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소음 심한 복공판…알고보니 40년전 기준

입력 2017.08.0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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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수만 대의 차량이 달리는 경기도 김포시의 한 대로. 지난 2015년부터 지하철역 공사가 시작되면서 도로에는 복공판이 깔려 있다. 복공판은 지하공간 공사 때 지상 위로 차량이나 보행자가 지나가도록 설치하는 철판이다.

이곳 주민들은 차량이 복공판 위로 달릴 때 발생하는 소음에 시달린다. 특히 수십 톤의 짐을 싣고 다니는 덤프트럭 등 공사 차량이 지나갈 때면 소음의 크기가 훨씬 더 커진다. 공사 관계자는 "소음이 심한 일부 복공판에 대해 보강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서울 송파구의 한 사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 반복되는 복공판의 소음에 일부 주민은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복공판의 소음이 심한 이유는 뭘까?

경기도 김포시에 깔린 복공판. 군데군데 땜질을 한 흔적이 있다.경기도 김포시에 깔린 복공판. 군데군데 땜질을 한 흔적이 있다.

파손되고 틈 벌어진 복공판..."문제 없어"

전문가와 함께 현장 점검에 나섰다. 곳곳에서 표면이 닳거나 틈이 벌어진 복공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부 복공판엔 금이 가고 포트홀까지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복공판은 처음 설치되면 공사가 끝날 때까지 품질이 유지돼야 하지만, 현장의 복공판 중엔 임시로 땜질하거나 교체된 것들도 있었다.

공사 현장에 깔린 복공판의 중량을 직접 재보니 표준 중량인 360kg에 못 미치는 278kg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충분한 중량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복공판의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병정 경기대 플랜트 건축공학과 교수는 "복공판의 중량이 적게 나가면 휨 성능이나 전단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사 관계자는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복공판의 설계 기준은 국토교통부의 가설공사 표준시방서에 기재돼 있지만, 참고사항일 뿐 법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국토부에서 설계 기준에 없는 자재에 대해서는 공사 감독관의 승인을 받으면 쓸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송파구에 깔린 콘크리트 합성 복공판. 파손 상태가 심하다.서울시 송파구에 깔린 콘크리트 합성 복공판. 파손 상태가 심하다.

과거 경찰 적발 사례도...반복되는 복공판 품질 논란

불량 중국산 복공판을 사용하다 경찰에 적발된 사례도 있다. 지난 2015년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품질시험기관인 A 사와 공모해 중국산 복공판의 시험성적서 10장을 위조해 1년여 동안 공사현장 14곳에 1만 4,000여 장의 불량 제품을 납품한 복공판 제조업체 B사 대표 유 모(47) 씨 등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품질 시험기관 A사는 B사의 부탁을 받고 B사 복공판의 하중계수와 미끄럼저항계수를 허위로 기재한 시험성적서 5장을 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B사가 중국에서 수입해 납품한 복공판은 최대 하중이 60t, 미끄럼저항계수는 50~60이었지만, 시험성적서엔 최대하중이 70t, 미끄럼저항계수가 95 이상으로 적혔다.

경찰은 국내 공사 자재 품질 검사기관이 150여 곳으로 난립해 있는 데다 1회 시험검사비가 100만 원 이상으로 고액이기 때문에 품질검사기관이 시험을 의뢰한 업체의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시험성적서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장치가 없고, 불량 복공판이 납품되더라도 공사 관계자 외엔 관리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복공판의 품질 논란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국토교통부의 가설공사 표준시방서에 복공판 품질 기준에 대한 설명이 있지만 이마저도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국토교통부의 가설공사 표준시방서엔 복공판 품질 기준이 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국토교통부의 가설공사 표준시방서엔 복공판 품질 기준이 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40년 전 안전기준...외국은 어떨까?

국내 복공판 안전기준은 1972년 일본에서 만든 기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국내 복공판 품질기준은 최소 13.44t의 하중을 견디면 적합 판정이 내려진다. 과거에는 공사 차량이 화물을 적재하더라도 무게가 10~15t 수준이라 이 기준이 적용되더라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 덤프트럭만 하더라도 50t 가까이 무게가 나간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는 하루빨리 강화된 복공판 기준을 적용해 사고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3월 건축구조기술사회는 복공판 편람을 만들었지만, 현장에서 해당 기준에 맞는 복공판을 사용할지는 미지수다. 새로운 기준으로 복공판을 제작하면 복공판 설치 비용이 2배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서유럽 국가들과 일본에서는 20년 전부터 안전성에 문제가 제기된 복공판은 생산을 중단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지난해 시속 80㎞에서 20t의 무게를 견디면 합격이던 기준을 25t으로 올리기도 했다. 공사 차량 등 중장비 기계의 늘어난 무게를 반영한 조치다.

