뉴스9] 전선 엉키고 먼지까지…실외기 화재 ‘비상’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