국토부는 지난 5월 국가기술표준원에 복공판의 규격 기준을 마련해줄 것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최병정 교수는 "복공판의 설계와 시험 등을 민간에 맡기면 비용을 핑계로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서 복공판의 품질 기준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번 바로잡지 않으면 복공판 품질 논란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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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사건건] 소음 심한 복공판…알고보니 40년전 기준
    • 입력 2017-08-03 14:47:12
    사사건건
하루 수만 대의 차량이 달리는 경기도 김포시의 한 대로. 지난 2015년부터 지하철역 공사가 시작되면서 도로에는 복공판이 깔려 있다. 복공판은 지하공간 공사 때 지상 위로 차량이나 보행자가 지나가도록 설치하는 철판이다.

이곳 주민들은 차량이 복공판 위로 달릴 때 발생하는 소음에 시달린다. 특히 수십 톤의 짐을 싣고 다니는 덤프트럭 등 공사 차량이 지나갈 때면 소음의 크기가 훨씬 더 커진다. 공사 관계자는 "소음이 심한 일부 복공판에 대해 보강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서울 송파구의 한 사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 반복되는 복공판의 소음에 일부 주민은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복공판의 소음이 심한 이유는 뭘까?

경기도 김포시에 깔린 복공판. 군데군데 땜질을 한 흔적이 있다.
파손되고 틈 벌어진 복공판..."문제 없어"

전문가와 함께 현장 점검에 나섰다. 곳곳에서 표면이 닳거나 틈이 벌어진 복공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부 복공판엔 금이 가고 포트홀까지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복공판은 처음 설치되면 공사가 끝날 때까지 품질이 유지돼야 하지만, 현장의 복공판 중엔 임시로 땜질하거나 교체된 것들도 있었다.

공사 현장에 깔린 복공판의 중량을 직접 재보니 표준 중량인 360kg에 못 미치는 278kg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충분한 중량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복공판의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병정 경기대 플랜트 건축공학과 교수는 "복공판의 중량이 적게 나가면 휨 성능이나 전단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사 관계자는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복공판의 설계 기준은 국토교통부의 가설공사 표준시방서에 기재돼 있지만, 참고사항일 뿐 법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국토부에서 설계 기준에 없는 자재에 대해서는 공사 감독관의 승인을 받으면 쓸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송파구에 깔린 콘크리트 합성 복공판. 파손 상태가 심하다.
과거 경찰 적발 사례도...반복되는 복공판 품질 논란

불량 중국산 복공판을 사용하다 경찰에 적발된 사례도 있다. 지난 2015년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품질시험기관인 A 사와 공모해 중국산 복공판의 시험성적서 10장을 위조해 1년여 동안 공사현장 14곳에 1만 4,000여 장의 불량 제품을 납품한 복공판 제조업체 B사 대표 유 모(47) 씨 등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품질 시험기관 A사는 B사의 부탁을 받고 B사 복공판의 하중계수와 미끄럼저항계수를 허위로 기재한 시험성적서 5장을 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B사가 중국에서 수입해 납품한 복공판은 최대 하중이 60t, 미끄럼저항계수는 50~60이었지만, 시험성적서엔 최대하중이 70t, 미끄럼저항계수가 95 이상으로 적혔다.

경찰은 국내 공사 자재 품질 검사기관이 150여 곳으로 난립해 있는 데다 1회 시험검사비가 100만 원 이상으로 고액이기 때문에 품질검사기관이 시험을 의뢰한 업체의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시험성적서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장치가 없고, 불량 복공판이 납품되더라도 공사 관계자 외엔 관리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복공판의 품질 논란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국토교통부의 가설공사 표준시방서에 복공판 품질 기준에 대한 설명이 있지만 이마저도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국토교통부의 가설공사 표준시방서엔 복공판 품질 기준이 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40년 전 안전기준...외국은 어떨까?

국내 복공판 안전기준은 1972년 일본에서 만든 기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국내 복공판 품질기준은 최소 13.44t의 하중을 견디면 적합 판정이 내려진다. 과거에는 공사 차량이 화물을 적재하더라도 무게가 10~15t 수준이라 이 기준이 적용되더라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 덤프트럭만 하더라도 50t 가까이 무게가 나간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는 하루빨리 강화된 복공판 기준을 적용해 사고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3월 건축구조기술사회는 복공판 편람을 만들었지만, 현장에서 해당 기준에 맞는 복공판을 사용할지는 미지수다. 새로운 기준으로 복공판을 제작하면 복공판 설치 비용이 2배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서유럽 국가들과 일본에서는 20년 전부터 안전성에 문제가 제기된 복공판은 생산을 중단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지난해 시속 80㎞에서 20t의 무게를 견디면 합격이던 기준을 25t으로 올리기도 했다. 공사 차량 등 중장비 기계의 늘어난 무게를 반영한 조치다.

국토부는 지난 5월 국가기술표준원에 복공판의 규격 기준을 마련해줄 것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최병정 교수는 "복공판의 설계와 시험 등을 민간에 맡기면 비용을 핑계로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서 복공판의 품질 기준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번 바로잡지 않으면 복공판 품질 논란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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